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웃대,피더스님
대채 언제 잠이 들었을까. 나는 아주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거라곤 내 오른손에 고이 쥐어진 휴대전화. 내가 잠을 잘때 땀을 흘렸던 체질이였던가, 이미 휴대폰은 흠뻑 젖어있었다. 고장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그 다음에, 나는 또 다시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젖어있는 건 휴대폰 뿐 만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나는 대채 잠을 자면서 무엇을 했었던 거지?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원래 이 정도로 땀을 흘리는 체질은 아니였을텐데.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방금전 의문의 답이 될 만한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어젯 밤에 나에게 일어났던 일. 끔찍하고,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기억. 그 생각이 나자, 나는 휴대폰 화면을 켠 뒤, 통화기록을 살폈다.
내심 통화 기록에 아무것도 없기를 바랬다. 새벽 두 시 반에 나에게 걸려온, 내가 모르는 전화번호가. 그렇다면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모두 꿈이었던 게 될 것이다. 그것이 꿈이였든, 현실이였든 나에게는 아주 지독한 트라우마가 될 테지만,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분명 꿈이이길 택할 것이다.
“제발….”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통화기록을 살폈다. 없기를 바랬다. 꿈이였길 바랬다. 하지만 내 바램은 통화목록의 맨 위에 떡하니 기록되어있는 그 번호에 산산히 조각나버렸다. AM 2 : 24 분. 확실했다. 이건 분명히 그 미친년의 전화번호임이 틀림없다.
“하… 미치겠네.”
어젯밤 내가 겪은 모든 일은 현실이였다. 이젠 그 사실을 전혀 부정할 수 없게 되버렸다.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히 울리는 듯 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 그 년의 가쁜 숨소리. 그리고 칼에 찔리는 여자가 질러대던 귀가 찢어질 것 같았던 그 비명.
나는 내 주변을 휘감고있는 차가운 공기를 떨쳐내기 위하여 화장실로 향해 걸어갔다. 거울로 바라본 내 몰골은 이미 말이 아니였다. 눈은 퀭 하니 다크 서클을 들어내고 있었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있었다. 드문드문 나있던 여드름도 더욱 부각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람 얼굴이 이게 뭐냐.”
나는 거울 속 나에게 말했다. 당연하게도 거울 속 나도, 나에게 말해왔다. 나는 물을 미지근한 온도로 틀어놓고 몸을 적셨다. 그러자 차가웠던 주변의 공기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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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마친 내가 다음으로 취한 행동은 텔레비전을 확인하는 것이였다. 원래 텔레비전을 그리 자주 보는 성격은 아니였다. 어릴적, 누군가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우리들의 수명을 갉아먹는다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그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하고 생각해보면, 아이러니 하게도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중이던 외국의 대학 교수였었던 것 같다.
그 다음 이유는 바로 전기세였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텔레비전 하나를 시청할 형편이 안되는 건 아니였다. 내가 과거에 썼던 소설은 지금도 착실히 팔려나가고 있었고, 시간이 남을때에는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기 때문에 자금적인 여유는 있었다. 그런데도 전기세를 걱정하는 이유는, 그저 최대한 아끼자라는 식의 자린고비 마인드가 내 머릿속에 깊숙히 박혀있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나는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뉴스 채널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혹시 어젯밤 그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방송국은 없는걸까?
채널을 여러군데 돌려봤지만 살인사건에 관한 보도는 한 군데도 없었다. 아직까지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걸까? 어젯밤 그 미친년이 시체를 숨긴건가? 아니,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물론, 나는 경찰도 아니였고, 범죄전문가, 심리전문가도 아니였다.
나는 단순한 소설가일 뿐이였다. 그것도 미스테리 장르의. 어젯밤 그 여자는 자신의 살인을 일부러 나에게 생중계하기까지 했다. 이건 자신의 살인을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전에 소설을 쓰기 위해 읽었던 범죄 심리학에서, 싸이코패스들은 이런 성향을 띄고 있는 경우가 높다는 내용도 읽은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시체는 숨기지 않았을것이다. 아니, 오히려 사람의 눈에 띄는 곳 까지 옮겨놓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자신의 살인을 지켜봐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도가 없는 걸 보면, 어제 그 여자는 그 정도까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설마 우리 나라에서 저지른 살인이 아닌건가? 외국? 머릿속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이 떠올랐다. 고작 삼십 초 정도 생각해봤을까,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애초에 전화를 받을때, 국제전화라는 알림이 들려오지도 않았고, 그 여자도 한국어를 사용했었다. 게다가 떠올리기도 싫지만 어젯밤 살해당하던 피해자. 그녀도 한국어를 사용했었다.
