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고양이에게 목줄을 채우다

다른것들 |2018.11.08 20:59
조회 163 |추천 0

고양이에게 목줄을 채우다

 

학창시절 반에서 눈에 띄지 않는 부류들이 꼭 한 명씩은 존재했다. 그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가방을 메고 집으로 향했으며,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고, 독서를 좋아해서 책을 항상 들고 다녔다. 주말에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했고, 점심을 제외하곤 항상 가족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 이 친구들은 숫기가 없어서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 못하고,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도 교사들은 이들을 좋아한다. 교사들이 싫어하는 학생은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문제를 일으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가만히 놔두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사교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아예 없진 않고 꼭 한두 명씩은 친하게 지낸다. 이런 평범하면서도 답답한 유형의 대표적인 인간이 ‘나’다. 지금부터 풀어나갈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내가 순식간에 시트콤 속 주인공이 된 상황을 묘사하려고 한다.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 중에 재미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빨래’다. 나를 빨래라고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탁기 속 물줄기에 그저 몸을 맡기고 있는 수동적인 것의 전형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나를 그렇게 부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살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적도 없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내 인생에 열심이란 건 없어”일 정도니 알만하지 않겠는가. 취미 생활은 더 가관이다. 집에 틀어박혀서 영화 보고, 책 읽고, 게임을 하고, 그나마 괜찮은 취미 생활은 그림 그리는 것 정도. 그림 그리는 것도 연필 깎기 귀찮아서 그만둔 거 알면 부모님이 대노하실 거다. 이런 답조차 나오지 않는 게으른 인간이지만 그래도 사회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고요한 주축을 찾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편이었다.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도 여러 번 했고, 과분하게 이 머리로 4년제 대학교에 입학도 했고, 장래도 대충이지만 계획해두었다. 한마디로 삶이라는 퀘스트속에 나름대로 요령을 찾은 셈이다. 그 요령은 영업비밀이지만 이번만 특별히 알려주겠다. 첫째, 절대 나서지 말 것. 둘째, 시키는 대로만 할 것. 난 이 두 가지로 잘 버텨왔었다. 단 그 효력은 내가 21살이던 해 2017년 3월 29일까지만 유효했다.

2017년 1월 23일 추운 겨울 나는 짧아진 머리칼을 어색하게 더듬으며 논산훈련소 앞에서 서 있었다. 아직 그때 풍경이 생생하게 내 머릿속을 간지럽힌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부 푸르스름한 머리의 또래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고, 입대 전 아버지와 함께 훈련소 앞에서 맛없는 갈비탕을 만 이천 원인가 주고 사 먹었던 것까지. 인제 와서 말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런 이색적인 경험들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추운 겨울날 군대에 훈련병으로 던져진 나는 꽤 잘해나갔다. 제식은 왼발부터 번호에 맞게 나가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고, 목소리는 무조건 크게 내면 된다. 12살 때부터 FPS 게임을 해서 그런지 사격도 재밌었고, 화생방 CS 탄도 마실만 했다. 열악한 환경 탓에 기침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래도 논산에서의 시간, 종교행사가 끝난 후 바라봤던 별들, 코끝에 스치는 찬바람이 항상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문제는 자대배치를 받고 난 후였다. 3월 29일에 xx 사단 xxx 대대에 배치를 받게 된 나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고, 나 자신이 아직 스스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3월 29일 중대에 총 3명의 동기가 있었는데, 운전병, 전차조종수, 그리고 전차 포수인 나까지 전부 같이 전입을 온 알동기였다. 입대하기 전에 모든 군대가 동기생활관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1월군번인 우리들은 선임들과 생활했다. 전입한 첫날 중대장은 간단하게 인사를 시킨 후 대대분리수거장 폐자원매각에 우리를 보냈다. 2주 동안 아무것도 안 시킨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3명의 신병이 폐자원매각 작업을 얼마나 잘할까? 나를 포함한 3명의 신병이 전부 어찌할 줄 몰려 하고 있는데, 그때 바로 윗선임이 우리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너희들 뭐해? 너희만 더러워?” 생각 한번 해보자. 전입해 온 첫날 장갑 하나 없이 분리수거장 작업을 갔는데, 이름도 모르는 선임이라는 사람이 신병에게 화를 냈다. 그때 심경은 말 그대로 행성 하나가 내 정수리를 향해 디스코를 추며 착륙할 준비를 하는 느낌, 그냥 _됬다는 생각밖에 안했다. 우리는 맨손으로 쓰레기를 주워 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선임과 중대장과의 마찰에 관해 설명할 건데, 일단 선임과 있었던 마찰부터 얘기해보고자 한다.

