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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본 일기-5

기록은 기... |2004.01.19 13:24
조회 763 |추천 0

그녀는 차분한 소희랑 달리 수다스럽다.

도대체 저게 여자인가 싶을 정도로 입밖으로 내뱉는 말이 걸쭉하다. 

성격두 어찌나 드센지...

하긴, 그녀가 어렸을 때 부터 그랬던건 아니다.

어렸을 때 그녀를 떠올려 보면 오히려 연약할 정도 였으니까.

 

"경민아!! 큰일 났어!! 빨랑 나와봐."

"우쒸~ 뭔데?"

상우의 다급한 부름에  교실 밖을 나가봤다. 이런~!

"엉엉~~ 머리 잡아당기지마! 선생님 한테 이를꺼야."

"일러라, 일러라, 일름보~!!"

그녀가 애들에게 둘러싸여 놀림을 당하고 울고 있었다.

몸이 약한 편 이었던 그녀는 장난이 심한 사내녀석들의 타겟이 되어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

"야! 비켜!! 니네 뭐야? 사내자식들이 여자나 울리고."

"니가 뭔데 상관이냐? 경민이 너 임마 맨날 여자들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구나."

"아냐. 울 엄마가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 줘야 한다고 했어. 자기보다 연약한 여자를 괴롭히는 건 아주 비겁한 짓 이랬어."

"뭐? 짜식! 너 얘 좋아하는구나? 얼레꼴레리~얼레꼴레리~ 누구누구는 누구누구를 좋아한데요~"

"우하하하!! 얼레꼴레리~메롱메롱~"

아이들의 놀림에 그녀는 더 울상이 되었고, 나도 창피했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아냐, 임마! 이런 못난이를 누가 좋아해? 이씨! "

아이들의 놀림에 창피해진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내 변명에 그녀는 더 울상이 되었고, 그 길로 바로 집으로 가 버렸다.

난 그런 그녀가 너무 걱정이 되서 집에 와서도 하루 종일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예전처럼 등교하기 위해 그녀 집으로 마중가는게 너무 두려워서 혼자 등교를 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내게 화를 내면 어쩌지?'

어린 나이 였지만, 여자의 무서움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나보다.

그녀에 대한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등교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최대한 천천히, 마지못해 교실에 도착해보니 그녀는 이미 와 있었고 여자애들과 킥킥거리고 있었다.

"안녕? 경민아!"

"어? 어..그래..아, 안..녕"

의외로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듯 먼저 인사를 건내주었다.

 난 안심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그날 청소 당번 이었던 그녀와 같이 집에 가기 위해 운동장에서 기다려주었다.

멀리서 교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고 냉큼 달려갔다.

"청소끝났니?"

"어? 경민아, 아직 안갔어?"

"어, 같이 가려구 기다렸어."

나는 내심 그녀와 같이 가는 길에 어제 일을 사과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오늘 우리집 가서 숙제하자."

"정말? 그래 좋아."

그녀가 내게 화가 난게 아니란걸 알고 난 너무 기뻤다 .

그녀 집에서 숙제도 하고 마왕이 만들어 준 도넛도 실컷 먹었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왔다.

다음 날 아침,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데리러 그녀 집에 갔을 때 그녀가 아니라 마왕이 곤란한 얼굴로 대문앞에 서있었다.

"경민아, 미안한데 학교 혼자 가야겠다. 먼저 가라, 응?" 

"네." 마왕의 표정이 맘에 걸렸지만, 그녀가 아픈게 아닌가 걱정하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경민아, 왜 혼자야?"

"그래, 니 단짝은 아직 안왔는데?"

오랜만에 혼자 등교를 했더니, 나만큼이나 다른 애들도 어색했나보다.

초조한 마음에 계속 교실 앞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드르륵.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 뒤를 따라 그녀가 씩 웃으며 들어왔다.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지냈던 친구가 전학을 가게 됐어요. 모두 아쉽지만 전학가서도 우리 친구가 잘 지내도록 힘찬 박수로 격려해주십시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린지.

전학? 그녀가? 전학가는데 웬 힘찬 박수?

난 그녀의  갑작스런 전학에 당황했다.

차라리 그녀가 화를 내는 편이 나았을 것 이다.

나는 자꾸 그녀가 전학가는 이유가 나 때문인것 만 같았다.

"모두들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안녕히 게세요."

88올림픽에 온나라가 떠들썩 했던 그해.

그해 겨울, 그녀는 예쁜 미소하나 덜렁 남기고 그렇게 전학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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