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두번째 이야기에 댓글 두개 달렸어요
두개도 기분좋은데 저기 막 몇십만 조회수 있는분들 기분은 어떨까
웃긴게 한국에서 정말 가까운 친구 별명이 오이 인데 댓글다신분 닉네임이 오이…설마..너?
어쨌든 네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3화가 재밌는 이야기가 많았네요…
이번화는 웃긴 일화는 몇 개 없어요….. 그래도 읽어주세요
언제나 저는 유학생들이 어떤 삶을 사나 궁금하신 분들과
유학중에 공감하거나 희망이 필요하신 많은분들을 위해 이글을 씁니다
힘내라 얘뜰아 (출처: GOD)
나는 나만의 유학 케이스고 많은 유학생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
우리 누나만 해도 완전 다름 누나는 초반에 엄청 고생했음
유학생활중에 제일 흔하게 일어나는 증상이 home sickness 임
향수병? 이라고 하나 집 그리워 하는 증상
그럼 막 우울해하고 밤에 울고 막그럼
또 많은 유학생들이 사춘기 도중에 유학을 가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몸고생 마음고생 하는 친구들이 참 많음
자랑하는건 아니고 나는 참 특이한 아이임 (사교성과 긍정왕 적응왕)
어디다가 내던져놔도 사람들 잘 만나서 잘 살아남을 아이임ㅁ
그래서 난 홈싴을 한번도 겪은적이 없음
내가 잘난게 아니고 정말 축복받은 사람임
내 생각엔 향수병 안걸리는 이유가 항상 주변에 가족 같은 사람들이 많으니깐
나를 케어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깐 그사람들 덕분에 집그리워할일이 별로 없는거임
항상 좋은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나고 나를 진실하게 대해주니깐
교환학생과 유학 도중 배운 인터레쓰팅 한 몇 개를 써보겠음
문화 차이들이랄까
남자들 미국에서 다리꼬면 이상하게 쳐다봄
여성스럽달까, 정말 다리가 꼬고 싶으면
종아리를 아니 발목? 정도를 허벅지에 걸쳐야지
다리를 꼬고 앉으면 정말 여성스럽고 게이인가? 이런 생각을 함
루이지애나에서 항상 다리 꼬았었는데 씨제이한테 혼났음 그렇게 앉지말라고 오해받는다고
또 남자들 다른 남자한테 잘생겼다고 한국에서는 많이 하는데
미국에서 다른남자한테 와우 유얼 쏘 핸썸 이러면 바로 게이소리들음
교환학생때 어떤 흑인 남자 꼬맹이가 진짜 귀엽고 잘생겨서
유얼 핸섬 했다가 그 꼬맹이가 알유 게이? 이러고 확 가버림
이거는 혹시나 해서 쓰지만 남자들끼리 아니면 여자들끼리
손잡고 다니지 마셈 그렇게 해도 이상하게 보임
미국은 이제 동성연애 결혼이 합법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동성을 안좋다고 나쁘다고 말하면 욕먹는 경우가 많음
근데 저 위에 행동들을 하면 안좋게 안보더라도 동성연애자으로 오해를 살 수 있음
미국에서 완전 도시 살지 않는 경우에는
한국같은데서 유행하는 옷 입지 마셈
완전 이상한 외계옷처럼 봄
한국에서 유행하면 미국에서는 한 1-2년뒤 입으셈
그러면 여기도 유행을 따라잡고 아주 스타일리쉬 한 사람이 될수 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아끼고 좋음 한국 갈때마다 이월상품 사서 오면 여기서는 딱 트랜드임
모든곳이 그렇지 않다는거 내가 다닌 지역들만 그럴수도 있다는거
근데 글쓴이 생각에는 아시아인들 많이 있거나 완전 도시이거나 하지 않는이상은
대부분 그럴거라고 생각함
한국에서는 밥먹을 때 소리내서 먹어야 맛있게 먹는거라고 한다고 들었음
미국에서 소리내면서 밥먹으면 천해보임
입속에 음식있을 때 말하지 말고 쩝쩝거리거나 후루룩 절대 노노
(한국에서도 예의에 어긋나고 천해보이는 행동이래요 저는 그냥 그걸 미국에 와서 배웠네요!)
