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웃대, 피더스님
현재 15편까지밖에 연제가안된관계로
다음편 나오면 그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누구세요?’ 라는 말과 함께 문 너머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문에 가려져 확실히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목소리로 보아하니 여성임이 틀림없었다. 상대가 여자라는 사실에 나는 털을 곤두세우곤 긴장의 끈을 더욱 꽉 주웠다.
도어락의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건 아직 어려보이는 나이의 여자.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틈 사이에서 바로 보이는 옷걸이에 고등학교 교복이 걸려있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고등학생인 모양이다.
“누구세요?”
상대가 다시금 물어왔다. 나는 그녀 몰래 침을 꿀꺽 삼키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저기… 별 일은 아니구, 근처 ○○대학교에서 앙케이트 설문조사가 있거든요.”
“앙케이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에게 물어볼 질문에 대해선 어젯밤에 심히 생각해봤지만 딱 알맞은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낯선 이의 집 문을 두드려 무슨 대화를 나눠야한단 말인가. 거기서 생각난게 바로 대학교에서 실행하는 앙케이트라는 것.
사실 내 학력은 고등학교가 전부였기에, 대학교에서 이런 앙케이트를 목적으로 집 문을 두드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에 내가 한번 겪은 적이 있었기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였다. 그때 우리집을 찾아온 대학생의 질문은 뭐 였던가, 아마 법에 관련된, 꽤나 수준 높은 질문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거에 비하면 내가 지금 던질 질문은 질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겠지.
“여성 분들이 선호하는 다이어트 방식에 관해서 조금….”
“다이어트?”
그렇지만 나는 비몽사몽하면서 생각해 낸 것 치곤 꽤나 괜찮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여성들이 선호하는 다이어트 방법’. 만약 내가 찾아간 집에 여자가 살고있지 않다면,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빠져나올 수도 있고, 여자가 있다면 상대와 대화를 나눌 계기가 된다.
상대는 조금 의심쩍다는 눈빛을 내게 보내왔다. 눈이 조금 작아서 그런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날카롭게까지 보였다. 다시금, 긴장이 가득 담긴 침을 그녀 몰래 꿀꺽 넘겼다.
“네, 여성이라면 다이어트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으실거예요. 혹시, 주로 선호하는 다이어트 방법 같은게 있으신가요?”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어보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일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귀찮아진듯 옆으로 살짝 숙였던 고개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글쎄요, 역시 그냥 운동을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다행이다. 그나마 내 질문에 응해줄 생각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아, 운동.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운동을…?”
“구체적이요? 음… 뭐, 그냥 많이 걷기 정도….”
“아, 알겠습니다. 설문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네.”
나는 슬슬 대화를 끝마치려고 했다. 그러자 상대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곤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를 더 던졌다.
“아, 혹시 집에 다른 여성 분도 계신가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얻었으면 해서요.”
그렇게 묻자, 닫히기 일보직전이던 문이 조금 스르륵 열리더니, 방금전 여자가 다시 얼굴을 드러냈다. 얼굴에는 약간 짜증난다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없어요, 엄마는 지금 회사가셨거든요.”
“아, 그러신가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자 상대는 다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문이 닫히는 속도가 방금전보다 확연히 빠르다. 또 귀찮은 질문을 하기전에 서로간에 벽을 만들어놓기 위함이겠지. 나는 어께를 으쓱거리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이 여자는 아니다. 말투에서부터 느껴지는 게 없을 뿐더러, 내가 봤던 살인마의 실루엣에 맞지 않는다. 살인마는 여자 치고도 꽤나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 여자의 키는 아무리 높게 쳐봐야 170. 그 날 살인마가 키높이 신발을 신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니다.
170CM 에서 177CM 이상으로 만드려면 키높이 운동화가 아니라 구두를 신어야했다. 하지만 그 날 내가 봤던 살인마는 분명 운동화를 신고있었고, 만약 그게 구두였다고 해도, 그렇게 뛰어다닐 수 있었을리가 없다.
“아닌가.”
고개를 저은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이 아랫집은 김지희가 살고있었다. 아까 자신을 집에 바려다줬던 내가 아직도 이 빌라 안에 있는 걸 알아차리면 분명 의아해할게 뻔하다. 그렇게되면 위험하다. 내가 아니라 김지희가. 아니,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김지희의 집이. 모닥불 속 장작처럼 타들어가게 될 지도 모른다.
뒷 발을 들고, 까치발로 조용히 계단을 내려왔다. 2층 201호. 김지희의 아랫집. 접근하는 방법은 위와 동일. 나는 조심히 문을 두드렸다. 여섯번 정도 문을 두드렸을까, 아무런 말없이 문 너머에서 가까워지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그리곤 도어락이 스스륵 돌아가고 문이 벌컥 열렸다. 401호의 여학생과는 달리 조심성이라곤 없는 남자다. 상대가 누군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마치 집에 들어오기라도 하라는 듯 문을 활짝 열어재꼈다.
