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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마와 통화를 했다 - 1

무념무상 |2014.02.21 16:19
조회 5,282 |추천 7

출처:웃대, 피더스님

 

 

* 잔인함과 욕설이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내 두 손이 점점 무거워져가는 것을 느꼈다. 거침없이 타이핑을 해대던 손가락은 어느새 책상 옆에 올려두었던 콜라 한 컵을 멍하니 들고있을 뿐이였다. 내 눈은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전체 글자 20000/1100. 올라가지 않는 글자 수. 누군가 나 대신에 타이핑을 해주지 않으려나.


시간은 정말 무책임하게 흘러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의자에 앉아있던 시간이 어느새 한 시간. 하지만 지금 나에겐 소설을 계속 써나갈 의향도, 이대로 엉덩이를 들어올리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흘러가는 시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나 또한 한때는 정말 글쓰기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 의지대로, 내 생각대로 소설 속 주인공이 행동하고 말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으며,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호평을 받는다는 사실도 기뻤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글쓰기에 대한 내 열정은 식어만 갔으며, 내 몸도 더욱 나태해져만 갔다.


인간에게는 일곱가지의 욕망이 있었다. 탐욕,색욕,식욕,나태,오만,분노,질투. 나는 지금 그 중에 몇 가지의 죄를 짓고 있는 걸까. 일단 식욕과 나태는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그럼 나머지 다섯개는?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나는 분명 모든 죄를 전부 짓게 되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멈춰있던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대사와 행동이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아무 글자라도 타이핑 하는것이 나에게 더 이득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아….”


내가 타이핑한 것은 단 한마디. ‘귀찮다.’. 절대로 지금 내가 쓰고있는 소설에서, 이 문맥에서 나올만한 말은 아니였다. 나는 단지 지금의 내 상태를 글자로써 표현한 것 뿐이다. 나는 점점 몽롱해지던 정신을 깨우기 위해 머리통을 한번 흔들었다.


“잠이나 잘까.”


그래, 차라리 잠을 자자. 자고 일어난다면 탁해져있는 내 정신도 어느정도 맑아질 것이며. 지독히도 나를 괴롭히는 나태도 어느 정도 사라질 것이다. 잠이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나는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내 몸무게는 그리 많이 나가지 않았다. 살이 별로 찌지않는 체질이라 그런지, 글쓰기에 쏟아붓는 열정이 너무도 컸기 때문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내 몸을 눞히자 말자, 침대는 기분 나쁜 비명을 질러댔다. 낡은 매트리스와 용수철이 질러대는 불협화음. 나는 표정을 작게 찡그리곤 그대로 눈을 감았다.


지금 내가 이렇다고해서 실패한 인생이란 것은 아니였다.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도 아니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타인의 눈초리를 철저히 배제한 채, 소설을 바라본 것이 나로썬 최고의 선택이였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서점의 한 코너에선 내가 썼던 소설이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매 초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하루에 한 명 이상 쯤은 내 책이 팔리고 있을게 분명하다.


출판사에서는 내 다음 신작을 계속해서 요구해오고 있었다. 물론, 나는 신작을 쓸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미 쏟아지는 잠을 뿌리치기엔 나는 너무도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깊은 강 속으로 몸이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였다. 잠의 강은 아주 편안하고, 부드럽게 내 몸을 휘감았으며, 나 또한 저항하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대로 천천히, 그리고 깊숙하게 잠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그 순간이였다.


알람을 듣고 깨어나기 위해 베게 밑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이 별안간 시끄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미 유행이 지난 가수가 부르는 잔잔한 발라드 곡이였지만, 지금 내 귀에는 헤비메탈 음악보다도 시끄럽게 들려왔다. 나는 표정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 생각을 다 한 몰상식한 인간은 대채 누구인가?


“아 진짜, 누구냐고.”


배게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휴대폰을 꺼냈다.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온건 화면의 우측 상단에 띄워져있는 현재 시각이였다. AM 2:24분. 시간을 확인한 나는 더욱 더 표정을 구겼다. 나는 화면을 거칠게 슬라이드 한 다음,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누구세요.”


