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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이야기

스푸트니크 |2016.03.31 22:32
조회 18,409 |추천 80

두 달만인가요? 1월 말에 글을 적었던 것 같으니 거의 딱 두 달 만인가 봅니다. 설 즈음에 온다고 했었는데 약속을 못 지켰네요. 만약 기다린 사람이 있다면 미안합니다.

 

그 시기에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춥지 않다는 글을 적었던 것 같기도 한데 벌써 봄이 왔네요. 거리에 꽃이 필락말락 하더라고요.

 

 

나름대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일단은 제가 찾아갔던 집은 W의 집이 맞았고, W는 의도적으로 절 피했던 게 맞더군요. 일부러 문을 안 열어줬던 것도 맞았고요. 물론 제가 찾아갔을 때마다 W가 집에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았지만.

 

2월에는 고등학교 동창모임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W를 볼 수가 없었고.

 

 

어쨌든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고 W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 몇 번 미리 연락하고 찾아갔을 때도 답장은커녕 문도 열어주지 않았었기에 그 날은 아무 연락 없이 퇴근하자마자 찾아갔었죠.

 

건물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소 귀에 익은 여자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더군요. W와 그의 여자친구가 함께 오는 길이더라고요.

 

W의 여자친구가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상상을 못 했기에 좀 당황해하고 있는데 여자분이 먼저 아는 척을 하시더라고요. 저와 여자분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W는 별다른 반응이 없더군요. 저의 방문에 놀라워하거나 당황하지도 않고, 반가워하지도 않고.

 

내가 여기 누구 때문에 와 있는 건지 뻔히 알면서 마치 남의 손님인양.

 

어쨌든, 제가 먼저 말문을 열었죠. 그냥 지나가다가 들렀다 선약도 없이 와서 미안하다 별 용건이 있었던 건 아니니 이만 가보겠다. 했죠. 여자분이 그냥 가시게요?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하고 가요, 하면서 손에 들린 맥주를 가리키더군요.

 

 

저는 그냥 두 분 방해할 생각 없다면서 좋은 시간 보내시라 했죠. 그 때까지 W는 별다른 말이 없었어요. 저 혼자 괜히 왔다 후회하며 W의 팔을 툭 치면서, 가볼게, 하고 인사하고 걸음을 옮겼죠.

 

 

한 20m쯤 걸었나, W가 절 잡아세우더라고요. 여자분은 먼저 W집에 들여보낸 것 같더군요.

그냥 갈거냐 묻길래 그냥 가야지. 라고 대답했죠.

 

왜 왔냐고는 묻지 않더군요. 몇 초간 둘 다 침묵 속에 서 있다가 제가, 니 얼굴 봤으면 됐다 그만 가보겠다. 하고 돌아서려는데 W가 절 잡은 팔에 힘을 주더라고요. 제가 할 말 있냐, 물으니, 할 말은 니가 있어서 온 거 아니냐 하더군요.

 

맞는데, 오늘 할 얘긴 아닌 것 같다고 다음에 보자고 했죠.

 

그래도 여전히 제 팔을 잡은 손을 안 놓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W를 보며 그 자리에 멈춰 있었죠. W가, 다음에 또 올거냐고 묻더라고요. 그 말투가 마치 다음에도 오라는 약간의 초대의 말처럼 들리더군요.

 

 

그래서 제가 살짝 웃으면서

올 때마다 퇴짜 놓은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웃기다고 했죠. 난 집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고. 다음에 찾아오면 그 땐 만나줄거냐고 물었죠.

 

대답이 없길래, 그럴 줄 알았다고 말했죠. 그러곤 W의 팔을 풀고 가보겠다 하고 집으로 왔었죠.

 

 

 

W의 표정에서 제가 느낀 건.

약간의 반가움과 상당한 곤란함이었죠.

 

 

그 두 가지 감정 다 저 역시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W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이제 더는 W를 찾아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내 욕심 때문에 괜히 W를 곤란하게 하지 말자 싶었거든요.

 

제가 W를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그 당시 만나고 있다던 여자분에게, 내가 아직 못 잊은 동성친구가 있다고 고백하고 난 후부터였어요.

 

뭐가 됐든 한 번은 그래도 내 감정을 털어놓아보면 후회라도 없지 않을까 싶었죠. 2년여 가까이를 W를 잊은 듯이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당시는 좀 괴로운 감정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었죠.

 

이러다간 죽을 때까지 속앓이하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고, 여기 글을 올리면서 내 감정이 그리 쉽게 정리되지 않겠구나 다시 한번 느꼈던 것도 있었고.

 

 

아.

그 당시 만나고 있다던 여자분은 더 이상 만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연인으로서 만날 마음도 없으면서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서 그만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리고 사과도 드렸고요.

 

 

 

어찌됐건.

그렇게 2월에 W를 보고난 이후에 전 W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연락도 하지 않았죠.

 

너무도 당연히, W에게서도 그 어떤 연락도 없더군요.

 

그러다가 저번 주 금요일 저녁에 저희 집 벨일 울리더라고요. 벨이 울리자마자 W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 W더라고요.

