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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어린시절, 지금은 행복한 나! - 사랑해 엄마!!!!!!!

복받은나 |2015.11.09 12:14
조회 372 |추천 0

안녕하세요-

이십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결혼 4년차 뱃속에 둘째까지 임신중인 두 아이의 엄마에요.

 

원치 않던 주말부부 생활에 힘들긴 하지만,

12월도 아닌데 캐롤을 들으며 언젠간 나도 판에 한번 글이나 쓰자 싶었는데

마침 시간이 좀 남아 이렇게 컴퓨터를 켰어요.

오타가 있을 수 있지만, 너그럽게 봐주세요^^*

음슴체로 한번 꼭 써보고 싶으니 음슴체로 ㄱㄱ

 

살아온 인생이 있기에 뭐, 어느정도 스압은 예상해주시길!

 

 

 

 

 

 

 

----본문 갑니다 뿅!

 

 

 

 

 

 

 

 

 

 

자세히 쓰기엔 나를 알아볼 것 만 같은 사람들이 판을 즐겨해서

상세하게 쓰지는 못함을 먼저 이해해주길 바람...ㅋㅋㅋㅋ

 

 

 

 

나님 어린시절은 좀 힘들었음...

아빠에 대한 추억도 기억도 많지도 않고 잘 안나기도함..-_-;

아빠 얼굴도 어린시절 가물가물했다가 커서 몇번 만났기에 그나마 기억이 난달까...?

 

 

 

 

우리 엄마로 말하자면 엄청나게 가정적이심.

현모양처가 따로 없으심.

연년생인 아가인 우리 둘을 밥도 제대로 못드시고 보시고 성격도 싹싹하시고,

오죽하면 이웃 아줌마가 살림하고 애들보느라 식사를 제때 못하는걸 알고

밥 해줘서 우리 잘때 밥먹으라고 가져오셔서 밥 먹이시고,

살림에 열정적이시고 아빤 개떡같아도 남자의 일이 있으니 참고 참으셨음....

 

 

 

 

유년시절 1년 이상을 아빠의 사업차 타국에서 보냄-

일 벌리기 진짜 좋아하심-

 

그 시절 부유했음..

경비들이 있는 동네에 마당도 있고 가정부도 두 명 있었으니..

근데, 어린애가 뭘 알겠음..

아무리 적응을 잘한다고 해도 알아듣기만 하고 언어도 잘 안통하니..ㅠㅠ

나도 언젠지 기억이 안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인지

그때 친구들이랑 찍은 사진에 엑스 표시 해두었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봄....ㅠ

그때도 삼촌들이까지 타국에 데려와서 같이 살았는데..

삼촌들이랑 집에 있던 기억도 잘 없음 밖에 놀러다녔겠지..

 

 

 

한국에 돌아와 완전 선구주자 처럼 그 시절 키즈카페를 차림 ㅋㅋㅋ

진짜 지금 생각하면 조금만 시대만 맞았다면 돈을 긁어 모을 수 있는 아이템일지 모르지만

촌구석에서 플레이키즈카페라니...ㅋㅋㅋ 초반에만 오픈빨 있었다가 실패함....ㅋㅋㅋ

너무 시대를 앞서가는 사업아이템들이 많았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도 오픈때 나눠준 손수건이 우리집에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것 보기만 해도 코웃음이 남

 

 

 

 

 

그리 지내시다가, 결국 우리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혼을 하셨음

그 버릇이 어딜가겠음-_-

사업한다고 엄마 명의로 돈쓰다가 걸려서 2억 가까이 빚을 지신걸 알고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이혼하신걸로 알고있음.

 

 

 

엄마와 우린 셋이서 정말 행복하게 지냈음. 아빠의 빈자리는 솔직히 느끼지 못했음.

운동화 한켤레, 구두 한켤레 밖에 없어도

한달의 한번씩 외식날이 있었다고 해도 행복했음!

(이건 내가 기억하는건 아니지만 울엄마 말에 의하면 돈을 아끼고자 그랬다고 했음

운동화랑 구두는 아직도 기억남 ㅎㅎ)

 

 

 

 

 

 

 

 

근데 일이 터짐...

 

 

 

 

설날인지 추석날 우리를 잠깐 보고 싶다고 아빠가 사정사정해서

엄마는 그래도 지 새끼 보고 싶나보다 해서 보여줬는데..

차안에서 이야기 하자고 해서 우린 차 안에서 이야기 하다가 그대로 납치를 당함....

엄마는 차밖에 서있었는데.. 소리 지르시고,

정말 그땐 울고불고 위험한거 알지만 신호 걸렸을때 도망치자 싶어서

내리다가 머리끄댕이 잡혀서 붙잡힌거 기억도 어렴풋이 남....

난 앞자리 동생은 뒷자리에 탐..

