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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로 간 남자 이야기

검객 |2014.08.12 15:02
조회 11,283 |추천 42


 

(지금 아프리카 선교를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남자는 태어나면서 몸이 약했다.

남자의 건강을 걱정한 부모는 그를 농촌에서 자라도록 배려했다.

  

 

덕분에 그의 유년 시절 친구들은 대부분이

가난한 농부의 자식들이었다.

남자는 가난한 친구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자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루터교의 목사였던 아버지는 성찬예배 때

아프리카 사람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서 자주 설교했다. 

남자는 그 내용을 가만히 머리 속에 기억했다.

  

 

그러다 대학생 시절, 19세 이상의 국민은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대장의 배려로 군인신분이면서도

시간을 내어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군대 복무 중 휴가를 집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그때 남자의 가슴 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가족들과 행복하게 휴가를 보내는데,

이러한 행복을 나만 누려도 괜찮은 건가?"

  

 

그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돕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번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긴 시간의 고민 끝에

30세까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학문을 최대한 공부하고,

그 이후의 삶은 남을 도우며 살기로 인생의 계획을 세운다.

 

 

그는 그 자신이 결심한 대로  

30세까지는 철학과 신학, 음악을 공부했고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30세 되던 해인 1905년  

남을 돕기 위해 의학 공부를 시작한다.

장장 7년이 걸리는 긴 공부였으며

그는 1912년에야 의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바로 다음 해,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로 건너간다.

그것은 결코 짧은 기간 동안 다녀오는 여행이 아니었으며

말 그대로 아프리카에 정착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닭장을 수리해서 병원 건물로 사용해야 했으며

숙소도 형편 없었다.

밤이면 나방을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벌레들 때문에

아내와 함께 잠을 설쳐야 했다.

  

 

또한 병원의 운영비 또한 자신이 직접 마련해야 했다.

그는 저술과 강연, 음악 연주를 통해 수입을 얻어

병원을 운영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의 취지를 이해한 사람들의 원조와 자원봉사 덕에

그는 활발한 의료활동을 하면서

여러 동의 의료시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또한 병원 운영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3년에 한 번 꼴로 유럽으로 돌아와 연주회를 열었으며,

저서의 인세, 강연으로 받은 돈과 기부금 역시

병원 운영비로 충당했다.

 

 

그 사나이, 슈바이처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남자에게

노벨상 수상 위원회는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한다.

수상의 이유는 인류의 형제애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공로였다.  

  

 

그렇게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 하기 위하여

기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슈바이처를 취재 하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특등칸과 1등칸과 2등칸을 모두 뒤졌으나

슈바이처를 찾지 못하였다.

 

 

그러다 기자 한 사람이 3등칸에서 사람들을 진찰하고 있는

슈바이처를 발견한 뒤 물었다.
“왜 이런 3등칸을 타고 가십니까?”

  


그에 대해 슈바이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는 편안한 곳을 찾아 다니는 게 아니라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다닙니다.

특등실의 사람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는 노벨상의 상금으로 나환자촌(癩患者村)을 세웠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남겼다.

"나는 여러분의 운명을 알지는 못 하지만,

이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봉사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하여 깨달은 사람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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