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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괴담] 단편 모음 246

hazel |2015.07.11 05:28
조회 8,150 |추천 18

더워서 잠을 못자겠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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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1시에 본 시내버스

 

 

 

 

 

 

 

 

대구 동대구역 근처 큰고개로 지나가는 거리에서 실제로 본...

 

한 12시쯤이었나 친구놈이 술마시고 좀 데려와달라고 부탁해서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어쩔수 없이 데려다 주려고 차를 몰고감

 

이상하게 보통 평일 밤시간대 라도 근처 동대구역땜에

 

지나가는 차는 의례 많기 마련인데 큰 사거리 지나면서도

 

한개도 안보임.

 

이상하다 싶기도 하고 꽤나 섬찟한게 안좋기도 하고 

 

차를 몰고가다 분위기를 타서인지 길을 잃어버림

 

분명히 큰고개를 지나기 직전의 거리인것은 확실한데 모르겠음.

 

아얘 모르는 거리였던 것으로 기억함.

 

그렇게 무작정 몰고가던 중에 저 멀리 버스하나가 보임

 

그냥 시내버스였고 번호는 기억안나는데 대충 825?

 

800번 대 였던걸로 기억남

 

근데 버스옆에서서 가다 힐끗봤는데 사람이 많았음. 거의 빽빽하게

 

...막차라 그런가? 싶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시간이 1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

 

절대로 버스가 다니는 시간이 아니라는게 문득 듬.

 

이상하다 생각들기도 하고 꺼림칙해서 다음 신호에서

 

버스 먼저 보내주다가 문득 버스 뒤쪽에 도착지 나오는 전광판?

 

그걸 봄.

 


 

'차고지행' 이라고 적혀있었음. 

 

그때 소름이 쫙....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신호 바뀌는 와중에도

 

차는 출발하지 못하고 그걸 계속 보다가

 

누가 크락션을 뒤에서 빠앙! 하고 누르길래 깜짝 놀람.

 

놀래서 뒤로 돌아보는데 그때만해도 안보이던 차들이

 

내뒤로 줄지어 있었음.

 

이게 대체 무슨일인가 싶어서 앞을 다시보니까

 

방금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던 사거리에 차들이 쌩쌩...

 

진짜 기묘했음. 대체 그 버스는 뭐였을까

 

그리고 만약 내가 그 버스랑 끝까지 따라갔으면

 

무슨일이 벌어졌을까.라는 ㅇㅇ

 

 

 


 

그리고 막창집가서 친구놈이랑 술마시면서 잊었다가

 

어저께 버스랑 접촉사고내고 갑자기 생각나서 글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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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의 경험담에 대해서

 

 

 

 

 

 

 

 

 

 

 

여러분께 이건 진짜 있는 일이야! 라고 강요하지 않는,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만... 공게에 올려지는 대부

분의 글들이 '그것'을 귀신이라고 칭하는 걸 보고 혹시나 제 어렸던 과거에 자주 경험하고 보았던 것이

부정적인 의미의 '귀신'일까? 라는 궁금증에 대충 글이나마 올려 봅니다.

 


 

제가 그걸 보기 시작한 것은 꽤나 오래전의 일이었습니다. 친가댁에 살았을때 저희 네가족은 작은방에

네식구, 안방에 할머니 할아버지, 더 작은방에는 막내고모, 이렇게 일곱가족이 살았습니다.

 

낮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집안일 때문에 집에는 있지만 왠지 서로 얼굴보기가 힘든 어머니와 할머님,

 

한창 일하기 바빴던 고모, 바깥에서 연구원을 재직중이시던 아버지, 그리고 사업때문에 집보다는 외박

을 자주 하시던 할아버지...

 

저의 첫 기억은 4살 때부터 입니다. 그때 우리집에는 숙모님이 사셨습니다. 남자들과 막내 고모가 바깥

으로 나가고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마당에 나가 일을 하실때 몸이 약했던 저는 집안에 홀로 누워있던적

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숙모'님은 열때문에 정신을 못차리는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기도 하고, 제가 자다 일어나서

고개를 돌리면 옆자리 작은방에 이불을 개는 모습도 보이기도, 유치원에서 상을 타고 왔을때 어머니는

일하기 바빠 저를 신경 써 주시지 못하지만 그분 만큼은 잘했다며 칭찬해 주시면서 저를 끌어 안으셨습

니다.

