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코스타입니다.
이번 금, 토 이틀간 전라도로 여행을 갔다온지라 리뷰를 새로 쓰지 못했습니다 ㅠ
(전라도는 참 좋은 곳입니다. 여러분들도 여유가 된다면 꼭 가보시길 바랍니다. 음식도 맛있고 경치도 좋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전라도 기행문도 올리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최근 개봉작인 "그래비티"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래비티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혹은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감을 잡지 못해서
영화를 굉장히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작품성에 비해서 의외로 낮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죠.
조금은 쓴소리지만 우리가 영화를 볼 때는 재미난 것을 보는 것도 좋지만
때로 심오하고 철학적인 영화를 보는 것도 인생에 많은 도움을 줄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래비티는 오감을 열어서 봐야하는 영화입니다.
기왕이면 극장에서 보시는 것을 추천드리고,
어쩔 수 없이 DVD로 봐야한다면 반드시 불을 끄고 헤드셋이나 이어폰으로 청취하는 것이
그래비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전에 써둔 글이라 다소 글이 길고 많은 점 양해바랍니다.
스크롤 주의!

Costa의 평점 : 10.0!
개봉 전 부터 보고 말겠노라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다가 나의 게으름과 여러가지 일들로 보기를 미뤄온 그래비티. 사실 필자는 우주에 관심이 많은데다가 재난영화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 본 영화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다. 그리고 어제밤에야 친구녀석과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아이는 영화보다는 산드라 블록이라는 배우에 더 관심이 컸던 것 같다.
사설을 줄이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과연 어땠을까.
결론 부터 이야기 하자면 "꼭 보기를 추천"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두 가지 다음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재미는 없지만 단 일 초도 지루하지 않다."
"극장을 나오는 순간 호흡곤란을 느끼게 된다."
평론가들에 비해 일반 대중의 평점이 낮은 이유는 역시 그다지 '재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시각적인 요소라고 해봐야 우주쓰레기의 습격이 제일 인상적일 것이고, 기존의 재난영화들에 비하면 강렬한 인상을 주는 위험도 없다. 하지만 영화는 단 1초도 지루하지 않다. 왜일까? 그를 세가지 측면으로 살펴본다.
1. 우주에서 벌어질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영화의 소재가 무척 참신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는 우주에서 겪을 만한 고난이 어떤 것인지 대개는 짐작을 하고 있다.(아마 대부분 이 영화가 무엇을 다루려는 지 알고 들어왔을 것이고, 어떤 전개일지 상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산소의 결핍, 진공과 각종 유해한 방사선의 위험 속 외부노출, 무중력 상태라는 특성상 한 번 힘을 받은 물체는 계속해서 떨어져나갈 뿐인 우주의 특성 등.
영화의 도입부는 사실 우리가 어느정도 예상한 수준의 재난들이 들이닥치고 있고, 긴장감을 유도하고는 있지만 남은 런타임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게 된다. "이제 어떻게 재난을 만들지?"
주인공은 동료와 허블우주망원경을 고치다가 러시아 당국이 위성을 폭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주쓰레기 연쇄폭풍을 정면으로 맞게 된다. 그들이 타고 있는 우주선은 물론이고 허블망원경까지 대파 된다. 동료도 단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한다. 모함을 잃은 전투기가 끝내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첫 번째 고난이 주어진다.
산소결핍과 우주미아의 위험.
폭풍의 여파로 주인공은 우주의 심연 속으로 내팽겨치게 된다. 중력도, 저항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는 어딘가 부딪히지 않는한 끊임 없이 같은 방향으로 내던져질 뿐이다. 이는 그의 동료가 제트팩을 사용해 그녀를 구조함으로써 해결이 되지만, 산소 결핍의 문제가 남았다. 산소를 공급해줄 곳은 없다. 떨어져 가는 게이지, 누구도 구조해올 수 없다는 극한의 공포감에 가빠지는 호흡. 여기서 우리가 상상한 우주재난의 모습은 모두 끝이 나지만 영화는 이 긴장감을 놓지 않게 했다. 어떻게 했을까.
영화가 긴박함을 한 시도 놓지 않은 데는 훌륭한 고증이 한몫한다. 우주에서 비행하는 물체들은 실제로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진한다. 영화 속에서 우주쓰레기들이 비행하는 속도는 시속 수만킬로미터에 이른다. 저항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머리 위에 떠있는 위성은 그와 비슷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 또 지구탈출속도를 계산해 쏘아지기 때문에 지표에 추락하지않고, 반대로 우주로 떨어져나가지 않은채 지구를 뱅뱅 돌게 된다. 쓰레기들도 마찬가지다. 한 번 그들을 덮쳤지만 엄청난 속도로 지구를 한바퀴 돌아 그들을 다시 덮칠 것이다. 우주공간의 특성상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그들을 다시 위험에 쳐하게 만든다. 이것이 영화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당장 산소결핍의 고난에 집중되어있지만 우리는 쓰레기가 다시 덮칠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산소걱정을 하는 주인공을 두고 타이머를 맞추는 조지 클루니의 행동으로 인해 우리는 시간 제약까지 받게 된다. 영화는 이런식으로 위기를 조성한다
{{ {(우선순위의 위험-같은 크기의 희망)잠재 예고된 위험}잠재 예고된 위험}
다음에 다가올 위기 상황을 저변에 깔아둔 채로 당장의 일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당장의 일을 해결하고 나면 곧바로 후순위에 밀려있던 변이 치고 올라와 곧바로 급박한 위기가 되는, 마치 기관총의 탄알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도 쉴 수 없다. 아니, 이제 좀 쉬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로 이 고요한 재난이 계속해서 진행된다.
