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족 이야기라 결시친 카테고리에 글 올려 봅니다.. 저는 제 유년시절이 불행했다고 생각하고, 제게 이런 삶을 살게 한 엄마에게 조금의 원망과 상처가 있어요.
이런 제가 못된 건지, 엄마가 말하는 것처럼 감사할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인지. 조언과 위로의 말씀 부탁드리려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현재 중국에서 선교사세요. 평생 남을 돕는 일에 인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아빠는 안계시고, 남동생만 하나 있어요. 저는 현재 홍콩에서 대학을 막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온 취업준비생 이구요
저와 제 남동생은 아주 어릴때부터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한국에서 살았었는데, 그때 엄마는 선교사 훈련생이라 교회 소속 장애인 요양시설 원장을 맡고 계셨죠.
깡촌의 큰 강당을 개조해서 만든 시설 안에서, 소파로 작은 파티션을 만들어 세 가족이 이불 깔고 지냈어요. 젊었던 엄마 혼자서 낑낑대며 열명 남짓 되는 장애인들 배설물 치우고, 밥 해 먹이고, 하는 걸 한 방에서 평생 보며 자랐습니다.
그 버스도 안다니는 깡촌에서 엄마는 저희를 딴엔 시골 학교에 보내기 싫다며 시내의 학교로 보내셨고 차로 왕복 40분 걸리는 거리를 매일 통학시키셨어요. 덕분에 지각은 밥먹듯이 했고 하교 후에도 남동생과 갈곳 없이 동네를 떠돌아다니며 엄마가 데리러 오기를 매일 기다려야 했죠. 바쁜 엄마 때문에 해질때까지 있을 곳 없이, 친구들이 혹여나 보고 불쌍하게 생각할까봐,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그때가 아직도 생각나요.
학교 생활은.. 뭐 나쁘지 않았네요. 그당시에 애들이 그정도로 못되진 않았었나봐요. 가끔씩 친한 친구에게 울엄마가 너랑 놀지 말라는 얘길 하더라, 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짖궂은 남자애 한명이 따라다니면서 네 비밀을 안다, 너희엄마 장애인 똥치우고 하는 사람이지? 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그땐 잘 몰랐었어요. 오히려 당당하고 씩씩한 척 했었죠. 엄마는 남을 돕는 사람이야, 숭고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라는 자부심도 그땐 있었어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 어렸던 제가 눈물이 저절로 날 정도로 불쌍하지만 적어도 그땐 창피하지 않았어요.
그랬던 저였어도 상처가 되는 일은 딱 하나 있었네요. 아빠가 없다는것. 장애인들이랑 한집에 산다고 놀림을 받아도 괜찮았지만 이상하게 아빠가 없는건 반 애들에게 끝까지 숨기고 싶었어요. 그런데 학부모 사이에 소문이 퍼졌는지 어느날 애들이 우르르 다가와서 묻더라구요. 너 아빠 없냐고. 물론 그 어린 애들이 악의는 없었겠지만.. 다음날 아프다고 하고 학교에 안갔어요. 꾀병이라는 사실을 엄마에게 들키고 난 후에는 울면서 사실을 털어놨어요. 엄마는 저를 위로해 주거나 안쓰럽게 여기지 않았어요. 단지 선생님께 이러이러 하니 신경좀 써달라는 전화만 한통 드릴 뿐이었죠. 엄마는 알았을까요. 며칠 후 학교에 다시 나가게 되었을 때 저에게는 모든 수업시간이 상처였다는 것을요. 국어책에는 아빠의 죽음을 맞는 어떤 가족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어요. 저는 그 이야기를 소리내 읽을 수업시간이 무서워서 그 진도 차례가 왔을때 또 꾀병을 부렸죠. 우리 가족 그림을 그려보라는 미술 시간은 피할 방법도 없었네요. 그런 시간들이 저에게는 고스란히 상처였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엄마의 훈련이 끝났을 때 저희 가족은 중국으로 왔어요. 소수민족이 사는 고산지대 선교지에서 저와 제 동생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다른 선교사님 밑에서 홈스쿨링을 받았어요. 미국유학을 다녀오신 선교사님 덕분에 영어를 배웠고 중국어도 자연히 습득해서 결국 홍콩의 좋은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유학 시절도 쉽지만은 않았어요. 산골에서 배운 영어로 수업을 따라가려 피나는 노력을 했고 물가 비싼 홍콩에서 돈 많은 한국 유학생들에게 느끼는 열등감은 이루 말할수 없는 정도였죠. 