 

생각해보면 가족들이 너무 바쁜 삶을 살아 그런지는 몰라도 집안에서 저는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

다. 과묵했던 친가 식구들과 아버지. 젊은 나이에 결혼을 와 다분히 피폐했던 생활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던 어머니. 너무 어린 제 동생의 사이에서 저는 오갈곳 없는 천덕 꾸러기 신세를 받았습니다. 그래

서 그런지 몰라도 숙모님의 곁에서는 정말로 너무나도 안심을 느꼈습니다.

 

너무나도 바빴던 가족들이 저에 대해 큰 신경을 써주지 못했던 터라.라 저는 홀로귀가를 자주 하게 되었

습니다. 지금 생각해서 신기했던 경험으로는 유치원 차에서 내린후 집으로 걸어가는 그 길은 꽤나 사고

가 많고 불량학생이 많은 거리였습니다만, 저는 그런 위험한 상황에 빠진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머리속에 숙모님의 목소리로 "이쪽은 위험해. 돌아가자." 라고 '느껴'지면 저는 그

자리를 피해갔고, 어떤 때는 숙모님이 거리의 앞까지 기다리시면 저는 그분의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가

거나 하는 식이 었습니다. 그분의 손을 잡고 가던중에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로 위험해 보이는 불량학생

들의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더라도 아무도 저에게 욕을 하거나 눈치도 주지 않았습니다. 마치 저란 존재

를 신경쓰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는 숙모님의 든든함에 기분이 좋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

한 일입니다.

 

가끔씩 숙모님은 작은방에 있는 작은 창문을 하염 없이 들여다 보곤 했습니다. 그 창문으로는 할아버지

가 심으셨던 개나리와 국화, 유채꽃이 활짝 펴 있었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었을때. 즉 할머니와 어머니

께서 마당에나가 화단에 물을 정리하거나 쓰레기룰 태울때 숙모님은 그 모습을 서서 보셨습니다. 그러

다가 제가 숙모님을 가만히 부르거나 옷깃을 당길때 그분은 고개를 돌려 웃으시면서 저를 안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그분의 곁이 너무 좋아 칭얼거리다가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미 숙모님운 제 마음

한편에 가족보다 더욱 가족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6살 때쯤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께서 저를 보고 심각한 목소리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어디가 아프거나 이상한게 보이지 않냐고요. 저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시하려고 했으나 어머

니는 저를 붙잡고 보내주지 않으셨습니다. 한참을 그리 실랑이 하다가 겨우 저를 놔주시고 이상한게 보

이면 바로 이야기하라고 말하셨습니다.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가족을 소개하거나 항상 생각나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글쓰기 대회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제가 쓴 숙모님에 대한 글이 그 반에서 1등을 한겁니다. 결국 그 연락이 가족한테

까지 가자 가족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저희 집에는 '숙모님'은 커녕 고용인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저의 증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의논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날, 유치원 차에서 내리고 그날도 변함 없이 집까지 걸어갈려고

했을때 거리 맞은편에 숙모님이 서 계셨습니다. 저는 숙모님이 저와 같이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손을 흔

들었지만 숙모님은 눈물을 흘리시면서 저를 단지 쳐다보고는 몸울 돌려 차와 인파속으로 사라지셨습니

다. 그 모습을 보며 순간 저는 이런 마음을 느꼈습니다. '아. 이젠 정말로 끝이구나.' 그리고 치밀어 오르

는 서러움에 엉엉 울면서 집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후 저희 가족은 할아버지의 60주년 생신 기념으로 가족사진울 찍게 되었습니다. 근처

가장 좋은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었고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사진이 찍히고 저희 가족들에게 사진관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쪽에서 처리가 곤란한 사진이 나

왔다. 혹시 무슨 사연있는게 아니냐. 사진관의 주인과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동창이셔서 쉽게 연락을 받

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운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그런 사진관의 연락을 기다리고는 일주일후, 그 사

진들을 받았습니다.

