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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시계-3

jack757 |2008.10.09 07:45
조회 340 |추천 0

3. 삶
개똥이, 내 이름. 성따위는 없다. 갖기 싫어서가 아니라 갖을 수가 없다. 왜냐구? 난 천민인 노비이기때문에.
개 돼지 같은 노비이기 때문에.
난 이런 내 상황이 싫다. 주인마님에게 굽실거리는것도 싫고 나와 동갑인 도련님이 나를 개같이 부리는 것도 싫다.
나도 도련님처럼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글공부도 하고 귀여움 받으며 살고싶다.
내 아버지에 아버지에 아버지도 이 집에서 종을 살았다고 한다.
내가 선택한것도 아버지가 선택한것도 그 아버지에 아버지가 선택한것도 그 아버지에 아버지에 아버지가 선택한것도 아니다.
우린 선택할 수 없이 이렇게 종으로 살아야만 한다고 한다.
내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는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태어난지 얼마 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여기 내가 살고있는 조선에는 군역이라는 것이 있는데, 원래 천민인 노비는 군역의 의무가 없다. 왜냐구? 인간이 아니라 주인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군역의 기간은 일년에 2달인데 천민인 내 아버지는 양인들의 군역을 대신해서 2달간의 군역을 일년에 여섯번 일년 내내 하고 있다.
군대가 좋아서가 아니다.
군역을 하지 않으려면 균역법이란 것이 있어서 군포 한 필을 바치면 2달간의 군역을 대신 할 수 있는데, 우리 주인마님은 한필보다 적게받고 그사람의 이름으로 우리 아버지를 대신 군역을 하게 한다.
주인마님께는 많은 종이 있으므로 그중에 몇사람이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탈이 날 문제가 없다.
그렇게 우리 아버지는 뼈빠지게 고생을 하고 주인마님은 그 댓가를 대신해서 챙긴다.
이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10년 이상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내가 태어났을때에도 아버지는 군역을 가있어서 건너방 할머니가 나를 받아주었다고 한다.
원래 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나를 낳고 많이 아팟다고 한다.
그리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사이 어머니는 세상을 등지셨고 갓난쟁이였던 나는 살겠다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오지 않는 젖을 빨고 있을 때 아버지가 군역에서 돌아와 죽어있는 어머니와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나를 발견 했다고 한다.
그래도 시간은 흘럿고 내 나이도 이제 열살이 되었다. 아버지의 체격이 우람한 탓인지 나도 동년배들의 키보다 한뼘은 더 컷고 체격도 3~4살은 많은 형들과 비슷하게 컷다.
그리고 아버지는 틈틈히 태껸이라는 무술을 내게 가르쳐주셨다.
내 몸 하나는 내가 지켜야 한다면서.
나도 덩실덩실 춤추는것같은 동작이 재미있어서 아버지가 계시지 않을때도 빼먹지 않고 꾸준히 연마하고 있다.
아버지는 군역을 오래나가있어서인지 여러사람에게서 여러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웃나라인 청나라와 왜국 모두가 서역의 도깨비들에게 침략 당해서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크고 강하다는 청나라를 침략하고 무릎꿇게 한 도깨비들이 곧 우리나라에도 쳐들어 올것이라고.
그날이 멀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며, 만약 그때 아버지가 군역을 나가있더라도 너만은 꼭 살아야 한다며 무술연마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늘상 강조하곤 했다.
개 돼지보다도 못한 목숨을 왜 지켜야하는지.....
내가 커서 혼인을 하게되어도 아기는 낳지 않을것 이라고 몇번이고 결심했다. 절대 나같은 종놈을 또 만들어 놓을순 없다.
난 모두가 미웠다. 날 종으로 태어나게한 아버지도 싫었고, 종으로 낳아놓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도 싫었고, 사람대접을 해주지 않는 주인마님도 싫고, 도련님도 싫다.
그리고 종과 주인을 만들어놓은 이 나라도 싫었다.
그래서 서역의 도깨비들이 어서 이나라를 쳐들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도깨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느날 주인마님께서 날 부르셨다.
주인마님 친구분중에 역관이신 분이 계신데 이번에 청나라에 가셔야 하는데 나귀를 잡아줄 종자가 한명 필요하다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나이는 어리나 내가 제법 덩치도 크고 똘똘하니 나보고 그분을 따라나서라고 명을 하셨다.