또 글쓰다가 이런거 생각나면 쓰겠음
글쓴이는 현재 7년째 미국 유학중이고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자연스러움
이것은 자랑할 것이 아닌게
한국사람인데 한국말 실력을 잃고있다는 것은 슬픈 일임
하지만 영어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다는건 사실임
많은 유학생들은 보통 한국인이 많은 유명한(?) 지역으로 유학을 가게됨
캘리포니아나 뉴욕이나…. 학교에 한국사람들이 많으면
맘 독하게 먹지 않고는 한국사람들이랑 어울리게 되있음
왜냐면 유학 첫 해에 모든게 새롭고 적응 안되는거 같을 때
내가 살아남을수 있을까 싶고
영어 안들리고 말이 안되서 답답하고 힘들 때
주변에 그걸 같이 겪고있는 같은 나라에서 온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저절로 그들과 어울리게 되고 서로 의지하게됨
그러면 본의 아닌 다른 결과물도 나옴
한국사람들끼리 또는 아시아인들끼리 뭉쳐다니고 영어 안쓰고 그러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접근하기가 참 힘듬
사실이던 아니던 그 그룹에 들어가는 문이 닫혀있는 느낌이랄까
그러면 자기 자신은 또 그래 나랑 친구하고 싶은 애들은 얘네밖에 없구나
이런 오해를 하게됨
그렇게 하다가 어느새 보면 유학을 미국에 와서 미국 문화속에서 사는건데
미국속에서 작은 한국을 만들어서 살고있음
그런거 보면 참 안타까움 그게 꼭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님
그런것으로 도움 받아서 적응 잘하고 공부 열심히해서
유학생활 성공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임
근데 그냥 글쓴이 입장에서는 미국에 왔으면 미국 문화에 들어가서
미국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관계를 만들고
특히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함
글쓴이 한국친구 중에 유학하는 한 친구가 나한테 이렇게 말한적이 있음
난 참 너가 부럽다. 어떻게 운좋게 한국인 없는 지역에 떨어져서
영어실력도 팍팍늘고 미국에서 너만의 대인관계가 형성되어있고
자기도 선택이 있었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하고싶다고
글쓴이는 다행히 학교에 한국인이 없어서 한국말 할 기회가 없었음
그 지역 교환학생들이 전부 모이면 한국인이 네다섯명 정도 됬는데
그들과는 말을 안했음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그들은 나를 예의없는 애로 기억하고 있을수도 있음
난 그저 운이 좋았다고도 할수 있지
내가 절대 맞다고 할 수는 없음
사람마다 살아남고 적응하는 방법이 다르니깐
진지한 얘기는 내려놓고 유학생활 얘기를 시작해 보겠음
글쓴이는 교환학생 얘기/유학얘기로 나눔 왜냐면
교환학생과 유학은 확실히 다른 것이기 때문
1화에 쓴것처럼 교환학생은 J 비자를 받고 공립학교에 한해를 다니는 것임
하지만 유학은 F 비자를 받고 가고 공립학교에 다닐 수가 없음
그러면 사립 학교를 찾아서 다녀야함
사립 고등학교 찾는것도 일임
우선 미국에는 사립고등학교가 정말 많고 가격이 장난이 아님
왠만한 미국 대학만큼 될 듯 함 (한국대학보다 비쌈)
한 해에 2-3만불 내는 학교는 보통이고 5-6만불까지 들어본적이 있음
하지만 글쓴이는 운이 좋게 먼저 유학을 간 누나가 있음
내가 교환학생 끝나갈쯤 오하이오 곳에 시골 촌바닥에 작은 사립학교를 막 졸업 했음
누나도 누나 교환학생때 호스트 가족을 통해서 찾은 학교임
그때는 일단 부모님이 이거해라저거해라 하면 반대로 하고싶었던 때라
누나가 다닌 학교를 다녀라 해서 다니기 싫었음
그렇게 혼자 루이지애나 떠나기 전에 그 지역의 사립학교를 찾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으로 호스트 가족도 찾아놓고
다 했지만 결국엔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누나가 나온 학교로 가게됬음
거기서 일년에 한 2천불정도 내고 다님
설명을 대충하면 내가 온 해부터 국제학생 등록비가 만불로 오른거
하지만 나는 누나가 다녔다는 이유로 그대로 6400불정도를 내게 해줬음
우리 아버지 회사가 자녀 한명당 고등학교는 일년에 400만원까지 지원해줌
그래서 꽤 조금 냈었음
근데 둘째해에는 나와 우리 어머니가 연합해서
한국 학생 4명정도를 우리 학교로 데려옴
그리고 딜의제왕 성격이 들어옴
교장과 면담을 신청하고
유진, 룩. Eugene 자 봐바, 내가 한국인 4명을 데려왔지? (교장이름이 유진임. ㅋㅋㅋㅋ한국말로쓰니깐 이쁜이름이네. 전혀 이쁘지 않음. 깐깐한 남자임)
그럼 봐라 완벽한 비유는 아니지만 내가 학교에다가 4만불 수표를 기부한거나 마찬가지야
아니, 그것보다 더한거지 왜냐면 네명의 소중한 학생들을 데리고 왔고
그들로 인해서 그 학년 학생들은 그 덕분에 국제학생과 교류하고 관계를 형성할수있고
많은 것을 배울수 있겠지?
