전 글이 일일 베스트에 올랐습니다.
여러분이 관심가져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저번에는 천재 공학생들의 유쾌한 인생드라마를 그린 '세 얼간이'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에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라이언 일병 구하기"
입니다.
이름만 듣고 영화가 어떤지 직접 보지 못하신 분들도 많으실겁니다. 먼저 말씀드리면
영화가 상당히 잔인하고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노약자 분들은 보시지 않는 것을 권유드립니다.
이미 보았다면 다시 살펴보는 느낌으로 봐주시면 되겠고,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리뷰를 먼저 보고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가급적이면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스크롤 주의!

Costa의 평점 : 9.0
라이언 일병 구하기, 어디선가 많이 들어들 본 영화 제목일 것이다. 필자도 개봉 당시에는 불과 초등학생이었으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커녕 영화에 대한 제대로된 감상평도 적을 수 없는 코흘리개에 불과했다.
다 성장한 이후에나 명성만 귀에 딱지가 질 정도로 들어온 영화를 뒤늦게 봤다. 과연 명성에 걸맞는 값을 했을까?
기대 이상, 비록 미국영화 특유의 숭배사상 비슷한 것이 녹아들어가 있다손 치더라도 동류의 영화와 비교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전쟁영화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다.
당신은 어떤 전쟁영화를 보았고,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통념속에 지배된 전장의 이미지는 대부분이 가짜다. 혹은 좋게 포장되어 있는 것들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실제 전장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우리 삶과 어떻게 이어지는 지 분명한 가르침을 주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전쟁의 끔찍함 그 자체로 주목받다.

"당신의 마지막 말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작은 위안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다 늙어버린 라이언 일병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그가 회상하는 방식도 아니고, 그가 왜 여기에 오게되었는지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이와 같은 구조를 가진 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이하 태극기)가 해당하겠다. 태극기에서는 주인공이 형의 유해를 발굴하는 곳에 도착하는 것에서 그가 왜 거기에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게 되는데, 그것의 원조는 바로 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고 할 수 있다.
보편화 시킬 수 있는 공통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들은 보통 회귀의 방식을 지닌다. 기억을 반추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 중 하나라면 영화에서 이런 기법을 차용하는 것 또한 문학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이 실제로 우리에게 유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후회하거나 행복해하지 않는가. 기억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인 것이다.

-상륙 직후 터진 폭탄에 부하의 외침을 듣지 못하고 잠시 귀가 멀어버린 주인공. 극도의 혼란 속에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개봉 당시 많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적나라한 모습은 기존의 전쟁영화 판도를 바꿀만큼 충격적이고 잔인한 장면으로 가득 채워졌다. 우리는 편하게 밥상머리에 앉아 밥을 떠먹으면서도 타국의 전쟁소식을 아무런 감흥도 없이 접하게 되고, 심지어 재미있게 구경(?)하는 모습이 보편적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관점을 무참히 깨부수어 버린다.
내장이 터지고 절규하는 병사,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애처로운 모습들, 기존에 우리가 보아왔던 용감하고 씩씩한 군인들의 함성이 아니라 드리워진 죽음의 공포 앞에 범을 만난 강아지 처럼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들만이 그려져있을 뿐이다.

-당신은 이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용감하게 총을 들 자신이 있는가?
실제로 배트남전에서 기록된 수치로, 한 사람의 적군을 사살하기 위해 평균 3만 발의 총알이 필요했다고한다. 그것은 총의 성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만큼 조준사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기위해 부정확한 사격을 하다보니 상대를 맞추기 더욱더 어려워진다.
이 영화는 그런 점과는 거리가 멀지만 전쟁 상황에서 인간이 겪게 될 모습을 굉장히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보통 전쟁의 참극이라 하면 비처럼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피해를 입는 민간인이나 시설물들의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는 대부분 전장에서 싸우는 군인들의 입장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군인들도 가족이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사랑할 줄 아는 한 인간일 뿐인 것이다. 전쟁에 나가 총을 든다고 해서 없던 용기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전장에 투입되면 살육에 미쳐 날뛰는 살인마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유태인 출신의 그는 독일군으로부터 빼앗은 히틀러 소년단 칼을 들고 오열한다.
그렇다면 전장의 모든 군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결국 사람이 나가서 싸우는 곳이 전장이니, 전쟁을 통해 그들이 입은 정신적 외상은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발작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남는다. 영화에서 수시로 군인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슬픔에 빠지거나 광기어린 모습을 띠게 되는데, 이것은 그러한 것들을 잘 표현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싸이코패스가 아닌 바에야, 가축이 도살되는 장면도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데 하물며 사람의 사지가 터져나가는 전장이라면, 게다가 그들이 나의 친구들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굳이 구체적인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당신들은 그들의 발작적 증세를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2. 빛나는 검을 들고 괴물을 무찌르는 것만이 영웅은 아니다.
그들이 영웅일 수밖에 없는 이유. 무엇을 위해서?