그리고 명절이니 차가 엄청 막혀서 10시간정도 걸려서 할머니네를 간걸로 기억됨

(아빠가 고아라서 예전에 은혜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댁이 있었음-삼촌도 친 삼촌이 아님)

 

 

 

엄마는 정신을 차리고 경찰에 신고할까 하다가

아빠가 한번은 그럴 인간이라는걸..

애들은 해꼬지 안할 인간이란걸 아니 그래 얼마나 잘 데리고 있을까 싶어서 두고 보기로 했다고 함.

할머니네서 몇일 지내다 다시 살던 지역으로 내려가 옆 동네 초등학교로 전학시켜서

거기서 힘겨운 학교생활을 몇 달한거 같음.

 

 

 

 

남자 셋이 사는 집에 초딩 저학년 둘이 갔으니.. 집은 꼴이 말이 아니고

저녁에 시킨 짜장면을 먹고 저녁에 아침으로 먹으라고 시킨 볶음밥 차가운 걸 먹고 가거나 빵 사놓은걸 먹고.. 삼촌 한 명은 여친이라며 아빠 없을 때 여자를 부르고

(지금 생각하면 술집여자 였던 거 같음. 그런 놈 뭐가 좋다고 누가 제정신으로 만나겠음?)

그래도 다른 한명 삼촌은 우리가 안쓰러워서 잘해주려고 했는데.. 애도 없는 남자가 뭘 알겠음-_-

그리 한 두달을 살았던거 같음. 그리 길지는 않았음.

우리의 환심을 사려고 장난감도 사주고 강아지도 사줬는데,

강아지를 케어해주는 사람 없고 냄새는 심해지고 뭘 잘못먹었는지 설사병이 걸리고..

나중에는 냄새 난다고 강아지 케이스에 다가 수건 같은 걸 임시방편으로 막아놔서

냄새 덜나라고 했음.

 

지금 생각하면 강아지가 너무 불쌍하고.. 어른들의 이기심에 욕 나옴.

더 짜증나는 일들도 많았지만, 날 알아볼까 두려워 여기까지만 쓰겠음-_-

 

 

 

그렇게 지내다가 엄마는 우리가 어디 학교 다니는지 어디 사는지도 다 알고 있었다고 함.

몰래 와보기도 했는데 여기서 우릴 데려가면 또 승질내며 납치 감행 할 아빠를 알기에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자셨는지, 이제는 지쳤겠지 하면서 먼저 연락을 하신건지

우리를 데리러 오심..

집 꼴을 보고 말이 안나오셨다고 함......

나 같아도 그랬을 듯.

 

 

 

 

 

 

-위 내용을 읽으며 혹여나 우리 엄마 욕은 하지 말아주시길 바람.

살면서 누구보다 우리를 잘봐주셨고, 내가 이리 자랄 수 있었던 건 100프로 1000프로 엄마 덕분임-

 

 

 

 

 

 

그렇게 우린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나왔고 그 지역 생활을 정리하고 타지로 이사 옴.

엄마는 학구열도 엄청 나셔서 우리 한글 가르칠 때는 한글나라 선생님,

빨간펜 선생님 등 교육시기에 맞춰 일도 하심...ㅋㅋㅋ

지역 선정할 때 교육의 도시, 아이들과 살기 좋은 곳으로 이사 오심.

 

 

그렇게 우린 셋이서 너무 행복하게 지냄.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엄마 때문에 알게 되었고, 실제로 돈이 없어도 행복했음.

밀가루 반죽하며 놀기도 하고 수제비도 만들어보고

엄마가 월세 사시면서 우리 뒷바라지 하면서 없는 돈으로 구몬시키시면서

내가 하면 나중에 동생이 할 수 있게 지우개로 지워서 동생 가르치고,

답지 선생님께 받아서 숨겨놓으시고 답 맞춰주시고 했음.

난 그걸 또 찾아서 답을 배끼기도 했지만...

 

 

엄마 일 갔을 때 컴퓨터를 제 시간에 지키지 않고 하는 걸 아니까

리모컨이랑 모뎀도 숨겨놓고 다니시고 우리가 나중에는 찾아서 한다는걸 알고,

모뎀도 가방 안에 들고 일 다시던 엄마였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우리엄마 대단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주부가 되고보니 100만원 초반대 월급으로 월세 30에 파산신청을 했지만,

친척들에게 빌린 빚도 갚으며 아이들 둘 혼자 키우며 생활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걸 잘 알게 됨.. 엄마한테 뭐라도 더 해주고 싶고..

지금은 엄마의 노력과 희생을 알지만 그 당시 사춘기 시절에 들어선 내가 뭘 알겠음?ㅠㅠ

 

 

 

 

 

 

방황함.

 

 

그리 심한 나쁜 짓은 안했지만, 그 당시 노는 애들 옆에서 알짱거리는 아이정도 되었음.