 

 온가족이 모인 상황에서 대형 크기의 가족 사진의 소포를 뜯으니 제게 제일 먼저 보인건 가족들의 모습과 제가 앉아있는 모습 옆에 슬픈듯, 기쁜듯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숙모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

간 뛸 듯이 기뻤습니다. 아마도 제가 모르는 와중에 숙모님께서 잠시 들리셔서 이 사진을 찍은게 아닐

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만족하고 가족을 보려 뒤를 돌아본 순간

 

제게 보이는건 경악한 아버지의 얼굴과 볼을 부들부들 떠시는 할아버지. 갑자기 울기 시작한 동생과 얼

굴이 새하얗게 질린 할머니와 막내고모. 그리고 한참을 멍하게 보다가 저를 붙잡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날 이후로 가족들 손에 이끌려 참 많은 성당을 다녔습니다. 성

령이 강하시다는 신부님께 처음으로 구마경을 받기도 했고, 안수식을 하면서 저를 보고 1:1로 손을 잡고

기도하시던 이상한 할머니들도 만났습니다. 서울에 계시던 외삼촌 신부님께서 급히 내려오셔서 저에게

몇시간을 걸쳐 기도를 하기도 했고 자기전에는 항상 성수를 뿌리거나 다닐때는 항상 묵주를 차고 다니

는등. 정말 수많은 푸닥거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7살무렵 어느 주말에 할아버지께서 마당으로 나와 그 숙모님께서 같이 찍혔던

사진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았습니다. 숙모님께서 항상 서 계셨던 작은 방

의 창문으로 그 모습을 보면서요. 그걸 지켜보는 마음은 마치 제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꼭. 마치 '모든

것을 다 끝냈다.' 혹은 아무런 원인울 찾을 수 없는 후련함만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사실 제가 어린시절에 겪은 그것. 아니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이 끝입니다. 제가 그때 그 시절 모든

상황을 알게된 건 고등학교 시절에 와서야 대충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6살 때 유치원에서 1등상을 받았던 그 때, 저희 가족들이 의논한 것은 그동안 병약하고 가끔씩 허공

에다 대고 이상한 대화를 하는 것이 보였던 저가 시설에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할아버지의 의견이 원인

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말을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듯 보이고 항상 누워있거나 외부 생활에도 폐쇄

적인 태도를 고집하던 저에게 가족들은 알게 모르게 저능아의 꼬리표를 달았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제가 쓴 숙모님에 대한 글이 쐐기를 박았습니다. 부모님은 할아버지의 말에대해 반대를 했

 

고 할아버지께서는 그것에 대해 역정을 내시며 저를 사이에 두고 알게모르게 집안에 냉랭한 분위기가

흘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고집을 꺽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시설을 알아 보는둥 하며 사

사건건 가족과 부딪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후. 집안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막내고모의 생각에 따라 육십주년 할아버지 생신 기념으로 가

족사진을 찍고 그러한 사달이 벌어진 것입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제 눈에는 단아하고 따뜻한 인상

을 받았고 또 그렇게 보였던 숙모의 모습에 왜 그렇게 가족들이 경악을 하고 그 푸닥거리를 했는지에 물

었습니다만 그 대답을 하는 어머니의 말씀은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족사진의 아무것도 없을 배경부분에  거뭇거뭇한 얼룩같이 생긴 손자국이 끝없이 찍혀있었고 가족들

의 얼굴은 모두 일그러져 있었다.니 모습만 똑바로 나오긴 했는데 니 옆에 온몸이 기괴하게 비틀어지고,

얼굴의 반쪽이 흘러내리는 듯하며, 눈구멍은 없고, 턱 아랫부분이 떨어져 나간듯 한 긴머리의 여자가 니한테 목을 걸고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는 제가 그때까지 이상했던 모든것이 그 마귀가 붙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

다. 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분명히 제 눈에는 단아하게만 보였던 그분의 모습에 대해 가족들은

그렇게 다룬 모습으로 보였다니요. 게다가 그런 일이 지나고 얼마되지 않아 제 몸이 갑자기 좋아져 다른

아이들처럼 뛰고 노는것에 대해 아무런 애로사항이 없어졌기 때문인지 ㅇ머니는 그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시는듯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렸을 적 벌써부터 집이 집같지도 않았다고 느꼈던 저를 이해해 준

사람은 숙모님이 전부였습니다. 단호한듯 하면서도 부드럽게 이끄는 목소리와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주시던, 단순계산으로만 해도 1년 넘게 저와 함께 했던 그 시간에 제가 저의 처지에 절망하고 열등의식 따

위를 가지지 않게 해주시던 분은 그 분 밖에 없었습니다. 그걸 모두 저의 환상 아니면 나쁜 뜻을 가지고

들러붙은 악령이었다고요?

