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수법 가스라이팅이라는데 완전체랑 비슷하지 않나요????
ㅇㅇ
|2016.10.25 01:06
조회 5,540 |추천 14
가스라이팅이란 게 학대 수법 중 하나인데
보다 보니까 내용이 한창 핫했던 완전체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아닌가.. 암튼 이 얘기 많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전체 4편 중 제가 인상깊게 본 1,2편만 일단 가져왔습니다
[1편] 가장 끔찍한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1) - 가스라이팅이란 무엇인가?
“너 미쳤어? 그런 일이 언제 있었다고 그래?”
“확실해? 네 기억력을 어떻게 믿냐.”
“또 지 혼자 상상했구만.”
당신의 파트너가 종종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나요?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파트너와의 일이 제대로 된 기억인건지 자꾸 의심하게 되나요? 당신이 점점 미쳐가는 것은 아닌가 두려운가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파트너는 당신에게 정신의학 전문의들이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가해중일 것일 수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1938년의 ‘가스등 (Gas Light)’이라는 연극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연극에서 남편은 자신의 부인을 미치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가스로 켜지는 집 안의 등을 일부러 어둡게 한 후, 부인이 등이 어두워진 것 같다고 하면 “그렇지 않다, 네가 잘못 본거다”고 부인하는 식으로, 부인의 현실인지능력을 계속해서 의심하며 결국 그녀가 자기 스스로의 판단을 믿을 수 없게 만듭니다.
‘가스라이팅’은 피해자로 하여금 자기 본연의 감정, 본능, 온전한 사리분별능력 등을 의심하게 하는 극단적인 효력을 갖고 있는 감정적 학대로서, 학대가해자는 이를 통해 엄청난 권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학대의 핵심은 바로 권력과 통제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계실 겁니다. 학대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이렇게 자기 인지능력에 대한 신뢰를 앗아가게 되면, 피해자가 학대관계에서 떠나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학대가해자가 사용하는 ‘가스라이팅’의 방법은 실로 다양합니다.
거부: 학대가해자가 피해자의 말을 아예 듣기 자체를 거부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척 하는 방법입니다. 예) “이제 그런 얘기 좀 그만해. 지긋지긋하다. 더는 듣고 싶지도 않아”, “무슨 소리야. 일부러 날 헷갈리게 만들려는 거야?”
반박: 학대가해자가 피해자의 기억을 무조건 불신하는 방법입니다. 피해자의 기억이 정확하든 그렇지 않든 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확한 기억을 반박할 때 ‘가스라이팅’의 효과는 더 무섭습니다. 예) “언제 그랬다는 거야 네 말은 완전 틀렸어. 너 완전 잘못 기억하고 있어. 네 기억은 틀렸어.”
전환/쳐내기: 학대가해자가 화제를 전환하거나 피해자의 생각을 의심하는 방법입니다. 예) “뻔해. 이거 또 분명 네 친구 oo/너네 (가족 oo)한테 들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네.”, “왜 네 멋대로 상상해서 그렇게 생각해?”
경시: 학대가해자가 피해자의 요구나 감정을 하찮아 보이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예) “그렇게 사소한 일로 화가 나?” “왜 이렇게 예민해?”
망각/부인: 학대가해자가 실제 발생했던 일을 일부러 까먹은 척 하거나 자기가 피해자에게 했던 약속을 부인하는 방법입니다. 예)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내가 언제 그랬어? 말 좀 지어내지 마”
‘가스라이팅’은 일반적으로 아주 서서히 일어납니다. 실제 학대가해자의 행위는 초반에는 무해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 폭력적인 패턴이 지속될수록 피해자는 혼란, 불안, 고립, 우울을 느낄 수 있으며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감각을 아예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는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점점 더 학대가해자에 기대게 되고, 이로 인해 이 학대적 관계에서 빠져나오기란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이런 유형의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징후들을 인지하기 시작해 결과적으로 자신을 다시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작가이자 심리분석학자인 로빈 스턴 박사(Robin Stern, Ph.D.)는 당신이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라는 징후 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있다고 합니다.
· 내 언행을 자꾸 뒤돌아보며 후회하고 자책한다.
·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고 하루에 몇 번씩 자문하게 된다.
· 종종 혼란스러우며 내가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 나는 늘 파트너에게 사과하고 있다.