실명을 거론하고 싶을 만큼 이상한 선임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선임은 말 그대로 부조리의 끝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첫날 분리수거장에서 우리에게 뭐라 했던 사람과 내가 말하는 선임은 동일인물이다. 분리수거가 끝나고 생활관에 들어갔을 때, 우리를 모아놓고 왜 그때 가만히 서 있었냐고 뭐라 했던 사람도 바로 그 선임이다. 그 선임을 편의상 J라고 부르겠다. J는 동기들도 싫어할 만큼 성격이 안 좋았고, 후임들은 당연히 그를 싫어했다. J는 집합을 자주 시켰고, 감정 기복이 병적으로 심했는데, 한번은 자기 동기가 마음의 편지에 신고했었는데, 누가 신고했는지 반드시 찾겠다며 선임들과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한 게 아직도 생생하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후임들이 싫어하고, 자기도 후임들을 싫어하면서 후임들과 얘기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나한테도 박카스를 사주면서 “그래도 나는 너희들보고 별로 뭐라 안 하잖아”라며 능청스럽게 말한 적도 있었다. 미리 말하지만, J는 영창 10일을 갔었는데, 사유는 폭언, 욕설 및 폭행으로 중대 전체한테 마음의 편지에 적혔다. 원래 선임들과 같은 생활관에서 생활했는데, J 때문에 생활관을 완전히 동기생활관으로 바뀌기까지 했을 정도다. 그래서 우리 생활관에 3명이 전부였던 적도 있었다. J의 일화는 매우 많지만, 그중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은 세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모의 탄을 나르는 일인데, 사실 내가 체력이 좋지 않아서 30kg 가까이 되는 모의 탄을 두 개씩 옮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불구하고 2층 건물에서 맨 밑에 수송부까지 절반 정도 나르고 있었는데, Y 중사가 “여기까지 혼자 들고 온 거야? 이제부터 내가 들 테니까 이리 줘.”라고 했다. 원래라면 괜찮다고 끝까지 했겠지만, 여름이라 땀도 뻘뻘 흘리고 팔에 감각도 없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넨 후 다른 물건을 들고 갔다. 그때 J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야 너 내가 너보고 그거 들라고 했어?” “들고 오다가 Y 중사님이 들어주셔서 전 다른 거 들고 왔습니다.” “이제 말대꾸도 하네?” “죄송합니다.” 그때 J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저녁에 불침번 때 온도체크를 하고 있는데 저녁에 나를 세워놓고 또 뭐라 했었다.

두 번째는 J가 여자친구와 헤어졌었는데, 그때 1시간 동안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노려봤었다. 진짜 토할 만큼 역겨웠지만 못 본 척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 동기랑 내 얘기를 하는 것이다. 눈은 여전히 나를 노려본 채로. “야 OOO는 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싸지방도 잘 안 하고” J의 동기는 대충 “그러게”라며 넘어갔다. 하지만 J는 갑자기 나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야 OOO 넌 선임이 너 얘기하고 있는데 대답도 안해?” 내가 대답할 타이밍이 어디였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난 죄송하다고 말하며 도서관으로 도망치듯 걸어갔다.

세 번째는 운전병 동기와 관련된 얘기다. 운전병인 내 동기가 점심때 밥을 먹으려고 J와 함께 줄을 서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중대 이등병이 취사 지원이라서 식판을 갖다 줬는데, J가 운전병 동기한테 이렇게 말했다. “야 저 이등병 조카 바보같이 생겼지?” 운전병 동기는 말없이 그냥 웃었는데, J가 운전병 동기한테 “야 대답안해?”라고 한 것이다. 성격이 있었던 운전병 동기는 순간 욱해서 “대답할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했는데, 다시 화가 난 J는 “이제 말대꾸하네? 너도 똑같아. OOO처럼 군 생활하게 해줘? 똑같이 대해줄게. 넌 끝났다고. D.I.E”라고 했다. 그 OOO는 바로 나다. 이에 화가 난 운전병 동기는 수첩에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적었고,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도 이번엔 화가 나서 소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소대장님. 그 J 일병이 지속해서 저희를 괴롭혀왔고, 이번에 이런 말까지 했는데, 그건 누가 봐도 저를 정해놓고 여태까지 갈굼. 행위를 해온 거라고 생각됩니다.” 소대장은 “이게 처음이 아니라면 심각한 것 같아. 이건 무조건 중대장님께 내가 직접 보고를 할게. 너무 마음 쓰지 마.”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J 일병은 이번 사건으로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중대장과의 마찰을 말하고자 한다. 솔직히 그 선임보다 싫었던 사람이 바로 중대장이다.