여보세요가 아니였다. 그건 나의 달콤한 수면 타임을 방해한 상대방에게 간접적으로 짜증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전화를 건 상대가 내 전화번호 부에 등록되지 않은, 그러니까 모르는 번호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


짧은 침묵. 상대방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가 재대로 연결되지 않은 건가 싶어 화면을 바라보았지만 전화는 재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요컨대 그저 상대방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 뿐이라는거다.


“저기요? 전화를 거셨으면 말을 해야할 것 아닙니까.”


역시 대답은 침묵으로써 들려왔다. 나는 별안간 짜증이 솟구쳤다. 장난전화인가? 이런 새벽에, 그것도 꿀 같은 잠을 자고있던 나에게 장난전화를 건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잘못 건 전화일까? 전화를 잘못 걸어서 일단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하긴 하는데, 방금 잠에서 깬 굵직한 목소리의 남자가 전화를 받아서, 소심한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건가?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요동쳤다.


“…잘 못 건 전화라면 이만 끊습니다.”


이유가 어찌됐건 나는 어서 전화를 끊고 싶었다. 이미 대부분 다 깬 잠을 마저 자기 위해서였을까. 별안간 내 몸 속 깊숙히 위치한 신경 하나가 나에게 전화를 끊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어쩌면 내 몸은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이어져있을지 모를,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 침묵 속의 위화감과 불안감을 말이다.


나는 재빨리 전화기를 내려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통화 종료 버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 손은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다. 지금껏 침묵으로만 응해오던 수화기의 너머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뻔 했다. 절대로 열리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상자가 어느 순간 갑자기 열려버린 느낌이다.


“저기요? 뭐라고 하셨는지 잘 못들었거든요.”


나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 다시금 말했다. 그리고 몇 초 동안, 상대방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부정하듯이, 수화기 너머에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 끊지 마세요.”


여성의 목소리였다. 십대? 혹은 이십대 정도로 생각되는 앳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귀여운 목소리와는 달리 그녀가 나에게 건넨 말은 마치 명령조에 가까운 어투였다.


“저기요, 누구신데 이런 새벽에 전화를 거신겁니까? 그리고 전화를 끊지 말라니. 당신 누구예요? 나 알아요?”


내가 조금은 떨려오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왜 떨리는거지? 하여튼간에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하길 바랬다. 전화기의 음질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였다. 분명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이봐요?”


내가 물었지만 상대방은 또 다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침묵은 아니였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발걸음 소리. 그리고 조금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 상대는 지금 밖인 걸까?


“아니 신발 진짜, 이런 새벽에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해야할 거 아니야. 저기요, 너 누구냐고. 어? 대답 좀 해봐요, 아가씨. 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아니, 그런데 왜 나는 전화를 끊지 않는 걸까. 그저 장난전화라고 치부하고 지금 당장 통화를 종료하면 되는데. 근데 왜? 나는 아까 상대방이 한 말을 끝까지 지키려는 걸까?


그 순간, 아무런 말도 없을 것 같았던 수화기에서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욕을 했기 때문일까, 라고도 생각해봤지만 침착하고, 차분한 상대방의 목소리를 보아하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아저씨.”


“네?”


“아저씨는 죽이고 싶은 사람있어요?”


“뭐?”


그녀의 말은 너무도 뜬금없었다. 다짜고짜 죽이고 싶은 사람? 나는 지금 그녀에게 누구냐고 물었지,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하소연을 한 게 아니였다. 하지만 나는 어이없어 하며 그녀에게 욕을 쏟아붓지 못했다. 아까와도 같았다. 묘한 위화감과 불안감. 마치 나를 먹이감으로 생각하는 육식동물이 저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초식동물이 된 느낌이였다. 여기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이 휴대폰이겠지만.


“하 참, 어이가 없어서. 새벽에 전화를 걸어서 다짜고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냐니. 저기요, 저 전화 끊습니다. 아가씨도 어린 것 같은데 새벽에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얼른 집에 들어가요.


“전화 끊으면 죽여버릴거야.”


