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나는 살인마와 통화를 했다 - 5

무념무상 |2014.02.25 16:47
조회 1,076 |추천 8

출처:웃대, 피더스님

 

 

내가 준비를 다 마치고 나자,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겨, AM 1 : 12 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나는 집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댈 뿐이였다. 이미 준비는 모두 마쳤다. 언제 산 건지도 기억나지 않은 검은색 계통의 후드 티를 입었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바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은색에 흰 줄무니가 그려져있는 유명 메이커의 츄리닝이였다. 이 상황에선 흰 줄무니가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가지고있는게 흰 색 밖에 없는지라 오히려 더 눈에 잘 띌 것 같았고, 검은색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저 수상한 사람입니다.’ 라고 홍보하는 것 같아서, 어짜피 안 쓸 것 같았다.


휴대폰은 푹 눌러쓴 후드 티의 목 부분에 끼워넣었다. 평소에는 귀가 아파 사용하지도 않는 이어폰을 연결시킨 채였다. 물론, 이어폰의 색상은 검정색이였다. 내가 좋아하는 색이 검정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늘이 처음일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리 뛰기를 두어번 실시했다. 밤 중이라 그런지 계단을 밟을때 나는 소리가 꽤 심하게 울려퍼졌지만, 누군가가 올라오거나 내려오는 일은 없었다. 다행히, 목 부분에 걸쳐넣은 휴대폰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이어폰으로 충분하지만, 통화란건 본래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였다. 나 또한 말을 해야하는데 주머니에 넣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휴대폰의 색상도, 이어폰 줄도, 후드 티도 모두 검정색이라 목 부분에 놓인 휴대폰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완벽하게 가려지진 않았지만 이렇게 어두운 밤 중이면 알아볼 수 있을리가 없었다.


“후우….”


나는 담배연기에 긴 한숨을 더해 내뱉었다. 온 몸에 미세한 전율이 흐르고, 담뱃개비를 쥔 손이 살짝 떨려왔다. 긴장을 해서 그런가? 어쩌면 정말 그 여자가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 차리자.’


긴장하면 될 것도 안됀다. 마음 편하게 먹어야한다. 그 여자도 말하지 않았는가. 자신은 여자고, 나는 남자였다. 일 대 일로 맞붙는다면 내가 유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잡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였다. 집 앞에는 마지막으로 사용한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장우산 하나와, 먼지가 쌓여 색이 변해버린 휴대용 장바구니가 놓여져있었다. 그러고보니 비가 온 지 꽤나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였다. 비를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내가 비를 제일 싫어할 때에는, 우산 없이 밖에 나갔는데 내릴 때였고, 비를 제일 좋아할 때는, 글을 쓰고 있는데 창 밖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올때였다. 느껴본 적 있는가? 조금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조금은 잔잔하고, 요란스럽게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비내음새를.


그 순간이였다.


휴대폰이 울려댔다. 이어폰 줄을 통해 내 귓가로 들어오는 잔잔한 발라드 소리는, 내 몽환적인 망상을 한 번에 깨부순 뒤,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져있는 담배를 땅에 내던져 발로 비벼끈 뒤, 천천히 상대방의 번호를 살폈다.


「미친년」


내가 이 여자 번호를 언제 저장했더라?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저장된 이름을 보아하니 내가 저장한 건 틀림없는 것 같았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내쉬였다. 그리고 나서 재빨리 통화연결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다대었다.


“여보세요.”


“어, 아저씨. 생각보다 빨리 받네요? 뭐야, 나 기다린거예요?”


“개소리.”


나는 좀 더 시간을 끈 후에 받을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음, 뭐 ‘개’ 정도는 비속어가 아니라고 생각해줄게요. 그보다 아저씨, 아저씨도 기대되는구나? 어젯밤에 듣고 푹 빠져버렸죠? 어때요. 스릴 넘치죠?”


