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주택가인 우리 동네는 정말 개 한마리가 없을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다. 여느 동네에서 볼 수 있는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 조차 없는 조용한 곳이었다. 간혹 어른들이 '이 동네사람들을 애도 안낳나?'고 할 정도였다. 충분히 책을 보면서도 천천히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길이었기에 한문 참고서를 보면서 가고 있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몇 군데 골목 어귀를 돌아야 했기에 그때마다 손을 골목 어귀에 있는 전봇대에 대고 회전하면서 방향 전환을 하는 묘한 버릇이 있었는데, 이때도 한손에는 책을, 한 손은 전봇대에 대로 집으로 가는 골목 어귀를 돌았다.
그러자 돌자마자 갑자기 바로 뒤에서 "쾅"하고 큰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내 바로 뒤에 변압기가 떨어져 있었다.
당시 동네 골목에는 사진과 같은 전봇대 위에 변압기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뒤에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정말 0.1초만 늦게 걸었어도 그대로 저 변압기에 내 머리 위로 떨어질 수 있었다. 갑자기 식은 땀이 흐르면서 '죽을 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다른 전봇대에 달린 변압기들을 살피며 집으로 내달렸다.
저녁에 아버지께 이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나를 한참 쳐다보시더니 '다행이다'라며, '조심히 다녀라'라고 정말 무덤덤하게 말씀하셨다. 다소 섭하기는 했지만, 아버지 반응은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내일 시험이 급했다.
문제는 그 후에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다음날도 같은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어제 그 전봇대에서 아저씨들이 변압기를 새로 설치하고 있었다. 한참을 아저씨들이 설치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아저씨들께 "아저씨 안 떨어지게 단단히 달아주세요. 어제 저거 떨어져서 저 죽을 뻔 했단 말이예요"라고 말했다. 아저씨들은 뭔 개가 짖나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자신들이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시헌 마지막 날인 그 다음날도 같은 골목을 걸어서 집으로 오고 있었다. 물론 골목들을 지나면서 전봇대 위를 쳐다보면서 걸어오는데, 그 전봇대 위에 사람이 올라가 있었다. '어제 설치가 잘못되었나?' 생각하며 점점 골목 어귀로 다가가는데, 전봇대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 여자인 것이다. 솔직히 아저씨면 '다시 설치하는 거겠지'하겠는데, 여자니깐 '여자도 저런 거 하나?'하고 갸우뚱 거리는데...
엥! 이게 왠 걸? 치마 입고 있자나?
이걸 땡 잡았다고 해야할 지,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도 야릇한 생각에 휩싸여 감히 올려보지도 못하고 전봇대를 멀찍히 돌아서 집으로 왔다. 집으로 와서도 '한번 볼 껄...'이라고 말도 안되는 자책을 하면서 저녁에 들어오신 아버지께 또 그 일을 말씀드렸는데, 아버지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시더니, "시험은 잘 봤냐?"며 다른 말로 돌리셨다. '이상하다...'저번부터 왜 그러시지...'
다음날은 토요일! 오전 수업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 집에 놀러가기로 해서 집에 가방을 놓고 재빨리 나올 심산에 뛰이서 골목길을 내달렸다. 그런데, 그 전봇대가 있는 골목 어귀에 이르자, 뭔가 허전하였다.
엥! 변압기가 없네...
'어디갔지?'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아침에 변압기가 다시 떨어졌다고 하셨다. 갑자기 '어제 그 여자가 범인이다'라고 생각이 들어 어머니께 그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저녁에 아버지가 돌아오시자 어머니와 한참을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셨다. 속으로 '아마 경찰에 신고하시겠지!'라고 생각하였다. 일요일에 그 전봇대는 변압기가 없는 상태로 서 있었다.
그 다음주 월요일 밤, 다시 시작된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시 그 골목 어귀에 이르자, 전봇대 위에 또 뭔가 움직임이 보였다. 변압기가 달려있는데, 사람이 변압기를 뜯어내려고 하는 듯 한 움직임을 계속 보이고 있었다. '앗! 범인이다!'라는 생각에 쨉싸게 근처 슈퍼 아저씨한테 가서 이 사실을 말했고, 아저씨와 다시 그 골목 어귀로 갔는데, 멀쩡히 변압기만 달려 있는 전봇대만 있었다. 그 어디에서 그 여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저씨는 나에게 한마디 하시고 다시 가게로 돌아가셨는데, 가만히 보니 최소 1분 남짓한 시간이었는데, '언제 내려와서 도망갔지?'라는 생각에 다소 억울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2~3일은 잠잠하였다. 시험결과가 발표나기 시작하였고, 몇몇 과목에서 망쳐버린 나는 야자가 끝나고 부모님께 혼 날 생각에 그냥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보니 문득문득 걷다보니 늘 버릇대로 전봇대를 잡고 회전하면서 골목 어귀를 돌았는데, 갑자기 변압기랑 그 여자가 생각났다.
돌자마자 전못대 위를 올려다 보는데...
여자가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사진과는 다르지만, 변압기을 안고 나를 계속 째려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뒤로 나자빠졌고, 여자는 그대로 정지된 상태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여자가 내려오려는 몸짓을 하자, 나는 그대로 일어나 집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눈물이 범벅이 되서 집의 벨을 막 누르기 시작했는데, 문 열리는 거 기다리다가 그 여자에게 죽을 것 같아서 다시 반대 쪽 골목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안심이 되기 시작하였다. 근처 공중전화에서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더러 사정을 이야기 하면서 마중나와 달라고 이야기했다. 한참있다가 아버지가 오시는 게 보였다. 아버지를 붙들고 한참을 울며 떨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서, '넌 아무도 못 건들이니 걱정말아라'며 다독이시는데, 당시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한 겨를도 없이 발발 떨기만 했다. 그 후에 그 전봇대의 변압기는 없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골목에 땅이 파헤져지더니 동네 전봇대의 변압기가 없어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전부 땅에 매설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다.
그 여자도 여자지만, 나는 그 때 보였던 아버지의 반응이 더 이상했다. 한참을 지난 후에 그 때 하신 말씀하신 의미가 뭐냐고 물어보았는데도, 그냥 듣기만 하시고 대꾸도 안하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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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1988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 광진구에서 겪었던 일입니다.
다시 생각하면 그 전봇대는 꽤 높아서 특별한 장비나 지게차 같은 것이 없으면 사람이 올라가기는 불가능합니다. 전봇대에는 여러 구멍이 나 있어서 거기에 뭔가를 끼워서 올라가야 하는데, 수퍼 아저씨와 거기에 갔을 때에는 그 구멍에는 아무 것도 끼워있질 않았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걸 제거하면서 내려오기는 불가능한 것 같은데, 당시에는 어떤 미친 여자의 짓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은 아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출처 : 짱공유 드로이트 님
http://bamnol.com/?mid=gongpo&category=54843&d0cument_srl=217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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