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오르며
민병도
못다 삭힌 슬픔을 지고 지리산을 오르기에는
놓친 길이 너무 멀고 벼랑 또한 힘에 벅차다.
칼끝에 널부러져 간 무명바지 서러운 길
아픈 산을 들어올리는 뻐꾹새의 피울음에
숨겨온 상처 묻으면 찔레꽃은 저 홀로 지고
댓잎의 푸른 증언이 골짜기를 후빈다.
분해서 잊어야 하고 부끄러워 버려야 하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긴 업연의 봉우리 위로
무심히 낮달 내려와 천년의 혈흔을 닦고
죽은 자가 불던 초적 살아서 다시 불며
한 시대의 실족을 따라 순례처럼 가는 이길
뜨거운 가슴 흔들어 풀꽃 하나 새로 눈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