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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절반 이상의 미국?! 이민자로서의 삶 이야기...6(체류신분 이야기)

ㅠㅠㅠㅠㅠ... |2016.02.05 04:03
조회 1,659 |추천 9
생각 외로 많은 분들께서 지난 12시간 정도 사이에 제 글을 많이 읽어주신 것 같아요,어제 봤을 때는 1회가 45,000 여 조회,2회가 9,000 여 회,3회가 5,000 여 회,4회가 몇 번이더라... 여하튼 백 단위...그러다가 지난 12 시간 동안 갑자기 조회수가 늘어났네요.마치... 어떤 분께서 너무 마음이 좋으셔서 저 불쌍하다고 조회수 늘려주신 것 아닌가, 다른 아이디로 댓글들 달아주시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된장남'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신 분께서 달아주신 댓글도 이해합니다, 제가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올리니, 체류신분 등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데 관심사가 다뤄지지 않아 그렇게 댓글 달아주신 것도 이해하고요.근데 일단 제목을 '삶 이야기'라고 해놔서요, 그것 하나만 뽑아서 먼저 쓰기도 좀 그렇네요... ㅎㅎ다루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글쎄,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어요, 오래 된 이야기라.그래서 제 삶의 이야기를 쓰다가 관련된 시간에 올리려고요.

앞에 쓴 글들 중에, 투자이민신분이 위태하게 된 상황을 언급했잖아요, 그리고 아버지 명의로 회사를 하나 설립했다고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알고 있더라도, 설령 안다 하더라도 여기다가 올릴 만한 글은 아닌 것 같아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요, 일단 한국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최소한 그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던 현금은 $ 2,000.00 이 전부였고, 이삿짐 컨테이너가 부두에 있었고, 이사간 집 집세가 $ 550.00 이고, 생활비는 나가야 했고...문제가 터져서 바로 당일날 귀국을 결정했더라고 해도 우리 네 식구 항공료도 되지 않는 돈 밖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죠.
그나마... 요즘 같으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당시는 좀 융통성?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시간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투자이민하시는 것으로 서류를 꾸며 건축회사를 설립하셨고, 그 투자이민비자로 저희 가족이 머물 수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민법변호사 선임해서 원 투자이민이 무산된 이유를 밝히고, 투자이민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 500, ~ $ 1,000,000.00)에 대한 증명 등을 해야 했을 것이고, 만일 그당시 이런 일들을 해야 했다면 저희는 꼼짝없이 불법체류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항공료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지만 강제출국명령을 받아 쫓겨났겠죠, 그럼 한국에 돌아와서 이미 팔아 없어진 집 등을 어떻게 구할 건지,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이민나온 분들 중 이런 일을 겪으신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그런 것들이죠, 자존심이 있어서 실패자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 싫어 가지 않는 분들도 계시고, 이미 한국 내에 다시 뿌리를 내릴 곳이 없는 것도 문제이고, 재정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해서 어짜피 이렇게 된 바에 새로 시작하자고 하며 이민간 곳에서 뿌리내리기를 시작하기도 하죠.
차치하고, 회사설립을 하고, 그것을 근거로 투자이민비자 및 동거인 비자를 신청하고 사이판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건축기술에 인정을 받으셨었기 때문에 서울에 살면서도 광주, 부산 등 여기저기 지방으로도 출장?을 다니곤 하셨어요, 그래서 제 기억에도 여러 차례 1, 2주 씩 아버지를 뵙지 못한 적이 많았죠.그래서 그 기술로 사이판에서도 그리 오래지 않아 건물 보수일들을 많이 하시게 되어 좀 나은 삶을 살게 되기는 했습니다. (말이 쉬워 '그리 오래지 않아'이지, 한 2, 3년은 걸린 것 같습니다...)
회사는 매 년 라이센스를 갱신해야 했던 것 같고, 비자는 몇 년짜리가 나왔던 것인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비자연장을 할 때마다 회사 라이센스, 세금보고증서, 그 외 기타등등이 함께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저희 비자보다는 회사 라이센스가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학창시절 및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루고...
한 번은 문제가 있었죠, 여권을 신청해야 하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대사관에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기간'이 문제였던 것 같은데 그 '기간' 때문에 여권연장신청을 받아주지 않았고, 하지만 연장신청을 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 여권유효기간보다 6개월인가 더 남아 있어서 한동안 여권 없이 살았네요...주변에서는 '나라없는 백성'이라는 말까지...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니 더이상 동거비자는 발급이 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사이판에 있는 Northern Marianas College에서 유학생신분으로 비자를 받았지요.
제가 고등학생 때 College에서 특별프로그램이 진행이 됐었어요, 사이판에서 자란 원주민 학생들이 자꾸 미국 본토나 그 외의 지역으로 대학교 유학을 나가고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력이 자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우려한 정부에서 대학과 손을 잡고, 특별프로그램을 통해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대학 강의를 수강하고 정식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죠.그래서 한국식으로 말하면 '수능'시험 같은 것을 고등학생들이 치를 수 있게 해서 대학유학으로 나가는 인원들을 잡아두겠다는 것이었는데 저도 그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10 ~ 12학년 때 그 시험을 치렀고, 오후 2시 50분에 고등학교 수업을 마치면 대학에서 강의도 들으며 학점취득도 했죠.수강할 수 있는 수업은 제한적이었죠, 고등학교 수업 마치고 가야 했기 때문에 3시 이후의 수업 뿐이었고, 많이 듣고 싶어도 고등학교 학업, 숙제 등을 해야 했고 부모님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제가 고등학생 때, 학교에 만 16세 이상 운전면허를 취득한 학생들은 부모님의 동의와 일정 수수료(주차비)를 내면 학교에 차를 가지고 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아버지께서 차(중고차, 수동)를 한 대 사주셔서 학교에 차를 가지고 가고, 방과 후 바로 대학으로 올라가서 수업을 들었죠.
그래서 오히려, 저는 이미 대학을 다닌 기록과 학점이 있었기 때문에 유학생으로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별 문제는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당시 1학점 당 학비가 $ 100.00 이었는데 저는 1학점 당 $ 5.00, 즉 1/20만 내고 강의를 들었어서 형/누나들이 엄청 부러워 했었죠, 그렇게 취득한 학점은 정식대학학점이었고,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20학점을 취득한 상태였습니다, 총 120학점을 이수해야 졸업이 되는데 전 이미 20학점을 선취득한 상황에서 입학을 하게 되었죠.