이등병일 때, 나는 말을 많이 안 했다. 아니 사실 살면서 말을 잘 안 했다. 그건 아픈 과거 때문도 아니고, 병 때문도 아닌 성격 자체가 소심하고, 집안 자체부터 전형적인 과묵한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등병 약장을 달고 얼마나 화려한 언변을 구사할 수 있을까. 그런데 자대에 온 지 한 3일이 지났을 때, 중대장이 나를 세워놓고 말했다. “oo. 우리 잠시 차나 한잔할까?” 중대장이 행정반으로 나를 데리고 간 다음 상담을 진행했다. 이유는 잘 웃지 않고, 말을 잘 안 한다는 것이다. 난 그저 “아직 적응을 잘 못 한 것 같습니다.”라고 짧게 답변을 했을 뿐이다. 그때부터 모든 게 꼬이기 시작할진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자대에 온 지 2주가 지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초소근무를 투입하게 되었다. 부사수는 외워야 할 게 많다. “통신보안 대탄초소 근무자 0중대 000입니다. 현 시간부로 근무 교대하였고, 탄통, 탄알집, 비상등 이상 없습니다. 내부 발판병 비상벨 확인하겠습니다. 외부 발판형 비상벨 확인하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귀소 감명도 00 당소감명도 여하이상.”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다. J는 우리를 모아놓고 첫날부터 저걸 외우게 했다. 그거 외에도 초병의 권한, 무기사용 시기, 일반수칙 등을 물어봤고, 대답 못 하면 그때부터 온종일 갈굼당하는거다. 이런 혹독한 트레이닝이 있어서 그런지 막상 근무를 서는 게 긴장돼서 잠을 자지 못했다. 한 시간 정도 잠들었을 때, 긴장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잠에서 일어났는데, 말년병장 선임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고, “그냥 긴장한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라고 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근무는 성공적으로 섰지만,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었다. “oo. 나랑 차 한잔할까?” 중대장이 다시 상담실로 나를 데리고 간 것이다. 언제나처럼 상담실에 차는 없었고, 걱정 가득하고 부담스러운 중대장의 눈동자만 빛나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군인, 중대장이라는 자부심,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과도한 의지, 우월감으로 가득 찬 오만한 자신감이 둘러싸여 중요한 초점을 보지 못했다. “네가 잠에서 자주 깨고, 웃지도 않고, 말도 잘 안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불렀어.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니?” 아직 난 이등병이었고, 전입해 온 지 2주가 겨우 지나 있었다. 그런데 중대장이 5번 정도 상담을 했었다. “제가 아직 적응을 못 한 것 같습니다.”라고 얘기를 했지만, 중대장은 애초에 내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어제 불침번이 네가 갑자기 잠에서 깼다고 하는데, 많이 힘들면 여단에 상담이라도 가는 게 어떨지 물어볼 건데 어때?” 다시 말하지만 전입해 온 지 2주가 겨우 넘었다. 그런 나에게 여단 상담원까지 얘기가 진행된 것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되돌아왔다. 이건 흔히 말하는 최종병기 18호, 관심병사 아닌가. 누가 관심병사가 되고 싶을까? 나는 “아직 상담까지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적응하다가 안 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저 중대장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얘기를 대대장에게 과장해서 내가 상담을 거부한 거로 보고가 되었고, 내 맞선임보고 “OO가 요즘 걱정되는데, 네가 몰래 따라다니면서 나한테 보고를 해줬으면 좋겠다.”라며 말하는 등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첩보영화를 찍고 있었다.

중대장에 대한 일화도 여러 개 있지만 그중에서 다섯 가지만 말해보겠다.

첫째는 대탄 징계 사건이다. 5월 1일부로 나는 일병이 되었고, 내 소대 선임은 상병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진급을 한 그날에 같이 초소근무를 서게 되었는데, 이 선임을 편의상 P라고 하겠다. 선임 P는 J와 같은 부류이다. 허세도 가득하고, 부조리도 심한데 무엇보다 동기들조차도 P보고 성격파탄자라고 할 정도니 그리 좋은 선임은 아니었다. P와 근무를 서고 있는데, 이 P가 또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차는 어떻고, 여자랑 어떻게 해야 하고, 원래 내가 해병대 지원했는데 눈 수술 때문에 다시 재입대를 한 그거도 아니었으면 벌써 병장이었는데, 내 여자친구가 상무대 면회를 왔는데 모든 간부가 예쁘다고 난리가 났었다는 등 이런저런 헛소리를 늘어놓더니 갑자기 자기 군에서 생활할 때 선임한테 무서운 얘기를 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무서운 얘기에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나는 P와 갑자기 무서운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 시각이 새벽 1시 정도였으니 꽤 음침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장난을 치는 부분에서 내가 P 뒤에 누가 있는 것처럼 연기했는데, 그때부터 수백 개의 욕설이 날아왔다. “야 신발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야. 너 짬은 생각할 수도 없는 거라고. 너 미친놈인 줄 알았어. 지금 바로 총 들고 행보관한테 뛰어가서 너 미친놈이라고 소리지를 뻔했다고.” 못 믿겠지만 토시하나 안 틀리고 심지어 약간 순화해서 저렇게 말했다. 당황한 나는 사과를 수차례 했지만,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한 2주가 지났을 때, 중대장이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했다.

“OO 아. 혹시 우리한테 안 보이는 무언가가 너한테만 보이니? 귀신같은 거 .”이건 또 뭔 개소리인가. 지금 생각해도 열 받는다. 장난은 똑같이 했는데 나만 이런 꼴을 당했으니 말이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J랑 근무를 섰는데 네가 뭘 봤다고 해서. 그리고 다른 선임들도 네가 허공에다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고 하는데, 솔직하게 진짜 뭐가 보이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렇게 진지하게 나불대는 게 진심으로 역겨웠다. 이 얘기는 우리 부모님한테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민망하고 화가 난다. 나름 대학생으로 과외도 하러 가고,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일 못 한다는 소리 안 듣고 살았는데 군대 가서 신들린 사람 취급을 받고 있으니.