나는 명을 거부할 어떠한 권리도 없었고 거부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잘 모시고 다녀오겠다고 주인마님께 말씀드리고 길떠날 채비를 하였다.
채비래 봤자 괴나리봇짐에 짚신 몇켤레가 전부였지만 왠지 설레는 기분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짐을 꾸렸다.
아버지한테도 인사를 하고 떠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지금 군역 때문에 집에 있지 않았다.
주인마님의 명대로 역관이신 이사형 나리의 댁으로 향했고, 그분에게 인사을 올리고 몇일을 그 집에서 머물며 나리께서 떠날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하는날. 이번 원행에는 무슨 물건을 파는 상단도 함께 떠난다고 한다.
처음 떠나는 여행이라 두렵기도 하였으나 함께 출발하는 인원이 많아져서 이젠 겁이 나지 않았다.
어른들 이야기로는 여기 개성에서 배를 타면 청나라까지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배를타지 않고 가기 때문에 약 2개월 정도가 걸릴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을 보고 다시 돌아오면 6~7개월정도의 시간이 걸릴것이라고 상단의 행수가 이야기 해주었다.
길만 떠나면 곧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을것만 같았는데, 몇날 몇일을 걸어도 내가 살던 동네와 별반 다를게 없는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한달이 지난 즈음부터는 차츰 이국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나와같은 사람이기는 하나 생김새도 입은 옷도 말도 틀린 사람들.
피부색은 비슷해서 무섭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까이 가기는 싫었다.
청나라에는 도깨비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 본적은 없다. 아마 우리가 낮에만 움직이고 밤에는 자기 때문에 못 만난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보름정도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있다고 한다. 일행 모두가 지쳐 보였고 나 엮시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힘든 내색을 하면 이곳에 버리고 가지나 않을까 해서 절대 내색할 수 없었다.
원행을 떠난 일행 중 가장 어렸지만 누구도 내게 관심이나 동정 따위는 주지 않았다. 단 한번도 누군가 내게 '힘드냐?'고 묻지 않았다.
내가 독해보이고 잘 따라와서 라기 보다는, 나는 천민이고 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갖어주지 않았지만 난 행수아저씨가 좋았다.
아저씨는 왠지 강해 보이고 신비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 내가 잘 따르곤 했다.
말도 먼저 가서 걸고,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이 있으면 계속 질문을 하곤 했다.
행수아저씨는 약간은 귀찮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는것이 내가 썩 싫지만은 않은 것 같이 느껴졌다.
여느날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평야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휘익' 하고 바람을 가르는 휘파람같은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퍼억' 소리와 함께 우리 일행 중 한명이 쓰러졌다. 단지 휘파람소리만 들렸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짧은 막대기가 '휘익'하는 맑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난 정신이 없어져서 멍하니 서있기만 하였고 그때 행수아저씨가 내 옆으로 오시더니 날 수레 옆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절대 움직이지 말고 이 수레 밑에 숨어있거라"라고 말하고는 품안에 품고있던 보따리를 내게 맡기며 "저 도적놈들이 물러 갈 때까지 꼭 품에 품고있어야 한다. 절대 빼앗기면 안돼!" 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곤 칼을 뽑아서 화살이 날아온 쪽으로 달려갔다.
난 정신이 없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예,예"라고만 반복해서 말했다. 사실 행수아저씨가 무슨말을 했는지 잘 알아듣지도 못했다.
저쪽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한 무리가 있었고 이제 더이상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일행들은 어느새 손에 칼을 한자루씩 쥐고 있었다.
말을 탄 도적들은 어느새 우리 지척에 도착했고,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피튀기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고함소리,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 말이 우는 소리, 베는 소리, 칼이 뼈를 부수는 소리, 신음소리.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가는 살육의 현장.
내 눈에 익숙한 사람보다 익숙치 않은 사람들의 숫자가 우세해 보였고, 내 눈에 익숙한 사람들은 하나 둘씩 쓰러져갔다.
멀리 보이는 행수아저씨도 아직은 싸우고 있었으나 그 주위로 말탄사람 몇명이 몰려드는것으로 보아 쉽지 않아보였다.
역관나리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고, 이대로 수레바퀴밑에 있다가는 나역시 저들의 칼날에 목숨이 위협을 받을것 같았다.
어디를 봐도 숨을곳이라고는 보이지 않은 평야에서 도망을 칠수도 없었다.