· 내 삶엔 복받은 점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왜 더 행복하지 않은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 나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내 파트너의 행동에 대해 변명할 때가 잦다.
· 친구와 가족들에게 더이상 설명하거나 변명하기 싫어서, 말하지 않고 숨기는 일들이 있다.
·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지만, 나 스스로에게조차 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콕 집어서 말할 수가 없다.
· 파트너에 의해 무시당하거나, 현실을 왜곡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는 그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 나는 간단한 결정조차 하기 힘들다.
· 이전의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를 만나기 전의 나는 분명 지금보다 자신감있고 즐겁고 편안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 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며 뭘 해도 기쁘지 않다.
· 나는 뭘 해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쓸모없는 사람같다.
· 나는 내가 “이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파트너인지 잘 모르겠다.
이 중 어떤 징조라도 당신의 경우라고 생각된다면 도움을 요청하세요. 당신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당신의 얘기에 귀 기울여 줄 사람이 꼭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 여성의 전화, 가정폭력상담 02-2263-6464로 꼭 전화해서 도움을 받으세요. 피해자의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2편] 가장 끔찍한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2) – 이 학대수단에 대한 10가지 진실
‘가스라이팅’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현실을 ‘덮어쓰기’ 하는 것이다. 사실 웬만한 심리상담치료사보다 ‘가스라이팅’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우리일지도 모른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혼자 힘으로 여기에서 벗어나기란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혼자 벗어나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당신이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부터 내가 겪은 경험과,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가스라이팅’에 관한 10가지 진실을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가 함께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1938년의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연극에서 비롯되었다. 이 연극에서 남편은 자신의 부인을 미치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가스로 켜지는 집 안의 등을 일부러 어둡게 한 후, 부인이 등이 어두워진 것 같다고 하면 “그렇지 않다, 네가 잘못 본거다”라며 부인하는 식으로, 부인의 현실인지능력을 계속해서 의심하며 결국 그녀가 스스로의 판단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 역자 주)
진실 #1. 의도되지 않은 ‘가스라이팅’도 ‘가스라이팅’이다.
내 절친에게 전화 걸어 숨가쁘게 꺽꺽대며 “내가 그렇게 괴물이야?”라고 묻는 과정을 5번쯤 반복하자, 그는 그제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엠마, 그 남자는 지금 너를 ‘가스라이팅’중이야.”
난 그 때 ‘가스라이팅’이 대체 뭐야?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위키피디아를 찾아보았다: ‘가스라이팅’의 유래는 오래 된 영화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주거환경에 일련의 변화를 준 후, 자신이 노린 피해자에게 그 변화들은 그녀 혼자 멋대로 상상해서 지어낸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해서 주입한다.
나는 뭐야? 라고 생각했다. ‘내 파트너는 안 그런데? 순전히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드려고 혼자 계략을 꾸며서 우리 주변이나 우리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일부러 조작하다니. 말도 안돼. 상상도 할 수 없어. 그는 그저 상처받은 사람일 뿐이야. 그에게 계속 상처주고 있는 건 나라구. 그는 하나도 잘못한 게 없어. 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건데.’ 라고 생각했다.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자는 혼자서 위협받았다고 느끼면 알아서 ‘가스라이팅’을 실시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방법은 자연스럽게 습득되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의 차이점은 <소유권에 대한 내면화된 사고방식>에 있다. 내 경험 상, 그 사고방식을 알아보는 것이 ‘가스라이팅’ 여부를 직접 가리는 것보다 훨씬 쉽다.
‘가스라이팅’은, 사회가 더 이상 통상적 폭력을 용인하지 않을 때, 가해자가 그것을 대체해서 가하는 폭력의 수단이다.
나는 현재, ‘가스라이팅’이 전례없던 규모로, 문화 전반에 걸쳐, 모든 사람들 간에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즉, “모든 이가 평등”하다면서도, 동시에 또 온갖 불평등함을 잃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우리의 사회 체계가 낳은 결과라고 말이다.
언론 또한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누가 봐도 혐오범죄인 사건을 그저 “미친 정신병자 한 명이 저지른 묻지마 사건”으로 보도하는 것이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여기서 언론이 우리에게 주입하려는 메세지는 이것이다. 네가 아는 진실은 진실이 아니야.