짧은 시간동안, 나는 상대의 행색을 살폈다. 중년의 남자. 배가 조금 나와있고, 전체적으로 덩치가 조금 크다. 머리에선 듬성듬성 살색 피부가 보이고, 꽤나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초록색 악어가 그려진 반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있었다.
“누구세요?”
먼저 말을 꺼내온 건 그 쪽이였다. 약간 공격적인 어투였다. 내 정체를 묻는게 아니라, 뭐하러 왔냐는 식의 물음. 그렇기에 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 다름이 아니라. ○○대학교에서 앙케이트가 있어서 나왔거든요. 여성분들이 선호하는 다이어트 방법에 관해서 질문 드리고 싶은데, 혹시 여성분은 안계시나요?”
그러자 문고리를 잡고있던 상대의 손이 움직였다.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은 채, 문을 점점 닫고있었다. 문을 닫으며, 그가 말했다.
“여자 없습니다.”
“아, 저기 잠깐만요.”
“여자 없다니까요.”
“아내분은….”
“없다니까.”
목소리에서 짜증이 묻어져나왔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문을 닫았다. 도어락의 잠금이 다시 채워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그의 태도에 짜증을 느꼈다. 빌어먹을 자식, 그거 좀 살갑게 대하면 어디가 덧나나. 아무래도 이 집을 다시 조사하는건 힘들 듯 싶었다.
하지만 별로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문을 활짝 열었을 때,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이 빌라에 들어서있는 집들의 모양새는 전부 똑같은 것 같았다. 현관에서 일직선에 향한 위치에 방이 하나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방. 방금전 그 집은 그 방문이 열려있었고, 그 안엔 401호와 마찬가지로 고등학생의 교복이 눈에 들어왔다.
남성 교복이다. 정말 그의 말대로 아내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자식은 아마도 남자. 어쩌면 화장실 옆에 있는 방에 딸이 살고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을거라고 판단하고, 나는 다시금 계단을 내려갔다. 김지희의 집 역시, 그 방은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다.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들끓고, 창문을 열면 벌레가 한 가득 들어오기 때문이다. 여로모로 사람이 살만한 장소가 못 됀다.
101호의 문을 두드리기 전, 201호와 101호의 중간 계단에 주저앉아, 담배 한 개비를 더 입에 물었다. 담배 냄새가 나는 사람을 맞이하는건 상대로써도 마음에 들지 않을테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을 두드리고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가까워질때마다 극도의 긴장감을 느껴왔기 때문이였다.
담배연기에 실어 보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어쩌면 문을 두드려놓고 서서, 바지에 오줌을 싸버릴지도 모른다. 엽기적인 일이지만, 정말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살인마한테 살해당하는게 아니라 자살할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거야.”
나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제일 먼저 확인한건 시간. 현재 시각 PM 1:30. 형사가 오기로 한 건 오후 3시. 아직 여유가 있었다. 반 쯤 태운 담배를 끄곤, 남은 반 칸의 계단을 내려갔다. 101호의 문 앞에 서자, 날려보냈어야할 긴장감이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느낌이였다.
오른손을 들어올려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쿵쿵, 하는 소리가 주변에 울려퍼졌다. 김지희가 살고있는 빌라의 문은 우리집과 다르게 문 너머에서 상대를 볼 수 있을 정도의 투명도를 가진 유리가 박혀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멍하니 서서 상대방이 문을 열어주길 기다릴 뿐이였다.
여덟번? 아니, 두드림이 열 번정도가 넘어갈때까지 상대방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집에 없는건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등을 돌려 빌라의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 하나를 딱 내려간 그 순간이였다.
등 뒤에서 도어락의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하니, 방금까지 굳게 닫혀있던 문틈 사이로 컴컴한 어둠이 뿜어져나왔다. 나는 다시 문 앞으로 다가가 열린 문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이윽고, 미세하게 열렸던 문이 스스륵 하고 벌어졌다. 문이 반 쯤 열리자, 그제서야 문 너머에 서있던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남자, 20대 초반? 혹은 후반? 그다지 나이가 많아보이지는 않았지만, 학생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오히려 딱 건장한 청년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정도로의 덩치였다.
“누구세요.”
방금 잠에서 깬 듯, 하품을 하며 문을 연 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말 끝의 악센트 높혀 질문형을 띄고 있지 않았다.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저기 ○○대학교에서 앙케이트 조사 때문에 나왔는데요.”
“앙케이트?”