순간 나는 휴대폰을 놓칠 뻔 했다. 마치 둔기로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이 멍하니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였다. 지금 나한테 한 말인가? 나한테 한 말이겠지? 미친년인가? 아니, 싸이코패스? 나는 왜 잘 자고 있다가 또라이 같은 년 한테 걸려버린거지?


“알았어, 진정하고 일단 말해봐요. 아가씨는 대채 뭡니까? 나한테 왜 전화를 건거예요?”


“아저씨,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요. 죽이고 싶은 사람있어요?”


상대는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내게 물어왔다. 불쾌함이 느껴질 틈도 없었다. 나는 그저 등짝에서 느껴지는 소름과 공포를 이겨내려고 애쓰면서,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너무 뜬금없네.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니. 아니, 이 세상에 죽이고 싶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러니까 있다는 말이네요.”


“그래, 있어요.”


“그럼….”


상대가 말을 아꼈다. 또 다시 짧은 침묵이 이어져갔다. 나는 귀에 붙여두었던 휴대폰을 살짝 떼었다. 별안간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날 놀래키려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이없지만.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녀는 나에게 비명을 질러오지 않았다. 오히려, 비명보다 더, 차갑고 잔혹한 말이였다.


“그럼 그 사람을 죽일 수 있게된다면, 어떻게 죽이고 싶어요?”


“뭐라고?”


나도 모르게 순수한 반말이 새어나갔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트집을 잡는 일은 없었다. 내 등짝에 솟아오르는 공포와 소름이 한층 더 깊어져만 갔다. 아무래도 나는 정말 지독한 싸이코패스한테 걸려버린 것 같다. 아니 대채 왜, 나는 단지 글이 안써져서 잠을 자려고 했을 뿐이라고.


“얼른 말해요, 죽여버리기 전에.”


또 다시 그녀가 나에게 말해왔다. 나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의미없는 웃음을 지었다. 지금 내 상황이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죽여버린다니. 마음 같아서는 ‘그래 어디 죽여봐 이 미친년아!’ 라고 소리치며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지만, 나에게 그 정도의 용기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짧은 대화를 통해 알아낸 상대방의 정보라고는 이 여자가 보통 미친게 아니라는 점 뿐이였다.


그렇기에 나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이 여자가 정말 나를 죽이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마친 나는, 이 상황에선 그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기로 했다. 그냥 최대한 빨리 통화를 끊고 잠을 청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 혹시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는걸까? 이건 악몽인건가?


“모르겠네요, 그저 죽이고 싶다고 생각만 해봤지. 실제로 어떻게 죽일까 하는 구체적은 생각은 안해봤으니까.”


그러자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내가 생각해줄게요. 일단 나는 배를 찌를거예요. 날카로운 칼로 대 여섯번. 그리고 나선 얼굴을 그을거예요. 이번에도 역시 날카로운 칼로 여러번. 그 다음은 목에 칼을 꽃아넣을거예요. 피가 분수처럼 튀는걸 보고싶거든요. 그 다음엔 목에 꽃아둔 칼을 빼지않고 그대로 자리를 뜨는거죠. 어때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그녀는 대채 무슨 사람일까. 어떻게 여자가, 이 정도로 끔찍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거지? 거부감을 느낀다기보단 오히려 즐거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로써 생각이 굳었다. 이 여자는 보통 미친게 아니였다. 엄청나게 미친, 텔레비전에서 흔히 보던 싸이코패스. 그것도 아주 위험한 상태 말이다.


“네…, 뭐 충분해요.”


“알겠어요 그럼.”


이제야 전화를 끊는 건가, 드디어 이 미친 여자와의 통화가 끝나는걸까. 나는 조금의 안도감을 느끼며 어서 통화가 끊어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통화는 끊어지지 않았다. 내가 의아함을 느끼고 그녀에게 말을 꺼내려던 그 순간, 그녀가 나에게 말해왔다.




“그럼 말한대로 죽여볼게요.”




“네?”





