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없을 때
입 버릇처럼 항상 말한다. “옷이 없어!” 더 이상 말하기엔 진절머리가 날 것 같아서 생각 난 김에 치워버리자고 다짐 했다. 옷장은 터질 것만 같은데 당장 내일 입을 옷이 없다고 느끼는 게 너무 이상했다. “그래! 안 입는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사자!” 옷장 문을 열고 나의 옷을 하나하나 살펴 보았다. 버릴 것이 없었다. 옷은 이렇게 많은데 입을 것은 없고,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어떤 특정한 모임에서 다 같은 사람이라고 결정 짓는 것이 싫다. 그 사람들 만의 끼가 있고 능력이 있으니 한 사람 한 사람 존중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평가 받고 넘어가고 그 모임에서 튀는 행동을 하면 눈총을 받는 그런 사회가 너무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옷 하나하나도 가치가 있는데 꼭 조화롭게 입어야 하고, 남 눈치를 보면서 못 입었던 것과 내가 생각하는 틀에서만 입었던 탓에 없다고 느꼈었던 것 같다. 추가로 자신감 문제도. 내가 이 옷들을 산 그 날, 이 옷들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해서 분명 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의 옷들이 하나하나 소중해졌다. 버릴 옷은 없지만 입을 옷이 많이 생겼다. 정말 갖고 싶은 옷이 생긴다면 그 옷에 대해 심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를 하게 하는 용기를 주는 글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항상 부담이 앞섰었다.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남자는 여자를, 여자를 남자를 사랑하게 만든 것 같다.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면서 내가 좀 더 보완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즈비언이나 게이에 대해서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서로를 보듬어 가는 과정인데 레즈비언이나 게이는 그 상대에게서 내가 보완이 될 것 같은 대상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자. 그 상대에게 나의 완벽함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채워 줄 수 있고, 내가 보완 될 수 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나의 결점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불편함과 불안함을 가지지 말자. 내가 그런 불안함을 가지고 있고 상대는 가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상대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불안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