애정관계에서의 폭력은 1970년대 이전에는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지 조차 않았다. 그렇다고 지난 40년간, 우리가 애정관계 폭력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여성혐오를 고치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라도 있던가? 없다.
요즘은 대부분의 경우 파트너를 때리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폭력을 반드시 수반하는 여성혐오를 내재화한 자에게 더 이상 신체적 폭력을 용인할 수 없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그는 상대를 통제할 것이다. 조종할 것이다. ‘가스라이팅’할 것이다.
진실 #2. ‘가스라이팅’은 ‘조종’과 다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스라이팅’은 일종의 ‘조종’ 수단이지만, 유일한 조종수단은 아니다.
‘조종’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교묘히 혹은 대놓고 조종하려 드는 모든 직·간접적 협박을 포함한다. (예: 약속을 어긴 채 외박하고 귀가한 후, 한 숨 쉬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거나 세상 무서운 얼굴을 하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스트레스 받은 일이 있어서 너무 괴로우니 말도 시키지 말라’는 아우라를 온몸으로 내뿜어 상대가 가벼운 항의조차 못하도록 조종하는 행위) ‘가스라이팅’ 또한 ‘협박을 통한 조종’을 꾀한다는 점에서 ‘조종’과 일치하지만, 그 목표가 다르다. 단순히 피해자의 행동만을 조종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 ‘가스라이팅’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스라이팅’과 일반적 ‘조종’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둘 다 피해자의 자존감을 손상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가스라이팅’은 피해자로 하여금 더 이상 스스로의 판단을 믿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겪은 현실에서의 경험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진실 #3. ‘가스라이팅’에 늘 분노와 위협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가스라이트 효과>라는 책은 “화려한 가스라이팅”이라는 ‘가스라이팅’의 한 유형을 언급한다.
이는 ‘가스라이팅’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퍼붓지만 실제 피해자가 원하는 종류의 관심을 주는 것이 아닌 경우를 가리킨다. 그는 피해자를 떠받들지만 정작 피해자를 위해주지 않는다. 가해자 본인이 내킬 땐 마치 간이건 쓸개건 다 빼줄 듯 하다가도, 막상 피해자가 기대어 울 어깨가 필요할 때면 도리어 그녀에게 분노를 터트리는 식이다.
이러한 학대행위가 얼마간 지속될 경우, 피해자가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외롭고 공허한 기분이 드는지 이해하기란 굉장히 힘들어진다. 보잘 것 없는 내게 이리도 잘해주는 최고로 자상한 남자가 있는데도 나란 인간은 도대체 왜 이럴까? 하며 자신을 한심해하고 자책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다른 유형의 ‘가스라이팅’에서는 가해자가 언제나 피해자로 둔갑한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문제 제기를 할 때마다 결국 대화의 끝에 가서는 연신 사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가스라이팅’ 관계는 전부 제각각 다르다.
나의 관계에서는 매우 특정한 패턴 하나가 계속 반복됐다.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그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격하고 폭발적으로 감정적인 반응을 터트렸으며, 나는 늘 그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 말했던 건지 했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되짚어봐야 했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을 되짚을 때마다 그는 내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고 완전히 틀렸다고 화를 냈다.
그러면 나는 당신도 알다시피 내 대화방식이 틀렸던 것이 분명하니 좀더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그러면 그는 내 말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유는 내가 거짓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 “아니, 아니, 내가 거짓말하고 있지 않다는 건 내가 분명히 알아. 그냥 기억이 정확히 안 나서 그런가봐.”
그: “그놈의 기억력을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지.”
이런 식으로 그는 비난을 시작하곤 했고, 그래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늘 아예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 비난게임은 대개의 경우 내가 미친 사람처럼 울기 시작해야 끝이 났다.
진실 #4.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기억을 잃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이것이 실은 ‘가스라이팅’에 관한 그 어떤 진실보다 내가 피해 당시 알았더라면 제일 도움이 되었을 진실이다.
필름 끊김 – 분명 부엌에 서있는 상태에서 시작했던 대화였는데 어느새 바닥에 철퍼덕 앉아 미친 사람처럼 울고 있던 내 자신을 발견했던 기억. 이것은 그를 떠난 후에도 수년간 지켜온 나의 비밀이며, 이 비밀은 끊임없이 나의 자가 의심과 죄책감을 증폭시켜왔다.
