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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시계-6

jack757 |2008.10.20 12:16
조회 231 |추천 0
                                                                     6. 가족
요즘은 잠에빠지면 한가지씩의 꿈을 꾸곤 한다.
모든 장면이 기억나는 영화같은 꿈.
전에는 아무 의미없이 지나가버리곤 했던 이야기들 마저도 지금의 내겐 무언가의 메세지를 품고있는듯 보여진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곤 한다. 어쩌면 의미는 전달받는게 아니라 찾아내는것 일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내 생활은 경제적으로 변한것이 없다. 하지만 빠른속도로 심리적인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밝은 표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직장과, 아르바이트와 병원을 오가는 생활은 반복되어가고 있지만, 내 생활태도는 내가 찾아낸 메세지로 인해 밝은 미래로의 계단을 한단씩 쌓아가고 있다.
오늘도 회사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가기전 지하주차장에서의 짧은 수면을 위해 차속에서 잠이들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엔 복학하지 못했다. 아직 제적은 되지 않았으니 휴학생인 셈이다. 그러나 내가 복학생이 될 확률은 낮다.
극히 낮다.
내가 군에 가기전까지 우리집의 사정은 좋았다. 그것도 매우 좋았다. 아버지의 사업은 성장일로에 놓여있었고, 가끔 신문에도 이름을 올리는 유명 기업인이기도 하신 아버지를 둔 덕분에 난 모자란것없이 모든것을 누릴 수 있었다. 그땐 그게 고마운건지 행복한건지 몰랐다. 행복은 항상 지나간후에야 알게되는 것이가보다.
내가 군에가있는 사이에 흔히 이야기하는 IMF라는 것이 왔고, 여러 대기업과 거래하시던 아버지의 회사도 그때 쓰러졌다.
군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IMF라는것이 사회에서는 엄청난 폭풍을 몰아왔던것 같다. 난 그 시기를 거치지 못했기에 아직도 IMF의 분위기를 알지 못한다. 다만 지금의 내 생활이 불편하고 불만만이 가득할 뿐이다. IMF는 내게도 불행을 가져다 주었다.
아버지와 거래를 하던 업체들도 아버지와 함께 줄도산을 했고, 그에대한 책임으로 빚쟁이들이 집에 진을치고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몸을 피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욕을먹어가며 또는 매를 맞아가며 '죽기전까지 갚아주겠다'는 각서를 쓰고 대충의 정리를 끝냈다고 한다. 당연히 그때 살던집도 날아가고 외삼촌께서 마련해주신 월세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함께 격은 어머니와 내 여동생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겠지만 절대 그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았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그때부터 가장의 역할을 하기 위해 직장에 나가셨고, 전문대학에 다니던 여동생은 다행히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직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직장이라는 곳은 월급을 받는곳이 아니라 월급을 버는곳이다. '다단계' 혹은 '네트웍 마케팅'이라는 회사다.
매일 TV에서 나오는 나쁜곳은 아니고, 생필품등등의 상품을 팔아서 그 마진으로 월급을 받는 일을 하신다.
내가 제대했을때의 집안 사정이 이랬다. 난 복학을 할 수가 없었다. 학교는 언제든지 다닐 수 있지만, 내 가족의 짐은 지금 덜어주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절대 복학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등록금도 없었다.
그리고 군에서 제대한 나는 군에 가기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강해졌기 때문이다.
제대하고 다음날부터 인터넷과 생활신문등을 보며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고, 집과 가장 가가운 거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오전 6시부터 오전 9시까지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PC방 아르바이트, 이것을 마치고 바로 당구장으로 가서 오후 7시부터 오전 6시까지 그리고 다시 전단지 아르바이트.
하루에 1시간밖에는 내 시간이 없었다. 그시간에 집에가서 옷을 갈아입고 씻고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젊었지만, 내가 할 수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할수있는한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하루종일 일하고 한달내내 쉬지 않으면 25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벌 수 있었다. 그건 내게 큰 돈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았고, 잠시 집에들르면 항상 아버지만 집에 계셨다. 아버지는 내게 '힘들지'라는 말은 하셨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침부터 술을 드시는 날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쳐가는 만큼 아버지를 이해하는 폭도 좁아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지친몸을 이끌고 잠시 집에 들린 나에게 술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 아버지가 어떤사람인줄 아냐?'
'내가말이야 어렸을때부터 우리동네에서 수재 천재소리듣던 사람이야.'
'내가 대한민국 K.S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란 말이다.'
'내 친구들이 어디어디 기업 사장이고, 회장이야.'
'지금 TV에 나오는 부자친구들, 잘나가는 친구들이 다 내후배고 선배야.'
'내가 기업할때 어디어디랑 거래했는지 알아?'
'옛날이 좋았지 지금은 세상이 썩었어.'
