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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사람 버리는 거 아니라고요...?

ㅇㅇ |2017.05.06 23:07
조회 13,591 |추천 52
우연히 톡을 보다가, 힘들 때 사람 버리는 거 아니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네요. 그 글에 옛생각이 나서 괜히 마음이 울적해지고, 내가 마음을 잘못 먹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 제 이야기를 한번 써 봅니다.


이십대 중반에 저는 한 남자를 사귀었습니다. 저보다 세살 많은 오빠였고 취업 준비생이었지요. 저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구요.


저는 제가 취업을 한 상태이므로 안정적인 연애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남자가 돈이 없는 것 외에는 저와 잘 맞다고 생각하였기에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남자가 전업주부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그 남자가 취준생인 건 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귀고 보니 여러 안 맞는 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연애가 처음이었기에 연애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예쁜 카페도 가고 싶었고, 알콩달콩 쪽지도 주고 받고 싶었고, 여행도 가고 싶었지요. 또한 저는 문화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영화보기, 미술관 가기, 책읽기, 이런 것들이 좋아요. 하지만 이 사람은 모든 면에서 저와 달랐습니다.


그 남자가 취준생이었기 때문에 데이트는 많으면 일주일에 한 번, 보통은 이주에 한 번, 바쁠 땐 두 달에 한 번 본 적도 있어요. 그리고 그 날은 같이 하루 종일 놀았는데, 이 남자는 저를 자꾸만 dvd방 같은 으슥한 데로 데려가려 하더군요. 저는 결혼 전에는 관계를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물론 사귀기 전 남자에게 이를 이야기했고, 남자도 동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자체를 피하려했지만, 그 남자는 사랑해서 하고 싶은 건데 자신을 치한취급한다며 기분 나빠 했어요.


나: 오랜만에 보는 건데 예쁜 카페에 좀 가면 안되냐.
남자: 카페에 왜 가냐, 나는 너랑 하고 싶다.
나: 밖에서 하는 데이트를 좀 하고 싶다.
남자: 너는 너무 사치스럽다. 나는 돈이 없고, 디비디방은 만원에 영화보면서 서로 안을 수도 있고 라면도 먹을 수 있으니 좋다.


이런 류의 싸움을 매일 반복했어요. 사귄지 두달도 되지 않아서요. 남자의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그런 데이트타입이 아닌 걸 어떡하나요. 게다가 결혼 전에 난 안 한다고 했고 동의하지 않았냐니까 절 달래다가, 화내다가... 너무 시달렸어요. 첫 연애인데 매일 어두운 데만 가는 상황이 속상해서 매일 울었지요.


처음에는 이 남자가 발정이 났나 생각을 했는데, 사귀다보니 다른 영향도 컸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충분히 문화 생활을 누렸고, 성향 자체가 남에게 선물하는 걸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집이 너무너무 가난해서 그저 아끼고 아끼는 삶을 살았어요.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선물을 할 때의 기쁨 같은 걸 이해하지 못하고, 왜 그래야하는 지도 모르는 거더군요.


저는 추운 겨울에 상대를 기다리며 커피를 사둔다든가, 가끔 깜짝 쪽지를 써 주는 게 좋아요. 하지만 그 남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넌 그렇게 해, 근데 나는 왜 그래야 해?'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못되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상대에게 무언가 해주는 기쁨을 배운 적이 없는 남자였어요....


마음 고생이 심했어요 저는.
읽은 책 이야기나 영화를 해도 그 남자는 공감을 못하고,
여행을 가자해도 여행을 왜가냐 그러고,
커피 한 캔에 난 오빠가 날 신경썼다는 기쁨을 느낄 거라고 하면 남자는 그런 거 못한다 그러고,
매일 어두운 데서 데이트하기 싫다 하면 자기는 사랑해서 그런 건데 치한 취급한다 그러고.


결국 백일쯤 되었을 때 제가 헤어지자고 했는데,
자기가 없이 자라서 모르는 게 많아 그런 거라고, 한번만 이해해주면 많이 바뀌겠다고 하니 도저히 헤어지지를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계속 사귀었고, 실제로 이후에 그 남자는 많이 바뀌었어요.


하지만 본성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었어요....
여행을 가자하면 따라오는 것 뿐, 같이 예쁜 풍경을 느끼며 교감할 수는 없더군요.... 여행 전날, 여행가기로 한 약속을 까먹어 버린다든가, 여행 가서도 계속 으슥한 데로만 가려고 한다든가.... 같은 걸 보고 같이 좋아하고, 다음에 또 오자 하고 싶은데 그 남자에게는 예쁨을 느끼는 감각 자체가 없는 것 같았어요.