저들은 말을 타고있기에 나보다 빠르면 빨랐지 느리지는 않을테니.
몸을 굴려 수레밑에서 나와 옆에 쓰러져있는 말의 배쪽으로 가서 모레를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덩이에 몸을 눞이고 그 위로 모레를 덮었다.
비릿한 말의 피냄새가 진동을하지만 참아야했다.
그게 이상황에서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느덧 주위에 더이상 싸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알아들을수 없는 대화들이 오갔다.
아마 우리 일행이 진모양이다.
알아들을수 없는 목소리들은 분주해졌고 무엇인가 명령하는 사람과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우리의 수레는 이제 저들의 차지가 되었는지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한참을 숨죽인채 누워있었고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빨간색 피로 물들어 있는 사람들. 움직임이 없다.
30명이 넘는 어른들중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 죽은 것이다.
'아~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 당황하자 눈물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행수아저씨가 맡긴 보따리가 생각났다. 아직도 내 품속에 있는 보따리.
그것을 꺼내어 풀러보니 누런 금덩어리들과 돈이 들어 있었다.
'이것이 있으니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난 죽음의 현장에서 삶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면 평생 종으로 살아야할텐데. 그래도 얼굴아는 사람들과 살아가고 싶기도 하고, 돌아가지 않자니 여기는 말도 모르고 아는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한참을 어찌할바를 모르고 살육의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이제 해가 완전히 떨어지려고 한다. 이곳은 무서워서 더 있기가 싫고 어디든 가야하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주저주저하다가 무작정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숨이 턱까지 차 오르게 뛰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앞도 보이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밤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렇게 밤새도록 걷다가 낮이되면 동굴이나 바위틈에 숨어서 잠을 잤다.
도적들을 만날까봐 도저히 낮에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모르는 길이니 밤에 걷건 낮에 걷건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렇게 발길 닿는 대로 걸은지 5일만에 사람 사는 동네에 다다를 수 있었다.
보따리를 풀어 금붙이들은 천에감아서 허리에 두르고, 동전은 따로 보관했다. 혹시나 도둑맞아도 모두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돈은 있었지만 음식을 사먹을 수가 없었다. 말도 모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돈이 여기서 사용할 수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몇일을 떠돌아다니며 시장에서만 머물렀다. 마땅이 갈곳도 없었고 해서 시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물건파는것도 구경하고 사람구경도 하고 하다보니 이들이 어떤 돈을 쓰는가 도 알게되었고 무엇을 사는데 얼마를 주는지 도 대충은 알게되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게 문제였다.
너무나 배가 고팟고 벌써 열흘이 넘게 제대로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
이제 결심을 해야할 때가 왔다. 굶어죽던지 여기에 적응해서 살든지. 죽기는 싫었다. 여기에 정착해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서 계속 살려면 이들의 말을 알아야하고 우선 먹는 음식을 주문해서 먹을 수 있어야 했다.
음식을 파는 가게 앞에 있다가 그곳으로 들어가는 손님을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옆 테이블에 앉아 그가 하는 말을 최대한 귀기울여 들으며 외웠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을 속으로 따라했다.
이윽고 주문을 받으려는 듯한 남자가 내 앞에 왔고. 나는 외워두었던 말을 최대한 비슷하게 내뱉었다.
잘 못 알아 들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 사내가 못마땅했지만,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자 그남자는 알았다는 듯이 돌아갔고 이윽고 내 앞엔 국수같아 보이는 음식을 내 주었다.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내가 따라 들어왔던 남자를 계속 주시했다. 그가 얼마를 계산하는 지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다 먹은 그는 동전2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갔다.
이제 나의 큰 고민은 한가지 해결되었다.
이 국수를 사먹는데에는 동전이 2개가 필요하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 이제 나는 굶어죽을 일은 없을 듯 해 보였다.
나도 국수를 배불리 먹고 동전 2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왔다.
음식점을 나오는 나의 뒤통수에 대고 주문을 받았던 남자가 뭐라고 말을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못 알아듣는 말이니까.
이제 두번째 문제를 해결할 때가 되었다.
조선에서부터 입고 왔던 이 흰색옷을 벗고 여기사람과 같은 옷을 입기로 했다.
그리고 머리모양도 여기사람과 같이 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옷을 파는곳 앞에서 몇시간을 기다렸다.
