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호적상 39살 본 나이는 잘 모르는 생각없는
여자사람 입니다 지금까지 제 삶에 대한 얘기를
해본적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으며 나라는 존재를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혹시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이 계신다면 거짓말 주작
막장드라마 개소리 정신병자 그렇게 저를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제 살아온 인생이 그런 인생
이고 무언가 부풀리거나 보태어 이야기 할수도
없습니다 글쓰기를 결심한건 저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누군가는 한번쯤 떠올려 주시길 바라며
지루하고도 긴 제 삶을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저는 7남매 막내고 늦둥이로 태어났어요
하지만 친형제는 없어요 아빠가 같은데 엄마는 틀리고 엄마는 같은데 아빠가 틀리고 언니들은 너는
아빠딸이지 내동생 아니야 그냥 그핏줄타고 태어나서 말이 형제자매지 너 가족이라고 생각안해
라며 줄을 긋던 형제들 태어난 년도 날짜 병원
누구하나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요 난 엄마 아빠 가족들과 살았지만 그냥 없던 애였다고 하네요
엄마는 아빠와 재혼을했고 아빠는 첫부인은 죽고
두번째부인과는 헤어지고 엄마와 3번째 재혼을 했고 당시 엄마는 전남편사이에 태어난 저와 6~7살
정도 차이나는 오빠를 데리고 재혼해서 저를 낳았죠
근데 두분 혼인신고 안하고 사셨고 엄마는 제 출생신고를 안해줬어요 그땐 호적인지 출생신고인지
엄마가 안해주면 할수가 없었다네요
무언가를 기억하기 시작하던 날부터 두분은 매일
싸웠고 성인이된 큰언니 오빠 비슷한 또래 언니오빠
각자들의 생활에만 충실했죠 엄마아빠가 싸우면
울면서 안방에서 나와 언니들 방문을 열면 언니들은
방문을 닫고 잠궈버렷어요 우린 방3개딸린 가게에
살았어요 오토바이 가게요 언니들은 외면하고
안방에는 무서워서 못들어가고 그냥 멍하게 가게
앉아서 어느방이든 들어오라면 들어가길 기다리는
깍두기같았죠 고졸과 고1 갓성인이 된 언니들은
셋이서 늘 즐거웠죠 과자를 먹으며 자매들이 수다삼매경일때 지금도 생각나는 양파링 하나를 그냥 집어먹었는데 누가 먹으라고 했냐며 제 뺨을
때리던 큰언니 신경도 안쓰는 다른 언니 더패서 가따
버려버리라던 엄마 엄마에겐 오빠만 자식이였고
다른 언니오빠들과 크게 트러블은 없었던걸로
기억해요 울면서도 갈곳도 없고 달래주는 사람도 없고 당시 첫째오빠는 20살이 넘어 군대를 다녀와서
가게 일을했어요 큰오빠랑은 이야기한적이 딱 한번이라 기억나요 그래도 한배에서 나온 오빠한테
놀아달라고 하면 오빠는 당연히 싫다며 발로차고
엄마에게 내가 귀찮게 한다고 고자질하기 바쁘고
그럼 엄마는 날 때리고 그때 전 몇살쯤이였을까 5살?6살? 그정도 나이였던것 같네요 지금도 서러운건 투정부린다고 밥 안먹는다고 하면 누구도
달래지도 않았고 밥을 먹이지도 않았고 처먹지 말라며 정말 굶겼어요 그게 어른이 아이한테 할짓 인가 싶지만 그땐 아무생각도 없었어요 무튼 매일싸우며 위태위태 하던 부모님은 결국 엄마가 오빠를 데리고 집을나가면서 두분은 굿바이~가
됐죠 아빠는 맨날 낚시하러가면 며칠은 있다가 오고
언니들은 직장 학교 오빠는 가게일 밖에나가 놀고
싶어도 동네에 제가 어울릴 또래는 없었어요 그흔한
장난감 인형 하나도 없어서 가게 구석에서 바둑알가지고 놀곤했어요 아무리 미워도 어린앤데
참 냉정한 이복 형제들이죠 그때도 전 아빠가 싫었어요 저랑 말도 안했거니와 그시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때문에 싫었던건 아니였던거 같아요
그렇게 얼마지나지 않아 갑자기 아빠는 어린 저를
데리고 충주땜에 낚시를 갓는데 이름이 둔대리 였나
무튼 그랬던거 같아요 그리고 그때부터 전 아버지의