“아니, 진짜 뭐가 보이면 군대에 어떻게 왔겠습니까? 선임이랑 서로 똑같이 장난을 쳤는데 무슨 귀신을 보는 게……. 하…. 밖에서 대학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정상적으로 하고 다녔는데. 귀신이 보였으면 애초에 군대 안 왔습니다.” 이 말이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는 거 알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어이가 없었고, 자존심에 적지 않은 금이 갔다는 것과 군대라는 조직에 대한 반감이 짙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챘으면 좋겠다.

“어쨌든 대대장님한테 보고했는데, 대탄에서 그렇게 잡담을 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하셔. 그래서 징계를 받게 될거야.”

그래서 난 징계4일, P는 징계3일 받게 되었다. 똑같이 떠들었지만 다른 징계를 받게 된 것은 P가 특급전사라서 그런 것 같다.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다.)

두 번째는 밥을 먹을 때 일어난 일이다. 군대는 전우조라는 개념이 있으며 논산훈련소에선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대에 오면 전우조라는 개념이 희미해지며 존재하긴 하지만 암묵적으로 대다수가 그냥 독자적으로 돌아다닌다. 한번은 체력단련을 끝내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동기 두 명이 속이 안 좋다면서 구토를 하더니 미안하다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나는 괜찮다며 선임들과 밥을 먹고 있었는데,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이어서 선임들은 먼저 먹고 나만 남아서 마저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중대장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다시 상담하자고 했다.

“OO. 왜 혼자 밥을 먹니? 동기들이랑 안 친하니?”

여기서 동기들이 속이 안 좋아서 먼저 일어났다고 말하면 이 사람은 그 두 명이 어디가 아픈지 지속해서 물어보며 귀찮게 할 것이다. 그 동기들은 체력단련이 힘들어서 구토한 것인데, 이 사실이 중대장한테 알려지면 좋아질 게 없다고 생각해서 나는 말을 살짝 바꿨다.

“원래 밥을 천천히 먹어서 동기들보고 먼저 일어나서 일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OO 아.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안 좋고, 전우조라는 개념이 있는 것은 알지?”

“예”

“만약 다음번에도 혼자서 먹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고의적 명령 불복종의 의미로 징계를 줄 수밖에 없어.”

세상만사가 귀찮아졌고, 더 대화를 진행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군대가 싫어졌던 게.

“그럼 다음부턴 같이 먹겠습니다.”

세 번째는 유격훈련 때 있었던 일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체력이 많이 안 좋다. 그런 내게 유격훈련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는데, 첫 번째 유격 체조 때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고, 두 번째 날은 간부 한 명이 실수로 뜨거운 물만 갖고 와서 탈수증상으로 쓰러졌다. 군의관이 말했는데 탈수랑 탈진이 동시에 와서 순간적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남은 3일은 모두 열외를 했다. 유격 마지막 날 저녁에 중대장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 생각인데 이건 단순히 체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내 육사 동기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어서 병원을 가봤는데, 희소병이라서 몇 달간 쉬고 지금은 완치가 되었거든. 너도 그런 경우 같아. 내일 중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봐.”

그래서 나는 피를 뽑고, 심전도 점검하고, Ct, x-ray 등 여러 검사를 거쳐 아무 이상이 없으며 그냥 체력이 선천적으로 안 좋고, 혈압이 유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왔다.

네 번째는 중대장이 부조리를 감싸줬다는 것이다.

P 선임이 OO 후임에게 화장실에서 바지랑 속옷을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때? 지리지?”

OO 후임은 이걸 성추행으로 마음의 편지를 작성했고, 중대장은 다음날 중대 게시판에 이렇게 답변했다,

“P 선임의 악의적인 의도를 볼 수 없었고, 피해자가 없다는 것이 징계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됨. 마음의 편지를 쓴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실명을 중대장에게 밝혀주길 바람”(이 내용은 실제로 게시판에 있던 것을 수첩에 메모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본이 분실되었다. 그래서 기억력에 의존한 내용이니 정확하진 않다는 점 유의하길 바란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선임이 (누군지는 익명이라서 정확하게 모르지만) 중대장에게 ‘후임들에게 욕설하지 못하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선임으로서의 고충도 있다’라는 내용의 장문 편지를 보냈는데, 그 글을 읽은 중대장이 전 중대원을 집합시켜 선임들이 후임들에게 ‘신발, 이새끼 저새끼’ 정도의 욕설은 허용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후부터 선임들의 부조리는 심해졌다. 아까 말했지만, J가 영창10일 전역 40일 전에 갔다는 것도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마지막 다섯 번째는 중대장이 나에게 한 말이다.

선임 J가식당에서 운전병 동기에게 한 말과 그 후 내가 소대장에게 보고했고, 소대장이 중대장에게 보고했으나 J는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내용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J 때문에 완전한 동기생활관이 만들어지고 선임들이 후임생활관에 접근금지가 되었다는 말도 기억하는가.

소대장이 중대장에게 J의 일을 보고했고, 그다음 날 중대장이 나에게 그것과 관련된 일에 대해 따로 나를 불렀다.