옷을파는 아주머니가 몇시간째 이러고 있는 나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마 옷을 훔치거나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보다.
이윽고 내가 사고싶은 옷을 고르는 사람을 보았고, 그가 계산할때 그의 옆으로 다가가 얼마를 내는지를 보았다.
동전 8개.
이제 청나라 사람의 옷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내가 사고싶은 옷을 가리켰고, 동전 8개를 들어 보였다.
아주머니는 내게 옷을 주었고 나는 동전을 그에게 건냈다.
두번째 문제 역시 해결되었다.
이제 세번째 문제를 해결해야했다.
바로 가장 두려운 머리를 깍는 일. 내가 살던곳에서는 절대 머리카락에 칼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살기로 한 이상 이들의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해야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조선에서 살아봤자 개, 돼지보다 못하게 살았을 텐데,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만났으니 나도 양반처럼 살고싶었다.
그리고 칼을 파는곳에가서 칼날이 예리하게 서있는 단도를 하나 사고, 거울도 하나를 샀다.
시장과는 조금 떨어져있는 개울가에 앉아서 머리를 깍기 시작했다.
슬프지 않았는데 눈물이 났다.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가 보고싶었고, 무뚝뚝한 아버지도 보고싶었고, 나를 괴롭히던 도련님도 생각이 났다.
무서웠다. 거울속의 낮선 내 모습이.
앞머리는 빡빡 깍고 뒷머리는 댕기를 땋은 머리. 이제 내 눈에는 제법 익숙하지만 거울속의 나는 내가 아닌것같았다.
눈물을 훔치며 다짐했다. 이제 다른세상에 온 이상 나는 더이상 천민이 아니다. 여기서 성공할것이다. 꼭.
그리고 아까 국수를 사먹은 그 식당으로 향했다.
아저씨는 인사를 하다말고 나를 보며 고개를 계속해서 갸우뚱하고 있었고 그런 아저씨에게 '씨익' 웃어주고는 가게안에 손님이 없는것을 보고 대뜸 청소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시끄러운 소리로 무어라고 계속 나에게 이야기했지만 난 신경쓰지 않고 콧노래를 부르며 청소를 하기 시작했고, 손님이 오면 그앞에서서 그가 하는말을 그대로 외워서 주방에 있는 아주머니께 똑같이 읇었다.
아주머니는 뭐가 재미있는지 내가 말을 할때마다 웃으셨고 난 그게 싫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까지 일을 하자 아저씨가 내게도 국수를 한그릇 주었다. 국수를 한그릇 다 비운 나는 아저씨께 동전 두개를 드렸지만 받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이 되고 가게는 정리를 하는지 부산했다. 나도 저녁 청소를 마치고 먼저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건넸지만 그냥 뒤돌아서 나왔다. 아마 '내일부터는 나오지 마!' 라고 얘기하는게 아닐까 싶었지만,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니 무시하기로 했다.
아직은 날씨가 춥지 않아서 적당히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가 몸을 눞혔다. 그렇게 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다시 식당으로 갔다.
나보다 부지런한 아저씨, 아주머니는 나를 보고 질린 눈으로 자기들끼리 뭐라고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다시 식당안을 돌아다니며 청소도 하고 주문도 받았다.
그리고 식사시간에는 무료로 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 청소를 마치고 가려고 하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잡았다.
그리고 손짓 발짓을 동원해서 자란다, 여기서.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떡이고 고맙다고 말했다.
나의 첫 직장이자 집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그곳에서 몇달을 지내자 이제 제법 말도 통하고 아는 얼굴들도 생겼다.
나의 중국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곳시장은 제법 규모가 컷는데 이곳이 과일 생산지여서 과일을 사러오는 장사꾼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는 귀가 번쩍 띄였다. 그거다, 과일장사!!
주인아저씨께 말씀드려서 '나는 이제 장사를 시작할껀데 식사와 잠자리는 지금과 같이 이곳에 있을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게 뭐 어려운 부탁이냐며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사람들에게 물어서 과일농장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시장을 조금 벗어나자 온통 과일을 기르는 농장이 산재해 있었다.
어디를 먼저 가봐야 할지 모를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의 농장.
