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퇴근할 무렵 W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W의 이름을 보자마자 전화를 받아서는 반가운 마음에 너가 먼저 어쩐 일이냐 했죠. 약속있어? 하고 묻더라고요. 제가, 아니. 하고 대답하니까, 근처 카페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와있다는 말에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좀 놀라기도 해서, 왜 미리 말을 하고 오지 않았냐고 물었죠. 제가 약속 있거나 야근하면 어쩌려고.
W가,
너 바쁘면 그냥 가고.
라고 정말 남 얘기하듯이 하더라고요.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사실은 저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그렇게 말하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금방 마무리하고 가겠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죠.
W가, 급할 거 없어. 나도 일하면서 기다리는거니까. 라고 말하고 끊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대충 일 마무리 짓고 퇴근하려는데.. 항상 같이 퇴근하는 신입 여직원이 있어요. 열에 아홉은 저 퇴근할 때 환승역까지 제 차로 태워주거든요, 가는 방향이 같아서. 편의상 그냥 신입이라고 부를게요, 좀 정없어 보이지만.
금요일도 저 퇴근할 때 그 신입도 같이 나왔어요. 같이 걸으면서 제가 오늘은 친구가 와있어서 못 태워준다고 말했죠. 이제 막 대학 졸업해서인지 거침없이 솔직하고 밝아요. 딱 요즘 대학생 느낌?
그 신입이, 친구분은 어딨냐고 묻길래 앞에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죠. 그러니까, 그럼 자기도 카페 들러서 커피나 테이크아웃해서 가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회사 나와서 같이 카페에 들어갔죠.
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두리번거리면서 W를 찾으니까 제가 들어온지도 모르고 노트북으로 뭘 하고 있더라고요. 작업하고 있는가보다, 하고 신입이랑 같이 마실 걸 주문했죠. 진동벨을 받아들고 그 신입이랑 W 있는 테이블로 갔어요. 제가 W 옆에 앉으니까 그제야 절 보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서로 소개해줬죠. 그 신입은 되게 방긋방긋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하는데 W는 네, 안녕하세요. 하고 목례하고는 참 무뚝뚝하게 굴더라고요.
신입이 어? 누구 닮으셨다! 하면서 말을 걸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누구 닮았냐 물으니까 누구라 말은 하는데 제가 모르는 연예인이더라고요. 신입이 W에게, 그런 얘기 많이 들으셨죠? 진짜 닮았어요! 하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말거는데 W가, 아니요, 처음 듣는데요. 라고 말하더라고요. 듣는 사람까지도 무안해지게.
근데 신입은 아랑곳하지 않고 되게 발랄하게 말해서 좀 고마웠어요. 그러다 커피 나와서, 신입은 집으로 가고 저는 W랑 같이 카페에 좀 앉아있었죠. 제가, 근데 진짜 어쩐 일이야 말도 없이?, 하고 물으니까 W가 절 보지도 않고, 그냥. 이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어쨌든 W가 절 보러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전 되게 기분 좋았거든요.
제가, 나 보고 싶어서? 라고 물었죠. 그때까지 노트북만 보고 있다가 제 질문에 W가 저를 힐끗 쳐다보더니, 뭐. 라고 대답하더라고요. 대답은 뭐, 라고 했지만 그게 보고싶어서 왔다는 의미 같더라고요. W 성격상,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할 리는 없을 테니까.
사실 제가 오늘 갑자기 글을 쓰고자 한건 신입 때문인데, 그건 차차 적어 볼게요.
제가 W에게, 차는 어디 대놨냐 물으니 안 가져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나 못 만났으면 집에 어떻게 가려고? 라고 했죠. 제 말에 W가 비웃듯이, 차 없으면 집에 못 가냐. 라고 대답하더라고요. 물론 지하철타고 갈 수 있지만, 어쨌든 차를 안 갖고 왔다는 건 음.. 금요일을 저와 함께 보내겠다는 의미같아서 전 자꾸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오더라고요. 제가 자꾸 실없이 웃으니까 W가 약간 절 어이없게 봤었죠.
