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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근거한 재창조의 안식일, 주일

주품이 |2017.09.26 15:06
조회 35 |추천 0
주품이 큐티 ^ ^ *
{마가복음 2:23~28}
[사랑에 근거한 재창조의 안식일, 주일]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쌔 그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원어사전:
*안식일:savbbaton(4521, 삽바톤)
'안식일', 유대 달력에 있어서 안식과 여호와를 예배하는 날로 지정된 한 주간의 일곱째 날.
1. 삽바톤의 기원
헬라어 삽바톤은 히브리어 샵바트를 음역한 것이다. 이 히브리어의 기원은 불명확하다. 어원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샤바트(그치다, 끝내다, 쉬다)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한다
(d) 안식일은 언약의 한 표징이다. 안식일은 구약시대에서 할례의 표징과 같은 부류에 속한 것이다. 출 31:13, 출 31:17과 겔 20:12이하 절에서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징이며 이방인과 구별하는 표징으로 주어진 것이다.
한편 행 20:7에 보면, 바울은 드고아에서 7일 동안 머물면서도 주간의 첫날에 그리스도인들과 만난 것을 볼 수 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여기에서 삽바톤은 '주간'을 의미하며, 따라서 첫날은 '주일'이다.
(e) 교회에서 안식일. 그리스도는 주간의 첫날(막 16:2 마 28:1), 즉 그리스도교 예배의 날(행 20:7 고전 16:2 참조: 계 1:10)에 부활하셨다.

*다윗:Dauivd(1160b, 다위드)
다윗 David
다위드는 히브리어 다위드의 음역이며, 그 의미는 마리(Mari)에서 발굴된 서판이 시사하는 것처럼 '사랑받는 자', 또는 '두목'이라는 뜻이다.
다윗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의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요약은 그의 신앙의 진실성에 대한 역사의 판단이 되었다(삼상 13:14).

*진설:provqesi"(4286, 프로데시스)
차려놓은, 진설, 결심, 의도.

*주인:kuvrio"(2962, 퀴리오스)
주님 Lord, 주인 lord.
1. 고전 헬라어의 용법.
퀴리오스는 퀴로스(ku'ro": 힘, 권위)에서 유래했으며,
(a) 형용사로는
① '힘이 있는, 권세(력)을 가진, 권한을 부여 받은, 권위 있는, 유효한'을 뜻한다. 여기서 힘이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지배력을 뜻하며, 법의 경우에는 유효하다를 뜻하며, 사람에게 사용될 때는 권위 있거나 자격이 있다는 뜻이며, 통치자의 경우에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다를 의미한다.
② '중요한, 결정적인, 주요한'을 의미한다.
(c) 그러나 많은 경우에(약 6000회 이상) 퀴리오스는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고유명사, 즉 신성 4문자 YHWH를 대신한다.


# 신약 시대에는 안식일의 정신은 끝나기 보다는 참된 안식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에 있기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성수하게 되며 주일을 통해 안식일의 정신은 이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을 향한 사랑이 주일을 통해 이어지며 더블어 예수님을 향한 구원의 믿음을 위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을 향한 사랑을 위해 제정하기도한 이날을 이 부분까지 부인하기도 하여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위해 전심으로 모두 준비하기만 하는 날로 사용하는 것이 옳기도 하나 인간에게 있어서 핍절한 상황에 놓인다면 인간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강도를 구한 사마리아인의 예를 들면 레위족과 제사장이 예배를 위해 빨리 가야 하기에 강도 만난 사람을 모른척 하였지만 사마리아인은 예배를 준수하지 못할 지라도 그 강도 만난 자를 구함으로 예배의 주인되신 하나님은 그 사마리아인을 더 칭찬하는거 뿐만 아니라 아예 그 사마리아인만이 진정한 이웃이며 구원 받은 자의 모습이라고까지 합니다. 예배를 드린 들 예배의 근본 정신 사랑을 도외시한 예배는 이미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귀를 막고 가인을 대하듯 네 예배를 안 받으신다 하실 것입니다.