'내가 얼마나 잘나가는 사람이었는데.'
등등 매일 '과거'타령만 한다.
아무 의미없는 말인줄은 당신도 아실텐데 날이 갈수록 푸념이 늘어만 갔다.
식구들은 열심히 벌었지만, 그 돈을 우리가 먹고 쓰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피곤해서인지 강하게 먹었던 마음이 자꾸 약해지기 시작 했고, 어느 일요일 나는 몹시 아파서 아르바이트들을 하루 쉬고 누워있어야만 했다. 이날도 아버지의 음주와 주사는 계속 되었고 듣다못한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한말씀 하시기 시작했다.
"여보, 이제 정신차리실때 되지 않으셨어요? 아이들보기 창피하고 미안하지도 않으세요?"
"내가 뭘, 내가 왜. 내가 지들 이날 이때까지 호강시켜줬으면 됐지 뭘 더 바래."
"다른사람들 빚갚느라 잠도 못자고 나가서 저러고 다니는 애들보기가 창피하지 않으시냐고요!"
"쳇, 그까짓 몇백만원이 돈이야? 하루밤에 술값으로만 그정도 쓴적도 있어. 그걸 돈이라고....."
"그렇게 능력있으신 분이면 당신이 벌어서 갚아요! 애들 피땀흘려 번돈인거 알면 부끄러운줄이나 아시라구요."
"이 예편네가 미쳤나, 빚 내가 갚을테니까 니가 니네 친정에 퍼준 내 돈 다 가져와!"
태어나서 한번도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던 나는 적잖이 당황하게 되었고, 두분의 싸움이 심해지는것같아 말리고 싶었지만 귀를 막고 누워 있었다. 사실 일어날 힘도 없었다.
"뭘 얼마나 도와줬다구 생색을 내요, 생색을 내기는. 그러면 단신은 당신네 집에 돈 않갔다줬어요. 삼촌들 사고칠때마다 그 뒷감당 다 해줬잖아요!"
우당탕!!! 아버지는 앞에있던 술상을 엎어버렸다.
"오늘 다 죽자, 내가 다 죽여줄께!!"
상황은 갑자기 통제가 안돼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봐야 했기에 물에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켰고 마루로 나갔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아버지는 싱크대에서 칼을 찾는 듯 해 보였고 어머니는 이런 아버지를 무섭게 쳐다보고만 계셨다.
그리고 손에 과도를 쥔 아버지는 몸을 돌렸다. 이 상황이 믿겨지지 않았다. 몸을 돌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다가가려고 하였다.
다가가서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고 아버지는 이성을 잃은 듯 욕설을 퍼부으며 내가 잡은 손목을 빼내려 발버둥 쳤고 아버지와 나는 함께 넘어져버렸다.
다행히도 넘어지면서 아버지는 칼을 놓쳤고 아버지의 발버둥은 조금 더 진행되었지만 내가 제압하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
한참을 욕하고 고함지르던 아버지는 제정신이 돌아온 것인지 지쳤는지 술에서 조금 깬건지.
"이제 진정됐으니까 놔라"라고 말했다.
난 아버지 곁에서 칼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더이상 저항하지 않는 아버지를 풀어드렸다.
아버지는 가방에 옷가지를 몇개 챙겨넣고는 "내가 나간다. 내가 나가"라고 말씀하시고는 '쾅'소리나게 문을 닫고는 나가버리셨다.
어머니는 아무말씀 없이 엎어진 상을 치우셨고, 나도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누웠다. 그렇게 몇개월만의 내 휴일은 지나갔다.
그렇게 집을 나가신 아버지는 몇일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으셨다. 자존심 강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는 아버지가 가실곳이 마땅치 않을거라 생각된 나는 아버지가 걱정되지 시작했다.
그날도 예외없이 잠시 집에들려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고 집에 들어와서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난 식사를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창식이 있었구나."
"아버지?"
"그래 아버지다. 밥먹었냐?"
"지금 먹고 있어요. 아버지 어디세요?"
"그럼 아버지랑 같이 밥먹게, 집앞으로 나와라."
"들어오시지 왜 나오라고 하세요?"
"보여줄께 있어. 얼른 나와봐."
"네."
나는 더이상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푸른색 셔츠를 입고계셨다.
"아버지!"
"나왔구나."
"별일 없으셨죠?"
"그럼 당연히 별일 없었지. 가자"
"어디를요?"
"큰길가에 너희들 보여줄게 있거든."
우리집이 있는곳은 좁은 골목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걸어서 큰길가로 걸어나갔다.
"봐라, 저 은색차 멋있지 않냐?"
"어떤차요?" 길가에는 택시가 몇대 서있었다.
" '동부교통'이라고 써있는 저 차말이야. 멋있지?"
"저차 아버지 차에요?"