나는 진심으로 이 여자가 짜증난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였다. 아까 낮에 통화를 했을때보다 훨씬 더 짜증이 밀려왔다. 뭐지? 왜 그런거지?


“스릴은 신발, 내가 너 처럼 싸이콘줄 아냐?”


“어? 너 처럼이라뇨. 저 싸이코 아닌데요. 숙녀한테 실례되게.”


“숙녀는 씨…, 됐어. 됐고, 물어볼게 있어.”


“뭔데요? 말해봐.”


왜 일까, 그 순간 왠지 모를 위화감이 나를 덮쳤다. 왜지?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무엇이 이상한 건지 아직 깨닫지를 못하겠다. 차가운 계단에 엉덩이를 너무 많이 붙이고 있어서 그런가? 괜스레 등이 시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정말 마지막으로 똑같은 질문 한 번 하자.”


“뭔데 그래요? 말해보라니까?”


“너, 진짜 나 모르냐? 이름이 뭔지, 나이는 몇 인지, 뭘 하는 사람인지, 어디에 사는지. 정말 아무것도?”


내 질문에 그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걸까. 나는 그녀의 담배를 들이마시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였다. 나에게 있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은 큰 도박이 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 내 얼굴을 알고있다면, 나와 마주친 순간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자리에서 죽지 않아도 내 집까지 위험해지는건 시간 문제겠지. 하지만 만약, 그녀가 나를 모른다면, 그저 지나가는 남자1 정도로만 생각해준다면.


나는 그녀의 살인을 방해할 수도 있었다. 혹시 몰라 후드 티 주머니 속에 짱돌 하나를 넣어두었다. 산 주변에 위치한 동네라 구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한 손으론 담배 꺼내들고, 한 손으론 돌멩이를 쥐었다. 목 부분에 끼워넣은 휴대폰으론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저기, 근데 이건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말했잖아요. 우연히 번호 눌러서 걸었는데 아저씨가 받은거라고. 근데 내가 아저씨를 어떻게 알겠어.”


“당연한 의문이지. 네가 나한테 한 말이 정말일까. 아니면 거짓말일까. 네가 날 아는 사람이고, 일부러 나를 노리고 전화를 건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저씨.”


나를 부르곤, 그녀는 잠시 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꽤나 크게 들려와서, 전화기 너머에까지 들리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반대로 물어볼게요. 아저씨 혹시 나 알아요?”


“무슨 개소리야, 내가 널 어떻게 알아. 전화를 건 건 너야. 그리고 네가 그랬잖아. 우연히 번호를 눌렀는데 내가 받은거라고. 그럼 내가 널 알 방법이 없잖아, 물론. 네 말이 사실이라면.”


어느새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아, 젠장 이런건 진짜 나랑 안 어울리는 역할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과 서로 떠보는 식의 대화를 주고 받자니,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역시 의자 위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게 나에겐 맞았다.


“아니, 아니야.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게 아저씨. 자기 아냐고 말할때, 진짜 어색했거든요? 특히 ‘정말 나 모르냐’ 고 할때. 분위기가 달라. 그게 아닌가? 아저씨 뭐 알고있죠. 말투가 그런데? 아저씨, 나 알고있는거 아니예요? 내가 누군지 알아냈는데, 아저씨가 아는 사람이였다. 근데 내가 정말 아저씨를 모를까? 하는 그런 건가? 아니면 내가 누군지 짐작이 간다거나, 그게 아니면 아저씨랑 내가 서로 알 지도 모르는 사이라거나.”


“알 지도 모르는 사이라고?”


“네, 예를 들면….”


그녀는 말의 간격을 넓혔다. 간격이 질어지면 길어질 수록, 내 이마에서 흐르는 땀 방울은 땅을 향해 떨어져갔다. 그리고 짧았던 침묵을 깨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와 내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거나.”