글쎄요, 비자발급문제는 별로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세금납부한 액수가 적으면 회사 라이센스 갱신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해서 실제수입보다 더 많이 세금보고를 하고 납부를 해야 했던 것은, 글쎄요, 불법이라고 해야 하나요, 허위신고이니, 하지만 세금을 더 냈으니 정부로서는 좋은 것이고...
솔직히 요즘 다시 생각이 나고 후회가 되는 부분이 있어요, 약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것이니 뭐라할 수는 없지요,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한국에 1997년 2월에 역유학을 들어가고 방학 중에 부모님을 뵈러 들어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민국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저에게 이민국 정직원으로 한국어통역사로 일해달라고, 가족 모두에게 미국영주권을 주고 한 달에 $ 3,500.00 월급을 주겠다고.통역사로 일할 사람이 필요해서 이민국에서 한인회로 연락을 취했고, 한인회에서 저를 추천하셨었고, 마침 제가 잠시 사이판에 들어와 있던 터라 제게 연결이 되었던 것인데...그때 왜 제가 거절했었을까요, 한국으로 역유학 들어갔었어도 1년 정도 휴학하고 영주권을 취득했더면 지금쯤 부모님께서도 좀 더 편하게 계실 수 있으셨을 텐데요... 생각하면 참 마음이 쓰리죠,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되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어쩔 수 없고.
그리고 고등학교 다녔을 때, Grotto의 사진도 올렸잖아요, 체육시간 이야기는 아직 안쓴 것 같은데, 이래저래 제가 체력이 상당했어요, 야구 포수도 한 2년인가 했고, 축구 골키퍼로도 2년 여 했었고...그래서 미국 육사인 West Point에도 원서를 넣었었는데 제가 살고 있는 곳의 공직자로부터 추천서를 받아야 했지요, 그당시 저희 아버지께서 한국에서 민주당에 소속?!되어 있으셨어서 한국에 가셔서 추천서 받으신다고 하셨었는데... 그래서 제게 남은 일은 미국비자 받아 입국해서 체력장을 통과하는 일 뿐이었어요.미국육사를 어떻게 외국인이 가느냐, 그당시 미국 육사는 모든 서류를 갖추고 체력장을 통과하면, 한 국가 당 최대 4명까지, 하지만 한 해에 외국인 인원 20명까지로 제한해서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West Point에서 brochure를 받아서 확인했던 내용이니까요.그런데 미국비자를 못받아서 못갔습니다... 이것은 한 23년 전 이야기인 것 같네요, 만일 그때 잘 되고 졸업도 잘 했으면 지금 제 직급이 어디까지 올라갔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 어째 제 인생은 인생역전, 인생한방을 노릴 수 있는 기회들을 걷어차버리거나 따지 못한 것이 꽤 되더라고요... 후회하면 때는 늦으리... 지금은 그저 아쉽다는 마음으로밖에 삭힐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사이판은 E-2 CNMI라는 비자가 별도로 생겨서, 미국 연방정부의 연방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벌써 2년 여 전에 끝났어야 하는데 미국 연방정부 내에서도 좀 복잡한 사안들도 생기고, 경기도 나빠지고 하다보니 늦춰지고 있는 것 같아요.그러면서 영주권/시민권자가 아닌 외국인을 내보내려고 하는 것인지 비자연장을 매우 까다롭게 하고 있네요.다행히 저희 부모님께서는 지금까지는 매 년 연장하여 잘 계시기는 하지만 올해에도 또 연장을 하셔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나 시간적인 부분에서 불안해 하십니다, 그래서 위에 제가 이민국통역관으로서, West Point 입학문제(졸업하고 군입대하면 미국시민권이 바로 나오니까)에 대해서 언급했던 것이네요...

글쎄요, 된장남님의 궁금증이 얼마나 해소되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비자문제는 미 본토에서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만 그 외의 미국 영토(U. S. Territories)에서는 또다른 문제입니다.Puerto Rico, American Samoa, Virgin Is., Commonwealth of the Northern Mariana Is. 및 한 곳이 더 있는데, 여기서 태어난 사람들은 미국시민권(독수리여권)을 받아도 투표권이 없다 배웠습니다, 혹 지금은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비자신청을 하는 것은 각 비자 카테고리마다 요구하는 서류가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 잘 알아보시는 것이 좋겠고요, 유능한 이민법변호사일 수록 비용이 높아집니다, 물론 실력은 안되면서 다른 변호사들이 돈 많이 받으니까 자기도 올려받으려 하는 사람들도 없지않아 보입니다만, 비싸게 부르는 변호사/사무장들의 경우는 종종 이민국 내에 '연줄'이 있어서 좀 '쉽게' 한다거나, 비자신청 후 영주권을 취득하여 비자신청이 무효가 됐다거나 신청자가 포기, 취소, 혹 사망했을 때 그 순서에 다른 사람을 끼워넣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물론 여러 이민법변호사 사무실들 중 어떤 사무장으로부터).
혹 비자발급관련 등 해서 더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그때 더 첨부하겠습니다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전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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