그럼 학교에서는 나와 어머니의 일을 인정해주고 뭔가를 줘야하지 않을까?
ㅋㅋㅋㅋㅋ건방진놈. 어쨌든 그렇게 말을 했음 한국으로 그대로 변역하니깐 건방져지는데
영어로 하면 매우 설득력 있는 문단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명당 250불 장학금을 받아서 천불을 더깎음
참 대단하지 지금 생각해보면. 흠.
글쓴이 가족이 신실한 크리스찬 가정이라는 말은 몇번 했음
매주 교회를 무조건 가야된다는 규칙 때문에 교회에 대한 반발심이 있었는데
하필 또 교환학생 도중 글쓴이 아버지가자신의 오래된 꿈이라고
목사 학위를 따버리심
그렇게 나는 목사님 아들 이라는 도장까지 찍히게됨
그래서 한국에서 농담 반 진심 반으로 유학 가기전에
목사님 가정에서 안살아도 되서 다행인거 같다고 이러고 있었음
그리고 출국날
인천공항을 부모님 누나 나 이렇게 가족 모두 가고 있었음
나는 내 호스트 가족에 대한 정보를 잘 몰랐는데
인천공항 도중에 엄마가 말 실수를 해버림
(나한테 호스트가족에 대해 말 안해준 이유가 있었음)
호스트 아빠가 그 지역 목사님이라는 거임
나는 멘붕이 왔음
가족들은 웃겨 죽을라 그러고
나는 혼자 화가 나서 막 속은 느낌이 들었음
가족들이 일부러 목사 호스트를 찾은것도 아니지만
와… 막 배신감이 막 들었음
안그래도 그 지역 가기 싫은데 거기다가 목사님 가정이라니…..
어쨌든 그렇게 출국을 했음
유학생활이 걱정이 덜됬던 것은 내 호스트 가정이 학생을 두명을 데려가기로 했음
둘다 한국 학생이고
무슨 우연인지 우리 둘은 중학교를 같이 나온 동창이었고 중학교 때 매우 친했던 사이였음
그의 이름은 태윤 이라고 하겠음
태윤이도 이 학교를 우리 누나 덕분에 알게됨
태윤이 엄마가 어쩌다가 우리 가족 소식을 듣고 부모님한테 학교 정보를 받아간거임
어쨌든 그렇게 태윤이와 나는 2년이라는 시간을 한 가정에서 함께 보내게됨
그렇게 둘이 같이 비행을 하고 미국에 도착 해서 호스트 가족을 만남
50대 중반정도 되는 되게 친절한 부부 였음
딸만 셋, 근데 셋다 이미 독립을 한 상태
그래서 집에는 우리 둘만이 아이였음
그래서 나는 참 태윤이와 같이 산게 다행이라고 생각함
혼자 집에 있었으면 심심해서 죽었을거임
학교 있는 곳은 정말 정말 작은 인구 한 1000명정도 되는 마을 이였음
그리고 미국 중동부 하면 흔한 무한 옥수수 밭 그런 지역이였음
또 그 마을의 특히했던점은 한 특이한 교파가 모여있는 마을인데
한국에 침례교와 관련되 있지만 어쨌든 다름
그 교파와 과거에 갈라진 또 다른 교파 아미쉬 라는 교파가 있음
이 사람들이 정말 큰 충격을 주었음
처음 이지역 방문 했을 때 도로에서 말이 마차를 끌고 다니는 거임
그래서 나는 아.. 관광지역? 아니면 영화찍나? 이러고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깐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는 거임
전기 없이 차 없이 핸드폰 없이
그 사람들은 아직도 신기함
하여튼 그렇게 두 도시 소년의 시골 생활기는 시작이 되었음
첫 주는 자전거 타고 옥수수밭 주변을 돌아다니며
둘이 사진찍고 그랬음
한국에서는 볼수없는 끝없이 펼쳐진 초록색 평야
둘이 사진찍고 그러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막 쳐다봄
예를들자면……
외국인들이 아파트 입구 앞 그 작은 마당에서 막 와우~ 이러면서 사진찍고있는거?
