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 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도 이른바 '사드(THAAD, 종말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가 한참 이슈화되고 있을 때였다. 물론 그 당시 한국 정부는 이른바 '쓰리 노(3 NO, No Request, No Consultation, No Decision)'라는 표현으로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즉, (사드에 관해) 미국 측으로부터 요청도 없었고, (한미 간에) 협의도 없었고, 따라서 결론도 없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유식하게(?) 표현한 언론용 용어였다. 이 용어는 더 나아가 일부 한국 보수 매체들이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꽤 중심(?)을 잡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사실, 미국 국방부나 국무부 관계자들은 이미 지난 2014년부터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한 부지 조사까지 다 마쳤는데, 한국 정부는 아무런 협의도 없었다고 하니, 중국과 러시아 등의 입장을 고려해 일단 시치미를 떼고 보자는 한국 정부의 고뇌(?)로도 비쳤다. 그런데, 그동안 주로 국제관계를 보도해 온 기자는 의문이 하나 생겼다. "아니, 주한미군에 배치한다면, 그냥 미군이 예전처럼 자기들 무기 하나를 갖다 놓는 것인데, 왜 우리랑 협의를 하냐"였다. 이미 '한미상호방위조약(제4조)'에도 있듯이, 미국 맘대로 하면 되는데 말이다.
더구나 사드는 방어용 무기라고 하는데,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전략 핵무기이든 전술 핵무기이든 우리 땅에 들어오거나 나가거나 할 때, 우리랑 협의를 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대체 언제 미국 핵무기가 들어왔는지, 또 언제 왜 어떤 이유로 나갔는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보다도 의미가 작은 이 무기 체계 하나로 왜 이 난리를 떠는 것일까. 아직 제대로 군사 작전권도 다 인수하지 못한 우리의 군사 주권이 이제는 강화된 것일까. 대체 이해가 안 되는 이 상황을 지켜보며 기자는 당시 한국 국방부에 전화를 걸었다.
국방부 관계자에게 다짜고짜, "아니 솔직히,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그냥 미군이 사드를 도입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그들(미국)이 우리가 동의 안 해도 도입한다면 막을 법적 방법 하나만 이야기해 보라"고 캐물었다. 이 관계자는 "그것은 맞다"며 더 이상의 답변을 못 했다. 이에 기자는 이번에는 한 군사 전문가에게 전화해 같은 질문을 했다. "미군이 그냥 도입한다고 발표하면 막을 법적 방법이 있냐"라는 같은 질의에 이 전문가는 "사드 레이더 주파수 등은 그래도 한국이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이에 기자가 "지금 주한미군 레이더들이 다 한국 주파수 허가를 받고 작동하고 있냐"고 반문하니 이 전문가도 더 이상 답변을 하지 못했다.
참 희귀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냥 사드 도입하면 되지 무슨 '협의 어쩌고'에 의심을 품어 그래도 기자 정신으로 국방부나 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아무도 "당신 말이 틀렸다"고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되새겨 보자. 한국 언론에서는 사드 배치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는 바로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주한미군 사령관 말이다. 그는 익히 알려진 바대로 지난 2014년 6월에 한국에서 개최된 한 포럼에서 "본국에 사드 (한국) 배치를 요청했다"라는 발언으로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최초로 공식 군불을 땐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발언한 내용의 핵심은 한국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2014년 6월 3일, 한국의 한 호텔에서 발언한 정확한 내용을 다시 복기해 보자. "한국에 사드 배치를 고려하려는 추측이 있다. 그것은 미국의 주도권(initiative)이다. 그래서 사실, 내가 사령관으로서 (본국에) 요청했다(There was consideration being taken in order to consider THAAD being deployed here in Korea. It is a U.S. initiative, and in fact, I recommended it as the commander)"였다. 우리로서는 좀 열 받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이 우선권을 쥐고 있고, 그래서 본국에 건의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스캐퍼로티 사령관도 '한미 동맹'을 강조했지만, 사드는 '미국이 주도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권'에서 슬그머니 '동맹 결정'을 강조하고 나온 사드 한반도 배치
그런데, 주한미군 사령관마저 대놓고 이렇게 한국의 군사 주권에 '디스'를 가하자, 이를 보다 못한 고문관이 등장했다. 그것도 전임 주한미군 사령관이 등장한 것이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미 지난 2014년 7월, 워싱턴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도 "사드 문제는 한국민들에게 복잡한 문제인 만큼, 한국 정부가 조용히 합의를 이룬 뒤 국민의 동의를 구하도록 배려하는 게 순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도 그는 "양국 간 이견이 있는 듯한 지금 상황을 기뻐할 상대는 북한과 중국"이라며 "사드와 관련해 미국이 한국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잘못이며 무책임하다"고 대놓고 충고한 것이다.