"그럼 내차지. 내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차란다."
"멋진데요? 아버지 셔츠도 멋있어요."
"우선 너 일하는 PC방에 아버지랑 같이 가자. 가서 점심시간 지나고 출근하겠다고 아버지가 말해줄께. 그리고 같이 점심먹으러 가자."
"사장님이 싫어하실텐데요."
"내가 가서 말 잘해줄께. 가자"
나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멋진 은색차를 타고 내가 일하는 PC방으로 갔고 아버지께서 직접 올라가셔서 사장님께 잘 말씀드리고 교대시간을 미룰 수 있었다.
그리고는 동생이 일하고 있는 회사앞으로 갔다. 그곳에는 어머니도 나와계셨다.
"빵~ 빵~"
어머니와 동생은 영문을 모르고 소리나는 곳을 쳐다보았고, 이내 창밖으로 손을 흔드시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리곤 놀랐다.
"자 어서 타, 내가 근사한 설렁탕집을 알거든."
그렇게 우리식구는 오랜만에 한 차를 타고 외식을 하러갔다.
도착한 곳은 기사식당이었고, 이른 점심시간 이어서인지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 설렁탕 4개 특별히 맛있게 신경써서 부탁해요. 오늘 내 생일이거든요."
아버지는 식당 주인에게 주문을 한 후. 우리를 보고 웃었다.
"오늘 당신 생일 아니잖아요." 어머니는 밝지않은 표정으로 약간은 차갑게 말씀하셨다.
"오늘 내가 우리 가족앞에서 새로 태어나는 날이거든. 당신하고 애들한테 정말 부끄러워, 내가 왜 그렇게 못나게 방황했었는지."
"....."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고, 아버지는 푸른색 셔츠주머니에서 반듯하게 접힌 종이를 꺼내었다. 그리고 읽기 시작하셨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여러분들의 축복속에 가정을 꾸리고, 아들 딸을 얻었습니다.
그는 자존심이 누구보다도 강하였고, 굽히기를 죽기보다 싫어했으며, 엘리트라는 권위의식에 쌓여서 살았습니다.
그의 사회생활은 순탄했었고, 그의 사업은 순풍에 돗단듯 잘 풀려나갔습니다.
그에게는 모자란것이 없었고 가족들을 '온실속의 화초'처럼 가꾸며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감에 차있었습니다. 세상이 무너져도 자신만은 살아남으리라 장담했습니다.
모두 자만심이었습니다. 세상에 부는 작은 바람에 그는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마져도 위태롭게 뽑혀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뿌리마져 뽑히려고 하자 그가 '온실속의 화초'라고 생각했던 그의 가족들은, 거대한 나무라고 생각했던 자신보다 그 환경에 훨씬 빨리 그리고 적극적으로 적응되어 갔습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가족들을 보며, 그는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저들을 고생시키면 안돼는데 안돼는데..... 하며, 그는 그 자괴감을 이겨보고자 술에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반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자존심을 핑계로 가족과 싸웠습니다. 그의 썩어빠진 뿌리는 그때 뽑혔습니다.
이제 자신은 끝난거라 생각했습니다.
마땅이 갈데가 없었던 그는 집을 나와 찜질방에서 몇일을 보냈습니다. 할일이 없던 그는 찜질방에 구비되어있던 책들중 조그마한 책자를 집어들고 읽게되었습니다.
한참을 읽다가 그의 머리를 맑게 해주는 문구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는 눈앞에, 미래는 등뒤에' 라는 문장.
그리고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더이상 내게 하찮은 일이란 없습니다.
진정한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이란 '내 가족을 내가 벌어먹이는 것'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이제 못난 가장에서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가족여러분께 사과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 새로운 출근을 해야 할 시간.

                             '과거는 눈앞에, 미래는 등뒤에'
통상적인 생각으로 '미래는 눈앞에, 과거는 등뒤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거는 눈앞에, 미래는 등뒤에' 도대체 무슨말이지?
항상 직선적인 사고를 하는 내게는 도통 알아먹을 수 없는 문장이다.
한참을 생각해봤다. 그러자 이런 답이 나왔다.
'과거는 눈앞에' 있어서 내 눈을 막고 있다. 미래를 바라봐야 할 내 눈을 가로막는 과거는 내 현재조차 무의미하게 소비해버리도록 만든다. 그래서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왕년에 말이지 얼마나 잘나갔는 줄 알아?' "옛날엔 이까짓 돈은 돈도 아니 였어'
'미래는 등뒤에' 이 말은 내가 가는 길을 뒤돌아보며 계속 확인하며 가야함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미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예측 할 수는 있다. 내 과거와 현재 걸어온 길을 보면 내가 바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방황하며 헤메고 있는지를. 그래서 항상 내 뒤를 돌아보며 올바르게 목표로 전진 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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