이곳은 땅 끝까지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과일들을 따서 먹어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딱'
"아~ 뭐야"
"너 뭐야? 누군데 남의 밭에와서 함부로 과일을 쳐먹어"
"아~ 아퍼, 훔쳐 먹은게 아니라 맛을 본거에요"
"맛본거나 훔쳐먹은거나, 나한테 말 안하고 먹었으니 도둑질 한거나 마찬가지야"
"맛보고 맛이 좋으면 살려고 온거예요"
"어린놈이 돈이 어디있다고 과일을 사, 거짓말 말어 이놈아" 라며 다시 때리려고 자세를 잡는 농부아저씨.
"돈있어요!! 이쪽 과일은 제법 맛있는데 저 옆에것도 먹어보고 맛있으면 이 두 줄에 있는거 내가 다 삽니다."
"뭐? 이 어린놈이 누구를 놀려먹으려고 수작이야 수작이"
"때리실려면 저것까지 먹는거 보고 때리세요"
"그래 너 거짓말이면 오늘 내손에 죽을줄알아"
옆줄로 건너가 이나무 저나무에서 하나씩 따서 한 열개정도를 맛보았다.
이 아저씨는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서 한손으로 괭이를 꽉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여차하면 내 머리를 내려치려는 기세였다.
내가 한입씩 맛보고 바닥에 버리는게 분했나보다.
과일들은 다 맛있었다.
"아저씨 이쪽 줄하고 저쪽 줄에 있는 나무가 모두 몇 그루죠?"
"한쪽 줄에 40그루씩 80그루다."
"그럼 한 그루에서 보통 몇 개의 열매가 열려요?"
"약 80개 정도"
"그럼 약 6400개 정도 되겠네요?"
"그정도 되겠지"
"이거 얼마에 파실래요?"
"금자 10개"
"좋아요 금자 10개" 나는 깍지 않았다.
"이거 모레까지 다 따고 수레에 실어서 시장 국수집 앞에 정오까지 가져다가 주세요."
"주머니에서 금자 10개를 꺼내어 아저씨 손에 쥐어드렸다."
"아까는 내가 미안했네, 무식해서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갔네 내 사과하네."
"사과는요~ 약속 늦지 마세요."
"그래 꼭 정오까지 가져다 줌세"
그렇게 첫번째 거래를 끝내고 국수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무슨짓을 한건지 모르겠다.
그 많은 사과를 어떻게 팔려고.
시간은 2일이 흘렀고 사과는 약속한 정오가 되기 전에 도착했다.
'이 많은 사과를 팔려면 한개씩 팔아서는 어림도 없어, 한꺼번에 다 팔아버릴테야'
여러사람이 지나갔고 몇개씩 팔라고 했지만 팔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때쯤 깔끔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수레위에 있는 사과를 깍아서 맛을보며 내게 물었다.
"얘야 이거 얼마니?"
"금자 11개요"
"너희 부모님은 어디계시니?"
"지금 다른 거래를 하러 가셨어요, 이 물건의 주인은 저니까 저랑 흥정하시면 돼요."
"호호~ 웃기는 아이구나, 사과가 맛있기는 한데 금자 11개는 비싸구나"
"이건 제가 매맞아 가면서 골라온 사과에요, 이 근방에서 제일 맛있는 사과구요. 제일 맛있지 않다면 돈을 다시 돌려드릴께요."
"그래 그럼 11개 줄테니 나한테 팔아라. 여기있다 금자 11냥. 다음에 올때에도 맛있는 과일 찾아놓길 바란다"
"네 고맙습니다. 전 항상 여기에 있으니까 시장에 오시면 꼭 한번 들려주세요."
그렇게 나의 첫 거래는 1할의 이문을 남기고 마감되었다.
이렇게 나의 장사는 시작되었고, 그동네 농장을 돌아다니며 숫하게 매를 얻어맞으며 다녔다.
내가 맛보고, 맛있는 과일을 선별해서 사야했기 때문에 근방에 있는 농장 주인이나 일하는 사람들에게 거의 매일 얻어맞아 가면서 과일을 고르고 다녔고, 그렇게 선별해서 산 과일들은, 딱 1할의 이문을 남기고 판매하였다.
내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워낙에 정성스럽게 과일을 재배하는 농장주들을 알게된 까닭에 과일장사에서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11살부터 20살까지 과일장사를 해서 내가 처음에 가지고 있던 돈의 몇십배를 벌수 있었던 나는 20살 무렵에 그곳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홍수전 이라는 자가 일으킨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해 이곳도 술렁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개항한 상하이에 가서 더 큰 장사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이다.
