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로 진격하는 수나라의 30만 대군
고구려의 국왕이 직접 1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영주(營州)를 선제공격했다는 보고를 받은 수황(隨皇) 문제(文帝) 양견(楊堅)은 이를 수국(隨國)의 주권과 자신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사백여년간의 분열과 갈등을 겪었던 중원을 힘들게 통일시키고 질서와 권위를 찾았기에 이를 다시 잃고 싶지는 않았다. 중원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고구려(高句麗)와 같은 강국은 애초부터 꺾어두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훗날 수국이 자손만대까지 번창할 수 있었다. 때마침 고구려를 침공할 명분을 찾고 있었던 문제는 고구려 측의 영주부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좋은 기회로 여기고 고구려 정벌을 위한 거병(擧兵)을 단행하였다.
“고구려가 감히 천자국(天子國)을 거역하니 이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 당장 군사들을 집결시키고 출진을 준비토록 하라. 한왕(漢王) 양량(楊諒)은 이번 원정의 지휘를 맡고 왕세적(王世績) 장군은 그를 보필하라.”
문제는 양량과 왕세적에게 30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임유관(臨渝關)을 거쳐 요동으로 나아가라고 지시했다. 또 수군총관(水軍總管)의 자격으로 강남의 수군을 모아서 조련하는 임무를 맡았던 주라후(周羅候)를 편전(便殿)으로 불러 비사성(卑沙城) 쪽으로 방향을 잡고 항해하는 척 하다가 곧바로 고구려의 패수구로 향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첩자들로부터 수군(隨軍)의 동향이 속속 보고되자, 고구려의 요동성(遼東城)에서는 병마원수(兵馬元帥) 강이식(姜以式)의 주도하에 전략회의가 열렸다. 강이식의 직책인 병마원수는 오늘날의 육군참모총장과 같은 것이었다. 강이식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첩보에 의하면 수나라의 군사들이 수륙 양면으로 진군하고 있다 하오. 한왕 양량과 왕세적이 이끄는 30만의 육군은 임유관으로 향하고 있고, 주라후가 이끄는 5만의 수군은 산동의 동래(東萊)에서 출항을 준비하고 있다 하오. 그렇다면 그들의 목표는 분명 요동성과 비사성일 것이오. 두 성의 성주(城主)들은 특히 이에 대비함에 있어서 소흘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요동성주(遼東城主) 대모달(大模達) 이중손(李重孫)이 호언장담(豪言壯談)하고 나섰다.
“아무리 대군이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우리 성들은 높고 견고하여 쉽게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더구나 성(城)끼리 긴밀하게 연계하면 저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소이다.”
이중손의 말에 다른 성주들 또한 동의를 아끼지 않았다.
강이식은 좌중을 진정시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양량은 수주(隨主)가 아끼는 왕자이기는 하지만 출전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성미가 급하고 독단적인 인물이오. 그러니 양량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이오. 문제는 그를 보좌하고 있는 왕세적이란 자요. 그는 수나라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진(陳)을 정벌하는 데 많은 공(功)을 세웠던 인물이니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오. 하지만 왕세적이 아무리 지략이 출중하다고 해도 요택(遼澤)을 무사히 빠져나오기는 어려울 것이오. 곧 장마가 닥쳐서 요택이 진창길이 되면 그,들은 별 수 없이 자멸(自滅)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이오. 오히려 걱정이 되는 쪽은 주라후가 이끈 수군이외다.”
이에 비사성주(卑沙城主) 제형(諸兄) 길정충(吉定忠)이 위풍당당(威風堂堂)하게 말했다.
“비사성은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조련해온 막강한 수군(水軍)이 물샐 틈 없이 지킬 뿐 아니라 저의 군사들 또한 모두 일당백의 용사들이니 저들의 침입을 추호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꼭 비사성으로 올지는 모르는 일이오. 수주는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니 필시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르오.”
길정충이 궁금해서 강이식에게 물었다.
