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못된 년이 되기로 했다.
처음 결혼 한다고 했을 때 특정지역 여자가 아니라 결혼은 안된다. 친정 아버지가 장애인이라 결혼은 안된다.
등등 별의 별 사유로 결혼 반대에 울고 불고
난리 치시던 시어머니..
사실 신랑은 타지 생활하던 군인이였고.
먼저 쫓아다닌것도 신랑이 였으며
결혼 안 한다는 저를 미친듯이 설득한 것도 본인 아들이였는데 모든게 다 제가 자기 아들을 홀려서 일거라고
모진말 내뱉던 시어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신랑과 결혼한 이유는
장애인이던 친정 아빠를 아버지라고 말하며 지극 정성 대하고 딸 셋 장애인 남편을 십년 넘게 부양하고 있는 친정엄마를 어머님이라고 부르며 남편이 필요한일
아들이 필요한일.. 다 자기 몫이라며 한결 같이 존경한다고 말하는 인성을 가진 그런 남자였기에. 그런 남편을 믿고 어린나이에 결혼이란걸 생각했던거였는데.
그런 인성을 가진 아들을 키워낸 내 시어머니는 ..
남한테 상처가 되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이였다는 거에 실망했다..
그런 상황에도 내가 이 결혼 생활을 견디는 이유는
완벽한 신랑 때문일 것이다.
시어머님이 내 험담을 해도 듣기만 할 뿐 동조 하지 않으며 자기 어머님의 그 험한 말에 상처 받은 아내인 나를 늘 더 챙기며 방패막이가 되준다. 혼자 나쁜 아들, 불효 자식이 되는 신랑때문이였다.
그 귀한 아들인 신랑은
내가 전업 주부이여도 맞벌이여도
가사분담은 정확히 해주며
친정 식구들에게도 잘하며
어디가든 애처가 소리를 듣는다.
밥 먹으면 설거지 통에 설거지를 가져다 놓을 줄 알며
자기 빨래는 자기가 할 줄 안다.
가끔 신랑을 보며 어떻게 우리 시어머니에게서 저런아들이 나왔을까 의문이 생긴다..
처음 내가 못된 며느리가 되고자 결심한 이유는
결혼 하고 바로 허니문 베이비가 생기자
니네 속도 위반 아니냐고 여자가 몸을 함부로 놀린다고
남편 몰래 나에게 전화해 말하던 시어머님인 당신 말에
난 충격 받고 아이를 잃었다.
그리고 그 뒤 난 미친년 처럼 울고 웃고 반복하다가 정신 차리고 나서 부터이다.
시동생과 시아버지 앞에서 고매한척 날 아껴주는척 넌 내 딸이다 얘야 난 널 사랑한다 말하시기에
시댁가면 진짜 딸이 어떤건지 보여드렸다.
밥 먹고 나서 설거지라던지.. 늦게 일어나기 등등
물론 시아버지와 시동생 남편이 있으니 꾹 참으신거겠지만 난 이상태로 쭉 밀고 나갔고..
전화를 하시면 한시간은 기본에 하루에 10번도 하시기에 나도 역으로 했다. 어머님이 하시는 그대로
계속되는 유산에 힘들어 할때
사촌 도련님 결혼식장에서 우리며느리 불임이라고 가족들 앞에서 선언하셨을때 나는 결심했다.
더 못된 며느리가 되겠다고..
신랑은 그 사건 이후로 일년에 한번 시댁에 간다.
직업이 군인이기에 설 추석 중에 한번만.
가더라도 시어머님이랑 눈도 안마주치고 말도 섞지 않는다.. 결혼 5년만에 임신을 했다.
신랑은 약속 대로 시어머님 전활 차단했고 만나는것 집에 오시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고 어머님이 뭐라고 하시면 엄마가 내 새끼를 죽였다 그런 엄마가 뱃속에 있는 내 새끼를 또 안죽인다는 보장은 없다며 임신 기간내내 시어머니를 차단했다. 출산 후에도 산후조리원 어디도 오시지 못하게 했고 첫손주는 50일 지나 시어머님이 방문하셔서 처음 보셨고 그 손주가 3살이되도 일년에 보는 날은 두세번.
더 이상 시어머님에게 상처 받지 않는다.
오히려 시어머니 쪽에서 안달하신다.
귀하신 손주를 보시지도 못하고
신랑도 시어머니라면 손사레를 친다.
세상은 못된 년이 살기 편하다.
사실 못된 며느리를 만드는건 시어머니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난 못 된 년이 차라리 좋다.
나도 생각해보면 내 부모님이 귀하게 키워주신 자식아닌가 그런 내가 종취급 모자란 취급 받느니 못 된 며느리가 되는게 우리부모님에게는 나은거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