어차피 혼자몸이니 떠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근 10년간 정을 쌓아온 국수집 아저씨, 아주머니와 이별하는게 제일 힘들었다.
다시 온다고 굳게 약속하고 그들을 떠나 상하이로 향했다.
상하이를 향해 가던중 산시성 출신 장사꾼인 진상 일행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중에는 나와 연배가 비슷해보이는 하지만 얼굴엔 기품이 흐르고 안광이 맑은 한 청년이 있었고, 그와 나는 지루한 여행길에 친한 동무가 될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치아오쯔융' 이고 집안이 대대로 장사를 해왔다고 하는데 이 친구는 보통의 장사꾼이 아니었다.
깊은 철학을 갖춘, 물건을 팔아 이문을 남기는게 아니라 사람을 남길줄 아는 친구로써 '의(義), 신(信), 리(利)'를 몸소 실천하는 동년배 이지만 형님처럼 느껴지는 의젓한 친구였다.
나는 시장통에서 몸으로 체득한 장사꾼이었지만 '치아오쯔융'은 경영을 할줄 아는 친구였으므로, 상하이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이 친구와 함께 보냈다.
단, 그친구가 바쁘지 않을때에만.
그렇게 나도 경영의 개념을 깨달아가며 유통의 개념을 확립하고 수출입업을 하기 위해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갔다.
이곳 상하이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고 있었다.
어렸을때 도깨비라고 생각했던 영국인, 프랑스인, 미국인 등등을 흔히 만날 수 있었으며, 이곳은 청나라의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이곳에서 무역업의 기본을 다지던 나는 영국의 회사와 거래를 트게됐고, 그들과의 꾸준한 교역으로 조선에서 떠나온지 30여년이 흐른 지금은 제법 '거상'이라는 칭호를 듣고 살게되었다.
조선의 '천민'에서 상하이의 '거상'으로.
"띠리리리~ 띠리리리~"
"아우~ 잘잤다"
몸이 가뿐해짐을 느끼며 잠에서 깬 나는 깊은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다. 너무나 선명한 꿈을.
1층화장실로 올라가 세수를 마치고 아르바이트하는 곳으로 향해가면서도 머리속엔 계속 꿈의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마치 영화를 보고 나온것처럼.
전산실에 들어선 나는 책상에 앉자마자 펜과 종이를 들고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삶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한다.
가지지 못한것들에 대해서 아쉬워하고, 남이 갖은것에 대해서 질투하고, 더 많이 갖으려고 욕심부리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것은 내가 갖지 못한것에 대해서 아쉬워만 할뿐, 그것을 갖으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들은 갖지 못한다.
꿈을 이룬 사람은 그냥 이룬것이 아니다.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때로는 성공도, 실패도 해 가면서 그 꿈을 이룬 것이다. 결코 공짜가 아니다.
그 꿈의 다른 이름이 있다면 '노력'과 '시간'일 것이다.
편하게 누워있고 싶은 시간에, 남들은 놀거나 잘때에도 그들의 '시간'은 꿈이라는 목표를 위해 '노력'이라는 계단을 한단씩 쌓고, 그렇게 '시간'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계단은 하루하루 쌓여서 결국은 꿈이라는 목표에 닿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수명은 적당히 '살아지라'고 주어진 게 아니라 준비해서 '살아가라'고 주어진 것이다.
세상에는 거저 얻을 수 있는것은 없다. 단언컨데 없다.
귀한 물건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분명히 있다.
무엇을 얻으려면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한다. 그게 진리다. 쉽게 얻으려 하지 말자. 얻을수도 없을뿐더러, 얻었다고 해도 신기루일 뿐이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삶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한단, 한단 계단을 쌓아 가는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여러가지 현실의 상황들이 내 앞길을 막을 것이다. 여러 가지 유혹이 있을 것이다. 그 유혹을 뿌리쳐야한다. 어떤 때에는 스스로 포기해야할 이유를 찾을 것이다.
포기는 노력보다 쉽기 때문에 순간순간 여러 가지 유혹이 찾아올 것이고,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그것 자체도 노력 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디딤돌이라고 생각하고 '시간' 과 '노력'을 들여서 내 꿈과 목표에 다가가는 것이다.
인생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내것이다.
내 의지가 반영되고, 내 의도대로 내 인생을 설계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것, 그것이 진짜 내 인생이다.

jack757@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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