그 순간, 나는 내뿜던 담배연기를 코와 입으로 다시 들이마셔버렸다. 기침이 나오려는 걸 간심히 참아내고, 먹먹한 목을 풀기 위해 침을 삼켰다. 뭐지? 뭐하는 여자야 이건?


이런 발상이 나올 수가 있나? 아니, 나올 수가 없다. 내가 누군지 아냐고 물었을 뿐인데, 그때 잠시의 말투가, 혹은 어감이 이상하다고 해서 이런 질문을 나에게 던질 수 있는건가? 이 여자는 똑똑하다. 아니, 똑똑함의 수준을 넘어 이상하기까지 하다.


“말도 안되는 소리, 내가 너 같은 싸이코패스랑 같은 동네에 산다고? 조카 역겨워서 뒤질거 같다. 그럼 얼른 이사나 가야지 신발.”


“아니, 난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제 죽인 여자 시체가 오늘 낮에 발견됐고, 그 쯔음에 인터넷에 기사가 떴거든? 그 기사에는 시체 발견된 장소가 자세하게 적혀있었어요. 근데 아저씨가 그걸 딱 봤는데, 이럴수가. 아저씨가 사는 동네인거지. 그래서 그렇게 생각한거 아니야? 죽인 나도 그 동네 사람일거라고.”


인터넷 기사가 있었나? 그러고보니 인터넷으로 기사를 찾아볼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컴퓨터로 하는 일이라곤 오로지 소설을 쓰는 것 뿐. 그게 전부였다.


“넌 무슨 탐정이라도 되냐?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 지껄여. 난 인터넷 기사 같은거 안보는 사람이라고.”


“그런가, 좀 이상했는데.”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뭐 상관없지.’ 하며 다시금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엉망진창으로 복잡해져버린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일 뿐이였다.


하지만 내 머릿속을 방해하는 건 또 하나 있었다. 아까부터 들어오는 작은 위화감. 뭔가가 걸리는데,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할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솟아오른 감각이였지? 그래, 분명이 이 여자의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혹시, 혹시 나는 이 여자의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걸까? 수화기 너머의 싸이코패스를, 내가 어디선가 만난적이 있는걸까?


“아저씨 듣고있어요?”


갑작스레 날라온 물음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녀는 지금 누구를 죽일지 하는 고민을 나에게 늘어놓고 있었다. 내 휴대폰에서 이런 끔찍한 단어가 줄줄이 나올리라곤 정말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애시당초 나는 왜 이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걸까.


“그러니까, 누구를 죽일건지 하는건 이제 됐어요. 여자 죽일거야. 혼자 다니는 여자. 그럼 이제 어떻게 죽일까 하는건데.”


“잠깐 기다려봐, 사람을 뭘로, 그니까 흉기가 뭔데?”


내가 묻자, 그녀는 의외라는 듯한 어투로 내게 물어왔다.


“뭐야, 아저씨도 흥미 생겼어요? 아까부터 나 혼자 떠들고 있길래 재미없어 하는 줄 알았지. 역시, 어제 그거 듣고 빠져버린거죠? 거 봐, 내가 뭐랬어. 스릴 넘치잖아요. 흉기는 뭐, 어제랑 똑같이 칼이예요.”


나는 뒷 부분을 모두 무시했다. 저런 도발에 일일이 응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녀 입장에서보면 저건 도발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나도 밖으로 나가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곧 사람을 죽일 예정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살인을 막을 예정이다. 그녀보다 한 순간이라도 빨리 움직여야한다.


“칼로, 바로 찌르지는 마. 즉사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미친 신발,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거람. 하지만 해야할 말이였다. 그녀가 상대를 곧바로 죽여버리면 안됀다. 그럼 내가 목표를 구할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지니까. 이 말도 안되는 살인 게임의 주도권은 그녀가 갖고 있었다.


