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마라톤
수첩을 접었다.
요즘엔 계속 영화같은 꿈을 꾼다. 원래 꿈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요즘에는 영화처럼 장면장면이 잊혀지지 않는 꿈을 꾼다.
피곤해선가?
오늘도 피곤하지만 할수있는 최대한 열심히 업무를 마치고 아르바이트 가기전에 잠깐의 수면을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
핸드폰과 시계의 알람을 맞춰놓고 잠이들었다.
'헉~ 헉~ 헉~' 츨발한지 채 30분도 안된것같은데 벌써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천천히, 조금만 속도를 줄이자, 목표는 기록을 세우는게 아니라 완주다.' 가연이를 위해서, 가연이 엄마를 위해서 죽으면 죽었지 포기할 수 없다.
나는 33세의 가장이다. 내게는 토끼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마누라가 있다.
지금 이 토끼같은 자식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소아암인 백혈병과의 힘든 싸움.
주변사람들은 나를 위로한답시고 '걱정말고 힘내, 소아암은 완치율이 60~70%나 된데. 힘내!!'라고 말한다.
내게는 이런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만약 그럴리는 없지만 완치율의 반대인 사망률에 들어가는 30~40%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만약 돈을 많이 써서 낫는 병이라면 얼마든지 쓸수 있다. 모자란다면 내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병과의 싸움에서 돈은 큰 무기가 되지 못한다.
환자와 보호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투병생활이 길어질수록 환자 본인은 물론 보호자도 지쳐만 가게 된다.
꺽이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 보지만 병과의 싸움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인것처럼 기다리면서 서서히 지쳐간다.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꾸 멀어지는 것만 같은 불안함.
이 마라톤 처럼 42.195km만 뛰어가면 결승점에 골인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힘들어도 지쳐도 뛰어갈텐데, 병과의 싸움은 그렇지 못하다.
병과의 싸움에는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두가지 결말이 있을것이다. 살던지, 죽던지.
살수 있다는 희망만 있다면야 얼마든지 기다리고 함께 아파 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만 하게되면 나는 한없이 무너진다.
불확실한 결말에 의해 하루에도 열두번식 희망과 절망을 오갔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운동이 마라톤이다.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는 운동인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 을 대변하는 역할 을 하게되고 그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곤 한다.
이렇게 스토리는 마냥 낭만적이지만 실제의 마라톤은 그렇지 못하다 계속되는 포기의 유혹.
난 이 마라톤의 끝은 42.195km 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마라톤의 끝은 42.195km가 아닌 포기하는 지점이 될수도 있다는것을 알게되었다.
육체의 고통은 계속적인 포기를 유혹한다.
그것도 아주 집요하게 '내가 왜 이것을 해야하지? 42.195km 를 뛰고나면 내 현실이 바뀌나? 아무것도 바뀌는것은 없어. 몸만 힘들 뿐이야. 넌 할만큼 했다구, 더이상 쓸데없는데 힘낭비하지마. 이런다고 가연이가 완치되나? 이건 아무 의미없는 짓이야. 더 이상 너 자신을 힘들게 괴롭히지 말라구, 넌 지금도 충분히 힘들잖아. 자 이제 포기해' 등등의 계속적인 포기의 유혹에 뛰기를 멈추고 멍하니 서있다가 다시 뛰기를 몇번을 반복했다.
난 약간의 장애를 갖고있다. 왼쪽다리가 오른쪽다리보다 짧다. 그래서 걸어다닐때마다 기우뚱거리며 걸어다닌다.
어린시절 내 친구들은 나를 보며 '절름발이' 라 불렀다.
나는 그런 놀림을 받으며 많이 울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면서 성장했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고 살고싶지 않고 나같은 불편한 사람 들을 치료해주기 위해서 의사가 되었다.
이런 불편한 몸을 갖은 내가 낳은 내 딸이 나보다 더 몹쓸병에 걸렸다는것은 내게 큰 죄책감을 갖게 한다.
'내가 정상치 못한 몸이라, 정상치 못한 유전자를 가연이에게 줘서 저아이가 아픈것'이라는 말도 안돼는 자책감.
하지만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난 가연이를 볼때마다 너무 미안하다.
마음이 찢어지는것 같이 아프다.
나같은 사람이 오래 뛰게되면 허리에 무리가 굉장히 많이 온다. 조금 뛰고나면 앉아있지도 못할 만큼 허리에 통증이 온다.
하지만 내 몸의 고통은 고통도 아니다. 저 조그마한 아이는 나보다 더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 고통을 그 조그마한 몸으로 받아내고 참고 견기고 이겨내려고 하고 있다.
내가 이 마라톤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가연이에게 그리고 내 부인인 가연이 엄마에게 '난 절대로 내 가족을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메세지를 전해주는것.
난 그 메세지를 전해주기위해서 골인지점을 향해 뛰어간다.
그리고 거의 꼴찌이지만 난 그 메세지를 전해줄 수 있었다.
'가연아 난 널 포기하지 않아'
'띠리리리~ 띠리리리~'
아~ 이제 일어나야 하는구나.
간단히 세수를 마치고 아르바이트하는 곳으로 걸어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인생의 마라톤'
마라톤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뛰느냐에 따라서 많은 의미를 갖는 운동이다.
1등을 하기위해.
완주하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누군가에게 자신의 강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목적에서건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은 박수와 축하를 받아야 마땅하다.
힘든과정을 이겨냈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였기 때문에.
흔히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한다. 마라톤과 인생의 가장 닮은점은 '단 1초도 남이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포기를 떠올린다.
힘들어서이기도 하고, 다른사람과 의견이 안맞아서 이기도 하고, 내가 잘못 판단해서 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목적으로 인생의 마라톤을 하는 만큼,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포기할 수 있다.
포기를 나쁘다고 말할 의도는 없다. 단지 포기의 시점이 어딘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풀코스' 마라톤경기에 참가해 뛰던 사람이 21km 지점에서 포기했다면, 그가 '하프마라톤'에 참가했다면 그는 완주를 하고도 남은 시점에 포기를 하게 된것이다.
자신의 목표를 설정할 때 내가 해 낼수 있을 만큼의 목표를 정한다면 포기가 아닌 완주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거리의 마라톤에 참가하던지 간에 골인지점을 통과하면 만족감과 함께 자신감이 상승되어서 다음단계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
인생에 있어서 '도전'만큼 중요한게 거리에 상관없는 '완주'는 아닐까?
이처럼 삶에 있어서 성공의 자신감을 자꾸 심어,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