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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 # 27-28

독백 |2004.02.09 08:51
조회 455 |추천 0

갑작스런 해우와 녀석의 방문으로 테이블위에 언져두고 나온 밥솥을 생각치 못했다. 뒤늦게 뛰
어 들어가 보니 이미 해우의 손에 들어있다. 그리고 해우는 마지막 남은 한 숟가락을 먹어버렸
다.

 

" 야. 넌 이 맛있는 걸 혼자 먹냐?"
" 맛있긴."
" 어우 진짜. 우리두 줘."

 

해우는 아쉽다는 듯 밥솥을 보고는 주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늘이와 녀석은 소파에 앉았고
나는 해우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 밥 없어?"
" 밥 이게 다야."
" 진짜? 비빔밥은 찬밥으로 해먹어야 되는데..."
" 넣구 먹을 것도 없는데?"
" 왜? 무생채는? 고사리는?"
" 무생채는 셔 꼬부라졌고, 고사리는 있고, 콩나물은 삶아야 되고, 시금치는 쪼금 밖에 없어."
" 콩나물만 삶고 밥만 하면 되겠네?"
" 그치..."
" 오케. 그럼 밥해야지."

 

해우는 내가 밥을 못한 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소꿉놀이를 할 때도 그랬지만 언제나
엄마역은 나였지만 집에서 밥을 준비하고 일을 하고 돌아오는 나를 맞아주는 건 해우였다.

 

" 나 뭐 하까?"
" 보기만 해."
" 콩나물 씻으까?"
" 원래 이런거 다 씻어서 나오는 거야. 그냥 넣어두 돼."
" 야. 내가 아무리 요리를 못해두 씻어야 되는거 그런건 안다."
" 곰.탱.아. 자고로 요리는 내가 전문이야. 내가 요리왕 비룡이라니까?"
" 알지."
" 그럼 잠자코 앉아 있어. 아니다. 나가 있어. 내가 다 할테니까."

 

나는 해우의 손에 등 떠밀려 거실로 나왔다. 해우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건 아니었다. 내가 나오
기 싫었던건... 녀석과 하늘이 사이에 앉아 무슨 말이든 해야하는 내가 싫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난 배구시합의 심판처럼 테이블 사이로 왼쪽에 앉은 녀석과 오른쪽에 앉은 하늘이의 눈
치를 살펴야 했다. 그리고...

 

" 뭐, 뭐야?"

 

녀석의 손이 내 얼굴에 닿았다. 갑작스레 다가온 녀석의 손. 다가오는 것 조차 알지 못했다. 정
말 길다란 팔에 길다란 손가락. 녀석의 손가락 끝이 내 볼에 닿았다.

 

" 이거."

 

녀석은 내얼굴에서 떼어낸 듯 손가락 끝에 붙은 밥풀 하나를 보여 주었다. 결국 오늘도 녀석은
내 이런 모습을 보고 말았다. 난 무안함에 다시금 주방으로 들어갔고, 해우는 한참 엄마처럼 콧
노래를 부르며 계란후라이를 하고 있었다.

 

" 이거 넘치려..."
" 야. 안돼."

 

열어버렸다. 뚜껑을...

 

" 아우. 곰탱아!! 콩나물은 삶을때 뚜껑 열면 비린내 난단 말이야."

 

그러고보니 고등학교 땐가 가사실습시간에 배운 듯도 했다. 초록색 나물엔 소금을 넣고 뚜껑을
열고...끓이고, 콩나물은...뚜껑을 열고 삶으면 비린내가...

 

" 미안."

 

나는 결국 주방에서도 쫓겨나버렸다. 우리집 임에도 오갈데 없는 내 신세... 난 2층 내방으로
올라갔다. 다 되면 녀석이 불러 주겠지. 아니. 어차피 저녁은 이미 먹었으니 안먹은 사람들끼리
잘 해먹고 가겠지 싶었다.

 


# 해와 달 28


" 달아. 밥 먹으래"
" 어?"
" 밥먹으래. 일어나."

 

그새 잠이 들었나? 하늘이었다. 하늘이가 날 흔들어 깨운거였다.

 

" 어. 졸리다...쩝..."
" 밥먹고 자."
" 냥냥..."

 

졸음이 밀려왔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달콤한 낮잠...
잠시후 누군가가 날 흔들어 깨웠다.

 

" 곰탱아. 일어나."
" 어?"
" 일어나라구."
" 나...졸린데..."
" 야. 눈떠. 에이 이런 잠탱이."

 

해우가 내 눈을 억지로 잡아 당겨 뜨게 해놓곤 다시금 스스르 내눈이 감기자 대뜸 소리를 지른
다. 때문에 그 소리에 놀라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 그새를 못 참고 잠이 드냐?"
" 너무 졸린걸 어떡해."
" 그러니까 살만 찌지. 바보야. 밥먹고 자."
" 나. 밥 먹었잖아."
" 야 그건 찬밥이었잖아. 내가 한거 진짜 예술이야. 빨랑 와봐."
" 나 배부른데..."
" 내가 여지껏 한거 중에 최고라니까?"
" 알았어."

 

나는 해우의 손에 이끌려 아래층으로 내려 갔다. 식탁에 앉아 반찬을 구경만 하는 녀석과 하늘
이. 나 때문에...못 먹고 있었던 건가?

 

" 자자. 이해우표 비빔밥. 먹자-!!"

 

해우는 그 귀여운 얼굴로 생글 생글 웃어댔다. 자다 일어났기에 잘 떠지지 않는 눈에도 해우의
웃는 모습은 선명하게 들어왔다. 귀여운 해우.

 

나는 이것저것 넣고 비볐다. 아까 남은 밥이 얼마 없었기에 다행이었지 많이 먹었더라면 해우
가 직접 한 밥을 먹지도 못 할 뻔 했다. 여튼 기쁜 마음으로 쓱싹쓱싹 밥을 비볐다.

 

" 어때? 맛있지?"

 

해우는 나와 하늘이를 번갈아 보며 무언가 대답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 응. 맛있어."
" 곰탱아 넌?"

 

하늘이의 대답에 해우는 매우 만족하는 듯 했다. 헌데 내 마음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말을 해버
리는 내 입.

 

" 글세. 아까 내가 한게 난데."
" 야. 그런게 어딨어. 너 고추장 너무 많이 넣어서 그래. 내꺼 먹어봐. 진짜 예술적으로 비볐어."

 

해우는 자기가 먹던 밥숟가락으로 비벼놓은 자기 밥을 숟가락 하나가득 퍼 나에게 내민다. 헌
데 왠지 하늘이의 눈치가 보였다. 게다가 내 앞에 앉아 내가 먹는지 안먹는지를 살피는지 녀석
의 시선까지...

 

" 오- 이상한데!"

 

난 아무렇지 않게 해우의 밥을 받아 먹고는 오바를 해보였다. 여기서 안먹었다면 해우가 삐치
거나 더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야. 그럴리가 있어? 이봐. 맛있는데."

 

해우는 아무렇지 않게 내가 먹은 자기 숟가락으로 한숟가락 듬뿍 떠 자기 입에 넣는다. 하늘이
도 알까? 해우는 자기가 먹던 숟가락이나 젓가락. 다른 사람이 먹는거 싫어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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