“OO. 그 건과 관련해서 헌병대 자료를 찾아봤는데 제삼자가 네 욕을 했다고 해서 그건 징계 사유가 되지 않아. 그리고 J도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다고 해.”

“그럼 운전병 동기에게 상황을 들어서 조치를 해줄 수 있지 않으십니까?”

“그래. 그러면 내가 OO(운전병 동기)를 불러서 말해볼게.”

이다음에 생활관이 나눠진 것이다. 나중에 운전병 동기에게 물어봤더니 도저히 J와 생활하기 싫다고 생활관을 나눠달라고 건의를 했던 것이다. 한동안은 동기들끼리 있어서 편하고 재밌었지만, J는 그것에 불만을 느꼈고, 나를 심하게 갈구었다. 그리고 J는 지속해서 생활관에 와서 관물대 검사를 했으며, 우리 생활관 휴대전화를 가지고 가서 돌려주지 않는 등 정말 개망나니처럼 활보했다. 난 동기들끼리 마음의 편지를 쓰자고 했고, 대대마음의 편지랑 군단 마음의 편지에 그 내용을 고스란히 작성했다. 그러자 중대장이 당직사령을 서고 있을 때 나에게 잠시 얘기 좀 하자고 했다.

“OO 아. J가 악의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헌병대 자료를 보면 징계를 줄 수 없어.”

“그러면 병영고충처리센터에 전화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조금 강하게 나갔다. 도저히 J의 갈굼을 받을 자신이 없었다.

“OO 아. 사실…. 내가 부족하지 않게 자랐어. 음……. 그래…. 솔직하게 내가 자존심만 아니었어도 군인 그만두고 아버지 사업만 물려받아도 밥 먹고 사는데 지장 없어. 그냥 내 자존심 때문에 계속하는 거야. 네가 만약에 그런 일로 내가 전역을 한다면 기꺼이 명예롭게 전역할 거야.”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탁 막혀버렸다. 궁금하지도 않고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갑자기 자랑을 하는 것인지 무슨 의도를 갖고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중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다른 중대로 전출 가고 싶습니다.” 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친 상태였다.

 

나는 다른 중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당시 나의 계급은 일병 4호봉, 또 1월 군번이라 동기 중에서는 늘 ‘왕고’였다. 갑자기 타중대에서 왕고라 칭하며, 행정병을 자처한 나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그 날은 인류가 다른 행성에 도달한 기념으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외계인과 맞닥뜨리게 되는 우연한 순간 같았다.

타중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눈치를 보는 일이었는데, 1월 군번이라서 2월 군번들이 당직을 서는 날짜가 미뤄졌고, 기존에 행정병과 보급병이 있는 상태에서 불필요하게 3명의 행정계원으로 이루어진 본부소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정말 다시 생각해봐도 서러운 상황이다. 2월 군번 동기인 보급병은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동기들과 내 뒷담을 하며 편 만들기에 바빴고, 밥 먹다가 갑자기 “OO 때문에 당직이 미뤄졌습니다.”라고 앞에서 대놓고 말했으며, 청소하다가도 “그러면 뭐해. 당직이 미뤄졌는데.”라며 사람을 말려죽이려고 작정을 했다. 그리고 바뀐 중대장이라는 사람은 행정계원을 두 명으로 줄이겠다며 말하고 다니는 마당에 내가 어떻게 행정병으로 임무 수행을 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먼저 행정병이 많은 것 같아서 전차병으로 가겠다고 말을 꺼냈고, 중대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차 소대로 담당 업무 변경을 했다. (대대를 말할 순 없지만 나는 전차승무원으로, 권총소지자로 전역까지 했다) 그런데 여기서 앞으로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는데,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전차병으로 복귀한 나는 전차포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임시로 ‘탄약수’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탄약수는 말 그대로 탄을 들어 장전하고 죽기 싫으면 냅다 뒤로 바짝 붙어 회피하는 간단하지만, 위험한 보직이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름 베스트소대까지 갈 정도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훈련을 하던 중 무전기가 고장 났다. 평가 날 무전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스타워즈 제다이가 광성검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다스베이더를 만난 상황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당황한 소대장과 다른 간부는 무전기를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상황이 이어지자 나보고 잠시 나오라고 한 뒤 H 중사가 진지하게 무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무전이 안되는 상황에서 H 중사는 경험이 많은 다른 소대 중사를 불렀다.

“뭐야. 안테나 선이 안 꽂혀있었네. 이러니깐 안 들리지.”

그 중사는 간단하게 해결하고는 다시 자기 소대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런 간단한 문제를 소위 한 명과 중사 한 명이 왜 몰랐을까? 그런 의문을 가질 때쯤 H 중사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나를 불렀다.

“야. 너 나와봐. 넌 탄약수가 그것도 몰라? 시키는 일만 할 거야? (이 말을 자주 사용했다) 너 내가 지켜본다. 어? 대답 안 해?”

“예”

정말 억울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을이고, 저기 담배를 물며 퍼주는 밥을 먹으며 휴대전화를 하는 간부는 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화가 났던 건 옆에서 얼빠지게 듣고 있던 J 소대장이다. 그 소대장은 H 중사의 말을 지원사격 하며 나에게 말했다.