-수많은 전쟁영화들이 답습한 그 장면. 우리나라의 전쟁 영화에도 이러한 장면은 몇 번 등장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참신성을 부여받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 제목에 다 드러나있다. 적진 한 복판에 떨어진 이름밖에 알지 못하는 일개 병사를 구하러 가는 군인들. 비록 그의 다섯 형제가 모두 죽어 그 마저 죽어버린다면 일가가 몰락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전혀 연고도 없는 타인이 그를 구하러 갈 이유는 없다. 그런데 주인공과 그의 대원들은 그를 구출하러 간다. 왜?
먼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조건을 살펴보자.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이성을 통해 본능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본능이라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대소변에서 부터 성욕, 무언가 가지고 싶은 욕구 등, 욕망적인 것에 기초하게 된다. 인간은 이를 통제할 수 있으며, 극단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위협받는 일조차도 이성으로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효율론으로 생각해봤을 때 우리들 대부분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배가 고픈데도 음식점에 들어가서 훔치지 않으며, 성욕이 왕성해도 길거리에서 섹스를 하지 않는다. 이성이 당신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말도 안되는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이 대원들의 행보 하나하나가 모두 인간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수행할 수 있는 임무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비극과 참상인 것이다.

"질문이 있습니다, 왜 8명이 1명을 구하러 가야하는 거죠?"
"누구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
그러나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고 해도 이런 임무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죽을 것이 뻔한 임무. 바늘로 빽빽히 들어찬 발판 위에서 잃어버린 모래알 하나를 찾으라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실제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을 종종 드러낸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이런 희생을 감내해야만 하는가?

"나한테 걸린 내기값이 얼마나 올랐지?"
영화 속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실제로 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대답하거나 알려주는 경우는 없다. 그것은 이미 그들의 존재 이유만으로도 설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존 밀러 대위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는 시종일관 과거를 감춘 채 대원들과 함께 전장을 누빈다. 심지어 부하들이 장난스럽게 그의 옛직업을 맞추는 일에 돈을 걸기까지 했을 정도다.
자신들이 행하는 임무에 사실 이유라는 것을 부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신이 만약 군인이고, 생전 처음 보는 듣지도 못했던 사람을 위해 평양까지 쳐들어가서 구출해와야 한다면 쉽게 납득이 가겠는가? 그 임무를 행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이유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저 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존 밀러 대위도 굳이 자신의 과거를 밝힐 필요가 없다. 그는 부하들을 지휘하고, 임무를 성공시키면 그 뿐인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밝힌다 한들, 바뀌는 것은 없고 오히려 임무에 지장이 된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주인공의 존재 자체로, 위에서 언급한 질문의 답이 된다.

-그들은 매복한 독일군의 기관총 포대를 제압하려다 동료를 잃는다. 상황이 끝난 후 그들은 이성을 잃고 달려가 방아쇠를 당긴 적을 응징한다.
이 이유를 부여할 수 없는 무식한(?) 임무는 또 한 편으로 말하면 굳이 수행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을 임무로 돌려 말할 수도 있다. 극중에서는 지나쳐도 될 독일군의 기관포 진지를 공격하다 동료를 잃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지나쳤다면 아무런 피해가 없었겠지만, 존 밀러는 공격을 지시했고, 전우를 잃게 된다.
이것은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임무와 교묘히 뒤섞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왜 찾아서 전우를 죽게 만들고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가, 대체 무엇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인가?

-이성을 잃은 그들을 무슨 말로 진정 시킬 수 있겠는가.
그들은 잠깐 짐승이나 다름없는 상태

-복합적인 감정에 의해 오열하는 존 밀러 대위.
이 감정이라는 것은 쉽게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히 대답할 수 없다. 군에 복종한다는 상투적인 말로도 뭔가 찝찝한 감이 있다. 다만, 그들이 영웅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말 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뛰어 넘은 존재, 그것이 영웅의 자질로 적합하다. 모든 영웅은 확고한 신념 아래 타인을 위해서 자신까지도 희생시키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 라이언 일병을 향해가는 이들은 비록 날지 못하고 불사의 육체를 지닌 것도 아니지만 그 영웅적 자질은 충분히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영웅들은 특별히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아닌 평범한 우리로 이루어진 군인들이라는 사실이 더욱 이 영화를 뜻깊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3.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전 여기에 남겠어요. 전우들을 두고 혼자만 도망갈 순 없어요."
몇 번의 착오를 거치고 동료를 잃은 그들은 마침내 진짜 라이언을 찾아낸다. 오는 내내 구할 가치가 있는 놈인지 단단히 벼르고 있던 그들은 동료를 버릴 수 없다는 그의 말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 듯한 기분이다.
일행은 라이언 일병과 함께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살면서 처음 본 사람들이지만 전장의 특수성으로 인해 그들은 정신적인 교감까지 나누게 된다. 전장이 인간에게 참혹함과 나약함을 안겨주었다면 한 편으로 전우애와 같은 초인간적인 감성까지 부여하게 된다.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전쟁이 한 번 일어날 때 마다 문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극한의 상황이 오히려 인간을 극한의 감성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임무를 완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 하지 않아도 될 무리한 임무를 자청해서 수행한다. 그들의 행적은 늘 합리적인 판단에 의거한 일들이 아니다. 말도 안되는 임무의 연속, 인간의 의식을 초월하는 어떤 정신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 왜 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은 거의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다.