화풀이대상이자 그때는 뜻도 몰랐던 욕들을 하루에
절반이상 들으며 3년을 낚시터 강가에 텐트를 치고
살았습니다 입을옷도 없이 당시 가을쯤이라 강가는
춥다며 잠바하나 입고 온 낚시터에서 1년을 매일
똑같이 지냈습니다 따뜻한 날은 잠바를벗고 추우면
입고 바지와 티는 첨 갈때부터 이듬해가되어 작아져서 맞지도 않는걸 억지로 입고버텼어요 그래도 아빠는 우주복같은 겨울 낚시옷 여름옷 속옷
자기껀 다 챙겨왔어요 대단하죠? 근데 솔직히 옷은
당시 저에게 아웃오브였어요 라면도 끓일줄 모르는
6살 아이에게 개__같은년아 애비가 니 밥까지
처해다바쳐야 되냐 ____ 지애미 닮아서 __같은년 그게 하루에 열두번씩은 듣던 욕이였어요 그래도 그 뜻 모를때가 좋았던거 같아요
신발은 발의 반정도밖에 안들어가서 구겨신고 옷은
작으니 이리 저리 터지고 진짜 전쟁고아 코스프레였죠 그땐 그런거 알지도 못했고 새옷 새신
뭐 그런건 생각도 안해봤어요 저수지 강가 낚시터에서 몸만 딸랑있는 제가 관심있는건 밥뿐
코펠에 밥을 해서 주면 먹고 아빠 혼자 먹고 치우고
라면먹고 밥말아 먹고 낚시터 근처 맑은물에 가서 설거지 하는건 제 몫이고 주변에 다른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고 떠난 자리마다 뒤지고 다니는게
일이였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요 싸온 음식 남는건
버리고 가는 사람이 종종 있었고 대다수 남은 김밥
꽈배기 그런거였는데 그거라도 누가 버리고가길
바라며 통조림 떡 아님 잉어낚시하려고 삶아온
감자 그런것들 주서먹으면서 아무생각도 없었어요
밤마다 밤낚시 하다 새벽쯤 텐트로 들어온 아빠는
__ 애비가 밖에 낚시하는데 물에 빠졌나 애비걱정은 안되고 처 잠이 오냐고 자고 있는 저를
발로 차고 밟고 뭐 반복되니 익숙해서 아빠가 텐트에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저도 모르게 잠에서
깨서 덜 맞을꺼라고 한껏 몸을 웅크리고 밟힐준비를
했죠 그러고 나서 아빠가 누우면 저도 깊은 잠에들고
맞는거 굶는데 욕하는거 다 괜찮지만 정말 그 어린 나이에 죽고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게 있는데
그건 저를 들어서 강물에 던져버릴때였습니다 지금도 전 물이 무서워요 목욕탕도 집 욕조에 반신욕
그런것도 못해요 물이 무릎정도 닿으면 숨이막히고
어릴때 처음 강물에 던져질때 그 공포감이 아직도
떠올라요 몇번 죽을뻔도 했죠 물속에서 정신잃은적도 몇번있고 주변에 낚시하시던 분들이
물속에 들어와 건져주기도 하고 눈발 날리고 어둑어둑한 12월 한겨울에 던져질때면 6살7살에
저는 죽어라 제발 죽고싶다 속으로 외쳤어요
갈아입을 옷도 없고 물에서 나와도 졌은옷그대로 입고 나무쌓아 불때고 그 주변에 앉아 옷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을때까지 말리고 텐트에 들어가야 했으니 그 겨울에 한밤중에 옷이 마르는게 아니라
얼어가는 그후를 생각하면 차라리 그때 곰팡이낀
김밥주서먹고 고드름 생기는 옷입고 말리겠다고
총총거리던때는 그나마 봄날이였어요
제 기억의 시작부터 생각나는것 기억하는것 차례데로 써올리고 싶은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안할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 끔찍한 기억을 다시 하면서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건 죽을때까지
가슴에 담아두기엔 저도 버겁고 힘들고 어딘가
쏟아내야지 그게 아니라면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요 죽든살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가 살아온 제 서러운 인생
이렇게라도 덜어내고 싶었고 처음에도 썻지만
누군가는 한번쯤 내 존재를 스치듯이라도 기억해줬음하는 욕심에 글을 올림니다
다음이야기도 읽어주시면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