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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센과 피어리, 그 인과응보(스압)

비공 |2014.01.26 01:10
조회 76 |추천 0

여러분은 아문센과 피어리를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문센은 남극점을, 피어리는 북극점을 최초로 정복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틀렸다. 남극점과 북극점을 최초로 정복한 것은 모두 아문센이다. 

뭐든지 최초로 발견하거나 성취했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특히나 탐험가들에게는 자기가 발견한 곳의 인증샷은 기본이요, 그 지점에서의 지자기적 증거나 위치적 증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북극점을 최초로 '정복'했다는 사람은 피어리와 쿡이라는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둘은 명확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해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은 투표로(...) 피어리가 승자가 되었다.

 

http://mirror.enha.kr/wiki/%EB%A1%9C%EB%B2%84%ED%8A%B8%20%ED%94%BC%EC%96%B4%EB%A6%AC

 

위를 보면 알겠지만. 피어리는 자신의 정복욕을 위해 천하의 몹쓸짓을 한다. 하지만 그 당시는 북극점을 정복했다는 열기에 휩싸여 그것은 잊혀졌고, <뉴욕타임즈>는 피어리가 북극점을 최초로 정복했다는 기사를 싣는다. 거기까지는 좋았고, 피어리는 꽤 편하게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96년도에 새로이 발견된 피어리의 일지를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분석한 결과 피어리는 북극점, 즉 '북위 90도'가 아닌 '북위 89도 57분'까지만 도달했다는 것이 밝혀져 피어리의 발견은 무효가 되었다.(두 지점 사이의 거리는 약 40km 거리이다.), <뉴욕타임즈>는 79년만에 정정기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반면 피어리가 당시에 북극점을 '정복'했다고 생각해 아문센은 그 당시에는 한 발늦게 북극점에 다녀왔다고 생각했으나, 아문센은 피어리와는 달랐다.

아문센은 육분의 등의 도구를 정밀히 이용하여 꼼꼼히 객관적인 위치적, 지자기적 증거를 남겼고, 이는 다른 사람들의 증거가 미미하거나 신빙성이 부족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명확하여 결국엔 정확한 증거를 남긴 아문센이 최초로 북극점을 정복한 사람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아문센은 피어리와는 다른 점에서도 차이가 났다. 남극점을 탐험하기 전 북극 지방에서 이누이트들과 함께 지내며 '이누이트를 가혹하게 부려먹고 인간의 도의상 차마 못할 짓까지 한' 피어리와는 달리 이누이트들을 잘 대해주고 그들의 생활방식 등을 철저히 익혔다. 이는 스콧과의 남극점을 향한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게 되어 결국엔 그가 남극점에 최초로 발을 들인다. 물론 북극점에서처럼 꼼꼼히 객관적인 위치적, 지자기적 증거를 남겨 논란의 여지를 없앴다.

 

아문센은 그 뒤 다시 북극에 조난된 탐험가를 구하러 가다 실종되어 다시 찾을 수 없었지만, 피어리는 나름 잘 살다 편하게 죽었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난 후는 어떠한가? 아문센은 그가 사람들을 대했던 훌륭한 태도와 꼼꼼함으로 인해 양 극점을 최초로 정복한 위인으로 남았지만(비록 그가 생전에는 최초로 남극점만 정복했던 사람으로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자신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피어리는 결국 그가 이룬 업적도 무효가 되어버리고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되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지은 업보를 결국엔 돌려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란 걸 두 탐험가의 생애와 사후 평가를 통해 알게 되는 실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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