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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여자친구

ㅇㅇ |2017.06.17 00:58
조회 4,392 |추천 5
안녕하세요
제 여자친구, 이제 전 여자친구네요.오늘 이별했습니다.아침에 일을 가기 위해 일어나서는 폰을 봤을 때, 장문의 이별 통보가 와있더군요.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차단했더군요.조금 냉정을 찾고나서 연락을 위해 페이스북을 켰습니다. 이미 친구 목록에서 없었습니다. 뭐 당연히 예상은 했습니다만 다행히 페이스북 계정은 그대로 남아있더군요.메시지를 보내고 난 다음에야 알았습니다.프로필이 이미 연애중이라는 것을요.물론 제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요.이름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저랑 데이트 도중에 걸려왔던 전화에 적힌 이름이었어요.그때 자리를 피해서, 따라가 왜 자리를 피하냐고 했을 땐 자신이 전화 통화를 남이 듣는 걸 안좋아한다고 말하더군요.하지만 촉이 아무래도 있지 않습니까.느낌이 이상했어요. 하지만 믿었습니다. 제 여자친구고 정말 사랑했으니까요.쓸데없는 의심이라고 생각하고 데이트를 이어갔었습니다.하지만 그때 넘어갔던 게 이렇게 큰 배신으로 돌아올 줄은, 그때는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사실 그 전부터 슬슬 같이 있는 걸 점점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받아왔습니다.어쩌면 그때부터 의심해야 했었는데..정말 호구인가 봅니다.
연애 시절 이야기를 조금 풀자면, 정말 사랑 하나로 살았었습니다.처음에 제 전 여자친구는 대학생이었어요. 16학번 신입생이었는데, 같은 학교는 아니었습니다만, 과에서 생활을 힘들어했습니다. 옆에서 격려하고, 너무 힘들면 자퇴하고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을 때, 자퇴를 결심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과비의 잔액을 돌려주지 않더군요. 저는 대신하여 영수증을 받아내 횡령으로 의심되는 결정적 증거를 잡아서 대신하여 글도 써주면서 돌려받도록 도와주었습니다.자퇴 후에는 또 가정불화가 어렸을 때부터 심해서 집을 나와야겠다고 하더군요. 사연을 들어보니 정말 그 집에는 있어서 안 될 것 같아서, 여름에 비가 폭포처럼 오는 폭우에도 그집에서 데려나왔습니다. 그리고 염치 불구하고 저희 집에 임시로 살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아버지의 집이었지만, 사정을 말씀드리고 원룸을 구할 때까지만 임시로 있겠다 말씀드리고 데려왔었습니다. 그 뒤로 원룸을 구해서 나가 살았습니다만, 집주인의 관리인이 무단으로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제가 나서서 고소장을 접수하는 등의 조취를 취해주었습니다. 조금 안타까운 건 큰 사건으로 번지면 싸움이 힘들어질 것 같아서 안타깝게도보증금과 월세 일부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취하하는 것으로 합의 봤었지요. 그 뒤로 어쩔 수 없이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살았습니다. 저 또한 돈은 벌지만 수입이 미미한 대학생으로써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동고동락하며 함께 살았어요. 학교가 멀어 대학교 기숙사에서 어쩔 수 없이 평일에 있다가, 주말이면 내려와서 사랑을 나눴어요.지내다 알게된 사실이지만, 전 여자친구는 간질도 있었습니다. 간질을 주변 분들에게서 접해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거의 징조없이 갑자기 쓰러져 몸을 부들부들 몇 분 동안 떱니다.집에서 그랬을 때, 처음엔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119에 신고해서 도움을 받았었고, 나중에는 주변의 물건을 전부 치우고 자리에 이불을 깔아 충격을 완화해주는 등 정말 아낌없이 보살폈습니다. 부산에 갔다가 서울로 온 당시에도 연락 받자마자 몇 십 kg나 되는 짐을 주렁주렁 메고 달려가 응급실로 가 깨어있을 때 옆에 있어주고, 대학생 신분으로 모은 얼마 안 되는 돈 다 털어 그 비싼 비용 말없이 먼저 계산했습니다.저는 깨달았어요, 아픈 여자친구를 위해서는 이대로 버틸 수 없다는 것을요.돈이 많지 않은 집의 자식으로써, 부모님께 손 벌릴 수 있는 금수저도 아닌 저는 돈을 많이 벌어야 했습니다. 불치병의 여자친구와 산다는 것을 평생 가는 질병이기 때문에 버티고 살기 위해서라도 먹고 사는 정도가 아니라,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간질 이외에도 먹는 약이 한 두개가 아니었으니까요.게임을 만드는 것이 전공인 저로써, 제가 할 수 있는 건 게임을 만드는 것 뿐이었고, 굳은 결심을 하고 게임 제작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낮엔 대학생활에, 장학금을 유지하려면 턱없이 높은 성적을 유지해야 해서 전부 A 이상이 되야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A를 위해 과제, 작품, 시험 모두 최상으로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엔 사업을 위해 게임 제작에 힘썼어요. 여자친구와의 밝은 미래를 위해 잠 줄여가며 미친듯이 열심히 살았습니다.첫 작품에 성공한 게임사는 없다고 하지만, 저는 다행히 작은 성공은 이뤘습니다. 인지도 하나 없는 첫 작품임에도 생계 수준의 소득이 나왔습니다. 기뻤어요. 앞으로 게임으로 먹고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하지만 그 뒤로의 차기작은 프로젝트가 몇 번 엎어져버리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름 프로젝트에, 사활을 건 프로젝트를 준비할 예정이었습니다.며칠 전에 갑자기 직장을 구하고는 직장이 멀어서 따로 나가서 살아야겠다고 하더군요.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였지만, 몇 번 반대하다가 그러라고 했습니다.남의 집에 얹혀 사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몇 번 얘기했었고, 직장이 멀어서 준비가 오래걸려 잠을 못잔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요.사실 저도 조금 지치는 면이 있었습니다. 평일에 대학에 있다 주말에 오면 집안일이 하나도 되있지 않았거든요. 아버지는 일 때문에 집에선 잠만 주무시기 때문에 집에서 무엇 하나 쓰지 않습니다. 결국 혼자 지내는 것인데, 설거지나 집안 청소, 빨래 등을 모두 되 있는 게 거의 없고, 어쩌다 한 번씩만 하여, 평일에 학교와 일을 병행하고도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데도 주말에 제가 다 몰아서 하고 일도 했습니다. 요리도 주말에 제가 해 놓은 것을 먹고, 먹을 게 없으면 먹지 않고 밖에 나가있을 때만 먹었어요.
나가서 산다는 것이 바람피다 갈아타서 정리하는 과정의 하나였을 줄은..정말 물심양면으로 헌신하며 살았는데, 둘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배신당할 줄은 몰랐습니다.제 상처를 한 번 더 찌른 건 페이스북에서 바람 난 남자와 연애중을 띄운 날이 헤어진 오늘로부터 거의 한 달 전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페이스북은 워낙 바빠서 자주 확인하지 못했었습니다.아직도 둘이서 사랑을 속삭이던 그때에도..그랬다는 사실을 알고 억장이 무너지더군요.사랑 하나로 아픈 여자친구를 평생 지켜주겠다는 미래를 보며 버텨가던 하루하루가 그렇게 산산조각 났습니다.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추천수5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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