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한게 계속 연락할 것 같은 내가 안 하니까
절대 연락 안 할 것 같았던 네가 하네.
나는 여린 사람이었고, 너는 강한 사람이었지.
사실, 어제 너와 추억이 있는 곳을 우연히 지나가다
그때 내가 잘 못했던 게 생각이 나서 잠시 슬펐는데,
네가 나한테 헤어질 때 모질게 했던 말 떠올리며 상쇄시켰거든.
그러고 집에 와서 바로 잤는데, 방금 전에 깨서 핸드폰 보니까
문자가 와있네 신기하게도.
7월 초에 헤어지고, 며칠 뒤에 한 번 왔고,
그 후로 이번이 두 번째 연락이구나.
문득, 너의 형이 결혼하는 9월인데,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형 결혼 하는 거 보면 내 생각은 하려나 싶었는데,
어차피 너는 헤어지고 바로 새로운 사람이 생겼기에,
그 사람이랑 갈테고, 그 사람이랑 행복하게 가족들과 보내겠지 싶단
생각을 마침 어제 했단 말이야.
근데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문자 한 거니?
잘지내냐고, 자냐고 왜 묻는 건데.
새로운 사람 생겼으면 그사람을 위해서라도
나한테 연락하면 안 되는 거잖아.
혹시 헤어졌니?
아니면 바로 다른 사람 만난게 후회되니?
아님 나랑 비교했니?
그것도 아님 또 나한테 갈아타려고 준비하는 거니?
도대체 뭐니..
근데 솔직히 나는 너무 이상하리만치 차분해.
궁금하긴한데, 뭐라고 답장을 해야할지
아니면 답장을 해야할지 말지도 모르겠고,
만약 나를 정말 그저 '잘 지내는지' 그 팩트만 궁금해서,
혹은 떠보려고 연락한 거면,
그냥 하지마.
너 그 여자랑 행복할 때
나 이사람 저사람 돌려가며 진상짓 했고,
너 그 여자랑 네 차로 드라이브 추억 쌓을 때
나 혼자 버스 출퇴근 4시간 버티면서 일 했어.
그냥, 진짜 그냥이라는 이유로
연락하는 거 싫고,
지금 그 여자랑 잘 안됐으면 안타깝지만,
그여자랑 만나고 있는 상태라면,
두 여자에게 상처 주는 짓 하지말고,
나란 사람 완전히 잊고 그 여자한테 잘 해라.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아 잘 되길 바라지도 않아.
아직 그 경지에는 못 올라갔어.
그냥 잊어야만 하는, 더 이상 대한민국에 없는 존재거든.
내가 며칠 전에 읽은 로빈슨 크루소에서 이런 말을 했지.
어제 사랑했던 걸 오늘 미워하는 존재,
감정은 믿을 게 못되더라는 게 인간이라고.
나는 이제 너를 사랑해서는 안 되고, 미워하고 싶지도 않아.
감정 소모라는 게 인간을 얼마나 힘들고 처참한 상태로 몰고 가는지
알기 때문에 다신 겪고싶지 않기 때문이야.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그냥, 근황이 궁금해서 연락했다는 말은 집어치워.
만약에 내가 답장을 했는데 네 답장이 그렇게 오잖아?
그럼 나는 아문 상처 다시 도려낸 너를 원망할 거고,
겨우 찾은 평정심과 약간의 물결만 있는 잔잔한 마음 상태를
폭풍 몰아치는 마음으로 만들어 놓은 너를 욕하겠지.
앞서 말했듯이,
더 이상 욕하고 싶지도,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그렇다고 좋은 추억 꺼내지도,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하고 싶지도 않아.
그래서 너의 답장이 무서워서 이곳에 내 마음 털어놓지만,
너한테는 답장 못하겠다.
내가 답장 안 하면.. 너도 이제 정말 안 하겠지.
사람들이
"그 후로 연락 안 와?" 했을 때,
나는
"응. 안 와. 그리고 앞으로 안 할거야. 새로운 사람하고 행복하겠지."라고
확신에 차서 말했었거든.
이제 내가 사람들하고 그런 대화도 안 할 수 있게,
도와줘..
건강히 잘 지내길 바랄게.
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