제가, 우리집갈까. 물으니, 그래. 라고 대꾸하면서 절 보지도 않는데 그것마저도 전 뭐랄까, 사랑스럽더라고요.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W의 냉소적인 태도, 무관심한 말투, 무표정한 얼굴 등등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애정도 없다는 걸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저에겐 항상 긍정의 대답을 해주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W의 의외성이 제겐 특권처럼 느껴져서.
물론 W는 여전히 먼저 스킨십하지 않지만 전 전혀 불만 없어요. 그저 제 스킨십을 밀어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전 좋거든요 진심으로. 지금 제 모습은 보니 팔불출이 따로 없네요.
댓글 중에 키스만 했냐는 질문 있던데, 이런 거 글로 적어도 되나 모르겠습니다만 스킨십 얘기 적어볼까요.
예나 지금이나 저 혼자 W에게 엄청 집적대고 있어요. 저번에 심야영화 보러갔는데, 영화관이 텅텅 비었었어요. 저랑 W는 맨 뒷자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날도 제일 뒷줄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죠. 몇 없는 사람들은 거의 중간에 몰려있었고요.
광고가 나올 때 제가 팔걸이에 제 손을 올리고는 손을 펴서 W에게 손 잡자는 식의 제스처를 취했죠. W가 하이파이브 하듯이 제 손을 짝 치고는 안 잡더라고요. 그래서 W와 제 자리 사이의 손잡이를 올리고 제가 W 손을 잡았죠.
밖에서 그런 스킨십이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 해보고 싶더라고요 한번쯤은.
W 손을 힘주어 잡았는데 W는 그냥 잡힌 채로 있더라고요, 같이 잡아주지 않고. 그래도 뭐 제 손을 빼지 않는 게 어딘가 싶어서 저도 좋았어요.
근데 계속 손을 잡은 채 영화를 보는 건 좀 불편하길래 보다가 중간에는 손을 놓고 봤었어요. 제가 요즘 W를 향한 감정이 좀 주체가 안 된다고 했었잖아요. 그 날도 그랬었죠. 영화 보다 말고 제가 W의 얼굴을 잡아서 제 쪽으로 얼굴을 돌리게 했어요. W 특유의, 진짜 귀찮아하는 표정이 있어요. 또 왜 이래. 딱 이 표정. 다른 말로는 설명이 안 돼요.
공공장소에서 그러면 안되는 거 저도 잘 아는데, 그날은 입맞추고 싶더라고요. 사람도 없으니.
키스 하고 싶은 마음에 W를 보고 있었는데 W가, W 얼굴을 잡고 있던 제 손을 툭 밀어내더라고요. 그러곤 다시 고개 돌려서 스크린을 보더라고요. 전 계속 W를 보고 있었는데, 니가 그러거나 말거나 난 영화를 보겠다, 뭐 그런 태도였죠.
그래서 제가 W 목을 끌어당겨서 입을 맞췄죠. 입 맞추자말자 손으로 제 얼굴을 밀어내더라고요. 귀찮게 하지 말라는 듯이. 근데 뭐 전 그런 거에 굴하지 않습니다. 다시 시도했죠. 두 번째 입 맞췄을 때는 가만히 있더라고요. 저도 사실 키스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허락해주는 듯한 W의 태도에 영화관에서 키스해버렸죠.
좀 풍기문란인가. 누군가는 이 글을 읽다가 인상이 찌푸려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공공장소에서.
저희 집에서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영화나 아니면 예능 자주 보거든요. 며칠 전에도 같이 TV 보다가 제가 갑자기 키스하고 싶은 마음에 또 W에게 달려들다시피 했죠. 키스만으로 끝내면 좋은데 중간에 멈추기가 힘들죠 아무래도.