영화서사에서는 일련의 공식과 같은 구조가 있다. 위기가 닥쳤으면 해소가 되고, 그것이 반복되는 것이 우리에게 안정감이 된다. 위기만 고조되는 것은 관객에게 피곤함을 안긴다. 영화에서는 이 위기가 도저히 해법이 없을 것처럼 보여지지만 매번 해법은 등장한다.
산소결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SS로 가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어째서 그들이 작업하는 곳 근처에 ISS가 있었는지, 혹은 산소게이지가 딱 마침 주인공이 ISS의 문을 열고 들어갈 만큼 존재하는 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실은 이 산소 문제도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을 거부한다. 이동 중 산소는 바닥이 났고, 주인공은 우주복 내의 적은 산소만으로 호흡을 시도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재난이 발생할 때 마다 대책은 등장하게 되고, 그 대책은 위에서 언급된 공식처럼 소위 말하는 '갑툭튀'가 아니라 미리 예고된 대책에 의한 행동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책들이 그렇게 억지스럽게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중국의 우주정거장에 도킹하는 순간은 다소 극적인 면이 적지 않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6단계에 걸쳐 고난과 해법이 일정 영역을 중첩한 상태로 진행하게 되는데, 기관총이 잘 정돈된 탄환과 조작된 기계의 일정한 동작에 의해 빠른 연사력을 갖게 되듯이 이 영화에서도 위기-희망-해결-위기의 시공간적 배분과 연계성이 몹시 잘짜여져 있어 그 긴 시간 우리는 한눈을 팔지 않게 되는 것이다.
2. 그 어떤 미학적인 것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지구.

영화의 치밀한 서사적 구조가 우리의 심장을 죄여왔다면 또 한 편으로 대단한 경이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지구의 광할한 모습,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밤, 낮, 일몰, 일출 등 장관들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우리가 종종 접하게 되는 우주와 관련한 사진은 보기만 해도 황홀하다. 그런 광경을 동적인 모습으로 본다는 것은 상당히 이채로운 경험이다. 그리고 영화가 제공하는 우주의 진풍경은 시각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영상 초입에 잠깐 소개된 우주의 특성, "우주에서는 소리를 전달할 매질이 없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 역시 훌륭한 고증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귀마개를 하고 말을 해보자. 내 속에서 말이 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주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런 것과 흡사하다. 우주 장비의 볼트를 조이거나 해제할 때 들리는 웅웅소리. 역시 내부의 울림이다.
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 실제 필자는 영화를 관람하다가 너무 몰입한 나머지 우주 쓰레기 충돌 직전에 큰 소리가 날 것을 대비했다. 우주에서는 소리가 퍼지지 않으니 당연히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파편의 비산,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극히 고요함 속에서 진행된다.
우리는 공포를 느낄 때 주로 시각적인 것보다 청각적인 요소에 더 많이 의존한다. 분명 공포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우리는 또 말을 들을 때 입술의 움직임도 함께 읽는다. 그래서 외국영화를 한국성우가 더빙하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 공포스러운 장면에 몸이 반응을 해야하는데 정작 공포감을 조성할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괴리를 낳는다. 우리는 그래서 육체적인 신호까지 교란받게 된다. 이것이 영화에서 조직된 구조와 맞물려 우리 신체를 더욱 긴장된 상태로 몰아넣는다. 우리가 영화가 끝난 뒤 호흡곤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어쨋든 다시 원점에서 생각하면 우리가 시각적으로 느끼는 우주의 이미지를 청각적으로도 수용함으로써 우주의 신비로움에 더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소재의 참신함을 뛰어넘는 개념의 것이다. 드넓은 우주를 우리가 공간적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청각적인 고요와 동적 움직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화의 초입부에서 마치 우리도 그 현장에 있는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앉은 극장조차도 심연의 우주와 닮아있다. 결국 우리는 우주와 지구의 아름다움을 시각, 청각, 공간 모든 것으로 부터 느낄 수 있다. 지구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우리는 이것을 우주적 접근으로 체험하게 된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 인간의 근본은 무엇인가.
세상의 질서는 또 무엇인가. 철학적인 관점.

구조가 잘짜여 있고 감각적으로 아름답다고 해서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없다. 무엇이 그래비티를 이토록 아름답게 만든 것일까?
그래비티의 미장센은 상징적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담은 함축적 의미도 크다. 우리를 품은 지구. 그것은 어머니의 숨결과 같다. 대지의 여신으로 알려진 가이아, 그도 지구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지구는, 애초에 우리 인간들에게 "어머니"로 받아들여지는 존재다. 만물을 잉태하고 탄생시키고 한 편으로 그것들이 죽어가는 것 또한 지구의 한 부분이다.
