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의 조언 감사합니다.
제 성격이 누군가한테 거부감이 드는 말을 듣거나 하면 오래 고민하고 거기에 대해 반응을 하는 편인데,
고민하며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제가 거부감이 들었던 이유는 남자친구가 저와의 관계를 동등관계가 아니라 상하관계로
여기고 있다는 '순종적이다'라는 어감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남성분들은 여기에 '순종적'이라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닐 수 있다, 어감이 문제이지
착하고 여성스러운 걸 표현하는 거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그 어감이 문제가 맞는 것 같습니다.
순종적이라는 건 많은 걸 표현하고 있겠죠. 고분고분하고, 배려심이 있고, 조용하고...
그런데 그런 표현을 순종적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 관계가 상하관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걸 언제 깨달았냐면... 내가 어떤 동갑의 동성 친구에게 배려를 베풀고 이해심을 가지고 다가갔는데,
그 친구가 내게 '넌 내게 참 순종적이야' 혹은 '넌 순종적이어서 좋아' 라고 말을 했다면, 그게 좋은 말로 들리지 않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그런 건 다른 말로 표현해야 동등관계가 맞는 것 같습니다.
아니라는 분은..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동갑의 친구, 혹은 아랫사람이 순종적인 당신이 좋다고 말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닌데... 라고 해도, 말이란 건 힘이 있어 언젠가 그 영향을 받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복지시설에서 자라며 느꼈으니까요.
제가 '순종'에 치를 떠는 이유는 순종의 치명적인 폐해를 알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불합리를 강요할 때 사용하기 좋은 도구지요.
불합리함을 깨닫고 그에 대해 항의하는 것을 불평이라고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제가 본문에 썼다시피, 차별이나 학대 같은 불합리를 모두 견디게 하는 권력이 순종 강요입니다.
남자친구가 순종이란 말에 그런 의미를 담아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순간 힘을 가지고 관계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때문에 남자친구에게는 직접적으로 말을 하겠습니다.
동등관계라면 '순종적이라 좋다, 순종적이다'라는 표현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 후에 남자친구가 수긍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 후기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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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제 스무살 후반의 여성입니다.
본론을 말하기 전에 저의 성장 배경부터 알려드리는게 좋을 거 같아서 먼저 써봅니다.
일단 저는 어렸을 적 가톨릭계열 복지시설에서 자랐고,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수녀님들의 훈육을 받았습니다.
수녀님들은... 그 분들도 나이가 있으시고, 가톨릭의 교리상 그런 것이겠지만, 남녀에 대한 차별의식이 뚜렷하시고 항상 순종을 강조하셨습니다.
항상 연장자에게 순종해야 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복지시설 원아 중 남아와 여아는 항상 자연스럽게 차별을 받았습니다.
예컨데 후원자가 있어 어떤 좋은 교육의 기회가 있거나 할 때는 남자원생이 우선,
대량의 작업(마늘, 생강까기, 대청소), 집안일을 할 때는 여자원생이 했어야 했습니다.
특히 같은 중고등학교에 있는 남자원생들보다 제가 공부를 더 잘했음에도,
저는 항상 설거지, 청소를 잘하지 못한다고 혼만 나고 칭찬을 듣지 못했고
남자원생들만 칭찬을 들었던게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성장환경 때문에 저는 순종과 순명을 강요받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가톨릭교 냉담자가 되었고,
남자를 만날 때에도 가부장적이지 않은 사람을 선호했습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는 연하에 가부장적인 마인드와는 거리가 멀어보였습니다.
결혼해서 남자가 전업주부를 할 수도 있다고 하며, 설거지 등 집안일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는 걸로 보였습니다. (연하라서 남자친구는 아직 취준생, 제가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법니다.)
허나 얼마 전에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의 좋은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남자친구가 제가 요즘 여자들과 다르게 나긋나긋하고 순종적이어서 좋다고 말하는 겁니다.
저는 순간 속으로 놀랐습니다. 순종이라면 학을 떼는 수준으로 싫어하는데 순종적이어서 좋다니..?
무언가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싫어도 성장환경의 영향을 받는 건데, 나도 모르게 거기에 내가 영향을 받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가부장적이지 않은 남자가 여자를 순종적이라고 좋아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그저 저의 기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