“그래. OO 아. 넌 생각 없이 일하는 것 같아. 능동적으로 일하자.”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시원하게 분출하고자 했으나 이내 내보내지 못했다. 간부들과의 마찰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씻을 물을 담기 위해 수간 통을 들고 계곡을 향했을 때였다. 중대 인원들이 씻을 물이 부족해서 계곡물을 받아야 했는데, 전 중대원이 사용할 물이라 적지 않은 노동이 필요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수간 통을 나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정비병 동기가 실수로 수간 통을 떨어트렸다. 그럴 만도 한 게 교대도 없이 양손 가득 물이 가득 담긴 수간 통을 들고 첫 훈련부터 무리했으니 손에 힘이 풀릴 만도 했다. 순식간에 주위는 물방울들이 춤을 추고 있었으며, 앉아서 바가지로 편하게 물을 담고 있던 H 중사의 안경으로 많은 양의 물이 쏟아지는 것을 나는 반대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속으로 ‘이제 넌(정비병 동기) 큰일 났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H 중사는 나를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젠 던지네?”

“제가 한 거 아닙니다.” 당황한 나는 재빨리 말했다.

“뭐? 너 그 표정 뭐야? 그럼 저게 저절로 떨어져? 내가 너 지켜본다. 어? 대답 안 해?”

난 끝까지 대답 안 했다. 저 인간의 제멋대로인 성격에 반감이 들어서 더더욱 대답할 수 없었다. 저건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든 거다.

그때 침묵을 깨는 J 소대장의 한마디. “그래, OO 아 대답해야지. 뭐해?”

그 외에도 밥을 갖고 오라면서 자기는 아침밥 안 먹는다고 삽을 주며 묻고 오라고 했으며, 차에다 실어놓으라고 했던 텐트가 없어지자 나에게 수차례 소리를 지르며 찾아오라고 한 것 등(나중에 그 텐트는 차에 그대로 있었다.) 수난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훈련이 끝나고 신이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지 며칠 있다가 심한 장염에 걸렸다. 저체중인 나에게 장염은 치명적이고, 의무담당관조차 입실을 권했을 정도로 심하게 걸렸다. 그때가 추석 연휴가 끝나고 진지 공사를 앞둔 시점이었으니 전차병으로 담당 업무를 변경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입실하는 것은 나에게 치명적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설사약, 매일 입에 달고 살아서 아직 이름도 기억하는 포타갤, 그게 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추운 날씨, 일과를 끝내고 점심시간, 당연히 나는 밥을 먹지 못한다. 아직도 그 메뉴까지 기억난다. 시금치, 깐풍기, 매운동태국. 난 그걸 받아서 조금 먹고 잔반처리를 하기 위해 국에 밥과 반찬을 담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장염이 심해서 밥을 새 모이만큼만 받아서 그것도 다 못 먹고 잔반처리를 한 것이다.)

“야. 뭐야, 앉아, 먹어.”

순식간에 분위기는 싸늘해졌지만 난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우리 집 개한테도 ‘앉아, 먹어’ 등의 명령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인간은 정말 권위적이고 명령투로 저렇게 말했다.

이 간부를 N 중사라고 하겠다.

“나 그런 거 싫어해. 빨리 앉아. 먹어.”

“속이 안 좋아서….”

“그럼 왜 받았어. 빨리 앉아라.”

난 이미 하나가 되어버린 국과 밥, 반찬을 뒤적이다가 그냥 무시한 채 음식을 버리러 갔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 남은 음식이 N 중사 남은 음식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실랑이는 다음 날 진지 공사 때도 계속되었다. 진지 공사 때 도시락이 나왔는데, 그 도시락은 양이 정해져 있어 적게 받을 수 없었다. 그때도 장염이 심해서 물도 마시지 않고 진지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밥을 먹으면 야외배설도 감행해야 할 것 같아서 국 대신 나온 떡국만 몇 개 먹다가 그만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H 중사는 차마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야. 앉아. 너 그거 다 먹기 전까지 일어날 생각하지 마.”

그때 내 계급은 상병, 후임들 앞에서 심한 모욕감을 받았다.

진지 공사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중대에 매번 시행하는 ‘마음의 편지’ 조치결과가 게시판 앞에 개시되어 있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OO 용사가 자기 양대로 식사를 하고 싶은데, xx 간부가 억지로 많이 먹으라고 강요했다.’ 여기서 OO 용사는 나고, xx 간부는 N 중사였는데, 앞서 말했지만 적극적이지 못한 내가 저런 글을 굳이 귀찮게 적었을 리는 없다. 지금도 추측밖엔 못 하지만 동기 중 한 명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내심 기분이 좋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 부당한 행위에 대해 반감을 들어내고 공감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대장의 답변은 이런 나의 마음을 순식간에 실망감으로 바꿔주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쁜 의도로 했다곤 생각하지 않음. 중대장도 처가댁에 가면 장모님이 밥을 더 주는데, 그 마음과 같다고 봄. 너그럽게 이해해주길 바라고 구두 교육은 시행하겠음.’