먼저 영화 전체를 뒤덮는 고요함은 태반의 고요와 흡사하다. 태아자 자리잡은 자궁의 소리는 어머니의 내부 심장소리다. 앞서 이 영화의 청각적 자극이 우리의 내부 울림과 흡사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듣는 태아의 그것과 같다.
우주를 유영하는 외로운 우주인은 어떤가? 역시 태아의 유영과 흡사하다. 태아도 태반을 떠돌고, 우주인도 우주를 둥실둥실 떠다닌다. 그리고 그 광경을 어머니가, 지구가 내려다보고 있다.
산소 결핍에 허덕이던 주인공이 ISS에 안착해 가장 먼저 한 것은 옷을 벗고 편히 쉬며 산소를 가득 들이쉬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태아의 모습과 같다. 웅크린 주인공과 둥근 선실 안, 허공을 함께 떠도는 로프같은 장비는 탯줄을 연상케 한다. 가장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장면이다.
어머니의 존재를 담는다는 것은 외적인 모습 뿐만이 아니다. 주인공의 설정이 아이를 잃은 어머니라는 점은 전율이 일 정도의 치밀함이다. 아이 잃은 어머니와 우주는 전혀 연관성이 없지만 그래비티에서는 다르다. 그것은 시청각의 감각과 서사적 요소가 합일을 이루는 놀라운 경험이다. 그녀를 끊임 없이 살게 만드는 것은 죽은 아이에 대한 속죄의식이다. 그리고 그녀는 어머니의 위대한 힘을 기반으로 생존에 성공한다. 그녀의 극적인 생존기는 어머니의 힘을 다시한 번 각인 시켜준다. 그리고 그 힘은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또 그 어머니는 우리가 영화의 미장센으로 부터 끊임없이 보고받은 '지구'이다. 지구에 대한 단 일절의 언급 없이 지구의 외경스러운 생명력과 위대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러나 지구의 생명력과 어머니로서의 모습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지구의 파멸성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겪는 고난은 고요속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위에서 지적했다. 그것은 긴장감을 유발하면서도 큰 소리로 간담을 서늘케하는 공포영화의 그것보다 심드렁한 느낌을 주게 되는데, 지구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잉태는 물론이고 그들의 소멸과 파괴도 대자연의 일부라는 것이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치타가 임팔라를 사냥하는 것을 보고 지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다. 지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주인공이 우주재난을 맞이하는 것도 특별히 대단할 것 없는 현상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은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고독도 훌륭하게 표현된다. 연료가 바닥난 소유즈 우주선에서 잘못 수신된 지구의 메세지에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을 애타게 찾는 주인공 처럼, 산드라 블록도 정신공황에 빠진 듯한 착란증세를 일으킨다. 지구, 대자연은 어머니의 숨결을 포함하면서도 인간을 순식간에 하찮은 존재로 만들어 버릴 힘 또한 가지고 있다.
개인이 겪는 고독이라는 것은 항거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좌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를 고독하게 만드는 것들은 기실 우리들이 이룰 수 없는 것들에 의한 것들이 많다. 비록 인재이긴 하지만 대재난 속에서 우주에 떨어진 개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미치지 않는 것이 비정상일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도 깊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모습을 대변한다. 깊은 아픔을 가진 우리들 모두는 항거할 수 없는 재난 속에서 좌초된 고독의 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살아남았다. 무엇으로? 어머니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우리는 어머니일 수도 있고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잠재능력이 있다. 주인공이 생존결심을 불태우는 환각신에서 모성애를 새삼스럽게 되살리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그래비티의 주인공이 모성애를 일깨워 고독의 배를 다시 출항시켰다면 우리에게도 나름의 잠재의식을 깨워 고독의 배를 출항 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해석을 해볼 수 있겠다.
영화 '그래비티'는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다. 우리 인류의 기원과 근원에 집중한 영화다. 우리는 지구가 잉태한 존재고, 어머니의 위대함으로 자라왔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근원적인 곳에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구, 어머니, 개인의 잠재적 원천. 모든 것들이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흘러간다. 이 영화는 그래서 아름답다.
이 영화는 솔직히 재미가 없다.
그러나 일 초도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율이 흐를 정도의 자각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 함께 보면 좋을 영화
<베리드>(2010),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
그래비티가 불러오는 호흡곤란(?)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하나 더 있다.
본 영화보다는 선행한 작품이지만 함께 보면 좋을 작품이다.
베리드는 기존 영화의 관습을 깨버린 영화다.
어머니와 지구의 위대함을 깨달았다면
이제 다시 인간사로 넘어와 잔혹한 고독과 인간 세계를 조명해보는 것은 어떨까.
관 속에 묻혀버린 한 사내의 모습을 지루하지 않게 그려낸 이 작품도 함께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에 대해서도 조만간 리뷰를 써서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본출처 : http://blog.naver.com/pistol4747/20198809036 Costa의 Widevision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