ㅋㅋㅋ
되게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것에 우리는 너무나 신나서 사진을 찍었음
그렇게 한 일주일 지나고 학교가 시작을 했음
이번 학교는 거의 99.9퍼센트가 백인이었음
루이지애나에서 여러 인종들이 다니던 학교를 다니다오니깐
흑인들이랑만 어울리다가 오니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음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음 태윤이가 있었기에
정말 적응을 못하면 서로 의지하면 됬었음
(아까 말한 별로 안좋은 케이스)
하지만 다행이도 우리 둘다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 둘이 학교에서 단 둘이 있을 때 말고는 한국말 안하기로 약속함
아까 말 안했지만 외국인들이 주위에 막 있는데
영어할줄 알면서 한국말로 뭐라뭐라 하면
내용이 뭐가됬던 그 외국인들은 자기네들 욕하는거처럼 기분이 들음
이건 미국인들만 그러는게 아니고 누구던 그런 경험을 했으면 공감할거임
한국에서 뭐 친구 세명이랑 중국인 두명 뭐 이렇게 놀고있는데
잘 한국말로 하다가 갑자기 중국인 두명이 뭐라뭐라 중국말로
서로한테 뭐라 하더니 갑자기 막 웃음
그러면 바로 기분 망침
그런걸 알기에 우리는 서로 규칙을 정함
남들이 있을때는 한국말 안하기로
집에서도 우리집이 지하에 있는 방이었는데
호스트 부모님 있을때는 영어만 하기로 약속했음
솔직히 이 학교는 약간 적응이 안됬음
너무나 루이지애나때랑 환경이 달랐고
별로 관심 보이는 사람도 없었음
우리학년은 정말 작았음 30명정도
수업들은 뭐 그럭저럭 했음
일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영어 수업은 힘들었고
루이지애나때랑 비슷한 일이 일어남
어느날 영어 수업을 가니 팝 퀴즈 를 하는거임
(예고 없이 숙제로 책 읽었나 뭐 그런거 확인하려고 작은 퀴즈 하는거)
종이에 3문제 정도 있었는데
숙제가 있었던것도 모르던 나는 당연히 적을수 있는게 없었음
말 안했지만 루이지애나에서는 컨닝하는게 아주 흔했음
정확히 말하면 나는 컨닝 한적이 없음 할 필요가 없었으니깐
근데 항상 내 친구들은 내 답을 배껴가고 그랬음
(루이지애나 교육 레벨? 이 미국 내에서 최하 중 하나임)
루이지애나가 첫 미국 생활이었고
나에게는 루이지애나가 평균 미국 이었음
거기서 배운 사람들과 관계형성 하는법,
나쁜 말 하면 재밌어 하는 그런거
답 배끼는게 아무것도 아닌거
그랬기에 나는 당연히 오하이오도 미국이니 같을거라고 생각함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여자애를 팔로 툭툭 치며 답좀 보여달라고 했음
애나 라는 여자애였는데 소스라치면서 노!! 라고 함
그리고 나에게 정말 부끄러운줄 알으라는 그런 눈빛을 줌
난 …..뭐지??? 그렇게 여기는 루이지애나와 다르다는 것을 배움
루이지애나는 항상 금요일에 파티가 있었음 술마시고 그런거
한번밖에 안갔지만 여기서는 그런게 없었음
그래서 정말 지루하다고 생각했음
하지만 곧 나는 적응을 하고 친구들을 많이 사귐
신기했던거는 여기서는 내가 싫어하는 교회도 항상 가야했고
파티같은것도 없었고 욕하는 애들도 없었음
흔히 미국 하면 생각하는 성문화 그런건 절대 생각도 못하는 곳이었음
모든 가정이 교회가 삶의 중심이고 정말 미국의 청정지역 같은곳임
근데 내가 싫어할줄 알았던 그런곳이 지내면서 생각해보니
나에게 정말 잘 맞는 곳이었음
태윤이와 같이 살게 된것도 나에게는 정말 좋은 일이었음