카페에 가면 따라오는 것 뿐. 네가 원하는 대로 카페 한번 왔으니 다음 코스는 디비디 방으로 가야 공평하겠지?라는 태도를 보여 저는 또 속상했구요...


장난스럽게 이벤트 한번 받아보고 싶다~했더니, 정색을 하며, 그런 거 하는 남자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할 거 같으냐, 다 속이 시커먼 거다라고 대답해서 저를 답답하게 하기도 했어요. 저만해도 정말 오직 상대가 기뻐할 모습만을 상상하며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왜 남자는 그게 안된다는 걸까요....


다 쓸 수가 없어요. 그냥 안 맞았어요. 저는 감성적이고, 그 남자는 감성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연애가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요. 하지만 헤어지지 못했어요. '힘들 때 사람 버리는 거 아니다'라는 그 말 때문에요.


그 남자는 매번 취업의 문턱 막바지에서 미끄러졌고, 그때마다 너무 괴로워했기에 헤어질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4년이 지났고, 그 남자는 결국 취업을 했어요. 4년만이었어요.


취업을 하자 그 남자는 결혼을 이야기하더군요. 어차피 저는 결혼할 마음이 없었지만, 그 남자가 하는 이야기도 기가 막혔어요. 자기는 돈이 한 푼도 없으니, 일단 제가 모아둔 돈으로 원룸에서 신혼 생활을 하자더군요. 사치만 안하면 된다구요....


그런데 정말 웃겼던 건, 신혼생활을 3년 하면 자기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제가 왜 처음부터 부모님이랑 안 살고 3년 후에 사냐니까, 초반 3년은 콩깍지가 있으니까 신혼 생활을 즐기고 싶대요. 그럼, 3년이 지나면 그 후에는 뭔가요? 저는 결혼하면 영원히 서로에게 콩깍지인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게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지향만큼은 그래야지요.. 처음부터 콩깍지가 벗겨지면 시부모님을 모셔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않어요.


아무튼 저는 이제 남자가 취업을 했으니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래도 헤어지기에 우리가 쌓아온 시간이 있으니 조정 기간(?)을 갖기로 했네요. 조정기간이 끝난 후 남자가 다시 잘해보자는 문자를 보냈어요. 하지만 전혀 절실함이나 저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설령 절실했더라도 저는 거절을 했겠지만요.


마음이 아팠지만, 저는 그동안 그 남자에게 고마웠던 것과 미안했던 것을 고백하면서,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라는 답을 보냈어요. 저는 그 남자에게서도 안녕이라는 문자가 올 줄 알았는데 더 이상 답이 없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지요.


답장을 안 할 수 있고 그게 잘못 된 건 아니란 건 알아요. 하지만 마지막에 '너도 행복하게 지내'라는 말 한 마디를 하지 않는 그 남자를 보며, 그간 우리가 얼마나 맞지 않았는지 저는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 후에 보는 사람들마다 제게 얼굴이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저도 마음이 너무너무 편해지는 걸 느꼈구요. 행복해요.


하지만 가끔 울컥도 해요.
힘들 때 버리면 안된다는 그 생각 때문에 버텼는데, 결국 저에게는 무엇이 남았는가 생각하면 억울해요. 저는 기다려준 4년에 대해, 고마워, 너도 수고했어, 너도 좋은 사람만나, 같은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하고 서른이 넘었지요. 그 말 한 마디만 있었어도, 제가 이토록 그 남자를 미워하진 않았을 거예요.


(혹 그 남자가 취업하니 아까워서 그런 거냐는 말이 나올까봐 참고로 쓰자면, 저와 그 남자 모두 정년 보장인 직업이며, 제가 평생 남자보다 연봉이 두배정도 많습니다. 저는 제 직업에 아주 만족하구요. 돈 때문에 아까울 상황은 아니에요.)


그리고 제 안에는 남자에 대한 불신이 깊이 남았어요. 너무 그 남자한테 데어서 이제 결혼은 커녕 남자 만나기도 싫어요.


그 남자가 엄청 불행해졌으면 좋겠어요.
추천수52
반대수1
베플스마일|2017.05.06 23:13
아니다싶으면 일찍 헤어지는게 낫아요 아무리 싫은사람이어도 정이 오랜 후유증으로 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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