그리고 나면 나는 며칠 내로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곤 했다. 무엇에 대한 대화였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내 가해자는 나와 만날 동안은 나에게, 또 나와 헤어진 후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자신을 학대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내가 그를 떠난 이유 중의 하나였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던 건지, 혹은 내가 어떻게 행동을 바로잡아야 할지 아무리 고민해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던 나는 내 기억을 샅샅이 뒤져가며, 대체 나의 어떤 행동이 그를 그리 상처입혔는지 알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자신의 가학적 성향을 깊이 성찰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을법한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한 점들을 나 또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늘상 이야기하던 나의 학대적인 면들은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 기억 속에서의 나는 나르시스트도, 악랄하고 교묘하게 그를 조종한다던 여성도, 가정파괴범도 아니었지만, 내 기억은 분명 완벽하지 않았다. 완전히 기억이 끊겨버린 순간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고민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그 순간들이 내가 그를 학대했던 순간인건가?
기억의 일부를 잃는다는 것은, 내 기억력을 도무지 신뢰할 수 없다는 그의 말과 내가 가학적인 사람이라는 그의 말에 상당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렇지만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기억을 잃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실은 이것이 바로 당신이 눈여겨봐야 할 사항이다. 이 관계를 떠날 때가 왔다는 완벽한 신호인 것이다.
진실 #5. ‘가스라이팅’은 확연히 구분되는 일련의 단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단계들은 관계 후에도 계속 진행될 수 있다.)
‘가스라이팅’ 가해자에겐 단순히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 또한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1단계, 당신은 ‘가스라이팅’ 가해자가 억지부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실랑이한다.
몇 시간동안 계속해서 실랑이한다. 물론 해결책은 나올 수 없다. 애초 언쟁의 쟁점이 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조차 없는 당신의 감정과, 의견과, 당신이 보고 느낀 경험에 대해 언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상대방에게 당신이 옳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그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언쟁한다. 1단계에서는 그래도 여전히 자신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신뢰를 논란의 도마 위에 올리는데 동참해버렸다.
2단계, 당신은 꼭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입장을 먼저 듣고 이해하고 난 후에야, 그들에게 당신의 입장 또한 이해해달라고 절박하게 매달린다.
그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렵기 때문에 계속 언쟁한다. 이제 당신에게 이 언쟁에서의 목표는 단 하나이다. 당신이 여전히 착하고 친절하고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에게 증명하는 것만이 당신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렸다.
3단계, 당신은 상처 입을 때마다 제일 먼저 ‘나란 인간은 대체 왜 이 따위로 생겨먹었나?’ 자문한다.
당신은 이제 ‘가스라이팅’ 가해자의 입장이 정상적인 입장이라고 믿는다.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해자를 이해하고, 가해자의 입장을 이해하려 온 힘을 쏟는다. 그가 당신에게 퍼붓는 비난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가 지적한 당신의 “결함들”을 고치기 위해 당신은 그에게 받은 비난에 집착한다.
뒤돌아보면, 관계를 떠났을 무렵의 나는 2단계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난 관계를 떠난 후에도 수개월 간이나 그와 계속 우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내가 그에게 갈구했던 것은 해결과 이해와 용서였다.
그런데 드디어 내가 연락을 끊을 수 있게 된 후, 나는 상처의 치유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3단계에 접어들었다. 관계가 끝났는데도 스스로에게 ‘가스라이팅’을 계속하다니. 이런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고, 또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서 그 당시의 내게 조언을 하나 해줄 수 있다면, 나는 ‘곧바로 모든 연락을 끊고 적어도 1년간은 그 상태를 유지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다른 모든 피해자들에게도 이것을 권장한다. 정말, 정말 어렵다는 걸 안다. 여전히 이해와 해결이 마치 손에 닿을 듯 가깝게만 느껴지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 희망의 끈을 놓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끈을 곧바로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딱 1년만 참으면 된다. 만일 상대가 학대 가해자가 아니라면, 당신에게 스스로를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당신을 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연락 단절”이란, 정말 그와의 모든 연락을 완벽하게 끊는 것을 말한다. 함께 아는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을 것. 모든 SNS에서 ‘가스라이팅’ 가해자를 차단할 것. 당신의 모든 지인들에게 당신의 개인적 안전과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사항이 아니라면, 그에 관한 어떤 소식도 당신에게 전하지 말 것을 부탁하는 것을 말한다.
