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대리 보고서를 보니, 예전 회사 상사가 문득 생각이 나네요.
회사 직급 호칭이 독특한지라 너무 티가 날까봐 우리 상사님은 대리님으로 칭해보겠습니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우리 대리님 (35세).
1. 점심 시간 반주
여자분이지만 점심 시간에 순대국 먹으러 가서 소주 반주 하시던 우리 대리님.
같이 갔던 나. 점심 시간에 술 안 먹는다고 이년 저년, 혼자 안 x 먹는다는 욕 들었음.
결국 소주 한 병 다 드시고 오후 근무 하시던 우리 대리님.
그날 사고 안 났나 모르겠음.
2. 새 옷 구입
미혼이신 우리 대리님. 체격은 애기 셋 낳은 아줌마 과장님보다 더 좋으심.
따라서 맞는 사이즈 옷은 구하기가 매우매우매우 힘듦.
그래서 다른 여직원이 새 옷 입고 오면 늘 도끼눈을 뜨고 화내심.
어느 날 내가 눈여겨보던 가디건 (구입가 2만원)이 세일하길래 사서 입고 간 날.
"야! 넌 월급 받으면 옷만 사 입냐? 왜 새 옷 입고 오는데?" 라며 사무실에서 고래고래 소리치심.
나 생글 웃으며 대답해드림.
"지금 세일하길래 싸게 잘 샀어요. 55사이즈 하나 남았던데 사실 거면 어딘지 알려 드릴까요?"
3. 소개팅 소개팅 그놈의 소개팅
나는 입사 때부터 퇴사 때까지 제일 많이 들은 소리가
"나 소개팅 시켜줘", "좋은 남자 없냐?" 임.
사실 좋은 사람 있으면 시켜줄 수도 있으나.. 그게 여의치가 않음.
우리 대리님. 외모도 그리 아름답지 않으시고 전혀 관리 안 하심.
출근 때 화장도 안 하시고 머리에서 물 뚝뚝 흘리며 오시는 건 다반사임.
미용실도 거의 안 가심.
매일 살 빼신다면서 식이 조절하는 것을 본 적이 없음.
게다가 입도 걸어서 이년 저년 소리를 안 하시는 날이 없음.
그놈의 소개팅 소리에 돌아 버릴 지경이라 "좋은 남자가 없어요" 하면,
그건 자기가 판단할테니 주변 남자들 죄다 소개하라고 하심.
난 나의 인간 관계가 매우 중요하고, 내 주변 사람들이 소중하므로 잠자코 일만 함.
어느 순간 소개팅 시켜줘는 업그레이드 되어,
"정 소개팅 시켜 줄 사람이 없으면 니 남친 (지금 내 남편)이라도 나한테 바쳐라!" 라고 함.
도저히 이 사람과 더 부대낄 수가 없어서 퇴사를 고려하기 시작함.
4. 업무
회사에서 제일 짜증날 때가 업무 관련된 일임.
어느 날 과장 (대리랑 궁짝이 맞는.. ㅁㅈ과장이라고 하겠음)이 나를 조용히 부름.
참고로 ㅁㅈ 과장은 우리 부서 과장이기는 하나 나의 직속은 아님.
사실 그 대리도 나의 직속은 아님.
나의 직속 과장님과 대리님은 따로 계시고,
내가 하는 일이 우리 대리님과 관련있어 같이 일할 뿐임.
그 ㅁㅈ 과장이 직속 과장님 안 계실 때 살짝 부름.
지금 우리 대리님이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한 보름 정도 해야 함), 나보고 하라고 함.
나는 직속 과장님, 직속 대리님 허락이 있어야 하겠다고 버팀.
며칠 후 허락 받았다고 함. 말단 직원이 허락 있다는 데 더 버틸 수 없어 일 시작함.
그런데 직속 과장님, 직속 대리님, 나한테 새로운 일을 시키기 시작하심.
원래 이런 분들이 아닌데 왜 이러시나 궁금해짐. 의심 증폭됨.
어느 날 회의 시간에 말이 나옴.
아니나 다를까 직속 과장님 모르심. 왜 ㅁㅁ(글쓴이)가 그걸 하고 있느냐고 물으심.
ㅁㅈ 과장 우리 대리가 안 해도 ㅁㅁ씨가 할 수 있으니까 시켰다고 함.
우리 대리. ㅁㅁ씨가 할 줄 아는데 내가 왜 해야 하냐고 함.
직속 과장님. 어이 없으신지 내게 한말씀 하심. "시킨다고 다 하지 마라."
직속 대리님. 묵묵히 어이없음 어이없음 표정만 짓고 계심.
결국 하던 일은 마무리하고 새로 시작한 일은 조금 늦춰 시작했지만,
모두 모두 기분 나쁜 일이었음.
그리고 이 일은 퇴사 고려의 또 하나의 원인이 되었음.
4. 사생활 관련 무개념 질문
우리 대리님 꽤 오래 솔로 생활 하심.
그래서 남들 연애사가 매우 궁금하셨나 봄.
아침에 출근하면 물으심. "어제 남친하고 뭐했냐?" 나는 그냥 인사함."안녕하세요?"
점심 때 물으심. "어제 남친하고 뭐했냐?" 나는 그냥 밥 먹음.