핍절한 상황 속에서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 더 중하며 더 나아가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아픈 사람과 교회 출석을 위해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거나 운행하는 것 주일날 아픈 사람을 위해 약국이나 병원을 이용하거나 운영하는 것등 핍절한 사람을 위해 특별히 주일 날, 사랑으로 인해 이용하고 운영하는 것은 인간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율법주의와 같이 일률적인 정죄와 배려와 사랑 없음은 하나님께 오히려 책망의 대상이 되었을 뿐입니다. 이는 근본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였던 마음 중심이 있었기에 자신들도 이해할 수 있었음에도 허용하지 않는 강퍅한 마음에 있었던 바리새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유럽의 일부 국가의 같이 전국가적으로 주일 날 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그러하지 못한 나라라도 인간의 핍절한 이유와 사랑이라면 이해하여 주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 즉 주객이 바뀌지 않는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넷에 어떤 글에도 남겼지만 남을 사랑하기 위해 그에게 갔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주장 설득을 위해 말을 하다 보니 그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면 안하느니만 못하는 것입니다. 전쟁 중에 예를 든다면 시리아가 백성들을 is로부터 자유를 주기 위해 전쟁을 하는데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통 폭탄을 터뜨리고 민간인까지 죽이고 난민을 대규모로 발생 시킨다면 그것이 진정한 국민사랑인가요 월남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월남인을 해방 시키기 위해 많은 병력이 투입했지만 베트공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하고 보복 살인 강간등으로 민간인을 죽이고 있다면 하지 않는 거 보다 나은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접근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가난한 여인을 자유하게 한다고 강제로 그 여인을 대한 다면 사랑이 없는 비극과 이혼등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연애인 중에도 아리따운 어린 여인을 강제로 얻다가 끝말에는 이혼하고 사회적 큰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종종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문을 여는 그림에도 나옵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 집안에 여는 손잡이는 없습니다. 오직 그 주인이 문을 스스로 열고 예수님을 영접 해야만 합니다. 프롤레타이아 공산혁명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 모두 민중을 해방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이 거짓과 살인에 근거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함에 앞서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 중심에 진정한 사랑을 가지고 대하고 있는지 그에게 자유의 마음의 배려를 항상 하고 있는지 먼저 인지 해야 합니다.

남을 전도하는 거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제가 범하기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전도하다 상대가 욕을 하면 나도 그 사람을 비방하고 서로 맘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접근 한건데 나중엔 사랑도 없고 서로 욕하고 난리입니다. 이것이 주객이 뒤바뀌는 예가 아닌가 합니다. 영성과 지성으로 전하되 이성과 사랑을 항상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사랑은 대상성과 자유성 영원성이 있다 하였죠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대상으로 대하고 억지가 아닌 자유로움 속에 항상 대하여야 겠습니다. 때가 아님 포기도 하고 주님의 때를 기다려야죠 앉혀놓고 억지로 설교나 비방 해대는 것도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남에게 항상 인격적(사랑받을 언행)으로 남을 항상 대하고 있는가 자유성 없이 남을 억지로 강요해대는 습관은 없는가 일관성을 가지고 항상 그것을 배려하고 있는 가 나 자신을 돌아 봐야겠습니다. 현재 인류의 모든 전쟁과 불행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격체인데 자기가 짐승의 후손인지 알고 하는 비인격적인 교제, 남에게 종교 정치, 군사 상대방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여유와 자유를 주지 않고 이슬람과 같이 코란과 칼을 가지고 개종하지 않으면 모두 죽이는 비극과 또는 연인간의 강제성, 배려가 영원하지 않아 배려 하는 거 같아도 나중에는 참지 못하고 폭팔하는 일관성 없는 분노입니다.

지금의 안식일은 연속성과 비연속성으로 존재합니다. 연속성은 인간이 안식을 누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축복하시고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구약의 창세기 의미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비연속성은 율법을 위해 토요일을 지키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참 백성임을 나타냅니다. 오직 믿음을 통한 구원, 새로운 참언약임으로 예수님을 믿음을 기념하는 지금의 일요일인 주일을 기념하고 쉬게 됩니다. 율법을 통한 안식은 죄로 깨어졌기에 새로운 날이 이전을 통해 재창조의 안식이 안식일 다음 주일로 이어진 것입니다

주일을 쉬는 것은 모든 백성들의 특권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음으로 예배 드리고 자부심과 정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 쉼을 통해 또 다른 재창조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고 꼭 억지로 예배 드림이 아닌 하나님의 안에 사랑에 근거해서 선한 일도 행할 수 있습니다. 소방관이나 당직의사가 사람이 불타거나 죽어가는데 억지로 예배 드린다고 그들을 모른체 할 수 없습니다. 굶어 죽어 가는 또는 핍절한 사람을 위해 도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은 그 사람의 사랑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늘 한결같이 배려 하시고 여러분에게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아멘!


모든 법의 왕과 주인되신 하나님 아버지, 왕이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주님의 날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사랑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향한 부활의 믿음으로 제정 하셨습니다. 주님의 그 근본 정신에서 떠나지 않고 온전히 주일을 성수하고 예배 할 수 있도록 하며 남을 향한 배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일성수의 정신을 바로 깨달아 믿음 안에 주일에 예배 드리게 하옵시며 이 시대에도 안식교등 토요일을 지키는 율법주의에 빠져들지 않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일을 온전히 주님의 사랑 안에서 성수함으로 축복하여 주옵시고 그 사랑 항상 변하지 않케 베풀어 주시옵소서 늘 피곤함을 모두 극복하는 주일성수가 되어 매주 새로 힘차게 시작함으로 매 한주간의 일 모두 능히 아무런 사고 없이 지켜 주시옵소서 모든 세상의 유혹 속에도 게으름으로 시험에 빠지지 않고 너무 고단함으로 체력을 낭비하지 않케 하여 주옵소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우리를 항상 지켜 보호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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