혹 ‘어우, 그건 너무 심하지 않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엿먹으라고 해라.
당신은 이렇게 해야만 치유될 수 있다.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는 것을 멈추기 위해 이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진실 #6. 당신을 ‘가스라이팅’에 더 취약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그 특성들은 동시에 당신의 초능력이기도 하다.
당신을 ‘가스라이팅’에 취약하게 만드는 3가지 특성은 ‘옳아야 할 필요성’, ‘이해받아야 할 필요성’, ‘인정받아야 할 필요성’이다.
또,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타인을 돌보고, 타인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고, 파트너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는 특성들도 피해자를 ‘가스라이팅’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가진 이 훌륭한 장점들을 곧바로 파괴하려 들지 않을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당신은 그저 당신의 생각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행사하는 당신의 영향력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일 뿐이다. 그저 이해하고, 이해받기를 원할 뿐이다. 주변 사람들을 맞춰주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킬 의향이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당신이 너무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무신경하다고 비난했을 것이다. 당신의 상담치료사는 당신이 너무 따뜻한 사람이라 학대당할 수 있었고, 이제부터 너무 따뜻한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을 요구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감능력은 중요하다. 이건 우리 모두에게 정말 중요한 자질이다. 공감능력이 약점이라고 하는 데에 나는 정말 화가 난다. 나의 공감능력은 나의 초능력이다. 공감에 대한 내 욕구와 능력이 나를 학대라는 감옥에 가뒀냐고 묻는다면 물론 답은 예스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공감에 대한 내 욕구가 아니다.
타인의 비난을 받아들이는 능력도, 그 비난을 통해 스스로 더욱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능력 역시도 모두 완벽한 초능력들이다. 그 누구도 초능력이 아니라고 말하게 두지 마라. 스스로 변화하려는 의지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려는 이유가 옳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우리가 더 큰 사람이 되게 한다. 진정한 변화는 우리의 자기애(愛) 저장고를 키워준다. 진정한 변화는 우리가 더 강하고, 명확하고, 나아갈 방향을 알고,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 되게 한다.
성장의 고통은 파괴의 고통과 엄연히 다르다. 힘들지언정 사랑과 자부심을 불어넣는 것이 전자라면, 수치와 공포심을 불어넣는 것은 후자다.
그 누구도 수치와 공포를 이용해 당신을 변화시키려 해선 안 된다. 수치와 공포를 이용하는 사람은 당신에게 진정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와 조종을 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라.
진실 #7. 당신은 진실을 알고 있다. 늘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가스라이팅’ 가해자에게는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당신의 이미지에 사랑과 관심을 쏟아붓고 있을 뿐이다. 당신은 그 이미지 옆에 그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이같은 현실이 당신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지만 당신은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당신은 당신이 처한 위치를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당신 자신이 점차 싫어지고 있다. 과거를 되돌아보거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당신은 늘 뭔가가 잘못되어 있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중심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중심을 잘 지켜왔다.
당신의 자체경고 시스템은 계속해서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단지 당신이 그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당신은 늘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능력을 보유해왔다.
진실 #8.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 모든 교류를 끊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다.
우리는 영화나 책 속에서 피해자가 학대 가해자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장면을 매우 자주 본다. 수년이 흐른 뒤 가해자에게 맞서는 바로 그 순간 피해자는, 자기 자신과 가해자 둘 다에게, 더 이상 자신이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그 카타르시스를 열망한다.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그 두려움은 결코 가해자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것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나의 두려움은, 내가 스스로 정한 테두리를 지킬 수 있는 능력과, 그 능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소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가스라이팅’ 가해자와 교류하는 것은, 그와 당신 둘 다에게 당신의 현실이 그와의 언쟁을 통해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당신의 현실은 언쟁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도 나와 같다면, 이미 머리 속에서 가해자와 수만가지의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며, 그 대화들은 당신을 미치게 했을 것이다. 당신의 현실은 언쟁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앞으로 절대 일어나지 않을 그 대화들을 더이상 머리속에서 리허설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당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의도를 갖고 있고,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려는 시도 자체가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길 경우 당신은 응당 화내거나, 놀라거나, 어쩌면 그들의 정신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혹은 놀라서 멈춰선 채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네가 내 속을 안다고 생각할 수가 있지? 너…제정신이야?”