“네, 여성분들이 선호하는 다이어트 방법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은게 있어서 그런데, 혹시 여자분은 안 계신가요?”
“없어요. 저 혼자 살거든요.”
혼자 살기엔 조금 크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곧바로 표정을 바꾸곤 웃음을 지었다.
“아, 알겠습니다.”
내가 인사를 하려 고개를 숙인 그 순간, 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려올리며 표정을 찌푸렸다. 예의가 없는건 2층이나 1층이나 마찬가지로구만. 아, 그렇게 따지면 나도 계단 사이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예의가 없는건 나도 마찬가지로군. 게다가 101호의 잠을 깨운건 아마 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솟아오른던 짜증을 다시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긴 한숨을 내쉬며 빌라를 나섰다. 아직 시간적인 여유는 있었다. 아직 찾아야할 건물의 수는 무지막지하게 많이 남아있다.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지금 상당히 지쳐있었다. 낯선 사람의 집 문을 두들겨, 거짓말을 해가며 대화를 나누는 건 여간 피로가 쌓이는게 아니였다.
“일단 집에 들러야하나.”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실질적으로 찾은 건 세 집 밖에 되지 않은데 이 정도라니. 정말로 찾을 수 있기는 한건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
도착한 나는 곧바로 옷을 벗어던졌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뒤,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뿜어져나오는 물줄기를 곧바로 몸에 대진 않았다. 따뜻한 물이 나오려면 약간의 시간이 흘러야했기 때문이다.
땀을 흘렸다곤 해도, 아직 날씨가 춥다. 앞으로 바빠질텐데,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손을 가져다대어 물의 온도가 변한걸 확인하고, 어께에 물을 뿌렸다. 물이 가슴을 타고 흘러 온 몸을 적셨다. 피로가 쫘악 녹아내리는 기분이였다.
앞으로는 어딜 찾아봐야할까. 김지희가 살고있는 빌라는 전부 찾아보았다. 그리곤 아직까지 살인마의 느낌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양 옆에 위치한 빌라를 찾아봐야하나? 거기도 없으면 그 양 옆, 없으면 또 그 양 옆. 젠장할 끝이 없군.
나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샴푸로 머리카락을 비벼댔다. 그 순간이였다. 물줄기 소리 너머에서,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쾅, 아니 쿵? 머리를 비벼대던 손을 멈추고, 나는 일순간 그 소리에 집중했다. 쿵이다.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
아까부터 내가 만들어내던 그 소리를, 듣고있자니 뭔가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밖에 누가 왔음을 알아차린 나는 재빨리 머리의 거품을 닦아내며 소리쳤다.
“잠깐만요!”
누구지? 형사가 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일텐데. 김지희? 아니, 우리 집에 다시 찾아올 이유가 없어. 뭔가를 두고 갔나? 그런거라면 전화를 해도 될텐데, 아니 두고간게 휴대폰인가? 아니야, 아니야. 누구야?
내 외침을 들었는지, 상대방은 더 이상 문을 두드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하며 도어락의 잠금을 열었다. 설마, 살인마? 성급하게 문을 연 것을 후회하며 문 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의외, 라면 의외라고 해야할까. 문 밖에 서있던건 강현우 형사였다. 칙칙한 복장을 입은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일 뿐. 그리고선 재빨리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곗바늘은 PM 2:15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빨리 오셨네요?”
“아, 네. 전화를 하긴 했었는데 안 받으셔서.”
그는 물기가 남아있는 내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역시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던 내 휴대폰에 시선을 한번 던진 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를 집 안으로 들였다.
무례하고 오만하다. 나는 다시금 생각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약속대로 오후 3시에 찾아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중요하거나 다급한 일인건가? 범인의 단서를 찾았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금 용의자를 체포하려고 온 것이거나.
나는 치워두었던 테이블을 다시 거실의 한 가운데, 그러니까 형사와 내 사이에 옮겼다. 이유야 어찌됐던, 나는 이 형사와 아무런 벽 없이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이블이 옮겨지자, 형사는 자연스럽게 바닥에 앉았다. 나 역시 그를 마주보며 자리에 앉았다.
“중요한 일인가보죠? 이렇게 급히 찾아오시는 걸 보면.”
나는 마치 상대방을 떠보는 것 같은 어투로 물었다. 하지만 형사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마치 자신이 기계라도 되는 듯, 똑같은 어투와 억양으로 내게 대답해왔다.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뭐죠?”
“시체의 손톱에 관한 이야기죠.”
나를 떠보는 중이다. 그 생각이 곧바로 머릿속에 들어왔다. 말을 꺼내면서, 그는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손톱? 저 말을 듣고 내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보았던걸까.
“손톱이라뇨?”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최초 목격자시니까요.”
