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 나이는 연애로 고민하고 힘들어 할 나이가 아니다보니 제가 봐도 제 자신이 참 한심해서 누구한테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하기도 막막해서 여기 글 올리니 현실적인 조언 부탁드려요.
저에게는 동갑인 남자친구 아니 약혼자가 있어요. 만난지는 1년 반 정도 됐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제가 사는 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어요. 제가 일의 특성상 집에서 근무를 하는데 집을 잠깐 비운 사이 보일러에 문제가 생겨 집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였기에 남친 집에서 며칠 지내게 됐는데 다시 제가 살던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친도 같이 들어오게 된거죠. 이렇게 지내다 이번 봄에 집을 장만해서 이사할 계획이었는데 그 계획이 물거품이 되버린 것 같아요...
남친은 현재 사업을 하는데 일이 잘 안 풀리나봐요. 얘기 들어보면 그동안 승승장구하다 제가 마치 불운의 아이콘인 듯 저 만나고 나서 쭉 힘들었던 것 같아요. 거기다 장남이라 그런지 부모님 문제 때문에도 책임감을 많이 느껴서 힘들어 하기도 해요. 이런 남친이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컴퓨터 게임 이에요. 게임을 할 때만큼은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고 잡념이 안 든다며 평일에는 퇴근 후 한 4시간 정도, 주말은 거의 하루 종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남친을 만나기 전에는 컴퓨터 게임을 하는 사람은 정말 한심하게 생각하는 부류였어요. 지금은 취미활동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이해하지만 예전에는 괜한 시간 낭비로만 생각을 해서 차라리 그 시간에 뭔가 조금 더 건설적인 일을 하는게 좋지 않나 생각했었죠. 그런데 남친이 저에게 그러더라구요. 커플끼리 같이 게임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부러웠다면서 해보고 싶었던 일들 중 하나라고요.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 컴퓨터 게임을 시작하게 됐고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거의 매일 같이 게임을 했어요.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이 평소에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이라 퇴근 후 게임까지 하니 눈과 어깨가 견디지 못하고 몸이 힘들다가 어느새 또 적응해서 그렇게 거의 매일 게임을 하던 중 시간 손실이 크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시간에 책을 읽는게 낫지 않을까, 공부를 하는게 낫지 않을까, 차라리 편하게 티비를 보는게 낫지 않을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게임보다는 뭔가 다른걸 해보자 설득해보려 했는데 지금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느라 다른 건 할 생각조차 못하겠다며 티비 보는거나 게임 하는거나 취미 생활로 따지면 뭐가 다르냐는 반박에 이해하기로 했죠. 게임이 자신만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는데 굳이 제가 힘들다해서 못하게 하는것도 말이 안되니까요. 그런데 평일은 그렇다쳐도 주말까지 집 안에서 게임만 하는 남친을 보니 가끔은 화가 나더라구요. 특히나 저는 거의 집에서 근무하느라 주말에도 집에 있으면 휴일이 휴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거 잘 알텐데 아무리 힘들어도 옆에 있는 여친한테 신경써 줄 시간은 그 긴 주말 시간동안 몇 시간도 안되는건가 서운하기도 하고요. 물론 게임만 한 건 아니고 가끔 밥도 먹으러 나가긴 했지만 제가 아는 사귀는 사이는 무언가를 같이 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더 배워나가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심도 더 많이 생기고 그렇게 애정도 두터워지는거라고 알고있는데 데이트 계획은 커녕 주말은 주로 게임하는데 80% 이상을 보내니 이해하자 이해하자 하면서 계속 저만 참고 있다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결국 제자리...
힘들다 --> 게임이 필요하다 --> 게임 --> 싸움 --> 힘들다 --> 게임이 필요하다 --> 게임 --> 싸움 무한 반복!!
아, 남친의 가장 큰 단점은 머리 속으로만 다한다는 것!! 생각이 많아서인지 깊어서인지 혼자 생각만 하다 흐지부지 끝내버린게 많다보니 제 입장에서는 서운해하고 남친 입장에서는 마음 못 알아준다 섭섭해하고... 하아... 제 생일도 혼자 머리속으로만 계획하다가 망치고, 여행도 혼자 계획만 하다가 결국 못 가고, 크리스마스도 혼자 생각만 하다가 그냥 집에서 보내고, 새해도 그렇고... 전 나중에야 들어서 알게 됐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아니, 분명 날 사랑하니까 사귀는건데 아무리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표현을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나 싶어서 답답했어요.