한국 친구가 있어서가 아니고 태윤이와 나와 다른성격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줬다랄까
루이지애나에서는 호스트가족이 자기네들 어디 간다고 같이 갈라냐고 하면
5번중 4번은 안간다고 혼자 집에 있겠다고 했었음
하지만 태윤이는 예스맨 이었음 진짜 생각도 안해보고 예스 하고 그럼
그럼 보통 호스트가족이 어디 갈라냐고를 우리 둘한테 같이 물어보니깐
난 생각할 틈도 없이 얘가 예스 해버리니 나도 항상 같이 따라감 나만 안가면 이상하니깐
그 덕분에 우리는 호스트 가족과 금방 가까워지고 많은 것을 같이 하게됨
그 중 하나가 여기는 땡스기빙, 뭐 추석같은건데 그거랑 크리스마스
두개가 큰 가족 명절임
호스트 아빠가 캔자스라는 곳이 고향인데 우리 11학년때 캔자스로 간다고
같이 올라냐고 하는것임 난 생각하려 했지만 이미 태윤이가 예스를 해버렸음
미국은 땅이 정말 넓음 한국에서 3시간 운전해서 가면 먼 여행이라 생각하지만
여기서 3시간은 뭐도 아님 캔자스는 17시간이 걸림
와 처음엔 진짜 말도 안된다 생각했지만 가족들과 같이가니 시간이 빠르게 갔음
가면서 누나 셋과 첫째 둘째 누나 남편들하고도 친해졌음
캔자스에선 정말 재밌는 일들이 많았음
우선 도착했을때는 정말 추운 밤이었음
오하이오 살던 곳보다 더 시골로 와버림 휴대폰 신호도 안잡힘
그렇게 차에서 내려서 하늘위를 봤다가 그대로 얼어버렸음
글쓴이는 참 밤하늘을 좋아함 별들이 너무너무 아름다움
하늘을 보니 셀수없이 많은 별들이 있었고 은하수도 보였음
5분 정도 쳐다보니 별똥별도 두세개 보였음
바로 나는 그곳과 사랑에 빠져버림
태윤이와 내가 머무는 곳은 집이 아니고 우리 호스트 가족의 친구가족집
뒷마당에 있는 Barn house 였음
네이버에 치니 곳간 헛간 외양간 뭐 이러는데 그렇진 않고
음 되게 큰 나무로 지어진 창고같은거랄까 하여튼 그랬음 근데 그안을 개조해서
게스트 방을 만들어놨음
대박이었음 완전 이색적인 그런 게스트하우스같은까랄까
하여튼 그 다음날 호스트 가족의 친척들을 만나게됨
호스트 아빠의 형은 정말 키가 컸음 2미터 정도 된거같음
근데 더 신기한거는 그분 가족들 키가 다 크다는것임
아내분은 한 190정도 아들 셋은 다 2미터가 넘었음
그 가족 집에 갔을때는 거인족 나라에 방문한듯한 느낌이 들었음
가족들 키가 다 크다보니 주방 싱크대나 캐비닛이나 이런것들이
다 키가 큰것임 그 가족들에게는 딱 맞는 사이즈로
그래서 주방 가구들 막 도마놓고 칼자르고 그런곳 영어로는 counter top 뭐 이러는데
그것들이 글쓴이 가슴에서 어깨까지 높이였음
거인들과 그렇게 조우를 하고
해가 떠있을 때 밖에 나가보니 캔자스의 시골은 정말
아무것도 없음 집들도 띄 엄 뜨 ㅣ 엄 있고
이런데서 뭘 하나….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우리 호스트 가족들은 항상 재밌는걸 찾아냄
새총만들기 경합에 들어갔음
난뭐 그런거 해본적이 없으니 남들 하는거 보고 따라했는데
칼이 부족해서 ㅋㅋㅋㅋ그집 창고에있는 구르카 같은 것을 줌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서든했을 때 구르카랑 비슷하게 생김
하여튼 그렇게 새총도 만들고
아미쉬밤 이라는것도 만듬 amish bomb 폭탄임
플라스틱 패트병에 물하고 변기 세척제? 를 섞고 알루미늄 포일을 넣고 흔들면
강한 산성인 세척제와 알루미늄이 반응해서 열 발생시키고 부풀어서 펑 하고 터짐
(나 생화학전공)
어쨌든 그렇게 몇 개를 만들어서 흔들고 던지고 10초정도후에 펑 이러고 노는데