그녀가 정말 이 동네에서 살인을 저지르리라곤 확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위치도, 목표물의 위치도 모르는 내가. 그녀가 자기 멋대로 정한 목표물에게 그녀보다 먼저 접근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였다. 모든게 불확실했다. 심지어, 절대 그럴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최악의 상황은 내가 그녀의 목표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녀는 여자를 죽인다고 말했었지만, 그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였다. 싸이코패스의 생각을 완전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뛰어난 범죄 전문가가 아니였기에.


‘후… 신발.’


나는 마음속으로 가볍게 욕설을 내뱉었다. 하늘로 쏘아올리는 권총처럼, 그건 마치 스타트 신호를 알리는 출발음 같았다. 나는 천천히 빌라의 계단을 내려왔고, 후드를 조금 더 깊게 눌러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혹은 그녀가 정한 타겟을 먼저 찾아내기 위해서.


“야, 목표물은 정했어?”


“아뇨, 아직이예요. 급하실 거 없어요. 헤헤, 아저씨도 이제 슬슬 재밌어지기 시작했구나? 괜찮아요. 조금만 더 기다려요.”


아직 타겟을 정하진 않았다. 일단 나는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뛸 수는 없었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목에 걸쳐놓은 휴대전화가 떨어지기 않도록 하면서. 왼쪽 주머니에 넣어둔 짱돌을 더욱 세게 쥐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해볼 줄이야. 미치광이 싸이코패스와 살인게임이라니. 물론 나는 구출게임이겠지만 말이다. 싸이코패스에게 찍혀버린 불쌍한 어린양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미스테리 소설가.


수화기 너머의 그녀는 아직 상대를 정하지 못한 듯, ‘음’ 하는 추임새를 계속 보내왔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길의 가로등은 군데군데 불이 깜빡거렸다. 하지만, 주변 집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으로 어떻게든 걸어나갈 수 있었다.


이 길로 가는 건,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이다. 항상 지름길을 이용해 단번에 가로질러 갔지만, 이번에는 빠르게 가는게 목적이 아니였다. 살인마를 찾을 것. 이 길을 통해 동네를 원형 모양으로 빙 돌고, 그 사이사이에 있는 골목길을 뒤질 예정이였다.


길의 양 옆에는 연립 주택들이 나란히 세워져있었다. 이따금씩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가는 듯, 주택의 센서에 불이 들어왔다. 설마, 집 앞까지 쫒아가서 죽이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내가 확인해야할 범위가 너무 넓다.


“아직이야?”


“네, 근데 아저씨 말이예요. 뭔일 있었어요?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흥분해서 나한테 욕이고 뭐고 다 내뱉던 사람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이렇게 변해요? 이상하잖아요. 아저씨, 혹시 나 경찰에 신고했어요?”


“아직 안했어.”


“아직? 언젠간 할 거라는 소리네?”


“그렇겠지. 난 너처럼 싸이코가 아니라서 매일 밤마다 사람 죽이는 소리 듣는 건 못하겠거든.”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약간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아저씨는 모르는거 같은데, 아저씨도 진짜 싸이코 기질 있는거 알아요? 아니, 그렇잖아. 다른 사람이면 나 이미 경찰에 신고하고 전화도 다 무시할건데, 아저씨는 신고도 안해, 무시도 안해, 목적이 뭐예요? 이거 갑자기 무서워지네.”


그녀 말대로,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 행동은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새벽에 갑작스레 걸려온 살인 생중계 전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내가 전화로 똑똑히 목소리를 들었던 피해자의 시체를 내가 발견했다. 그리고, 최초 발견자라는 신분으로 경찰에서 동행했음에도 나는 신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이유는 있었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지금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있었고, 나를 알고있을지도 모른다. 경찰에 신고하다고 해도 그녀를 잡을 방법이 있을까? 이 여자는 아주 똑똑하다. 아니, 아까도 말했다시피 똑똑함을 넘어 이상하기까지 하다.


