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여자입니다. 우선 앞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는 것을 알려드립니다조현병은 아니고 화병에 우울증, 조울증입니다.점점 더 악화되고 있어서 걱정되지만 답답해서 이렇게 올리는 것이니 조현병이라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이번에는 저희 집안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한번 털어내보려 합니다.어머니가 조현병에 걸리게 된 근본은 외할아버지에게 있습니다 6.25 참전 무렵에 대를 잇기 위해 결혼을 시키는 풍습이 있었고, 그렇게 두 아이를 낳고 본처를 고향에 놔두고 장학사를 하였습니다.그러다가, 외할머니의 큰언니가 적극적으로 결혼을 주선, 본처가 있는지도 몰랐던 사기결혼이었습니다.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임신한 뒤, 그때나쁜 생각을 한 덕분에 어머니는 태어날 무렵부터 신경질적인 성격을 가졌습니다. (지금도 어머니는 본처 호적에 있지만, 왕래하지 않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돈을 달라는 그집 가정에 질려서 절연을 선언했습니다.)
어머니는 말 그대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어요. 밥 해주는 파출부도 있고 고집도 장난이 아니라 식사시간에 혼자 티비를 보고 밥 해주는 언니가 직접 수저로 떠먹여줄 정도였습니다. 다 큰 나이에도 새벽에 환타를 먹고 싶다고 울며 발광할 정도였습니다.(당시 고등학생)이후 외할아버지가 두집 살림을 계속 하면서 집안을 막장으로 치닫게 했지만, 어머니는 아픈 외할머니를 비롯한 가족을 등한시하고 그저 공부만을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남동생인 외삼촌은 방황을 어느 정도 했으며 어머니가 이기적이라고 자주 싸우곤 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영어교사가 되었지만, 사회성이 부족한건 여전했습니다. 부임 첫날에 학생이 __년이라고 한 이후 폭력 선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조현병 발작을 일으키게 된 계기가 생겼습니다.
한 남학생에게 패드립을 하다가 그 남학생이 분을 참지 못하고 어머니의 배를 폭행했습니다.어머니는 학교를 그만두려 했지만 아버지가 수입원이 없다며(회사 그만두고 가정주부였음) 다니라고 강요를 했습니다.2부에서 잇겠습니다.이후 엄마는 점점 미쳐갔습니다. 특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컴퓨터로 써야 하는 서류도 전부 아버지가 다 써주었습니다.
그러다, 9세 때 정신 발작이 일어나고 병원에 가게 되었지만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후에는 아버지가 쭉 방치했습니다. 조현병은 완치되지 않으니 당연히 더 심해졌지요.10살 무렵부터 오지게 맞았습니다. 아버지는 분노조절장애로 기분 별로면 진도 앞바다에 빠지라고 하기도 하고 ㅆㅂ년, ㅈ같은년, ㅁㅊ년 같은 폭언을 일삼으며 때리다가 기분이 풀리면 밥먹자고 하는 분이십니다.
그나마 어머니보단 말이 통하지만 사람 상처를 벌려놓습니다.중학교때 왕따를 당한 것을 보고 왕따새끼라고 하고,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매일같이 욕을 듣고 맞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도 똑같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을 보냈네요. 그러다 17세 때 드디어 어머니가 입원하게 되면서 전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해 말에 당뇨를 갖고 있으면서 관리하지 않던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다시 지옥이 시작되더군요. 아버지는 저 때문에 병이 걸렸답니다. 어머니는 퇴원했고 전 황급히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였습니다. 바로 검정고시를 보고 19세 무렵 전북쪽 대학을 갔는데 하필 분교가 서울에 있더군요. 서울은 아버지의 고향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일하는 빈 작은아버지의 집에서 셋이 살게 되었죠. 마침 사람이 없고, 뇌졸증을 앓고 계시던 아버지도 백수여서 삼촌 집에 6천만원 정도 보태준 그 빈 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진짜 도망가기 위해 선택한 대학이었는데 참 허탈하더라고요... 당연히 거기서도 자주 맞았습니다그래도 전공은 제게 잘 맞아서 1학기때 성실하게 학교에 임한 덕에 4.25 라는 성적을 받고 장학금도 탔지만 부모님은 병신같은 학교라고 인정을 안해주시고 절 때리시더군요(당시 19세)
그때부터 삶의 희망을 잃은 것 같습니다 결국 2학년이 되자 휴학을 2년 동안 하게 되었습니다지금 봐도 인생이 진짜 더럽게 안 풀렸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서도....말이 길어졌네요 다음편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