거기 친척들 이웃집 뒷마당에가서 거기서 막 터뜨리고 있었음 ㅋㅋㅋㅋㅋ
근데 마지막거를 나한테 줬음 나한테 흔들고 던지라고
마지막이니깐 특별하게 거기 있는 되게 작은 창고에 던지기로 했음
문 잠겨있고 a4용지정도되는 창문/구멍같은게 있었는데 흔들고 거기다가 던지고 도망가기로했음
(우리집 사위들 30살정도 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창고는 울타리 같은걸로 보호되있었음 허리높이쯤
텅 빈 닭집이였나? 왜울타리가 있었지?
어쨌든 나는 긴장했음 그런거 해본적이 없는 순수한 아이였으니깐
다들 울타리를 넘고 그 창고/닭집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나는 알루미늄을 넣고 뚜껑을 잠그고 흔들고 보글보글 하기 시작할 때
으힉 하면서 냅다 창문을 향해 던졌음
휙…….. 탁 퉁
나의 정확한 던지기 실력은 창문 모서리를 맞추고 페트병이 우리 앞에 떨어졌음
이 모든것들은 몇초안에 일어났고 우리는 그 짧은순간 당황한 눈초리
위험을 직감한 눈초리를 공유한뒤 바로 으ㅏㅇ아ㅏ아아악
하면서 울타리를 넘고 달리기 시작했음 ㅋㅋㅋㅋㅋㅋㅋ 펑
뭐 그리 큰 폭탄은 아님 근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들 패닉하고 멀리 도망쳤음 ㅋㅋㅋㅋ
그렇게 아미쉬봄을 맛보고 우리는 그 날의 하이라이트를 향해 가고있었음
그 이웃집은 뒷마당에 엄청 넓은 평야가 있고 거기에 소 20마리정도가
자유롭게 풀뜯어먹고 자라고 있었음
사위 두명 거인 아들 한명 나랑 태윤이 이렇게 있었고
우리는 소들 울타리 밖에서 구경하고 있었음
소들은 한 200-300 미터 떨어져있었는데 갑자기 사위중 한명이 나랑 태윤이한테
저기 뿔있는 소 꼬리 만지고 오면 10달러 줄게ㅋ 이랬음
그랬더니 다른 사위가 엉덩이 때리면 20 달러 ㅋ
거인 사촌이 머리 만지면 100 ㅋ
난 하 하하ㅏ 이러면서 재밌는 사람들이네 이러고 있었는데
우리의 예스맨 태윤이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생각도안하고 예스했음
그렇게 태윤이는 울타리를 넘어 소들을 향해 전진했음
천천히 접근하라는 철없는 사위들의 조언에 태윤이는 천천히 접근 했고
우리는 그냥 멀리서 킥킥킥 대면서 구경하고 있었음
태윤이 소로부터 100미터….
50미터….
20미터….
근데 소들이 뭔가를 눈치챔
소 한두마리가 태윤이를 보고 반대방향으로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음
이것도 다 몇초안에 일어났음
소 몇마리가 슬금슬금 움직이니 다른 소들도 슬금슬금 따라가기 시작했고
사위들과 거인사촌은 사건이 일어날것을 직감하고 소리지르기 시작함
Okay that’s good!!!! Come back!!!
하지만 우리의 태윤이는 소들이 슬금슬금 도망가자 본능적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고
소들은 달리기 시작하고 태윤이도 뒤따라 달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너무 웃겼음
소 진짜로 보신분들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는데 엄청 큼
그 20마리 정도 되는 소가 사람하나에 겁먹어서 도망가고 그 사람은 쫓고있고 ㅋㅋㅋ
근데 재미는 얼마가지않아 끝났음
태윤이와 소들의 추격전이 얼마안가
소들을 리드하던 한마리가 갑자기 붕…….