“그럼, 그냥 아직까지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 뿐인가.”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볼 뿐이였다. 어젯밤 어딘가의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마지막으로,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선 컴퓨터의 전원을 눌렀다. 위윙, 하는 기계음과 함께 본체에 파란 불빛이 들어왔고, 이윽고 모니터에도 환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멍하니 있는것에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젯밤의 그 일을 전부 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서, 도움을 줄 수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니,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경찰에 대해서 알고있는게 별로 없었다.
‘미치광쟁이 싸이코패스가 살인을 저지르는 그 순간을 저한테 생중계로 들려줬어요!’ 식의 말을 대채 어떤 식으로 전해야한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나는 살인이 일어난 장소도, 피해자의 모습도, 범인의 모습도 전혀 알지 못한다. 알고있다면 범인과 피해자 모두 여성이라는 것 정도?
그렇기에 말을 잘못한다면 오히려 내가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다. 일부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여자를 집어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니, 없다고 하는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여자는 무작위로 번호를 눌렀다고 한다. 그리고 하필, 아주 우연적으로 그 번호가 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여자도 나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다는 뜻이 됀다. 그렇다면 걱정할 건 없다. 내가 그 여자에게 해를 입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아예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내가 어디사는 누군줄 알고 해치려든단 말인가?
그저 새벽녘에 전화를 나눴던 상대. 그게 전부다. 그래, 내가 잊고 그 여자가 잊으면 모든 건 끝이다. 물론, 내가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 여자가 앞으로 나에게 일절 신경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만 말이다.
나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컵을 집어들어, 빨대를 쭈욱 빨았다. 그러자 컵 안에 들어있던 콜라가 입 안으로 넘어왔다. 이미 시원함과 탄산이 다 빠져서 콜라를 마시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씽크대에 남아있던 콜라를 부어버린 뒤, 냉장고의 문을 열어 콜라를 찾았다.
“어라.”
콜라는 없었다. 시선을 돌리자 그 곳에는 빈 콜라병 만이 분리수거 봉투에 들어있을 뿐이였다. 나는 표정을 찡그린 뒤, 옷걸이에 걸려있던 점퍼를 걸쳤다. 근처 편의점으로 콜라를 사러가기 위함이였다.
내가 콜라를 마시게 된 이유는 대채 무엇이였을까.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 너무 마른 몸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살을 찌우고 싶어서였던가? 콜라를 마시면 살이 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주변의 뚱보들은 항상 패스트푸드와 콜라를 입고 달고 살았었다. 매일마다 패스트푸트를 먹는건 내키지 않았기에, 그 대신 콜라를 마시기 시작했다.
밖은 꽤나 쌀쌀했다. 가을 바람이 불어봐 내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 순간, 나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던 바람 소리가 떠올랐다. 어쩌면, 어쩌면 이 바람이 어젯밤 그 장소에서 그 여자를 스쳤던 바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기에, 나는 점퍼의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편의점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원래라면 조금 떨어져있는 거리였지만, 나는 지름길을 알고있었다. 빙 둘러서 가야하는 편의점과 일직선으로 이어져있는 그 골목길을 말이다. 하하하.
저녁 무렵이면 근처 고등학생들이 남몰래 들어와 담배를 피기도 하는 장소였기에, 되도록 저녁에는 이동하지 않으려 하고있다. 물론, 고등학생이 무서워서 그런건 아니였다. 그저, 타인이 내뿜는 담배연기를 마시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낮이였다. 지금쯤이면 아무리 그 골목길이라고 해도 지나가는 사람이 조금은 있기 마련이였다. 그렇다면 담배를 피고 있지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골목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나는 골목길에 도착했다. 내 생각대로 담배를 태우는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의 인적이 그리 없는 곳이라 해도 한 두명쯤은 있기 마련이였는데.
“뭐, 상관없겠지.”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너무 차가웠기 때문이다. 반팔과 츄리닝 바지 위에 점퍼만 걸친 상태여서 그런지 오늘의 바깥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편의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둘러 편의점의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망설임 없이 콜라 두 병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오빤 맨날 콜라만 먹어요?.”
먼저 말을 걸어온건 아르바이트 생이였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잘 알고있었다. 김지희. 전에 이 편의점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었다.
“어, 콜라먹고 살 찔려고.”
“별 이상한 이유 다 보겠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어께를 으쓱거렸다. 그녀는 어께까지 내려오던 머리를 뒤로 묶고있었다. 염색이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라서, 그녀의 연노란 머리색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머리를 뒤로 묶고있는 그녀의 모습은 꽤나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왜요?”
내가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왔다. 하지만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계산이 다 된 콜라 두 병을 들고 가게를 나왔다. 괜히 가볍게 칭찬을 건넸다가 이야기가 길어지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하으, 춥다.”
편의점에서 나오자 말자 내가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였다. 어느새 더욱 쌀쌀해진 바람이 내 몸을 할퀴듯 스쳐지나갔고, 나는 저도 모르게 ‘으으’ 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콜라가 든 봉투를 손목에 걸치고, 양 손을 점퍼 주머니에 넣은 채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길을 걸었다. 콜라의 무게는 꽤나 무거웠고, 봉투를 걸쳐놓은 오른쪽 손목에 피가 통하지 않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봉투를 왼쪽 손목에 걸치기 위해, 주머니에서 양 손을 빼냈다.
