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지 5년 됬습니다. 혼인전 가지고 있던 제 개인 재산을 스크린 골프 사업실패로 모두 탕진후
아내에게 대략 6천만원정도의 빚을 안기고 말았습니다. 실의에 빠진저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만큼 불면증 수면장애를 격었고, 어쩔수 없이 처가에 신세를 지게 되었으며
아이육아를 약 13개월 하던도중 전부인으로 부터 소송밑 기타 협박으로 처남되는 사람을
앞세워 이혼을 요구하였는데, 가정을 지키고자 버티고 버티다 전부인의 자해소동에
딸아이 엄마를 잃을까 두려워 순순히 이혼해주었습니다. 제가 소장하던 차량 및 골프채외
수집품들까지도 모두 판매하고서 지갑에 단돈 100만원 달랑 들고 집을 나온후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리려할때 한 사람이 그러더군요. 나도 지금 뛰어내릴가 고민하는데
이대로 죽기 우리 너무 억울하지 않나 라는 이야기에 두살어린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용접공이던 그 친구의 제의에 거제도에 있는 대우조선 하청업체에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두살아래지만 서로 의지하며 그친구에게 용접도 배우고 고소공포증이 심했던 저에게
이 새끼야 마포대교서 죽으려고 한 용기는 어디갔냐 하는 욕설석인 지지에 죽으려면 폼나게
죽자고 고소공포증도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조선소 누구나 한번씩 가볼까 가볍게 생각하는 곳입니다.
현역 유격훈련의 5배 정도의 강도의 노동을 매일 해야 하는곳입니다. 생애처음 듣는 전기배선과
전기 취부용접 다른 사람들은 몇년에 걸쳐서 배우는것을 친구녀석 도움으로 빨리 배웠습니다.
생소한 사람들과 매일 같은 생활 현장에서 사고로 죽어나가는 사람들 죽음에 대한 공포
나이들어 쓸모없어진 신체에 대한 분노로 이대로 그냥 죽을까 말까 여러번 고민했습니다.
어느덧 42살이 되어버린 제겐 20대때의 훈련강도를 이겨내던 패기도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여러번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할까 고민도 하였지만 오로지 딸아이만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았습니다.
대부업자들 피해 숨어 지내다 보니 딸아이가 그립지만 도저히 연락할수가 없었습니다.
버티고 버틴 3년 그동안 저는 1억원에 달하던 채무를 모두 변제 하였고, 풍성했던 제 머리숱은
탈모를 격고 있습니다. 4년째에 친구녀석과 조선소를 나와 건설업체 부터 자동차 하청 까지 열심히
안가본 현장없이 전국을 누비며, 임금체불도 격고 여러일들이 많았지만 드디어 파주에 15평짜리 아파트를
한채 구입했습니다. 그간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 유학비라고 월 50만원씩 저축해놓은 돈을 들고
처가를 찾아 갔어요. 아이는 어느덧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있고, 딸아이 조차도 이젠 추하게 늙어버린
저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30분정도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보니 서로 부둠켜 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아빠가 자길 버리지 않았다는거에 너무 기쁘다고 그간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던 모양입니다.
자기들 멋대로 빚쟁이에 시달리게 만든 무책임한 아버지라고 저를 그동안 수없이 애도한모양이지만
장인 장모에게 큰절올리고 제 생각을 이야기 했습니다. 작년 한해 7500만원의 연봉을 올렸고,
이젠 제 아이 제가 키우고 싶다고요. 그간 못드린 양육비라고 모아놓은 3150만원의 통장을 건네
드리며, 제아이 이렇게 키워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겠다고 통곡하며 빌었습니다.
단호히 거절하시더군요. 데려가려면 전처와 함께 데려가라고 순간 그 말을 듣는순간 화가 치밀어
올랗습니다. 남편을 처참하게 버려버린 그여인과 어찌산다는 겁니까? 내 목숨보다 귀한 내새끼...
그래도 어미라고 제게 같이 살자고 부탁합니다. 그 찢어 죽여도 쉬원찮을 그 개 같은년이 눈물을
보이더니 처남이라는 강아지와 저를 사람만들었다고 자화 자찬 합니다.
딸아이가 원한다기에 생각을 한번 해봤는데도 너무 괘씸하고 찢어죽이고 싶습니다.
소송을 해야 하는 걸까요? 어찌 해야 할지 이제 내나이 47 딸아이 하나 보는것만으로 살아가고자
견디고 견딘 제 인생 저를 조롱했던 그 개같은 년놈들을 계속 봐야 합니까?
저는 현장일을 하는사람이라 집을 오래도록 비워둡니다. 제 노모께서 아이를 양육해주시는것인데
제가 소송을 할시에 이길수는 있는것인지 아니면 정말 이 더러운 계집과 다시 살아야 하는것인지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울고, 너무 억울해서 화가 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