보통은, 아니 열이면 열 다 제가 W에게 달려들고 귀찮게 굴어요. 그 날도 소파에서 키스하다가 습관처럼 W의 셔츠를 벗겼어요. 사실은 더 하고 싶죠. 이것저것 안 해본 것까지 다. 그렇지만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저나 W나 이 감정이 고등학생때부터 이어졌다는 건 차치하고, 일단은 둘 다 이성애자처럼 살아왔으니까요. 남자끼리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제가 W 몸을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소파에서 키스하다가 제가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어요. 침대에 W를 눕혀놓고 또 키스했죠. 보통은 한 시간 가까이 키스해요. 그것 말곤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서. W는 눕혀놓고 전 앉은 채로 상체만 숙여서 키스했거든요. 그러다가 끓어오르는 흥분감과 본능을 감당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키스를 멈추고 앉아서 W를 보고 있었어요. 제가 W 몸 보는 걸 좋아한댔잖아요. 그 날도 W 몸을 빤히 쳐다보니까 W가 팔로 자기 눈을 가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W 팔을 내렸죠. 그러니까 W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리더라고요.
그런 W가 괜히 더 자극적이어서 다시 키스했어요. 물론 입에만 하는 건 아니죠. 귀에도 하고 목에도 하고 팔, 어깨 등등 상체에도 하죠. 가끔씩 W가 제 머리를 밀어내기도 하고.
근데 그 날은 좀 제가 이상했어요. 못 멈추겠더라고요. 그래서 W 바지 허리춤을 손으로 잡고는 저도 모르게, 아 진짜 하고 싶다. 라고 말했어요. 그러곤 W 가슴에 얼굴을 기대곤 한참을 그러고 있었어요, 괴로워하면서.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나갔다 오겠다, 하고 밖에서 달리기 하다 왔어요. 정말 분노의 뜀박질이었어요. 진정시키려고 나간거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그 에너지를 분출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더라고요.
글로는 다 적을 수 없지만 W와 같이 있을 때 제가 W를 되게 귀찮게해요.
제가 한번은 W한테, 너 샤워하는 거 보고 싶다. 라고 말한 적 있어요. 같이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고만 있겠다는데 그 말 하자마자 W가, 개소리하지마. 라면서 정색하더라고요. 그래서 알겠다고 체념하는 척 했죠. W가 샤워하러 들어가고 몇 분 뒤에 샤워기에서 물소리가 들리길래 제가 문 열고 들어갔어요. W가 수건 던지더라고요 제 얼굴에. 그래서 그냥 나왔어요.
사실 제가 오늘 글을 적게 된건, 금요일에 잠깐 W와 마주쳤던 신입 때문인데. 그러니까 월요일 얘기에요.
월요일 날 신입이랑 둘이 외근 나갔다가 둘이서만 점심을 먹었거든요. 밥 먹다가 신입이 W에 대해 말을 꺼내더라고요. 뭐 놀라지 않았어요 너무 익숙해서.
그러다가 그 신입이 핸드폰으로 무슨 사진을 보여주더라고요. 누구냐 물었더니 그 친구분이랑 닮지 않았냐고 하더군요. 그날 카페에서 말한 그 연예인인가보더라고요. 저는 W 얼굴을 잘 아니까 딱히 그 연예인과 닮았다고 못 느꼈는데 그 신입은 엄청 닮았다고 막 다른 사진도 여러장 보여주더라고요. 뭐 금발사진도 있고 검정머리도 있고 엄청 머리가 현란하더라고요. 빨간 머리 한 사진 한 두 장은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제가 닮았다고 말할 때까지 사진을 보여줄 기세길래 몇 장 보고 닮았다고 했어요.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기도 했는데, 그것도 좀 웃긴거 같아서 안 물어봤어요. 이름 알게 되면 글 적을 때 말해드리려고 했거든요.
한창 신나서 그 남자연예인 사진 보여주다가 갑자기, 그 친구분은 여자친구 있어요? 하고 묻더라고요. 뭐라고 대답할까 하다가, 얼마전에 헤어졌어요. 라고 대답했죠.
여자친구 있냐는 질문에 제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건.
예전에, 그러니까 대학생 때 W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대답하니까 대부분 돌아오는 말이, 그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달라는 말이더라고요. 여자친구 엄청 예쁠 것 같다거나 아니면, 뭐 이런 사람은 어떤 여자 사귀는지 궁금하다, 이러면서.