그런데 우리는 그 대신, 이해 받기 위해 너무나 많은 노력을 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 나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고!”
물론 그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반응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그러나 만약 대화의 목적이 상호 이해가 아니라 권력 소유일 경우, 당신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싸움은 결코 이길 수 없다.
‘가스라이팅’에 덜 취약해질 수 있는 한 가지 해결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대화의 목적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상호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대화는 당신을 두렵게 하거나, 수치를 주거나, 방향성을 잃게 하거나,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상호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대화는 당신으로 하여금 그의 의도가 도대체 뭘까 알아내려 애쓰게 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저 지금 당신 기분이 어떤지만 신경쓰면 된다.
대화가 상호 이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를 알아차리고 그 경우 대화를 멈추는 방법만 배우면 된다.
다음과 같은 방법을 시도해보라.
· “그럼 우린 서로 동의할 수 없다고 동의해야겠네”
· “지금 느끼는 기분은 내가 원하는 기분이 아니야. 이 대화는 나중에 끝내고 싶어(다신 하고 싶지 않아).”
· “뭐라고?”
· “너는 지금 나한테 내 기분이 어떤지 설명하려 들고 있고, 난 그걸 받아들일 수 없어.”
· “다시는 나에게 연락하지 마.”
“대화, 대화, 대화”라니 과연 그럴까? “어떤 문제든 충분한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그런 격언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건 명백히 틀린 말이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물론 많다. 단, 쌍방의 목적이 상호 이해일 때 말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현실을 덮어쓰기 하려는 순간, 당신은 그 대화를 멈춰야 한다. 적어도 해당 주제에 관해서는 말이다.
진실 #9. 당신은 위협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모든 ‘가스라이팅’ 대화는 위협이라는 장막 하에 벌어진다. 나의 관계에서 그 위협은 처음엔 단순한 못마땅함으로 시작해서, 그 후엔 관계 자체가 위협거리가 되었고, 종국에는 그의 목숨까지 위협거리가 되었다.
나에겐 ‘가스라이팅’을 정면으로 맞서거나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 위협거리들이 내 안에서 생성해낸 두려움을 전부 정면으로 하나하나 맞서기 전까지는.
나는 추모했다. 1주일간을 침대에 누워 지내며 내가 그 관계에 쏟아부었던 모든 것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 나를 가둬두었던 것들에 느꼈던 내 애착감을 하나하나씩 내 안에서 끊어내려 노력했다.
내가 느낀 엄청난 수치심을 슬퍼하며 울었고, 견뎌내기 위한 힘을 기르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내가 그토록 이루고 싶던 가족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슬퍼했고, 그 후에는 지나간 그와의 관계에 대해 슬퍼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에게 그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웠던 그의 행동이 옳았던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 중 쉬운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나서 그와의 관계가 끝나기까지는 또 다른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내가 그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고 싶지 않다고 마침내 깨닫기 전까지, 나는 차근차근 나를 위협했던 모든 요소들을 이미 내면적으로 마주했다. 그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총력을 다해 나를 공격할 무렵, 나는 비로소 한쪽 발을 다른 쪽 발 앞에 놓고, 마침내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다.
진실 #10. ‘가스라이팅’은 가족 등의 여러 관계들과 다른 그룹들에 의해 확대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나의 경험을 덮어쓰려 할 때 내 위치를 꿋꿋하게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만약 이를 지지하는 중창단이 있을 경우, 그렇게 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진다. 집단학대가 한 사람의 인격을 완전히 무너트릴 수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집단 조종 및 학대는 끔찍하게 효과적이다.
당신이 깊이 연루된 그룹이 협공으로 생산해내는 수치와 공포의 수준은 가히 설명하기조차 힘들다. 우리는 여러 그룹에서 일어나는 ‘가스라이팅’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 권력의 남용, 즉 학대를 허용하지 않도록 말이다.
우리는 보통 관계를 끝내는 사람에게 큰 비난의 화살이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도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 누군가의 자존감을 손상시키는 관계가 있다면 우리 모두 그것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공동의 책임 말이다.