용의자도 포함해서, 라는 단어가 뒤에 붙혀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형사는 별 다른 말을 덧붙히진 않았다.
“시체를 처음 발견하셨을 때, 혹시 시체의 손톱에 관해서 기억하십니까.”
“아까부터 손톱이라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기억하지 못하셔도 이상할게 없습니다. 보통 시체를 보게되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쓰는 사람은 드뭅니다. 전체적인 면만 보기 마련이죠. 배에 상처가 나있다거나, 얼굴이 그어져있다거나 같은 큰 부분 말입니다. 손톱이나, 발톱, 머리카락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싶은건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컨대, 내가 시체의 손톱을 유심히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전혀 문제될게 없다고 말 하려는건가.
“시체의 손톱이 깎여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잘라져있었다고 해야겠죠.”
“손톱이 잘라져요?”
“네, 손톱은 본태 끝부분이 동그란 모양새를 띄기 마련인데, 시체의 손톱은 반듯하지 못한 일 자로 잘라져있었습니다. 손톱깎기가 아니라 칼 같은 물건으로 베어나간겁니다. 심지어 반듯하지 않고, 들쭉날쭉해요. 피해자 자신이 자른게 아닙니다.”
“요컨대, 살인마가 범인의 손톱을 잘라냈다?”
형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내가 커피를 건네지 않았기에, 차를 홀짝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쳐다보고있는 시간이 더욱 길어진 듯한 느낌이다.
나는 지금 형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범인이 일부러 피해자의 손톱을 잘라냈다는 건, 손톱을 그대로 남겨두면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가 생기는 건 뭘까, 어쩌면 손톱 하나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피해자와 그 살인마가 옥신각신… 아니, 내가 보기엔 그러진 않았을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살인을 전화통화로 똑똑히 듣고있었다. 살인마는 다짜고짜 피해자를 칼로 난도질했다. 옥신각신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언제? 아, 문득 그 날의 전화 통화가 떠오른다.
귓가에 울려대는 여자의 비명소리, 마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는 잔인한 소리. 살인마의 웃음소리. 각종 소리들이 이뤄내는 지옥같던 하모니. 그건 어떤 순간이였지?
「어라, 이 언니봐라. 이 언니 아직도 살아있었네.」
순간 팟, 하고 따끔한 스파크가 튄다. 이 순간이다. 이 순간, 피해자는 범인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손톱에 문제가 생겼다. 그럼 어떤 상황일까,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윽고 곧바로 그 답을 꺼낼 수 있었다. 손톱으로 범인을 긁었다.
손톱을 길고 다니던 여성이였다면, 어쩌면 손톱이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범인은 시체의 손톱을 보고 말았다. 손톱이 부러졌단건 자신이 손톱에 긁혔다는걸 대놓고 드러내는 꼴이다. 그래서, 손톱을 잘랐다. 가지고 있던 흉기로. 회칼이였던가? 아니, 그 피해자의 목에 꽃혀있던 가정용 과도.
한 부분만 짜르면 오히려 더 눈에 띌 수 있었기에, 모든 손톱을 자른건가? 그렇다면 딱 맞다. 범인이 손톱을 자른 이유. 손톱 모으는 게 취미라는 고약한 의견보다, 훨씬 더 가능성있다. 손톱은 잘랐을지 몰라도, 긁힌 상처는 남아있을게 분명하다. 손톱이 부러질 정도면 상처가 생기는게 당연하다. 그래서, 이 형사는 나를 찾아온건가?
내 생각에 답 해주듯이, 형사가 말했다.
“무슨 상황인지 어렴풋이 눈치 채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이태호씨의 생각대로 저희는 지금 당신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의심을 풀기 위해선 저희의 요구에 맞춰주시는 수 밖에 없습니다. 상처가 있는지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전에는 분명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던거 같은데. 뭐, 상관없지.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내겐 상처가 없다. 요 최근들어선 몸에 상처를 만든 적이 없었다. 심지어 손톱에 긁힌 상처는 더더욱.
손톱?
잊고 있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술에 말아, 그리고 박태민이 말한 ‘음성 변조’ 라는 가능성에 숨겨져, 내 기억 뒤편으로 들어갔던 그 것. 그저 단순하게 생각했었지만, 지금와서는 그럴 수 없었다.
김지희.
그녀의 왼쪽 어께에 나있던 그 상처. 손톱에 긁힌 것 같은 그 상처. 그 상처는 뭐지?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의심은 의심을 품고 또 다른 의심을 낳아가기 시작한다. 생각이 떠오른 찰나의 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내가 너무 과도한 생각을 하는걸까,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그 상처가 정말 그때 난 상처라면?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김지희가 살인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