문제는 이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마음의 편지를 작성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 내가 저 글을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N 중사조차도 내가 찔렀다고 생각하여 점심시간에 소대별로 밥을 먹는데, 일부러 다른 데 가서 밥을 먹었다. 만약 그 N 중사가 이 글을 절대 볼 일이 없지만, 만약에라도 본다면 반성 좀 했으면 좋겠다. 당신은 아직 어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J 소대장은 한동안 지켜보더니 다음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밥을 먹는 나에게 말했다.

“OO 아. 육군 규정상 원칙적으로 정한 최소 정량을 받아야지.” 저 의기양양한 표정을 봐라. 누가 그에게 대적할 수 있겠는지. 다시 말하지만, 어른이라고 할 수 없어. 당신은.

그 외에도 소대에서 받은 부조리는 많지만 다 적을 순 없다. 간단하게 소대 회식 때 나를 빼먹은 적이 있었고, 뒤에 가서 불명예 전역을 시킨다고 간부들끼리 얘기한 거랑 말없이 5분 정도 내 눈을 보며 째려보는 등 별 짓거리를 다 당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그렇다고 내가 소대원으로서 일과를 잘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전차포 때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나에게 화풀이한 거랑 노골적으로 마음에 안 들어서 트집을 잡고, 한번도 이름을 부른 적 없이 ‘야’, ‘앉아’, ‘먹어’, ‘일로와’ 등의 명령투로 말하는데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그리고 무엇보다 J 소대장이 너무 무능력했고, 한심했다. 제대로 하는 건 없고, 생각도 짧았으며 훈련 때 전부 자기가 먹은 거 당일날 치우고 있는데 모아뒀다가 나한테 주면서 다 정리하라고 하는 등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한심한 인간의 전형이었다.

자, 이제 인생을 바꾼 한 에피소드를 꺼낼 때가 된 그것 같으니 키워드 하나를 던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 키워드는 <영창>이다.

새벽에 후임과 초소근무를 서고 있는데, 난 정말 그 근무를 서기가 싫었다. 날씨는 영하로 떨어져서 아무리 껴입어도 춥고, 잠이 쏟아지는 새벽 근무에, 그리고 그때가 상병 4호봉이었으니 원래대로라면 나는 초소근무에 투입되지 않는다. 당직을 들어가야 했지만 전 중대에서 휴가 제한 징계를 받았으니깐 열쇠 관리를 하는 데 적합하지 않는다며 내 차례를 건너뛰고 나를 욕하던 2월 군번 보급병이 당직 근무를 서게 되었다. 그 2월 보급병 동기는 욕은 욕대로 하고 당직은 당직대로 들어갔으니, 그 친구 참 뻔뻔하다.

어쨌든 후임인 부사수와 근무를 서고 있던 나는 할 얘기가 없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내가 당한 부조리를 욕을 섞어가며 말했다. 그때는 당직도 못 들어간 설움과 이 짬이 될 때까지 근무를 서는 것에 대한 민망함을 떨치려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리고 사실 자신 있게 말하지만 나는 절대 군 생활 중에 부조리를 하지 않았다. 그건 내 나름대로 신념이었고, 절대 과거에 내 선임처럼 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그래서 더 안심했었는지도 모른다. 후임들은 절대 이 간부를 욕했다는 사실을 말할 리가 없고 말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나고 난 상관 모욕이라는 명으로 진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욕한 사실을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억울하기도 했으며, 솔직히 내 선임부터 동기, 후임까지 간부 욕 안 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욕을 했는데 그중에서 나만 걸렸다. 그것도 영창 15일, 만창으로 징계를 받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달력 한 장을 넘길 정도의 기간만큼 군 생활을 더 했으며, 영창을 갔다오고 나서 다른 대대로 강제 전출까지 되었다. 여기서 내가 당한 억울한 일을 세 가지로 정리해서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공갈, 협박이다. 중령인 대대장과 원사인 주임원사, 대위인 중대장까지 전부 나에게 형사처벌 2년으로 징역살이를 보내려고 했는데 많이 봐줘서 영창 15일을 보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변호사랑 얘기를 해봤는데, 초소근무 간 말한 신빙성 없는 증거로 징역 얘기가 나왔고, 그것 때문에 항소를 진행하지 못했다는 건 엄연한 범죄고, 소송까지 하자고 했다. 중요한 건 내가 쓴 진술서랑 내 후임이 쓴 진술서 내용이 달랐다는 점인데 그것을 그냥 묵인하고 나에게 영창 15일을 준 것이다. 여기서 증거불충분이라는 명목을 공갈, 협박으로 넘어갔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상담을 했던 변호사도 남성으로 현역복무를 마친 사람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영창 15일은 말이 안 된다며 화를 냈고, 또 변호사 소송을 진행하지 못하게 꾸준히 나를 찾아와서 영창 15일도 다행이라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였다. 상관 모욕의 죄목이 큰 건 나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진술서의 내용이 불일치하면 애초에 내 발언은 무시된 채 징계가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가족들의 면회를 막았다는 점이다. 영창 15일을 갔다 오고 전출을 3일 정도 앞둔 시점에서 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변호사를 데리고 면회를 온다고 했다. 그런데 웃긴 건 대대장이라는 사람이 어차피 전출 갈 사람이니깐 면회는 가능하지 않다며 계속 저지를 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할머니께선 중간에 쓰러지셔서 이틀 정도 입원하셨고, 할아버지께서도 갑자기 혈압이 오르셔서 한동안 식사도 못 하셨다. 어떻게든 면회를 하긴 했지만, 병원비며 변호사비까지 우리에게 큰 손해가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나는 호흡 부족과 과호흡이 계속돼서 그냥 소송하지 않고 조용히 전출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내가 소송을 포기하고 전출을 가게 되자 아버지에게 중대장이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한 말이 겨우 이거다.