누구의 잘못인지, 이 일이 공평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 문제는 그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스스로 건강해지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서로 공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신이나 당신이 아는 누군가가 학대받고 있다면 미국 가정 폭력 핫라인을 방문하거나 1-800-799-7233에 전화하세요.
(한국에서는 한국 여성의 전화, 가정폭력상담 02-2263-6464로 꼭 전화해서 도움을 받으세요. 피해자의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원제/Title: <10 Things I’ve Learned About Gaslighting As An Abuse Tactic> @Medium and @Everyday Feminism
원문 게재일/Published: 2015년 7월 5일 & 2015년 8월 27일
원저자/Written by: Shea Emma Fett
번역/Translated by: Feminist K
번역을 마치고: 사회 전체가 대대적인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는 것. 명백한 혐오범죄를 우연히 일어난 동떨어진 돌연변이 사건으로 취급하는 것.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엄청난 호의와 친절함과 다정함을 퍼붓는 듯 하고, 피해자는 마치 가해자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신을 열렬히 사랑해 줄 바로 그 남자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사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꾸며낸 피해자의 허상에게 잘해주는 자신의 모습에 빠져있는 것일 뿐 피해자가 고유의 목소리를 낼 경우 그 즉시 강력히 탄압하고 닥치게 한다는 것. 정상이 아닐 정도로 격하고 폭발적인 감정을 터트려 아무리 좋은 말로 하더라도 그 어떤 항의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피해자는 자상한 가해자를 두고 절망을 느끼는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는 것. 그의 말이 전혀 논리적이지 않으며 말도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이해받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고, 그럴 때마다 미친 사람처럼 통곡하고 울면서 대화가 끝난다는 점. 이건 전부 내가 목격하고 겪은 내 경험담과 일치한다.
그와의 대화 끝에 나는 늘 무슨 말을 해도 어떻게 설득해도 그에게 나는 최악의 여자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세상에서 느껴본 적이 없는 깊은 자괴감, 모멸감, 분노, 무력감, 우울함을 느꼈고, 바닥에 주저앉아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울었고, 그럴 때마다 아 이렇게 몇 달만 더 하면 진짜 죽을 수 있겠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내가 예민하고 내가 못돼서 우리가 자꾸 싸우게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말을 예쁘게 하면, 내가 더 착하게 굴면 싸울 일이 없을 것이고, 그는 나에게 잘해주니까 우린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사람이 악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상상하지 못한 내 가족과 친구들 또한, 네 잘못도 있으니 잘 화해해보라고,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내 등을 떠밀었고, 나 또한 그들이 틀렸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뒤돌아보면, 늘 마음 구석 한켠에서는 그게 아닌데. 정말 좀 이상한데. 정말 너무 많이 이상한데. 라는 느낌이 늘 있었지만 난 애써 이성적 생각으로 그 느낌을 눌렀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장이 꼬이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기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었던 지는 불과 몇 달도 되지 않았다.
이 글을 읽고 나 또한 그 당시의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그건, 도망쳐. 아무리 그가 객관적인 방식으로 너를 공주 대하듯 한다고 해도, 답답하거나, 논리가 통하지 않거나,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달라서 남자는 존중받아야 행복하고 여자는 사랑받아야 행복하다는 개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네 입장을 이해받으려고 그렇게 애쓰지 마. 아무리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너의 모든 의견과 느낌을 부정하고, 네가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책임 전가하고,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절망감과 벽에 대고 얘기하는 느낌을 주는 건 정상이 아니야. 그 즉시 도망쳐. 대화는 네 얘기를 듣는 사람과만 하는 거야. 네가 선택한 사람을 떠나는 건, 그 사람 옆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보다 용기있는 행동이야. 도망쳐.
말씀을 안 드리고 그냥 퍼왔는데.. 문제시 봐주세요..
출처
[1편]
가장 끔찍한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1) - 가스라이팅이란 무엇인가?
http://femik.tistory.com/m/24
[2편]
가장 끔찍한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2) – 이 학대수단에 대한 10가지 진실
http://femik.tistory.com/m/25
[3편]
가장 끔찍한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3) –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마인드게임
http://femik.tistory.com/m/26
[4편]
가장 끔찍한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4) – 이 조작수법을 누가, 어떻게, 왜 하는가
http://femik.tistory.com/m/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