“다른 꿍꿍이라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수군(隨軍)이 비사성을 노린다는 소문이 퍼지면 우리의 수군(水軍)이 비사성 앞으로 집결할 것이 아니오? 그때 적군은 비사성을 치는 척하다가 슬쩍 뱃머리를 돌려 곧바로 패수구로 진격할 수도 있지 않겠소? 그러면 우리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니 쉽게 당할 수밖에 없소이다.”
막리지(莫離支) 연자유(淵子遊)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수님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비사성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 직접 평양성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저들의 수군력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또한 충분히 대비하고 있는 일이니 그리 걱정하실 것은 없겠습니다.”
강이식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전쟁에 임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오. 좌우간 평양에 파발을 넣어 폐하께 예상되는 적군의 진격로를 품하겠소.”
연자유가 활짝 웃으며 강이식에게 말했다.
“과연 강 원수께서는 빈 틈이 없으시구려.”
강이식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나의 신조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된다는 것이오.”
연자유는 신이 나서 자신이 생각했던 전략을 풀어놓았다.
“그렇다면 수나라의 육군(陸軍)에 대한 대비를 먼저 세워야겠소. 나는 이대로 적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먼저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오.”
“그렇다면 유성에 주둔한 영주부의 군사를 다시 치시겠다는 말입니까?”
강이식은 연자유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연자유는 새삼 강이식의 뛰어난 통찰력에 감탄했다.
“그렇소.”
“그 일은 폐하께 재가를 얻어야 할 일입니다. 차후에 의논하도록 합시다.”
언제나 명쾌한 강이식답지 않게 석연치 않은 대답이었다. 이미 태왕으로부터 전권(全權)을 위임받은 입장이었으므로 강이식의 머뭇거림은 더욱 의아하게 여겨졌다.
“그럼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소. 각자 맡은 바 위치로 돌아가서 만반의 준비를 해주시기 바라오.”
이때 강이식은 연자유를 향해 남아 있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이를 알아차린 연자유는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간 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연자유가 다그치듯이 물었다.
“원수님께서 저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막리지께서 영주부에 대해 복안(腹案)이 있으신 것 같아서 이리 따로 모셨습니다.”
“영주부 문제는 강 원수가 폐하께 재가를 받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단지 다른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번 작전에 있어서는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연자유는 그제야 강이식의 의도를 파악하고 자신의 계책을 털어놓았다.
“내가 지난날 폐하를 모시고 영주부의 유성을 쳤을 때 적과 혼전을 치르는 와중에 수나라 군사로 위장한 수십명의 첩자를 침투시켜 두었소. 그들은 지금까지도 유성에 머물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뜨려 성을 수비하는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소. 이번에 내가 휘하의 경기병을 이끌고 유성으로 달려가 그들과 내통한다면 힘들이지 않고 성을 빼앗을 수 있소.”
“막리지의 용의주도(用意周到)함에는 나도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럼 내일이라도 당장 유성으로 가십시오. 나는 그저 막리지의 승전보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강이식은 진심으로 연자유에게 존경의 뜻을 표했다. 연자유는 뛰어난 지략가인 강이식에게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한없이 유쾌했다.
다음날 연자유는 자신의 휘하 군사들을 이끌고 요동성을 떠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자유가 신성(新城)으로 돌아간다고 여겼다. 고구려의 영주(營州) 공략 작전은 그만큼 극비리에 수행되었다.
강이식은 연자유의 불같이 급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그가 떠나기 전에 이렇게 신신당부(申申當付)했다.
“왕세적은 백전노장으로 노련하고 간계가 뛰어난 자입니다. 우리가 유성을 점령하면 한왕 양량은 분명 왕세적을 유성으로 보내 공격해 올 것입니다. 유성을 탈환하면 지키기만 하고 절대 성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왕세적이 화를 돋운다해도 절대 말려들지 마십시오. 막리지의 임무는 성을 지킴으로써 수군의 진군 속도를 늦추는 일이라는 것을 부디 명심하십시오.”