그 순간이였다. 봉투의 한 쪽 손잡이가 툭 하고 끊어져버렸다. 새어나간 콜라 한 병이 데구르르 굴러갔고, 결국에는 하얀 쓰레기 봉투에 부딛혀 멈췄다.
“미친, 하필이면 쓰레기 봉투 더미 앞으로 굴러가냐.”
나는 앞으로 쏠려, 금방으로 떨어질 것 같은 콜라 한 병을 위태롭게 잡은 다음 천천히 쓰레기 봉투 앞으로 걸어갔다.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봉투도 없이 콜라 두 병을 어떻게 들고갈지 막막했다. 전에 누군가가 한 쪽 손잡이가 끊어졌을때를 대비해 임시적으로 손잡이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한 귀로 흘려버렸다.
“아, 그때 좀 들어둘껄 그랬나.”
나는 땅에 떨어져있던 콜라를 집어 봉투 안에 아무렇게나 넣었다. 한쪽 손잡이로 잡은채 무게 중심을 가운데로 쏠리게 하면 어떻게든 들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했던 행동이지만, 내 생각을 바로 부정하듯, 콜라 두 병은 또 다시 쓰레기 더미 속으로 투하되기 시작했다.
“어, 아. 젠장.”
나는 어쩔 수 없이 들고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쓰레기 더미 속에 박혀버린 콜라를 빼내기 위해, 맨 위에 올려져있던 쓰레기 봉투 하나를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이게 음식물 쓰레기 더미가 아니라는 생각에 내심 안도하며, 콜라 한 병을 꺼내던 바로 그 순간이였다.
“어.”
내가 지금까지 이걸 왜 못 본 거지? 의문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봉투 하나를 들어올리자 보이는 검정색 구두. 한 순간, 구두를 버린걸까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이 틀렸음을 나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구두는 버려지지 않았다.
끝부분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구두의 모양새에서도 느꼈던 건데, 이 구두. 지금 사람이 신고있는 것이였다. 나는 봉투 하나를 더 들어올렸다. 그러자 내 눈 앞에 들어나는건 사람의 다리.
“신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뻔 했지만, 간신히 참은 뒤, 욕설 한 마디로 대신했다. 지금 대채, 이 쓰레기 봉투 속에서 누워있는 이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돌연 불안함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콜라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봉투 하나를 더 들어올렸다. 구두와 어울리는 갈색 스타킹, 검정색 치마. 또 하나를 더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목구멍에서 뿜어져나오려는 토악질을 겨우 참아냈다.
구두와 스타킹, 치마와 어울리는 검은색 계통 여성용 양복의 가운데 부분에는 많은 구멍이 뚤려있었다. 아니, 양복에 구멍이 뚫렸다기보단, 이 여자의 배에 구멍이 뚫려있다고 표현하는게 맞을 것이다.
“야, 신발…, 설마, 설마 신발.”
욕설이 새어나왔다. 이건 말도 안된다. 불안함은 확신으로 바뀌였고, 확신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쓰레기 봉투 아래에 누워있는 여자. 상체와 하반신에 튀어져있는 수많은 양의 피. 그리고 배에 드러나있는 많은 양의 자상. 이건 마치….
떨리는 손으로 봉투 하나를 더 들어올렸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죽어있는 사람, 즉 시체를 보는건 처음이였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그 공포보다 이 여자의 정체가 더 궁금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주삿바늘로 콕콕 찌르는 기분. 손에 들려있던 봉투를 천천히 옆으로 밀었다. 어느새 벌벌 떨리는 두 다리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나는 마지막 봉투 하나를 들어올렸다.
이윽고 나는 여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에 머리를 감은 듯, 붉은 빛을 내며 떡져있는 머리칼. 반듯하게 하늘을 향해있는 두 무릎. 몇 군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정도로 피 범벅이 되어있는 배와 허벅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긁혀있는 얼굴. 그리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목에 박혀있는 가정용 식칼.
“이게 뭐야…, 신발 이게 대채 뭐냐고.”
나는 멍하니 시체를 쳐다볼 뿐이였다. 믿을 수가 없는 광경. 시체를 본 충격보다, 이 여자의 상태를 확인함으로써 받은 또 다른 충격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 여자의 상태는 마치… 마치….
그 순간, 뒤에서 별안간 여자가 비명을 질러댔다. 길목을 지나가던 행인인가? 하지만 여자의 비명은 나에게 조금 먹먹하게 들려왔다. 나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생각들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아니, 애쓸 필요도 없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하고, 정확하고, 깔끔하고, 분명하고, 틀림없이.
이 여자는, 어젯밤 내 통화 상대가 죽인 그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