 

그리고 오히려 나쁜일은 그일이 지나고 나서 한꺼번에 봇물터지듯 다가왔습니다. 할아버지 회사의 부도

와 매각, 직장에서 있었던 자살사건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다 결국 직장을 나온 고모, 할머니와 어머니간

의 불화. 그로 인해 도망치듯 친가를 나오고 그때부터 벌어진 끊임없는 부부싸움...

 

저 자신으로도 건강해진 것만 빼고는 어려운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2학년때 부터 도둑질의 누명을 받아

2년 내내 도둑놈과 거짓말쟁이로서 따돌림을 받아야 했고, 중, 고등학생 때도 비슷한 사건에 휘말려 심

하게 고생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생 또한 트러블이 많았고요.

 

모든것이 정리된 지금 사실 그 시절 숙모님은 시설로 갈뻔한 저를 구해주신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정

신병동과도 비슷했던 그런 시설에 들어가 저도 모르게 자신을 장애를(장애인을 비하 하는 것이 아닙니

다.) 가진 사람으로 낙인찍고 살면서 인생을 망칠뻔한 그런 상황을 벗어나게 해주신 것은 아닐까. 그렇

게 자기가 희생 하시면서 마지막 가실때는 제 선천적이라고 여기며 절대 벗어난다고 생각 못했던 허약

함까지 같이 가져가 주신 것은 아닐까.

 

비록 저의 예상뿐이고 저는 그분의 이름조차 모릅니다. 가족들 조차 그때 봤던 일그러진 모습을 보고도

누군지에 대해 생각도 못할 정도이니, 그것은 정말로 저의 끝 모를 소외감이 빚어낸 환상인지 아니면 정

말로 저를 도와주기 위해 나타난 어떠한 신적 존재인지는 알 수없습니다.

 

다만 제가 겪었던 경험이 진실이고 그 진실속에서 저는 추악함이나 두려움, 공포 따위는 겪지 않았고 그

경험 만큼은 아직 짧은 제 삶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상은 진실을 대변해 주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대화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더욱

옳지않나 생각해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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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형들의 실화

 

 

 

 

 

 

 

 

 

이건 우리 친척형들의 실화야..


반말인거는 이해좀..


약...10년 정도?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 나는 외가쪽 사촌형들 이야기야


이 형들이랑 나는 나이차이가 꽤많이 나는편이라 놀아주기도 많이 놀아주고


밤이면 무서운 이야기도 해주며 나를 놀리는걸 좋아하던 형들이야.


특히 작은형은 어릴적부터 몸이 약해서 헛것을 보거나 가위눌리는 일이 잦아서 그런이야기를 더욱 실감나게 해줬지..


이일은 큰형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때 이야기야


큰형은 작은형과 4살차이가 나고 나랑은 여덟살 차이가나 둘은 친형제이고..


형네집은 가정상황이 좋은 편이 아니라 큰형은 대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하며 작은형의 뒷바라지를 해줬어


작은형은 순수미술을 하는터라 돈이 굉장히 많이 들었거든..


암무튼.. 그런 큰형이 일하던 도중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일어났어..


형네집은 이모부와 이모는 지방에 계셨기에 당시 서울에서 같이 지내던 작은형이 큰형의 간병을 해야만했데..


큰형은 사고가 회사측의 실수였기때문에(형이 무슨일을 했는지는 잘모르겠어..) 회사에서 병원비를 전액 지원해줘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을 할수있었고 2인실을 사용하고 있었어..


2인실에 옆 침대는 비어있어서 작은형도 침대를 사용할수 있다고 좋아했지.


그렇게 몇일이 지나서 어느날 밤 늦게 큰형이 작은형에게 야식이 먹고 싶다고 야식좀 사오라고 시켰었데..


세브란스 신관1층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그때는 공사중인가? 그런 사정으로 문을 닫았었고


작은형은 어쩔수 없이 신촌번화가 쪽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고해..


세브란스를 나서서 큰길까지 걸어나온 작은형은 신호를 기다리며 멍하니 앞을 바라고보고 있었다고해


그렇게 멍하니 앞을보는데 앞에 왠 여자가 조용히 서있더래


눈과 입을 검게 칠한여자가 긴 생머리를 늘어트리고 검은 원피스를 입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서있는 모습이


작은형은 조금 기괴해도 그냥 술취한 고스족 여자구나..라고 생각했데 흔치는 않아도 가끔은 보이니까 말이야..


근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신촌 세브란스 앞에 차도는 8차선정도 되서 이쪽 신호등에서 반대쪽 신호등까지 거리가 상당하단 말이지?


