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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는 것이 위험해서 남은 생을 격리당한 여자이야기

콜로라도 |2015.10.19 01:43
조회 1,443 |추천 6

 사진과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바로 메리 말론. 일명 장티푸스(Typhoid) 메리.

 

 

Typhoid Mary
1869년 9월 23일 ~ 1938년 11월 11일

본명은 메리 말론(Mary Mallon). 공식적으로 53가지 사례의 장티푸스 감염의 주범이었고 그 중 3인을 사망시켰다. 물론 비공식적인 피해자 수는 훨씬 많았다.

1906년 뉴욕 근교에 거주하는 한 부유한 가족이 장티푸스에 걸리자, 의사들은 의아했다. 그 가족의 청결 수준은 장티푸스가 창궐할 정도로 문제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은 공중보건조사요원인 의사 조지 소퍼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소퍼는 처음에 감염된 가족이 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이 집에 요리사가 새로 들어온 시기와 장티푸스 감염시기가 일치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요리사는 아일랜드에서 이민 온 메리 말론이었다. 말론은 장티푸스에 감염되었으나 증세를 보이지 않는 보균자였다. 소퍼는 말론의 과거 행적을 추적했다. 그 결과 말론은 10년간 8가정에서 요리사로 일했으며, 그동안 주변 사람 22명이 감염되고 1명이 사망했음이 밝혀졌다.

1907년 뉴욕시 보건당국은 말론을 강제로 병원에 격리 수용했다. 타이포이드 메리라는 별명은 이 병원에서 붙인 것이다. 말론은 자기는 건강한데도 왜 병원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느냐며 항변했다. 이 사건을 실은 기사는 뉴욕 타임즈 1면에 실렸고, 많은 사람들이 뉴욕시 보건당국이 생사람을 잡는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며

 

대중은 건강보균자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3년 후 말론은 요리사 일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퇴원했다.

그러나 돈을 제대로 벌 수 없던 말론은 1915년부터 브라운 부인이라는 가명을 써서 맨해튼의 한 병원에 요리사로 취직했다. 그 결과 25명의 의사·간호사·직원이 장티푸스에 감염됐고 그 중 2명이 사망했다.

말론은 다시 붙잡혔고, 격리되어 죽을 때까지 23년간 홀로 살았다. 당시 보건당국의 감독을 받던 장티푸스 보균자는 2백 명이 넘었지만 말론처럼 평생 연금에 처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非 앵글로 색슨에 대한 선입관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말론은 임종할 때까지도 자신이 보균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메리 말론을 위해 변호를 해주자면 그녀는 당시에 낮았던 여성의 권리 + "보균자"라는 개념에 대한 무지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당시 사람들이 감염되어 증세를 보이지 않는 건강보균자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으면, 메리가 가정부나 요리사말고 다른 직종에 종사할 수 있었다면 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녀가 보균자라는 자체가 문제가 된 게 아니라, 타인을 감염시켰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었다. 말론의 위생관념은 그야말로 '개판' 이었다고 한다. 위생관념이 개판인데 요리사를 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녀가 티푸스 보균자가 아니었다고 해도 가는 곳마다 식중독을 발생시켜서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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