“문제를 크게 안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님. 제가 OO가 전출 갈 대대 중대장에게 잘 말하겠습니다.”

차분하신 아버지셨지만, 이번엔 조금 화가 났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그러세요? 됐고 그 소대장이라는 사람 나한테 전화 달라고 해요.”

“그게 지금 소대장이 휴가 중이라 전화를 못 해서 제가 반드시 구두로 뭐라고 하겠습니다.”

이게 끝이었다. 그 소대장이라는 사람은 7개월 넘게 휴가 중인지 아직 전화 한 통이 없다.

세 번째는 우리가 소대장에게 화가 난 결정적인 이유다. 나는 호흡곤란과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영창을 가기 전후 입실을 했다. 그렇게 밥도 못 먹고 계속 구토만 하고 힘없이 누워있던 나에게 소대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단은 나는 군 생활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또 나에게 떳떳하고 싶은 게 군 생활 목표였거든. 근데 이렇게 돼서 유감이고, 그런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저 한마디를 들었을 때, 내가 어떤 감정이었을지 가늠이나 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그때 감정을 글로 표현하려고 하면 속이 매스껍고, 머릿속에 마땅한 단어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내 군 생활 중 가장 후회되는 것은 그때 참았다는 것이다.

J 소대장은 나에게 “일단 이렇게 돼서 유감이다.”라며 모든 것을 자기는 이해할 수 있다는 건방진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고, 난 그 손을 보곤 그냥 홱 돌아서 누워버렸다.

다시 한번 그 소대장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은 어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었어. 반드시 전역해서 네가 어떤 사람인지 끝까지 모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도망가.

 

-뒷이야기-

영창을 가게 된 나는 반갑지 않은 얼굴을 보게 된다. 바로 선임 J이다. 그 선임은 전역 4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폭언, 욕설, 구타로 영창 10일을 오게 되었다. 나중에 광합성 하는 시간에 얘기를 나눠봤는데, 여전히 반성을 못 하고 자기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때 억울했던 건 J가 일병 때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부조리의 값은 영창 10일이었다는 것과 내가 1시간 30분 사이에 했던 상관 모욕은 영창 15일이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는 내가 했던 잘못을 인정하고 깔끔하게 15일 영창생활을 하고 난 후 다른 대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전출을 가게 된 xx 대대는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줬다. 다른 부대에서 상병 5호봉으로 전출을 오게 된 내게 장난도 치고, 친구처럼, 가족처럼 대해줬다. 후임들은 필요 이상으로 선임 대우를 해줘서 나중에는 내가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장난을 치며 다가가려고 했다. 내 나름대로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려 큰 노력을 해온 셈이다. 군 생활이 재밌었고, 전역하기 전까지 말도 안 되지만 더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다. 실제로 소대장과 부소대장이 많은 배려를 해줘서 전역자 간담회 때 민망하지만 울먹거리기까지 했는데, 이 모습을 본 대대장이 소대 간부들과 회식 자리를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참 정 많은 사람이었다. 마지막이 아름답다면 내 군 생활은 아름다웠다고 할 정도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글을 쓰게 된 배경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 집 마당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서성거리길래 가족들이 밥을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길고양이가 마당에 새끼를 낳고 본격적으로 터를 잡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 가족들은 고양이 가족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사료도 사서 먹이고, 장난감도 만들어서 같이 놀고, 가끔 방안까지 들어오는데 거의 집고양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이 길고양이를 집에서 키우고 있다며 착각을 했다.

고양이는 들어오지만 금방 다시 나간다. 우리의 눈을 바라보지만 이내 하늘로 눈을 돌려 계절이 바뀌길 기다린다. 고양이들은 날씨가 풀릴 때쯤, 혹은 새끼고양이가 뛰어다닐 때쯤이면 길거리로 향할 것이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본 나는 20대들의 억압된 자유와 희석되어지는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자유롭고, 개성은 사회가 아닌 삶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의무라는 무게로 짓누를 수는 있으나 소멸을 시킬 순 없다. 애초에 그럴 권리도 없다. 군대는 건강한 몸으로, 이전의 상태 그대로 가족들 품에 보내줘야 한다. 그게 우리에게 의무를 강요하기 전 군대에서 지켜야 할 의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목줄을 채울 순 없다. 군대가 우리에게 변화를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추천수0
반대수2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