얼음장 같이 차가운 말, 아니 마치 어린아이가 즐거워하듯 조금은 조소를 띄고있는 날카로운 말. 그 말을 마친 그녀는 휴대폰을 귓가에서 내렸는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더욱 거세게 들려왔고, 땅을 밟는 소리 또한 더욱 크게 들려왔다. 그녀는 지금 뛰고있다. 무엇을 향해서? 아니, 무엇을 하기 위해?


등가에 차오르는 소름은 더욱 더 깊어졌다. 통화를 끊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석상처럼 굳어버린 몸은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가쁜 숨소리와, 거리의 나뭇잎이 밟히는 사각 소리가 내 귀를 통해 머릿속으로 전달되었다. 잠이 확 달아난 건 이미 오래전 일이였다.


“저기요, 이봐요? 뭐 하자는 거예요. 예? 야! 너 지금 뭐하냐니까?!”


그녀에게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발걸음 속도가 빨라질 수록, 내 동공은 커져만갔고, 심장도 더욱 가쁘게 뛰어가고 있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소리쳤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발걸음을 더욱 빨리할 뿐이였다.


“이런 신발! 이 미친년아! 너 지금 뭐해!”


그 순간이였다.


“네? 저기, 누구세….”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 아니, 이건 내가 지금까지 통화하던 그 미친년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다. 가쁘게 뛰던 심장이 일순간 굳어버린 듯, 헉! 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꺄아아아아악! 꺄아아아! 신발! 너 뭐하는….”


“언니, 아파요? 아프겠지? 얼마나 아파요?”


여자의 비명소리. 하이톤의 높은 비명소리. 그리고, 비명과 함께 들려오는 질척한 소리. 마치 고깃덩이를 찌르는 듯한 소리. 가쁜 숨을 내쉬는 또 다른 여자의 웃음소리. 그리고 소름.


수화기 너머의 난도질은 계속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10분? 아니, 5분? 나는 더 이상의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치 모든 사고회로가 멈춰버린 듯, 커다랗게 뜬 눈으로 정면을 응시할 뿐이였다. 귀에서는 계속해서 미친년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씨…신발.”


한 마디의 욕설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나갔다. 지금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신발, 대채 지금 뭐하는거야. 난 지금 뭐하고있는거야 신발. 신발, 신발, 이게 뭐야. 돌겠네 신발.


“아저씨. 전화 안 끊었죠?”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숨이 가쁜지 헉헉 대는 여자의 목소리. 원래라면 조금 야릇하게 들려왔겠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였다. 그녀가 내쉬는 숨소리 하나 하나에 내 모든 신경이 반응했다. 이미 내 주변을 옭죄어오는 공포는 더 이상 내가 떨쳐낼 정도의 크기가 아니였다. 나는 멍하니 휴대폰을 들고있을 뿐이였다.


“아저씨, 듣고있어요? 대답 좀 해.”


“그래… 듣고있다 이 신발년아….”


“욕하지 마요, 나 기분 나빠지려 해.”


하, 내 입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욕하지 말라고? 대채 어느 현자가 지금 이 상황에서 욕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내 심정을 알고나 있을까? 느닷없이 살인의 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게된 내 심정을?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는 듯, 다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까 말한대로 했어요. 배 여섯번 찌르구…어, 이 언니봐라.”


그 다음 순간, 또 다시 잔인한 소리가 들려왔다. 커억, 하는 여자의 마지막 신음과, 고기를 찌르는 소리.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나는 저절로 눈을 질끔 감았다. 눈을 감는다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언니 아직도 살아있었네. 아저씨 미안, 일곱번 찔러버렸어요. 이제 목에 칼만 꽃으면 되거든요? 잠시만 기다려요. 나 마스크가 흘러내렸거든요. 얼굴에 피 튀면 기분나쁘니까.”


“기다려, 좀 기다려봐. 그만해. 아니, 신발 그만이고 뭐고 이미 조카 신발! 아니, 신발 나 지금 미칠 것 같거든? 그니까 좀 신발! 응? 그만해. 그만해라.”


내 목소리는 확연히 떨렸다. 음질이 좋지 않은 휴대폰의 너머에서도 충분히 알아챌 만큼. 하지만 지금 상대방이 그걸 알아채든 말든, 나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벌벌 떨려오는 몸을 진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휴대폰을 쥐고있는 두 손에서는 이미 땀이 잔뜩 베여있었고, 수전증 환자처럼 손도 떨려왔다.


