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빨리 온 것 같네요. 잠깐 쓰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저번에 글 쓰고 나서, 다음날인가 제가 물어봤었어요. 왜 잠수탔었냐고. 그 얘기 하면서 그 당시 얘기를 했었는데, W의 기억과 제 기억이 약간 다른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 날, W는 약속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름이랑.
저한테 아름이와의 약속이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약속이 있다는 얘기는 했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W에게 약속있냐고 물었을 때, 제 기억으론, W가 있다없다 말 안했던 것 같은데.
약속이 있다고 하니까 제가 가지마, 라고 했다네요. 그래서 W가 알겠다고 하니까 제가 W를 방으로 데려가서 키스를 했던거고.
키스를 하다가 W가 저에게
헤어져. 라고 말을 했었다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까 기억나더라고요. 그렇게 얘기했었어요.
W의 헤어져. 라는 말에 제가
헤어질거야. 라고 대답했었죠. 정리할거야, 가 아니라.
그렇게 키스하다말고 전 아름이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나갔는데, W 눈에는 그러는 제가 약간 객기로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웬만하면 W의 부탁을 잘 거절안하는데,
아니 애초에 W는 저에게 부탁을 하지도 않지만..
고등학교 때 그 이상한 관계 이후로 알게 모르게 제가 W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에요.
그런 관계로 지내다보니, 헤어지란 말에 헤어지겠다는 제 대답도 그 관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더라고요. 오기 혹은 객기?
그리고 W는 본인이 저를 이상한 길로 유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괜히 헛소리 하는 바람에 애꿎은 사람 한명 동성애자로 만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자기가 내 인생에서 없어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더군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연락안할 생각으로 잠수탄거고.
2년 가량 안 보면서 딴에는 제법 저를 정리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본인의 감정을 확인해보려고 결혼할 여자 소개하려는 명목으로 만나자고 했던 건데, 2년의 시간이 무색할만큼 그 간의 노력들이 다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고 하더라고요.
뭐 제가 나름대로 정리해서 말하는겁니다. 저렇게 정확하게 말해주진 않았는데 전 저렇게 이해했어요.
그래서 제가, 왜 내가 비겁하냐고 물었죠.
W의 결혼할 여성분을 만나던 날, W가 저한테, 넌 끝까지 비겁하다고 했는데 그 말이 두고두고 생각났었거든요.
제 물음에 W가 대답하기를,
니가 다 꼬셔놓고 나 몰라라 하니까.
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W의 싸가지없는 성격와 그 상반되는 약간의 친절에 멋대로 빠진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싸가지 없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했으면 제가 그렇게까지 허우적대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그 상반된 점이 아주 저를 10년 가까이 들었다놨다 했던 것 같네요.
W는 여전히 싸가지가 없습니다. 솔직히 싸가지가 없다는 표현은 잘못됐죠. 예의는 바르거든요. 다만 참 직설적이고, 지나치게 솔직하고, 철저한 개인주의에 표정도 별로 없고.. 그런 모습이 총체적으로 좋게 말하면 시크하다고 해야하나. 냉소적이라고 해야하나. 나쁘게 말하면 싸가지가 없게 보이는 거죠.
실제로 싸가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착하다고도 말 못하겠네요.
여전히 저한테는 잘 연락하지 않고, 제가 전화 걸면 왜. 하고 받습니다. 제가 볼까, 물으면 어디서. 라고 대답하고요.
저희가 둘다 평소에 대화가 별로 없어서 엇갈릴 때가 많아요. 영화도 종종 보는데, 제가 어디서 몇시 영화 볼까, 물으면 그래. 하고 답이 옵니다.
그리고 만나면 둘 다 영화를 예매한 상태라 한명은 취소해야 되고. 저희가 둘다 남자라 계산할 때 특히 뭔가 애매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전 다른 사람이 계산할 때 옆에 멀뚱히 서 있는 제 꼴이 우스워보이더라고요. 여럿이 있을 때야 안 그렇지만, 단 둘이 있게 되면 대부분 제가 계산하는 편이거든요, 그게 그냥 마음이 편해서.
대부분의 남자들이 아마 그렇겠지만 W도 저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계산할 때 옆에 가만 서있는 걸 못 견뎌하더라고요. 그래서 밥 먹을 때도 손 씻고 오면서 계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 이미 계산이 끝낸 경우도 꽤 있고.
이런 부분도 좀 만나다보면 차차 나아지겠죠. 지금은 너무 어색하지만. 단순히 친구로서 만나는 게 아니라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만나는 거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친구끼리는 누구 내든 전혀 문제될게 없는데.
그리고 둘 다 약속장소로 차를 끌고 온다거나.
이게 사전에 말을 하고 한명이 차를 두고 오면 괜찮은데 그런 말을 안하니까요. 그래서 집에 갈때 한명은 그냥 주차장에 두고 다른 차 타고 가기도 하는데, 그럼 다음날 저녁에 주차비가.. 한숨나옵니다. 그냥 버리는 돈이니까 아깝더라고요.
이 모든 게 소통의 부재가 원흉이지 싶습니다.
물론 각자 자기차 타고 집에 가면 되겠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웃긴거 같아서 아직 각자 집에 간 적은 없어요. 보통은 한 차타고 데려다주죠. 휴일 전날은 다음 날까지 함께 있을 때도 종종 있고.
그리고 여전히 스킨십에 인색합니다.
약간 19금 발언일지 모르겠지만, W는 모텔도 가본적 없다고 하더라고요. 한번 갔다가 침대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도저히 남 쓰던 침대에 눕고 남 쓰던 샤워기로 샤워는 건 안되겠더라고.
친구집에서 자본적도 없고. 그건 여자친구집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집으로 초대한 적은 있어도 여자친구 집에서 외박한 적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나마 깔끔한 편이라서 다행인 것 같아요. 제가 깔끔한 성격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W가 저를 가까이 하려고도 안 했을 것 같기도 하고.. W가 많이 유난인 것 같아요.
아 얘기가 많이 샜군요. 스킨십. 절대 먼저 안해요. 그 때 결혼상대자 소개해줬을 때 저에게 처음으로 먼저 키스했던 것 같은데, 그게 마지막이 될 것만 같습니다.
사실, 마치 W의 비밀을 폭로하는 듯한 글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W가 우리집에서는 자고간다, 라는 걸 돌려 말하는 은근한 자랑이기도 하고요.
저희가 대화가 별로 없고 재밌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딱히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라서 아무 얘기나 써봤습니다. 머지않아, 또 봅시다. 이야깃거리가 없으면 불가능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