형은 갑작이 퍼뜩 '여기서......저기 서있는 여자의 이목구비가 똑똑히 보이는게...정상...인가?'


사실 낮에도 반대편에 서있는사람 얼굴은 잘안보일 거리인데 말이지?


게다 밤중이라 더더욱 잘안보일텐데 형눈에는 그여자의 얼굴이 너무 잘보이더래


갑작이 무서워진 형은 뭔가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여자와 눈이 마주쳤데


여자는 갑작이 미친듯이 웃으며 그자리에서 방방 뛰더라는거야..


형은 그길로 도망쳐서 병원쪽으로 달아났데.. 그런데 신호가 바뀐건지 뒤에서 괴성을 지르며 자기를 쫒아오는 여자가 느껴지더래


형은 죽을 힘을 다해서 병원쪽으로 달렸고 유리문을 통과해서 문을 가까스로 문을 잠글수가 있었다고해


그리고 얼마 안지나서 그여자가 문밖으로 모습을 들어내고 형쪽으로 오더래


눈주위를 검게 칠하고 입술을 검게 칠한 팀버튼의 영화에 나올법한 모습으로 문쪽으로 다가온 여자는 형을보며


뭐라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를 지르고 문을 마구 두드렸데..


형은 다리가 풀려서 그자리에 주저앉아 있는데 너무 무서워 눈물이 나더라는 거야..


그때 무슨 일인지 보러온 경비아저씨가 그여자를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하고 경찰이 올때까지 그여자는 문앞을 서성이다가 멀리서


싸이렌 소리가 들리니 그제서야 도망을 치더래..


지하주차장쪽으로 여자가 도망을치고 형은 경찰들과 주차장에 그여자를 잡으러 내려갔데


근데 그주차장은 입구랑 출구가 같은 곳이라 도망칠곳이 없는데도 여자는 보이지가 않더라는거야...


아직까지도 작은형은 이 이야기를 할때마다 큰형을 원망어린 눈으로 쳐다봐...


그일 이후에 큰형이 퇴원할때까지 작은형이 이여자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지만


아직도 신촌 세브란스 근처를 가면 그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거 같아서 등에 소름이 돋는다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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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원피스

 

 

 

 

 

 

 

 

 

 

 

이 이야기는 중학교 시절 학원 선생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약간의 각색을 더한 이야기 입니다.


늦은 여름의 저녁이었다.

 

"안녕하세요~ 와 언니도 왔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작은 아버지 가족이 놀러왔다.  차로 2~3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라 종종 작은아

버지는 놀러오시긴 했지만 가족이 오는 경우는 많이 없었다.  아마 얼마 후 있을 추석때문에 모였지 않

나.. 싶었다. 

 

"야 너 살좀 쪘다??~ 관리좀 해 기집애야!~"

"언니나 잘하셔~ 난 남자친구도 있거든??" 

 

친척언니는 어려서부터 나랑 매우 친했다. 나와 나이차이도 한살밖에 나지 않을 뿐더러, 중학교와 고등

학교를 같은 학교를 나와서 자주 어울려 놀았기 때문이다. 

 

두 가족이 모여 다 같이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티비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어이구 벌써 시간이 이래댔나?~ 여보 이제 슬슬 가십시다~"

 

꽤 늦은시간, 작은 아버지네는 시간이 되었다며 집에 가실 채비를 하셨다

 

"엄마엄마~ 나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갈게~ 응??"

"이놈의 기집애가...!! 내일 아침에 교회 가야하니까 일찍 들어와!~"

"헤헤~ 알았어~~"

 

그렇게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어질 수 있었다. 사실 별 얘기는 없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친구 이야

기, 연예인이야기, 남자이야기. 이십대 초반 아가씨들의 흔한 수다였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다. 

 

"야, 우리 목마른데... 캔맥이나 하나씩 할까??"

"오, 콜! 좋아 좋아~"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늦여름밤의 더위는 우리에게 맥주생각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맥주를 사러 가기 위

해 대충 걸쳐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어디가?~ 이 시간에 늦었는데??"

"맥주사러간다~ 왜~??"

"내꺼도 ㅋㅋ"

"야! 넌 미성년자잖아?!!"

 

마루에서 컴퓨터를 하던 남동생이 지도 맥주를 달란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게..  그렇게 입을 삐죽대며

궁시렁대는 동생을 뒤로 하고 집을 나왔다. 