눈을 크게, 오래 뜨고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저 지금 이 상황 때문인지.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을 닦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닦을 틈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생생하고도 역겨운 그 소리에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 지금 떨어요? 왜 아저씨가 떨어. 죽인건 난데. 아저씨 그러지말고 좀만 기다려봐. 아저씨도 죽이고 싶은 사람 있다면서요.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라니까? 통쾌하지 않아요?”


“그래, 않는다 이 강아지야. 됐어, 난 이제 더 못들어주겠다. 신발 내가 왜 전화를 안끊었는지 나도 모르겠어 신발!. 전화 끊을거야. 끊을건데! 신발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왜요, 뭐가 궁금해.”


“너 왜 나한테 전화했어. 너 나 알아? 난 너 몰라. 신발 내가 널 어떻게 알아! 너 내 번호 어떻게 알고 전화했어. 그것만 말해. 다 됐으니까.”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입을 열면 열수록 말이 아니라 흥분이 나오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상대에게서 들려오는 침착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더욱 더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알았어, 말해줄게. 나 아저씨 몰라요. 사실 아까 끊으면 죽여버린다고 한 것도 거짓말이야. 나 그냥 아무 번호나 누른거예요. 주머니에 손 넣고 아무 번호나 뜨르륵. 근데 아저씨가 받은거지. 근데 나 지금 아저씨가 왜 화내는지 이해가 안돼. 죽이고 싶은 사람있다며, 근데 내가 죽여줬잖아. 뭐가 문제야?”


“문제는 신발! 내가 니 년 전화를 받은 거 자체가 문제였어, 알아 신발?”


“욕하지 말라니까. 계속 그러면 나도 욕한다?”


동요하지 않은 듯 했다. 아니, 심지어는 조금 웃기까지 했다. 웃긴가? 사람을 죽여놓고, 그리고 그 상황을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실시간으로 생중계 해놓고. 그게 웃긴가? 정말,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였다.


“성기까 신발, 됐고. 나 전화 끊을거야. 그리고 너 신발 다신 나한테 전화하지마.”


“아, 아저씨 조금만 기다려봐. 이제 다 됐다니까? 기왕 했는데 마지막은 봐야할거 아니야. 아저씨 잘 들어. 나 지금 목에 꽃는다?”


나는 재빨리 통화를 종료했다. 종료버튼을 누르기 바로 직전, 푸욱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통화는 종료됐다. 내 방안에 울려퍼지던 바람 소리도, 기분 나쁠 정도로 차갑고 침착했던 싸이코 년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통화가 종료된 그 순간, 나는 방금까지 석상처럼 굳어있던 내 몸이 조금 풀려간다는 걸 느꼈다. 온 몸의 긴장이 쭉 풀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배게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미 온 몸에서 흐르던 땀이 침대를 가득 적셨다.


“하… 하아… 신발, 이게 뭔 일이야.”


아직도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오른 손에 쥐고있던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휴대폰을 쥐고있던 손은 그 모양 그대로 굳어버린 듯, 손가락을 피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은 별로 오지 않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잠을 자야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아니, 신고해서 대채 뭐라고 말하지. 살인마가, 살해하는 그 순간의 소리를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다고? 그것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랜덤으로? 아니, 그보다 대채 어디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해줘야하지? 이 미친년은 지금 대채 어디서, 누굴 죽인걸까.


생각이 깊어졌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깊숙히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 아무런 일도 겪지 않았다. 이건 그저 악몽일 뿐이다. 어디선가 지금 살해 당한 그 사람도, 살인을 저지른 그 사람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오늘 자고 일어나서 또 다시 써지지 않는 소설을 쓰면 됀다. 그 뿐이다.


미친듯이 뛰어가던 심장도 조금씩 진정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잠에 빠져들기를 기다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오늘 일을 잊을 수 있을까. 아니,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새벽 두 시 반에 걸려온 싸이코패스의 전화. 나는 오늘, 살인마와 통화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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