쉽게 말해 미국이 한국을 사드 배치로 너무 겁박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미국이 한국 정부와 국민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보다는 외교 협상의 범주에서 사드를 비롯한 방어력 강화 방안을 조용히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의 '모양새를 갖추라'는 이 훈수는 그대로 통했다. 이후 미 국방부 관계자들의 발언에서 사드는 미국이 우선권(initiative)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발표와 발언에서 신조어인 이른바 '동맹 결정(alliance decision)'이 더욱 강조되었다.
올해 초, 군 작전 사령관으로서 한국 언론 매체뿐만 아니라, 여타 대중 매체와도 인터뷰를 삼가야 하는 해리 해리스 미군 태평양 사령관은 전례없이 한국의 한 매체와 사드 관련 단독 인터뷰를 자처하며, 사드는 '동맹 결정'이라고 강조하고 나선 이유이다. 그는 사드는 "우리가 한국에 요청을 한다고 해서 이뤄지고, 한국이 우리에게 요청을 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결정이 아니다"라며 "한국과 미국이 양자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며 '동맹 결정'의 용어를 설명했다.
그런데 해리스 사령관은 그날 더 희한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미국 의회에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지지한다는 의견을 냈고, 사드 배치의 유용성이 있다고 믿는다"며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 나의 개인적 견해이며 사드 배치 결정은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한 것이다. 아니,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도 이미 본국에 사드 한국 배치 요구를 했고, 그 보다 윗선인 해리스 사령관도 "미 의회에 의견을 냈고, 사드 유용성을 믿는다"면서도 "이는 개인 의견이고 한미가 공동으로 결정하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쉽게 말해, 미 국방부 최종 정책 결정권자들이 이미 다 결론을 내린 사항을 갑자기 한미가 결정하라는 것이다. 사드 문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 한국과 미국 누구도 "동맹이 결정할 것"이라고 그렇게 강조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한국은 이미 법적으로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미국이 그냥 결정해서 실행한다면 별다른 대책도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사드 문제는 미국의 주도권"이라고 한 것이다. 미국이 이미 우리 땅에 부지 조사를 다 마친 것을 모를 리도 없는 한국 정부는 그나마 무언가 핑계로 "미국에서 요청도 없었다"고 발뺌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자 이제, 그나마 미국 정부는 '동맹 결정'이라는 용어로 한국 정부의 위상(?)을 조금 배려했다. 그리고 그 배려 하나를 가지고 미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비롯해 중국을 압박하면서, 남한(South Korea)에도 미국의 레이더 군자산을 갖다 놓겠다는 것에 나름 성공했다. 또 좀 멀리 있는 러시아마저도 "유사시 사드 기지를 타격하겠다"며 미국에 벼르고 있지만, 미국으로서는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은 셈이다. 즉, 중러 견제용 전략적 자산인 사드의 한국 전개에도 일단 성공했지만, 그리고 이는 미국이 주도(initiative)한 것이 아니고, 한국과도 상의한 '동맹 결정'이라는 것이다.
즉,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사드를 배치했지만, 이는 미국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원래 사드는 미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그냥 갖다 놔도 되는데, 한국도 동의하니 빨리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더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어차피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할 줄 뻔히 알고 있었고, 독박은 한국이 쓰라는 것이다. 미국산 핵무기를 들어올 때는 한국 정부와는 협의조차 하지 않았고, 할 이유도 없었던 미국이 이미 다 결정된 사드 배치에 관해서는 한국과 협의했다며, '동맹 결정'이라는 용어로 강조하는 이유이다.
☞ 국제외교정책평론가 김원식《오마이뉴스》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