간식 타임 때 모두 앞에서 물으심. "남친하고 자 봤냐?"
모두 "헉!"하는 중에 나는 그냥 화장실 감.
내가 화장실 간 후 다음 타겟은 최근에 결혼한 여직원. "첫날 밤 이야기 해 봐라."
그래서 우리는 그냥 간식 안 먹고 다음부터 우리끼리 점심 먹으러 나감.
5. 나는 당신 남친이 아니라구요.
같이 외근 나갈 일이 있었음.
저녁 6시 반쯤 끝나고 저녁 먹었음.
이제 각자 집에 가면 되고, 외근 장소에서 우리집까지 1시간 넘게 걸리므로 빠이빠이 하려 했음.
나한테 자기를 데려다 달라고 함 (집이 회사 근처). 혼자가기 무섭다 함.
참고로 나도 여자임. 나도 저녁 늦게 회사 갔다가 집으로 또 돌아가는 길 무서움.
안녕히 가시라고 지금 친구 만나러 가야 한다고 해보니,
"남친 만나러 가냐고 좋겠네 어쩌네... 그래도 나 데려다 주고 만나러 가!"
내일 뵙겠다고 하고 꿋꿋하게 돌아서서 왔으나 다음날부터 또 한동안 소개팅 타령을 들어야 했음.
6. 결혼하면 안 되나요?
한 여직원이 결혼한다고 함.
그 소식을 건너건너 화장실에서 전해 들은 우리 대리님. 화장실에서 비명을 질렀음.
사무실에 있던 우리들은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려서 어리둥절함.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들어 온 우리 대리님.
"ㅇㅇ이 결혼한다더라. 너희 아냐? 아냐고!!!"
결혼 소식을 왜 대리님께 들어야 함?
7. 퇴사하는 직원 끝까지 부려 먹기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 나는 퇴사를 결심함.
퇴사하기로 한 두 달 전에 퇴사하겠다 이야기했음. 일을 마무리하는데 후임이 안 구해짐.
직속 과장님과 대리님을 생각해 (그분들은 참 좋으신 분들임. 지금까지도 종종 만나고 밥도 먹음),
후임이 안 구해질 경우를 대비해 연말 (퇴사는 7월 말)에 제출해야 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음.
퇴사 보름 전 갑자기 ㅁㅈ 과장이 나를 부름.
자기가 기획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다음해에 시작해서 1년 간 하는 걸로 계획한다고 함.
거기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나보고 1년치 일을 해 놓고 나가라고 함.
못한다고 했음.
시간도 없고 내년에 시작할지도 확실치 않을 일을 해 놓고 갈 의미가 없다고 했음.
정 해야 하면 후임이 구해지면 그 사람에게 맡기면 되지 않겠냐고 했음.
ㅁㅈ과장, 우리 대리가 내가 꼭 해 놓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고 함.
시간이 없는 건 한달 밤새면 된다고 함. (속으로 ㅁㅈ과장. 너나 밤 새라 해 줌).
난 끝까지 못한다고 함.
ㅁㅈ 과장 우리 직속 과장님을 들볶기 시작함.직속 과장님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심.
ㅁㅈ 과장 이번에는 직속 대리님을 직속 과장님 몰래 볶음.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 온 직속 대리님. 그냥 자기 알려 달라고 하심. 자기가 하겠다고 하셨음.
정 그러면 보름 안에 할 수 있는 만큼 조금만 맛보기로 해 달라고 합의 들어 옴.
우리 대리가 주도적으로 하고, 필요하면 보름 안에 조금씩 도와주는 것으로 하자고 함.
직속 대리님. 직속 과장님 생각해서 더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어 그렇게 합의 함.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 대리. 일년치를 해 놓으라고 함.
딱 보름치. 합의한대로만 해 주고 나감.
퇴사하는 날. 안녕히 계시라고 여기저기 인사하러 다니는 나를 째려보다가 한 마디 함.
"너 나가면 메신저에 계속 들어와! 할 일 많아! ㅆ (육두문자)"
직속 대리님. "메신저로 이상한 파일이나 보내지 말고 일 좀 해!"라고 한 마디 해 줌.
8. 퇴사 후
퇴사 후 다른 회사에서 룰루랄라 즐겁게 일하고 있었음.
물론 메신저에 우리 대리가 있었으나 우린 서로 모른 척 신경도 안 쓰고 있었음.
퇴사 후 2년 쯤 지났을 때, 우리 대리가 메신저로 말을 걸었음.
내가 있을 때 더 잘해줄 걸 그랬다는 둥, 나를 더 챙겨줄 걸 그랬다는 둥,
뭘 잘 못 먹은 듯한 소리를 계속 나열하고 있음.
대충 맞장구 쳐 주고 대화를 끝낸 후, 나중에 들었음.
우리 대리 새로 온 과장님한테 대들다가 새 과장님한테 혼쭐이 나고 기가 팍 죽어 있다고 함.
왜 내가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 말을 건 이유가 그렇다니 좀 안스럽기도 했음.
하지만 다른 부서로 발령난 후,
우리 대리님은 여전히 여직원들을 들볶으며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함.
아! 물론 여전히 소개팅을 요구하며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 전문직 아니면 안된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