친구들과 일탈도 꿈꾸며 학습지 선생님 오는날 뻔히 알면서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친구네 집에 전화와도 나 없다고 하라고 하며 밤 10시 넘은 시간에 집에가서 콜택시인지 택시 대기시켜놓고 댐 가서 빠져죽자고, 잘못한 날 교육 잘못시킨 엄마탓이라고 엄마를 때리라고 한 우리엄마의 모습을 보며 정신을 조금 차리는 척도 해보고.. 그게 나의 귀여운 일탈 중 하나였음.

(쓰니 그래도 애교 수준의 귀여운 일탈이라고 말하고 싶음 ㅠㅠ)

 

 

이상한 패싸움에 휘말려 경찰도 왔었고 진술서 같은걸 친구들과 단체로 쓰기도 했지만,

그건 피해자 학생이 나는 상관 없다는 걸 이야기해서 난 그냥 거기서 끝남

(난 말싸움 하는데 구경만 하다 집에 왔는데 나중에 애들이 뒹굴면서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는걸 우리 학교 제일 무서운 불독선생님이 보시고 경찰 오고 난리난 사건임)

 

 

나 미취학 아동일때 만원 친척 어르신께 받은 걸 친척언니 동생들

다 데리고 가서 문방구에서 몇백원 남기고 펑펑쓰고 와서 엄마한테 비오는날 먼지나도록

맞기도 함. 돈은 아껴써야 하며 돈은 소중한거다 씀씀이가 헤프면 안된다 가르치심.

(우리엄마는 내가 아빠 성향이 강해서 늘 걱정을 하셨음. 지금도 그러시긴함...ㅋㅋ)

 

 

 

 

 

아빠라고 불리는 그 인간은 우리 초등학교에 와서 교생실습기간이었는데

정확히 기억남 체육시간이었는데 그 사이에서 담임이 날 부름.

뭣도 모르고 아빠를 몇년만에 아빠란 사람을 만남-_-

선생들은 우리 의사도 없이 만나게 하고 아빠가 돈을 준건가 싶을 정도로

아빠 아니냐 아빠편을 듬-_- 최악의 기억임.

번쩍번쩍 금시계에 금목걸이, 완전 두꺼운 금반지까지...거기다 좋은차...

 

 

우리가 고딩 지나서 알게 된거지만

우리랑 똑같은 나이에 성별만 다른 남자아이 둘이 있는 여자와 재혼을 했고

(재혼이라고는 하지만, 그 자식들이 친자가 아닐까 의심스럽기도함....-_-

뭐가 좋다고 이혼남을 그런 부잣집여자가 좋아할까..?)

그 여자네가 잘 살아서 크게 사업을 한다고 알고, 대기업이랑 관련된 일도 한다고 알고있음.

그 아이는 아빠 사업을 물려받으려고 중국에 공장에 같이 다니기도 하고

거기서 공부를하고 그 중한명이 전교회장인지 되고 싶다고 해서 공략으로

패스트푸드 트럭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회장이 되서 푸드트럭 보내줬다는 자랑을

서슴없이 한 사람임.

지금 네이버에 검색하면 좀 나오기도 하고 모 프로그램에서

위원장이라며 티비에도 나옴.

 

 

 

나 결혼한다고 할 때 우리 신랑한테 자기가 결혼을 허락 해야 할 이유를

편지로 쓰라고 했던 사람이 그 뒤로 감감 무소식

나 편지쓰라고 해서 남편이랑 카페가서 둘이 두시간 가량 편지도 쓰고..

나 이때도 진짜 싫었지만, 엄마의 초반 반대로 아빠한테 말해서

먼저 자리를 만들자고 해야겠다 싶어서 

그래도 아빠니까 결혼할 사람 보여준건데...진짜 1%의 도움도 안바랬는데,

결혼식까지 전화며 연락도 없다가

몇년 뒤 지 개명한다고 자녀들 동의서인지 뭐가 있어야 한다고 연락온게 다임

그리고 나서 연락 안하니 또 연락없다가 울엄마 카톡 사진보고

나 애낳았냐고 손주 보고싶다고 연락한 사람임.

 

 

 

우리엄마한테 한번도 이혼하고 위자료라고 돈 한푼 준적 없으며

나 대학 다닐 때 2주 학교에서 가는 해외 연수 가고 싶다니까

60만원 보내주며 얼마나 드럽게 생색을 내던지-_- 아.. 또 욕이 나올라고 하는데..

태교를 위해 참겠음.

 

 

 

 

 

 

 

본론으로 돌아와 

 

 

 

 

중학교 들어가서는 난 누워있으면 엄마가 도덕책에 형광펜 칠해주시고 시험기간에 중요한 부분 읽어주시고 외우게 하고 등짝 스매싱 당하면서 옆에있는 동생이 그것도 모르냐고 대답할 정도로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아있었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엄마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방과후 관현악부에 들어가라고 했고,

난 그걸 배우며 에너지를 거기에 쏟고, 방황을 접었음ㅋㅋ

중3때는 관파트 악장? 같은것도 했음.

