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 : 35 ~ 45
{상대의 기준을 맞추는 섬김}
주품이 큐티 ^ ^
https://youtu.be/4Pht3iDWNE0
카보드 2016 9 11 우리 교회 성가대입니다. ^ ^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원어사전
종;dou'lo"(1401, 둘로스)
노예, 종 slav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둘로스는 데오(devw: 묶다)에서, 아니면 델로(delw: 올가미에 걸다, 생포하다)에서 유래했으며(참조: Vanicek p.322), '노예, 종'을 의미한다. 둘로스에는 자기 자신이 자율을 파기하고 다른 사람의 뜻에 자기의 뜻을 복종시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둘로스는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의지에 내맡긴 자로서, 자기 자신에 속해 있지 아니하고 어떤 다른 사람에 속해 있는 것이다. 대체로 노예의 삶은 집안일이나 공무에서 노동과 봉사가 강요되는 삶이었다.
②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인 것은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둘로이(종들)이고, 따라서 그들의 생명이 부활하여 승귀하신 주님께 바쳐진다는 사상이다. 특별히 바울은 이런 사상을 대표한다.
# 섬김이라는 그리스도인의 길은 진리이기도 하며 참으로 왜곡되기도 쉬운 개념인거 같습니다. 자칫 종교인이 자신의 출세와 명예와 안일을 위한 도구로 전락되기 쉬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를 지나 목회자가 될 때까지 자신의 권세를 위한 순서로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더욱 높아진다는 것은 더욱 겸손하며 더욱 섬기며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의지를 드려 권리를 포기하고 헌신하며 죽기까지 충성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곡되어 변질되고 교회의 신앙이 시간이 지날수록 교만하고 게으르고 독단 독선으로 치우치는 경우를 볼 때에 모든 이로 하여금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같은 기독신자로서는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은 우리 기독인인 권사가 장로가 목사가 저래 되었다고 비방하면 그것이 불신자들 앞에서 누워서 침 뱉기가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불신자가 신자를 욕하는데 신자가 신자를 욕하다니요 서로간에 소금을 두어 서로 화목하기는 해야 하지만 꺼림직한 사실입니다.
같이 주님을 향하는 천국을 향한 기러기들이 서로 기럭 소리내면 칭찬하고 기운을 복 돋워 주어야 하지만 핀잔하는 소리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안타까움입니다.
우리 집에는 10년이 넘는 기간 여러 요양보호사들이 거쳐 갔습니다. 그제까지만 해도 그들이 잘하던 잘 하지 않던 그 오랜기간 그분들을 쫓아 내보낸 적도 없습니다. 5분정도의 선생님들이 오가 셨는데 개인사정으로 바뀔 뿐 모두 정겹게 잘 일해 왔습니다. 그분들 중 불신자 카토릭신자 권사님들과 전도사님이 왔다 가셨습니다. 모두 휼륭히 자신의 임무를 마치셨습니다.
그런데 여목사님이 보름전 쯤에 새로 오셨습니다. 저는 가장 신앙적으로 좋으시기에 가장 반가히 여겼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교회 권사님께 말씀 드리니 여목사 중 위험한 분이 얼마나 많은데 좋아하냐고 하셨습니다. 신학생으로 대충 알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기에 나름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예외 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그렇코 지금까지 다녀가신 요양사 분 중 가장 게으르고 불통이고 위험한 분임이 결론을 났습니다.
소통이 안되 혼자 억지로 일을 하시다 어머니께서 제등에 오싹할 정도로 위험한 일도 벌어질 뻔 했습니다. 전에 계신분이 인수인계를 안해 제가 해야 하는데 얘기 듣기도 싫어 하시고 자신이 모르면 연락해야 하는데 혼자 꽁하고 일을 처리하다 대 사고를 낼 뻔 했습니다. 지금까지 요양사 분들은 제게 식사를 차려주기도 하지만 그분이 계셔도 혼자 라면이나 끓여 먹고 있어야 했습니다. 좀 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니 혼자 차려 먹으라고 혼나기도 하고 인사하기는커녕 인사도 아예 안 받으시고 고개를 푹 숙이시고 ... ^ ^
제가 모르는 그분의 아픔이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아픔을 봅니다. 제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아픔이 그분께 있어 그분이 여목사님이라도 섬기지 못하는 아픔이 있었으리라 저는 이해하고 싶습니다. 어디를 가시든 하나님의 축복과 평강이 있으리라 주 예수님 이름으로 그 여목사님을 축복합니다. 무순 이유로 목회를 그만 두시고 하신지 모르지만 제가 판단 할 일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섬김이라는 것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 섬김의 근본을 찾아야 합니다. 제 감정 기분 내 기준이 아닌 상대의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무서운 빛으로 인간으로 다가오신 다면 모두 예수님 앞에 사람들을 죽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마다 하시고 육신을 입고 인간에게 오셨습니다. 섬김은 자신을 낮추어 상대의 기준에 맟추는 것입니다. 신학을 하다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을 배웠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오늘은 하나만 기억합시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상대에 기분을 맞추어 그들을 섬깁시다.
먼저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주님을 섬기고 그 말씀 안에서 상대의 기분을 이해하고 그들의 중심안에 위로하며 섬기며 나아갑시다. 그 섬김의 화목의 열매가 이 명절에 가득하여 평강한 한가위 다 되시도록 우리 예수님 이름으로 모두를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크리스찬들이 항상 빛과 소금이 되고 서로 칭찬하고 서로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모든이에게 칭찬을 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마음 아픈 일도 종종 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주님 앞에 섬김보다 교만하고 군림하려는 욕망의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의 어리석은 모든 죄악과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모습들을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의지를 주님께 맡기는 것 섬김의 이웃과 형제를 위해 내 의지와 관점을 그들에게 맞추어 섬기어야 하건만 내 기준 내 게으름으로 남들에게 상처만 주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고 교회가 빛이 되고 나라가 빛이 되어 열방을 섬기는 모든 정세자와 국민들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비방 가운데 얼룩진 부끄러운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시고 다시금 모두를 일으켜 주옵시고 주님의 군대로 일어나 그리스도의 안데서 모두를 섬기고 살리고 공멸하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어수선한 정치 경제 민생을 질서를 잡아가며 평강한 대한 민국과 열방이 되게 하여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youtu.be/PoiXKVM3kcE?list=RDPoiXKVM3kcE
섬김
- 사:강찬, 곡:전종혁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고 낮은 이곳에 내려오신 주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 얼마나 큰지
우리가 높아지면 그가 낮추시리
우리가 낮아지면 그가 높이시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으로
나 자신을 낮추는 섬김으로
내 발을 닦아주사 먼저 섬기시고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었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으로
나 자신을 드리는 섬김의 모습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