그러던 중 갑자기 뜬금없이 왜 제 고딩 친구가 생각이 났을까요...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제가 해외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와 친구랑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서 처음 만났을 때 제 친구의 모습이 좀 바보같이 보였거든요. 전남편과 성격차이로 이혼하고 혼자 살던 친구집에 남친이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살고 있었는데 집안일도 친구가 다 하고, 공과비도 친구가 다 내고, 심지어 그 사람의 아이까지 친구가 돌보고 있는 상황에 남자는 무슨 사업 준비한다며 이 사람들 저 사람들 만나 바쁘기만 한데도 좋다고 사랑이라고 믿는 친구에게 어떤 남자가 이런 조건을 마다하겠냐며 겉으로만 똑똑하지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왜 지금의 제 모습과 겹쳐지는 듯 보였을까요...
전 제 남친 결혼을 생각할 만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불신이 꽃피고 있는 걸까요? 제 남친은 누군가를 이용할 사람도 아니고, 마음이 없으면서 누군가에게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거, 그리고 절 소중히 생각하는데 생각만큼 표현 못하고 있어서 미안해 한다는 것도 아는데 왜 못된 생각이 들었던 걸까요? 제가 제 생각보다 유치하고 계산적인 사람인걸까요? 그래서 힘들다는 말로 퇴근해서 게임만 하는 남친에게 갑자기 심술이 나서 같이 살면서 공과금 전혀 안 보태는 것도, 둘이 같이 지내면서 키우게 된 강아지 사료 한 번 신경 안 쓰고, 생활용품 떨어져도 그냥 내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남친이 이기적으로 보이니 제가 바보같이 느껴져 갑자기 바보 같았던 친구 생각이 났던걸까요?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남친은 자기 사업 신경쓰고 스트레스 풀려고 게임 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들에는 아무 관심도 안 보이고 생각조차 안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아지 사료 한 번 신경 써 본 적 있냐하니 그 말 할 줄 알았다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서 계산해서 머물렀던 비용 준다고 하는데 아무리 화가 나서 한 말이라도 상처가 되면서도 계산적이었던 건 저였던 것 같아 씁쓸하네요. 물론 저의 "같이 있으면서 게임만 할거면 뭐하러 같이 있냐, 그냥 집에서 혼자 게임하는게 낫지 않냐" 라는 말이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 같이 받아들여져 화가 나서 한 말이였는지 몰라도 자신이 못해준게 뭐가 있냐며 다 챙겨줬다며 소리치는 남친에게 놀라기도 했고요. 그런거 계산하면서 해준거였나, 그냥 해주고 싶어서 자신도 모르게 해준거라면 그렇게 말못할텐데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러는 너는?" 이라고 제 자신에게 물으며 제 자신에게 실망스럽기도 하고요... 잘 생각해보면 제가 워낙 자존심이 세다보니 직접 돈을 주면 받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밥을 사준다거나 옷을 사준다거나 했던 거 같기도한데 그런 깊은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거에 대한 서운함이 폭발한건가 싶기도 하고...
서로 감정이 격해져 언성 높이다 결국 이건 헤어지자는 거지? 라는 남친의 말에 저도 아무말도 안했고 그렇게 남친은 어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나봐요. 남친의 짐은 아직 여기 있지만 자신의 물건들 보기 싫을텐데 곧 치우겠단 말을 마지막으로 아직 짐을 찾으러 오지도 연락이 오지도 않고 있네요. 전 솔직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헤어지는게 맞나, 정말 안 될 사이인건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표현에 서툴 뿐 나쁜 사람은 아닌데 나의 이기심으로 좋은 사람을 잃는 건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도 돌고, 어떤 결정을 하던 뭔가 지친다는 느낌도 들고...
글을 쓰다보니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네요. 질책도 충고도 조언도 감사히 받을테니 제 머리 속 정리 좀 도와주세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