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차는 벤츠다!
내가 자랑스럽게 했던 말들 중 하나.
우리아빠는 사업가셨다. 내가 초등학생 때 사업을 시작하셨고 나름대로 좋은 수입을 얻어 우리 네 가족은 좋은 살림살이를 살았다.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넘기기 힘들다던 그 5년을 넘겨 우리 아빠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아빠는 사장이셔서 출퇴근시간이 자유로우셨다. 내가 학교가던 시간보다 늦게 출근하시고 어떤 때는 나보다 일찍 집에와계셨다. 사업이 한참 잘 되어갈 땐 아빠는 들어오는 돈을 어디에 쓰셔야 할지 몰라 이곳저곳에 투자를 하셨다.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17주년 쯤 아빠는 엄마에게 벤츠자동차를 선물하셨다. 무엇이 먹고싶다는 내 말이 떨어지기도 무섭게 그 날 저녁 아빠는 내가 먹고 싶다던 음식을 손에 쥐어 퇴근하셨다. 하루는 내가 사고 싶다던 옷을 사러 쇼핑을 가서 백만원어치 이상의 쇼핑 후에 호화로운 저녁을 외식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기만했다. 나는 그 행복이 평생일 줄 알았다.
빨간 딱지는 드라마에서만 보던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일이 실제로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빠의 사업은 어느 순간부터 빚이 쌓여 갔고 어린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던 해에 우리는 집을 팔았다. 두 대의 외제차도 모두 팔았다. 그리고 전세를 얻어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나는 돈에 대한 아무 걱정이 없이 행복했던 우리 가족이 집을 팔고 전셋집을 얻어 이사를 와야만 했던 상황에 대해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집을 팔아도 지속되는 빚의 존재는 우리 아빠를 대부업체에 발을 내딛도록 만들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집으로 날아오는 독촉장 때문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우편함에 꽂혀있는 편지봉투 밖에 대부업체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는 설마설마하며 열어 보면 안 될것 같은 기분에도 열어보게 되었다. 빌린 돈을 갚을 날짜가 지나서 아빠명의로 독촉장이 날아오는 것이었다.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나는 거의 매일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편지를 하나씩 꺼내왔다.
많이 울었다. 고등학생인 나는 독촉장이 무엇인지 대부업체가 어떤 것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이건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 혹시나 우리집에 찾아와서 물건을 다 박살내진 않을까, 해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다. 엄마, 아빠는 이미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많이 힘들것이었고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털어놓기엔 우리가족을 그리고 나를 동정의 눈으로 바라볼까봐, 혹여 소문이 크게날까봐 그게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혼자 매일밤을 울었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던 우리 가족이 어느순간 이런 궁지에 내몰리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는데.
양복만 입고 출근하셨다가, 출근하셨던 그모습 그대로 퇴근하시던 아빠가 어느 순간부터 옷에 흙이 묻어 있는 채로 퇴근하셨다. 나만 보면 마냥 웃음만 짓던 아빠의 얼굴엔 웃음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 참을 수 있었는데 아빠의 몸에 흙이 묻어있던 모습은 참을 수 없었다. 그 어느순간보다 마음이 아팠다. 정말 욱신거렸다. 마음 한쪽이. 나는 아빠 앞에서만큼은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집안 분위기가 너무 삭막하고 우울해서 난 집에들어가면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만 보였지, 진지한 이야기는 차마 꺼내지 못하였다. 난 아빠를 껴안고 울었다. 아빠한테 많이 힘드냐고 물었다. 펑펑울면서.. 아빠는 괜찮다고, 보일정도로 눈물을 꾹 참으면서 나를 안아주셨다. 항상 회사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그래도 육체적으로는 편안한 일을 하시던 아빤데 나를, 우리가족을 위해서 밖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건지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시는건 아닌건지 너무 마음이 아팠다.
며칠 전 엄마 대신에 설거지를 하고 있다가 문득 옆을 봤다. 냉장고 옆엔 흔히 말하는 빨간 딱지가 붙어있었다. 압류표였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둘러보니 몰랐던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어 있었다. 냉장고, 티비, 에어컨, 쇼파, 컴퓨터.. 우리 집안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건지 알고 싶었고 언제 이런일이 일어난건지 알고싶어서 엄마 앞에 앉았다. 엄마를 쳐다보고있으니 울지 않으려 애를 써도 눈물이 떨어졌다. 엄마가 놀라며 왜그러냐고 나를 안아주셨다. "압류표.." 엄마는 나를 더 꽉 안아주셨다. 내가 또 걱정할까봐 신경쓸까봐 엄마는 끝까지 비밀로 하려했는데 언제 보았느냐며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셨다. 안 괜찮은거 나도 안다. 그정도 쯤은 나도 안다..
돈에 민감해졌다. 아무 생각 없이 막쓰던 그 돈에 대해 민감해졌다. 한푼이라도 아껴야하는, 지출을 거의 없애야하는. 친구들이 저녁을 먹고 매점에 간다고 할때도 나는 다이어트를 핑계대며 교실에 남아있었다. 영화를 보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도 요즘 지출을 너무많이 해서 돈을 아껴야 한다는 거짓말로 거절도 많이 했다. 더치페이를 할 땐 쫌생이처럼 백원단위까지 신경쓰고 싶지 않은데 마음은 그런데 실제론 그러지 못하는 내가 너무 처량해보인다.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서 본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 쓰게되었다. 내 이야기같아서. 거기서 말했듯 주변에 이렇게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꼭 해달라고 부탁하고싶다. 함께 있을 땐 할 거 다하는 애처럼 보여도 뒤에선 열심히 일하고 굶어가며 친구들에게 맞추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꼭 해줬으면 한다는 필자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얼른 내가 커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 지금 아빠는 사장일 때보다 훨씬 열심히 다른 일을 하고 계신다. 언젠간 행복이 올 것임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