분명 내가 경찰에 신고한다면 언젠가는 잡을 방법이 생길것이다. 영원히 숨길 수 있는 범죄란건 이 세상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게 언제일까, 그녀가 그리 쉽게 잡힐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나를 알고있다면, 내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면, 그녀는 어떻게 나올까.


게다가, 만약 잡아넣는다고 해도?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확실히 있다. 이 여자가 전화 통화를 하는 지금도 위화감은 나를 휘감쌌고,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 나는 이 여자를 경찰에 신고할 수 없었다. 이 여자의 정체를 완벽히 알아낼 때 까지는.


“그냥, 나도 한번 범죄라는 걸 저질러보고 싶어서. 이거 범죄 맞지? 살인방조죄.”


“진짜 이상한 아저씨네요.”


“너도 그래, 넌 진짜 성기같은 싸이코패스야.”


마지막 말에는 진심이 담겨져있었다. 분노, 분노일까? 일곱가지의 욕망. 나는 이미 나태와 식욕, 오만을 저질렀다. 그리고 지금은 분노라니. 일곱가지 욕망을 전부 가진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도 못 찾았어?”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반대로 나에게 하는 혼잣말이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그녀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지나간 사람은 모두 세 명. 하지만 전부 남자였다. 타겟이 될 만한 여성도, 이 여자도 찾을 수 없었다.


“아이 참, 아저씨 좀 기다려봐요. 살인이란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라니까요? 아무나 막 죽여봐, 잘못해서 흔적이라도 남으면 어쩔꺼야. 나 감방가기 싫어하는 여자예요.”


“내가 지금 졸리거든. 얼른 잠 좀 깨야할 것 같은데.”


사실 그녀가 타겟을 찾는건 나에게 있어 위험이기도 했다. 그녀가 타겟을 찾기 전에, 내가 그녀를 먼저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위치를 전혀 알지 못했다. 일단 그녀의 위치를 아는게 먼저였다.


“너 대채 어디에 있는건데? 목표를 어디서 찾는거야?”


“왜요, 왜 물어봐요. 진짜 나 어디사는지 알고있는거 아니야? 내가 어딘지 말해주면 경찰에 신고하려 그러죠.”


“안한다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찾을 수 있다구요. 설마 여자가 아무도 없을리가….”


그녀가 말을 아꼈다. 불안한 기운이 확 솟아올랐다. 왜 그러지? 목표물을 찾은건가? 젠장할. 내 발걸음은 더욱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 동네를 거의 절반 정도 돈 것 같았다. 곧 예의 그 편의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찾았어요. 나 저 여자 알아.”


“아는 여자라고?”


“네, 저희 동네 편의점에서 일하는 알바생이예요. 낮에 근무하던 언닌데. 지금은 그냥 물건 사러왔나?”


“편의점? 낮에 근무 한다고?”


불안한 기운은 더욱 솟구쳤다. 설마? 이미 내 눈에는 아침에 들렸던 편의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순간, 사실 이 여자가 있는 동네가 나랑은 아주 상관없는, 아주 멀리 떨어진 동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고, 간판에 적힌 영 단어가 그럭저럭 읽혀질 정도의 거리로 들어왔을때, 편의점의 자동문이 조용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걸어나왔다.


심장이 얼어붙는 듯 했다. 미친듯이 뛰어대던 심장은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자 마자 굳어버린 듯,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정지했고, 편의점의 왼 편에 위치한 식당의 주차장 쪽을 바라본 순간, 나는 또 다시 단말마 같은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 곳에는 여자가 있었다. 나와 비슷한 차림새.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색상의 옷을 입고있었고, 모자를 깊게 눌러써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는, 한 쪽 손을 모자 속, 귀 옆에 가져다대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그 여자의 입이 조금 움직였다. 입가가 들썩였고,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귓가에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찾았다.”


나는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편의점에서 걸어나오던 그 여자, 나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뒤돌아 걸어가는 그 여자.


‘김지희….’


지희는 내 통화 상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추천수8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