 

 

 

방황을 끝내게하고 학교에라도 좀 붙어있으라고

뭔가 시키고 싶은데

내가 강제로 하면 안 들을껄 알아서 어찌 해야하나 하다가

내가 음악 선생님께서 관현악 해보는게 어떻냐고 권유받았다고

하고 싶다고 조르는 걸 옳다구나!하며 시키신 걸ㅋㅋㅋㅋㅋ

나중에 쿨하게 허락한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역시 우리 엄만 내가 강제로 안된다는걸 알고 저렇게 머리 쓰신 것에 감탄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싹수를 진작에 알아보고 우리엄마는 요리조리 응원도 하고 질타도 하며 키워주심.

내가 유일하게 우리아빠한테 잘 물려받은건 두뇌정도....-_-

누워서 등짝맞으면서 공부해서 완전 상위권은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그래도 공부 잘하는 축에 학교를 감.

(아빠 유전자라고는 좋은건 그거 하나 정말 그것밖에 없음)

 

 

 

원래는 관현악 전공한다고 했는데 관현악부가 있는 학교는 다 남녀공학이라서 우리엄마 내 성향을 너무 잘 아셔서 남녀공학가면 남자에 꽂힐 나를 알고 극구 반대하셔서 여고를 보내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생각하면 감사함.

 

 

 

 

 

방금 위에도 말했지만, 난 성적 기복이 매우심한 아이였음 ㅋㅋㅋㅋㅋㅋ

들어갈때는 성적도 중반정도 튀지 않는 아이였고, 그냥 선도부 멋있어서 들어가고...

그냥 그런아이였음.

 

근데 공부에 쬐끔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있어서 잘하는 과목은 전교 5등안에도 

들어가 보고 모의고사 성적이 벽보에 붙을정도로 함.

하지만 안할때는 또 안함...ㅋㅋㅋㅋㅋㅋㅋ

담임선생님 이하 선생님들이 하면 잘하면서 왜 안하냐고...-_-

뭐 그리 지내다가 내가 가고 싶은 과가 이 지역 대학교에는 없는 아님?ㅠㅠ

근데 우리엄마는 타지는 절대로 안된다 하심.

그래서 그냥 엄마가 권해주신 과에 들어갔고,

다행히 전공이 잘 맞아서 전공 살려 직장 다니다가

직장동료의 소개로 지금 남편을 만남-_-ㅋㅋㅋ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나한테는 매우 힘든 시기였음.....

어린 나이에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전학 다니며 초반에 왕따도 당하며 촌년이라고 사투리 쓴다고 이유없이 욕도 먹었고

여자아이들의 시기질투로 내 삶은 평탄치 않았음.

내 지인들중 믿을 수 있다 싶은 싶은 여자는 언니동생친구 통틀어 다섯손가락 안에 듬..

여자들의 세계는 정말 복잡하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너무 일찍 깨달았음...

 

그래도 내가 지금 웃을 수 있는 건 날 지극정성으로 키워주신 우리 임여사님 덕분이며,

 

난 어떤 기운이 있는건지 지인들 중에 그런사람들 있지 않음?

크게 뭘 하려고 하지는 않는데

운빨도 약간 있고 인생 그냥 평범하게 산다 싶은 사람들..ㅋㅋㅋ

내가 약간 그런거 같음.

 

내 삶에서 부족하고 아쉬운 건

아빠라는 사람의 부재였고, 아빠 사랑이 없었다는 것과

그것 때문에 힘들었던 어린시절...

사실 이게 작지 않고 크다는걸 알지만,

난 누구보다 부자 되기도 원치 않으며 평범하게 사는게 내 인생의 목표고

그게 제일 어렵다는걸 잘 앎.

 

 

난 평생 엄마한테 효도하고 살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옆에서 많이 힘이 되주며 서포트 해주는 벤츠 남편이 있기 때문이란걸.. 잘 안다.

 

원래 남편자랑 하려고 쓴 글인데...

쓰다보니 엄마한테 감사한 글이 되어버렸네요..ㅎㅎ

 

 

 

 

반응 좋으면 우리 남편과 연애시절 썰들과

친정엄마와의 이야기들을 더 풀어보도록 할께요..ㅎ

더 재미진 이야기들이 많은데..두시간 가까이 같은 자세로 있으니 배가 뭉치기도 하고

더 길면 읽는 분들이 흥미를 잃으실까봐..여기서 이만!ㅎㅎ (벌써 잃으신건 아니시죠?ㅠㅠ)

 

 

너무 감사합니다 ♡

엄마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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