그리고 여자친구 없다고 하면 괜히 좀 서로 피곤해질까봐 없다고 하기도 꺼려지더라고요. 소개해달라고 하면 곤란하기도 하고 저는 W가 온전히 솔로라고는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요.
어쨌든 얼마전에 헤어졌다고 대답하니까, 왜 헤어졌냐고 묻길래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른다고 둘러댔죠. 그러다가 또 누구 사진을 보여주더라고요. 진짜 예쁘지 않냐고. 엄청 화려하게 생긴, 눈 크고 코 높고 얼굴 갸름한 전형적인 미인의 사진이길래, 네 진짜 예쁘네요. 라고 했더니 자기랑 친한 언니인데 인스타에서 되게 인기가 많다 그랬나, 뭐라 하더라고요.
뜬금없이 그 언니 자랑을 하길래 그냥 듣고 있는데, 이 언니도 솔로예요, 라고 하길래 아차 싶었죠. 역시나, 그 친구분이랑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요? 하더라고요.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적당히 화제를 돌릴랬는데, 친구분 이상형이 뭐냐 묻더라고요. 그것도 잘 모르겠다고 하니, 남자들 이상형은 예쁜 여자라면서 이 언니랑 친구분이랑 진짜 잘 어울릴 거 같다고 막 신입이 신이 나서 말을 하는데.. 아 곤란하더라고요.
더 일이 커질까봐, 글쎄요 근데 친구는 당분간 여자 만날 마음 없을걸요 헤어진 지 얼마 안 돼서. 라고 했죠.
근데, 무슨 얘기 하다가인지 그 신입이 뜬금없이
혹시 친구분 게이 아니에요? 라고 묻더라고요. 밥 먹다가 뿜을 뻔 했어요. 애써 침착한 척, 네? 웬.. 하고 대답했더니, 그 친구분 여자친구 실제로 본 적 없죠? 라고 완전 확신에 차서 말을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그런 말 못 들어봤냐고 하더라고요.
뭐라더라, 잘생긴 사람은 결혼했거나 아님 게이거나 둘 중 하나라면서, 그런 말 몰라요? 하길래, 네 전 처음 들어요. 라고 대답했어요. 태연한 척 했는데 좀 놀랐어요. 이런 게 뭐 여자의 육감 이런건가 싶어서.
저보고 게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묻길래, 신입이 뭘 눈치채고 하는 질문인가 싶었어요. 전, 글쎄요 별로 거기에 대해서 생각 안 해봤는데. 라고 대답했는데 그때부터는 또 게이에 관해서 이야기하는데... 괜히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반응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신입이, 전 잘 돼가고 있는 여자가 있는 줄 알아서 저랑 W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진 않지만 한편으로는 좀 불안하기도 하고. 셋이 있던 그 잠깐의 순간에 뭔가를 알아차렸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겠죠. 아.. 좀 속이 답답해서 밥 먹다 체할 뻔 했어요.
이게 엊그제 있었던 일인데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말해주고 싶기도 해서 적어봤어요.
아. 제가 쓴 글 W에게 보여줄 의향은 없냐고 물으셨던데.
음 글쎄요 아직은.
W에게 아닌 척하며 숨겨왔던 속내들이 글에는 다 나와있잖아요. 그걸 W가 다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낯뜨거워서 아직은 W에게 보여줄 의향은 없어요. 제가 다소 W를 가해자마냥 혹은 남의 여자나 뺏는 미친놈처럼 묘사했던 건 아닌가 걱정도 되고요. 아니 실제로 그렇게 적기도 했고, 그래서 댓글에 W 욕도 적지않았으니 그런 것도 좀 걸리고요.
근데 제 글을 본다고 해도 W는 그다지 큰 반응은 없을 것 같아요. 화내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막 좋아할 것 같지도 않고.
예전에는 글 쓸 때 시간도 오래걸리고, 쓰고나면 괜히 저도 우울해졌는데 요즘은 글 쓰는 내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어요. W와의 시간들을 반추하는 것도 기분 좋아지고요. 그래서 자주 적게 되나 봅니다.
요즘 너무 더운데, 미리미리 건강 챙기시길.
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