-동료에게 탄약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업헴. 결국 동료가 죽임을 당하고, 공포에 무너져 적을 보고도 총을 떨어뜨리는 나약함을 보이고 있다. 비록 임무를 수행하러 왔지만 극한의 상황에 직면하면 인간을 덮칠 것은 또 다시 나약함이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어."
무리한 임무의 끝은 애시당초 훌륭한 결과를 낳을 수 없다. 비록 라이언 일병을 찾는 데 전우 몇명을 잃기는 했지만 그들은 해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라고 해도 탱크를 앞세운 전력을 총과 몇 발의 수류탄으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존 밀러 대위는 결국 총에 맞아 쓰러지고, 교두보로 넘어오는 탱크를 저지하기 위해 권총을 꺼내 쏜다. 역시나 말도 안되는 일이다. 권총에 탱크가 터지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불가항력에 가까운 일을 하려 한다. 그러나 그 순간 탱크는 기적처럼 폭발한다. 그의 머리위로 날아가는 전투기들. 그는 말한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어"

"잘 살아야되, 라이언"
그 후, 모든 임무를 수행하고 쓰러진 존 밀러 대위에게 다가간 라이언은 그의 짧은 한 마디를 듣는다. 잘 살아라. 그리고 눈을 감는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살고 있습니까?
영화는 다시 처음의 늙은 라이언으로 돌아간다. 그렇다. 그는 존 밀러 대위의 잘 살라는 마지막 유언 때문에 최대한 잘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실패하지 않았고 나름 가족을 꾸려 잘 살아왔다. 그런 후에 그를 다시 찾아온 것이다. 마치 숙제를 끝낸 어린아이처럼 그는 존 밀러 대위의 비석 앞에 숙제와 함께 무릎 꿇었다.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이 영화는 분명 전쟁 영화이고 군인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지만 실상은 우리의 인생을 겨냥한 영화다.
왜 해야하는 지 모를 임무로 시작해서, 왜 사는지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의 발단이 되었던 라이언 일병은 존 밀러 대위의 유언 하나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이것이 영화로 끝날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라는 거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사실 납득이 갈만큼 우리 인생에 대단히 의미있고 이해가능한 일들인가? 왜 나와 당신들은 희생을 하면서까지 이러한 일들을 자행하고 있는가?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꿈, 희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 같은 것들은 솔직히 말하면 뜬구름 같은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쫓아가고 있고, 지독한 길이 앞에 놓여져 있음에도 걸어가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계속해서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억지로 하며 희생당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도 굳이 이야기 한다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 처럼 우리들 모두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수많은 재난 앞에서 주저앉게 되고, 엄마를 부르짖으며 죽어갈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섭다면 당장 돌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대부분의 여러분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궁극적으로 전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꿈과 같은 것들은 기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적합한 이유를 댈 수 있을 만큼 합리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목표에 온갖 위험이 산재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향해 나아갈 인간의 이성을 가진 존재다. 또한 그것은 반드시 희생을 수반한다. 달리 말하면 꿈에 도달한다는 것은 희생한다는 것이고, 여러분들이 희생이 무서워 꿈을 포기한다면 삶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없을 것이다.
존 밀러 대위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거부했다면, 혹은 그 작전이 성립 되지 않았다면 라이언 일병은 잘 살 수 있었을까? 보통은 죽었을 것이고, 설령 전장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가 성공했을 지는 알 수 없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영화이면서 인간의 삶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영화다. 일반의 전쟁영화와 차별을 두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수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 하나 평점을 깎아먹는 일은 다소 미국의 애국주의가 녹아들어가 있는 점이 조금 아쉽게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것이 영화 전체에 지장을 줄 만큼 비중이 큰 것도 아니거니와 작품성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므로 간단히 넘어가도록 한다.
잘 살아야 한다.
우리도 존 밀러 대위의 유언을 떠받들었다.
원문 링크 : http://blog.naver.com/pistol4747/20199394531 Costa의 Widevision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