 

열두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라 동네 수퍼마켓은 다 문을 닫아버렸다. 큰 길가에 있는 편의점을 가야했다.

환한 길로 가기엔 조금 돌아가야 해서, 우리는 좁은 골목길로 가기로 했다. 조금 어둡긴 하지만 그래도

가로등이 듬성듬성있으니까. 

 

"그래서 말이야 그때 걔가 뭐라 그랬냐면~~~~~~"

 

언니랑 수다를 떨면서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싸한 시선이 느껴졌다.

 

저 앞쪽.

 

작은 골목에서 내려오는 작은 계단 몇칸.  

 

거기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앉아있었다. 우리가 이 골목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우릴 계속 주시하

고 있던거 같다. 우릴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싸하다고 해야하....

 

 

 

다리가 없다.

 

그때 느낌이 왔다.

사람이 아니다. 귀신이다.

 

식은땀이 흘렀다.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다.

 

언니는 저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계속 나한테 말을 걸고 있었고 난 언니가 하는 말에 응응~ 대답

하면서 애써 시선을 주지 않았다. 

 

갑자기 언니가 말을 끊더니    

 


 

"야... 봤어...?"

 


 

언니도 봤다. 그 아이를. 아무렇지 않은척 하려고 쉴새없이 내게 말을 걸었던거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빨리 이 골목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아주 조심히 그리고 조용히 고개만 끄덕

였다.

 

그리고 우린 하지 말았어야 했을 행동을 했다.  이놈의 호기심...  골목길을 나가는 순간 둘다 동시에 뒤

를 돌아봤다.

 

아이가 있어야 할 자리엔 아이가 없었다.

대신 지붕 위에서 미친듯이 빨간 원피스를 흔들며 춤을 추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소릴 지르며 큰길로 내달렸다. 너무 무서웠다.

 

언니는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봤다고 했다. 무서운데 말을 안하면 더 무서워 질것 같아서 억지로 말을 걸

었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잔뜩 샀다. 도저히 맨정신엔 잘 수가 없을것 같았다. 물론 집에 올때는 당연히 큰길

로 빙 돌아왔다.  그렇게 둘이서 맥주를 잔뜩 마시고, 술기운에 취해 정신없이 잤다.


 

 

 "세상에나.... 이를 어쩐대...."

 

아침부터 엄마가 혀를 쯧쯧 차신다.

 

 "엄마, 왜? 뭔일 있어??"

 

"왜 요 밑에 좁은 골목에 집 하나 있잖아.. 어제 밤에 불나서 가족이 다 죽었다내...?"

 

언니와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제 언니와 내가 본 빨간 원피스의 아이가 춤추던 집에 밤사이에 불이나서 일가족 세명이 다 죽었다고

했다.. 

 

촛불이 넘어져서 불이 났다고 했는데..

 

우리동네에 어제 정전은 없었다... 

 


 

그날 언니와 내가 본 빨간원피스의 아이는 화마(火魔)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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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예지몽 얘기 몇개
 

 

 

 

 

 

 

 


 
내 얘기는 아니고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 얘기야.

 

할머니는 일종의 예지몽을 꾸셨던가봐. 할머니 살아계실때 해주신 얘기, 아빠가 해주신 얘기가 섞여있

어.

 

할머니 시절엔 딱히 신랑신부 얼굴 모르는 상태에서 다들 선봐서 결혼했쟎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렇게 결혼하셨어.

어느 날 처녀시절의 할머니는 꿈을 꾸셨대. 곱상하게 훤칠한 젊은 남자가 말을 타고 집에 왔대.

꿈에서도 요즘 선 얘기 오가는데 이 사람이 남편 될 사람일까? 생각하셨다는군.

며칠뒤 집안 사람들이 부산하게 손님맞을 준비를 하길래 슬쩍 빠져나와서 담 너머로 누가 오나 보셨대.

 

그랬더니 며칠전 꿈속의 그 남자가 정말 말을 타고 오고 있더라는군. 그 남자가 우리 할아버지셨어.

두분이 결혼하시고 할아버지 사업이 잘되어서 할아버지 가게가 들어갈 건물이나 땅을 하나 사려고 하셨

대.

할아버지가 건물이나 땅을 보고 다니던 중, 할머니가 꿈을 꾸셨어.

집에서 멀지않은 번화가의 어떤 한 곳에 불이 나서 활활 타고 있는 꿈이었다지.