 

문을 열어주니 W가, 니가 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내가 왔다, 하더군요.

 

저번에 차마 못했던 말,

잘 왔어.

라는 말을 해줬죠.

 

 

그리고 같이 술을 마셨죠. 고등학생 땐 이렇게까지 말이 없진 않았던 것 같은데, 물론 그 때도 주로 제가 대화를 이어나가거나 장난치는 쪽이었고 W는 말이 별로 없는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저희 둘 사이에는 급격히 말이 없어졌어요.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일상도 없고, 아무렇지 않은 척 여자친구 얘기를 하는 것도 웃긴 것 같고. 그렇다고 보통의 친구인 척 회사 얘기, 동료 얘기, 일상 얘기를 하는 것도 작위적이라고 느껴지고.

 

그 날도 그랬죠.

그냥 둘이서 술만 마셔댔죠. 서로 따라주지도 않고 자작하면서.

 

 

그러다가 W가, 나 파혼했다, 하더라고요.

W가 꺼낸 말의 의미에 놀라고, 그 말을 담담하게 하는 W의 태연함에 기가 막혀 듣는 순간 벙찐 채로 아무 말도 못했죠.

 

제가 아무 말도 못한 채로 W를 보고 있자, 너 때문 아냐. 라고 하더라고요.

 

전 여전히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난감해하다가 겨우, 왜? 하고 물었죠.

 

그러면서 W가 파혼하게 된 이야기를 해줬죠.

 

 

상견례도 진작 마쳤고 날도 다 잡아놨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의 결혼식 날이 언제였는지 물어보진 않아서 결혼식이 얼마 남았었는지는 전 모르고요.

 

저희 집에 오기 전 주에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러 갔었나보더라고요. W랑 여자분이랑 둘이서만 갔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여자친구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왔는데 속으로 예쁘다고 생각했다더군요. 근데 그 도와주시는 분?이 하는 말이, 예비신부가 얼굴은 너무 예쁜데 신랑분이 속을 많이 썩이나보다 뭐 그런 말을 했다더군요.

 

그게 무슨 소린고 하니, 이런 좋은 날 예비신부 표정이 근심이 가득찼다면서 더 많이 사랑해주시라 뭐 그런 말을 했나보더라고요.

 

그냥 더 많이 예뻐해주라는 의미의 말이었겠지만 그 말을 들으니까

자기가 지금 뭐하는거지, 란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드레스를 입고 나와서, 예쁘냐고 묻는 여자친구를 보니까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 표정이 이토록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나 싶었다더군요.

 

 

자기 혼자 출구를 찾아보려다가 애먼 여자 인생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리겠다는 생각이 그날 갑자기 너무 강렬하게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날 그 웨딩샵인가 거기 나와서

우리 결혼 없었던 일로 하자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둘 사이에 뭐 더 많은 대화가 오고갔겠지만 저한테는 딱 거기까지만 말해주더라고요.

여자친구가 뭐라고 하더냐, 라고 저도 물을 수 없었고요.

 

 

W의 말을 듣고 있는 제 표정이 너무 안 좋았었나봅니다.

 

W가,

책임지라고 안 할테니까 쫄 거 없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지난번에 너를 찾아가지 말았어야 했냐고 물으니,

지금이라도 자기가 정신 차린 게 다행이라고 대꾸하더군요.

 

애꿎은 사람 인생 망칠 뻔 했다고. 사실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을 뻔 했다고.

 

 

제가 W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들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죠.

W 역시도 자기를 왜 찾아왔었냐고 다시 묻지는 않더라고요. 할 말이 뭐였냐고도.

 

 

W가, 또 와도 되냐 묻길래

니가 언제 허락맡고 왔냐고 대답했죠.

 

내가 언제 너 문 안 열어준 적 있냐고.

 

대학생 때부터 제집 드나들듯이 왔었거든요. 비밀번호도 알고 있었고. 제가 없을 때 우리 집에 와있었던 적도 많았고.

 

W가,

2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아서 무섭냐, 하고 묻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너랑 나랑 입장만 바뀐 것 같다고 대답했죠.

 

 

글로 적고 보니 별 얘기 아닌 것 같지만, 그리 길지도 않지만

저에겐 꽤나 큰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저의 속앓이를 들어주면서 위로해주셨던 분들이기에 말씀드리고 싶었거든요.

W와 나 사이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하고.

 

 

마치 마지막처럼 마무리가 되고 있는데 그건 아니고요. 다시 또 오겠습니다.

 

벚꽃엔딩 들으면서 길지 않은 봄날 충분히 만끽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기 좋은 날이네요.

 

추천수80
반대수9
베플요요|2016.03.31 22:47
그.... 그럼.... 두분이서 마음이 통한거죠?? 이젠 먼 길 돌아가는거 아니시죠?? 혹시라도 돌아간다면 그러지마세요... 두분 이제 서로 진실되게 그런 마음. 열어 사랑하세요*!! 그동안 힘들었잖아요. 두 분 다 이젠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주세요!! 진짜 사랑하기 좋은 그런 계절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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