좁은 방에서 살며 못 먹고 못 입었지만 울면서 이악물고 버틴 덕에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살아온 이야기였구요. 글을 쓴 이유는 현재 엄마와의 갈등 때문입니다. 저는 제 이런 삶이 싫고 엄마가 조금은 원망스러워요. 물론 평생 남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산 엄마가 존경스럽고 그런 엄마를 사랑하지만, 저는 절대 엄마같은 삶을 살기 싫습니다. 자식들에게 제가 받았던 상처를 겪게 하고 싶지 않고, 저처럼 정상적인 가정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온 친구들을 뼈저리도록 부러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엄마는, '이제 딸을 잘 키웠으니 중국에 보내 선교사 훈련을 시켜야지.' 하는 목사님 농담에 웃지 않고 정색하는 저를 못마땅해 하고,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하는 일을 돕지 않고 함께 장애인들에게 밥한숟갈도 떠먹여본 적이 없다고 섭섭해 해요. 물론 한국에 들어와 전공을 살려 일하고 싶어하는 저에게 물질적인 서포트는 아낌없이 해 주시지만, 교회를 싫어하고 믿음이 없는 저를 눈을 흘기면서 못마땅해 하십니다. 동생도 엄마가 우리를 선교지에 팔아먹고 선교에 이용해먹으려고 낳은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저와 생각이 같지만.. 저처럼 상처로 담아두진 않고 엄마와는 정서적으로 동떨어진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학 시절에도 힘들다고 울때마다 너 누리는것 생각 안하고 감사할 줄 모른다고 핀잔을 주는가 하면, 난 엄마가 하는 일이 어쩔때는 창피했고 평범한 삶을 원했다고 상처를 고백하면 위로 대신 유난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목사님도 싫고 하나님도 싫고, 이제 엄마도 평생 헌신했으니 편하게 살라고 하면 너 누구 덕분에 고등교육 받았고 유학까지 갔다왔는데 어디서 원망이냐며 혼을 냅니다. 사실 중고등학교때 홈스쿨링을 받으며 절 가르치신 선교사님께 받은 상처가 많습니다. 그때 얘기를 하며 난 선생님이 밉고 홈스쿨링을 한걸 후회한다, 차라리 그때 한국으로 돌아가 외고같은데 진학해서 더 실력있는 선생님들 밑에서 공부했으면 더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았을까.. 얼마전에 지나가듯 한 제 말에 불같이 화를 내며 배은망덕한 애 취급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엄마 말이 다 맞지만.. 섭섭해서 울면서 말대답을 하면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지고 엄마는 저에대한 미움만 쌓여가는 것 같아요.
물론 저를 이때까지 키워주신 홀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 안쓰러움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근데 제가 자라오면서 받았던 상처와 열등감.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 이런 것들은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할까요. 정신과라도 찾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전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은데, 엄마는 이런 저를 아주 못된 애로 생각하고, 순종적이지 않고 은혜도 모르는 비뚤어진 사람 취급을 합니다. 저는 엄마가 안보는 밖에서는 애교도 많고 밝은 편인데, 유독 엄마 주변 사람들에게만 웃지도 않게 되고 버릇없게 행동하게 됩니다. 엄마는 저를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에 빠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위로해줄 생각을 안하구요.
제가 정말 비정상인가요? 제 유년시절이 싫고 유학시절이 힘들었고 평범한 삶을 동경하는데 그게 못된건가요? 엄마랑은 이렇게 평생 싸우면서 지내야 하나요? 저를 위해 조언과 위로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을 정도로.. 엄마가 절 몰라준다고 생각만 하면 눈물이 너무 많이 납니다..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