잠에서 깨신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이런이런 곳을 보았다, 불에 타고 있더라, 고 말씀드리자 할머니를 데

리고 건물을 보러 가셨대.

그리고 정말 꿈속에서 불타던 그 장소를 발견하신거야.

그래서 그 곳에 건물을 올려서 가게를 내고 다른 가게들도 세를 받았어.

할아버지 사업은 엄청 잘되어서 아빠가 자라실때는 그 도시에서 최고 유지라는 소리까지 들으셨었다요.

 

그리고 할아버지쪽 가까운 친척 누군가가 돌아가셔서 묘를 쓰게 되었대.

당시 할아버지는 일때문에 타지에 출타중이셨는데, 그 친척이 안그래도 오늘 내일 하셔서 미리 묘 자리

를 봐놓고 가셨다는군.

그런데 그때 집안에 다들 타지에 나가있거나 했고 묘를 쓸때 봐줄만한 남자 어른은 한명만 계셨던 모양

이야.

이 남자 어른은 평소엔 멀쩡하신데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허구한날 술에 취해 계셨대.

그래서 할아버지가 떠나시기 전 미리 묘는 여기에, 관은 이 방향으로 이렇게, 하고 정해주고 가셨대.

 

친척 어른은 결국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세상을 뜨셨고, 그래서 묘를 쓰게 되었는데, 저 남자 어

른께서 그날도 그만 고주망태가 되셔서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 방향대로 관을 묻지 않고 대충 일을 진

행시켜 버리셨다는거야.

그로부터 며칠뒤 할머니 꿈속에 웬 묘와 관이 보이셨대.

관이 뭔가 제자리에 있는 느낌이 아닌, 반은 그 자리에 있는데 반은 원래 있어야 할것같은 자리가 아닌

쪽으로 걸쳐져 있더라나.

그런데 이 똑같은 꿈을 한 세번 꾸신 모양이야.

할아버지가 드디어 돌아오셨을때 말씀드리니까 바로 무덤으로 가셔서 파보라고 했더니 관이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그 모양 그대로 애매하게 묻혀있더라는거야.

묘지기들이 기절초풍을 하면서 어떻게 아셨냐고, 그날 그분이 너무 취하셔서 빨리빨리 끝내라고 성화를

부리시는 바람에 급하게 마무리를 해서 자기들도 찝찝하던 차였대.

그래서 다시 관을 제대로 놓고 묻었다네. 할머니도 그 꿈을 더이상 꾸지 않으셨고.

 

할머니가 시집오시고 얼마뒤에 할아버지가 집을 새로 크게 지으려고 땅을 보고 다니셨대.

할머니 꿈에 처음 보는 동네의 넓은 공터가 보이더라는군.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니 집 터 보러 가실때 데

려가셨대.

그리고 꿈속의 그 공터를 보고 여기가 바로 그곳이라고 해서, 그 땅을 사서 집을 지으셨었다지. 지금의

큰댁이야.

 

내가 알기로 우리 집안에 할머니 말고 예지몽을 꾸는 사람은 딱히 없어. 할머니한테 신기가 있으셨던것

도 아냐.

나도 전혀 그쪽으로는 없고.

우리 아빠가 좀 기가 남다르신 분이긴 한데 특별히 예지몽을 할머니처럼 계속 꾸시진 않아.

내 태몽이랑 몇가지 좀 신기한 꿈을 꾸신건 있지만.

참, 내가 양력으론 2월생이고 음력으론 정월생(1월)이야. 예정일은 3월 초순이나 중순이었대.

그런데 내가 태어나던 해에는 정월생이 가장 좋다, 뭐 이런게 있었나봐.

이미 병원에선 음력 2월생이 될거라고 해서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할머니께서 엄마한

테 아니다, 00는 정월에 태어날거다, 두고봐라, 00는 정월생이 될거다, 고 하셨대.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그냥 그렇게 감이 온다면서 정월 말에 태어날거라고 하셨다는군.

난 실제로 병원 예상보다 좀 일찍 태어났어. 음력으로 1월 거의 끝에 태어났으니 할머니 말씀이 맞으셨

던거지.

 

할머니 생각할때마다 너무 신기해. 그냥 평범하고 좋은 할머니셨고 특별히 점을 보러 다니신적도 없어

(점은 내가 가끔 보러다닌다) 절에는 꾸준히 다니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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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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