울타리를 넘음………
다른소들도 당연히 울타리를 따라 넘었고
태윤이는 그자리에 멈춰섰고 우리는 멘붕상태가 됨
ㅋㅋㅋㅋㅋ그때는 헐… 이랬지만 진짜 장관이었음 300미터정도 떨어져서 본 그 장면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입다물고 있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땡스기빙이 끝나고 우린 오하이오로 돌아옴
오하이오 생활은 아주 좋았지만 뭐 별로 적을건 없음
나를 정말 사람으로서 몸과 마음을 성장시켜준 곳임
현재도 땡스기빙이나 크리스마스때는 그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정말 가족같이 여겨지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남
오하이오는 이정도로 끝내고 다음에는 대학얘기로 돌아오겠음
오하이오에서 제일 친한친구 누나 약혼자 죽은 충격적이고 슬픈 얘기도 있는데
그건 슬픈얘기니 딱히 자세히 쓰진 않겠음
대학에서 할얘기가 많을 듯
소중한 댓글들이 달렸는데 씨제이 이야기를 원하신분이 계셔서
기억나는거 없는데 에피소드 하나가 기억이 나서 추가할게요 ㅋㅋㅋ
2편인가 3편에서 루이지애나 처음이자 마지막인 파티를 갔었다고 했었음
거기를 가기 전에 나와 필릭스와 멕시칸 친구하나 (파코)와 씨제이는 (ㅋㅋ4개국)
어떤 특이한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었음
참 특이했던게 땅콩을 무한제공하는 레스토랑임
그 갈색 땅콩인데 처음 살색 껍질까지 있는…. 이해됨?
그 땅콩 보통 두개 들어있는 스트로폼 같은 살색 껍질 있자나 까기쉬운
그걸 무한제공 해줌 이해못했으면 나의 한국어실력을 탓하셈
더 특이한점은 그 껍질들을 그대로 땅에 버린다는거임
그래서 레스토랑 바닥은 땅콩껍질로 넘쳐남
하여튼 거기서 저녁을 먹고 우리는 씨제이가 뭐가 필요하다 해서 월마트로 감
월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두그룹으로 나뉨
필릭스 파코, 나와 씨제이
지금 생각해보면 필릭스랑 파코는 씨제이가 뭘할지 알고 있어서 다른데로 피한거같음…
씨제이가 분명히 차에서 말을 했겠지…. 나는 이해를 못했을거고
어쨌든… 그렇게 난 씨제이랑 걸었음 그렇게 막 샴푸 린스 바디워시 그런 섹션으로 왔음
근데 갑자기 씨제이가 대 대 여기 딱 서봐 이랬음
내 위치를 직접 조정하더니 거기에 딱 있으라고 했음
난 매우 햇갈렸지만 뭐야.. 이거면서 서있었음
근데 씨제이가 갑자기 상자 하나를 집더니 뜯기시작함
난 주위를 급히 돌아보며 씨제이!! 왓!?? 왓알유두잉 이랬고
씨제이는 상자안 내용물을 급히 바지 안으로 집어넣음
흑인 스윀 넘치는 바지 워낙 헐렁해서 뭐 넣어도 티도안남
난 매우 당황해서 심장이 쿵쾅쿵쾈쿠쾅 했고
씨제이손에 이끌려 얼릉 필릭스랑 파코와 연합함
그렇게 우리는 월마트를 나왔음
그렇게 차에 도착해서 난 막 뭐라고 함 뭐하는 거냐고 뭐 훔쳤냐고
꺼내서 보여줬음
콘돔들이였음 XL 사이즈
참나….. 그렇게 씨제이는 자신이 흑인이라는걸 증명함 (인종차별아님)
그리고 하나를 나에게 주면서
Dae, 오늘 여자하나랑 꼭 해
이렇게 당부를 함
난 당연히 안함 ㅋㅋㅋㅋ 술도 안마셔본 순진한 애가 뭘안다고 하겠음
씨제이는 분명히 썼을거임... 내가 걔를 암.....
나이제 한국말 잘하는듯?
다음에는 대학얘기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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