요동성을 출발한 연자유의 기마병들은 무서운 속도로 유성으로 달렸다.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닷새만에 유성에 이른 연자유는 성에서 동쪽으로 십여 리 떨어진 곳에 진영을 만들었다. 이를 보고 놀란 영주부의 수국 군사들이 성문을 굳게 닫고 움직이지 않자, 연자유 역시 진영에 눌러 앉았다.
연자유가 적을 눈앞에 두고도 관망만 하고 있자, 부하 장수들은 모두 의아하게 여겼다. 평소 연자유의 급한 성격을 생각하면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모달(模達) 재증협무(再曾協武)가 연자유의 막사로 찾아갔다.
“저들은 구원군이 당도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첩보에 의하면 탁군(琢郡)을 떠난 수나라의 군사들이 이미 대릉하를 건넜다고 합니다. 이런 마당에 시간을 끄는 것은 우리에게 절대 불리합니다. 수나라의 구원군이 당도하기 전에 총력을 기울여 성을 함락시켜야 합니다. 제가 선봉에 서서 성을 공격하겠습니다.”
혈기왕성한 재증협무가 공을 세우고 싶은 욕심에 공격을 재촉했지만 연자유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염려하지 마라. 오늘 밤 네가 원 없이 활약할 무대가 준비되어 있으니.”
어둠이 소리 없이 찾아들었다. 연자유는 재증협무를 비롯한 부하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때가 왔다. 유성은 오늘 밤 우리의 수중에 들어올 것이다. 성 안에서 불길이 오르면 즉시 성문을 향해 달리도록 하라. 우리를 위해서 성문이 열리리라.”
장수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만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이때서야 연자유는 수십 명의 첩자들이 성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그들이 오늘 성안에 불을 놓고 성문을 열기로 했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재증협무를 비롯한 장수들은 그제야 얼굴이 밝아졌다.
사흘 동안 고구려군이 움직이지 않자 긴장감 속에서 비상 경계 태세를 취하던 수군(隨軍) 병사들은 피곤에 지쳐 있었다. 밤이 이미 깊은 축시(丑時) 무렵에 북쪽의 건초장과 마구간에서 갑자기 불길이 일더니, 곧이어 동쪽의 무기고와 양곡창에서도 붉은 화광(火光)이 솟아 올라왔다. 사방에서 불길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자 당황한 영주도독(營州都督) 위충(韋沖)은 성벽을 지키던 군사들 중 일부를 차출하여 진화(鎭火)에 나섰다.
수군 병사들이 불을 끄느라 경황이 없는 가운데 수군의 복장을 한 고구려의 첩자들이 서쪽 성문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서문(西門)을 경비하던 수병(隨兵)들을 참살하고 재빨리 성문을 열었다. 서문 밖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숨어있던 재증협무는 성문이 열리자 환도(環刀)를 높이 치켜들고 성안으로 말을 달렸다. 고구려군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그의 뒤를 따랐다.
갑자기 서문이 열리며 고구려군이 침입하자 위충은 부랴부랴 군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고구려군은 이미 성문을 점거하고 성벽 위로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고구려군의 출현에 겁을 집어먹은 유성의 수비병들은 이제 무기를 든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저항하던 몇몇 수병(隨兵)들이 고구려 군사들의 창에 찔려 쓰러지자, 남은 군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앞다투어 항복했다.
사세가 돌이킬 수 없게 되자, 위충은 몸을 빼내어 북문(北門)을 통해서 달아났다. 그의 뒤를 따르는 군사는 겨우 천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 수군(隨軍)에게 지옥으로 변한 요택(遼澤)
한왕(漢王) 양량(楊諒)의 군대가 임유관(臨渝關)을 돌파해 대릉하(大凌河) 하류에 당도했을 무렵, 유성이 고구려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구려가 유성을 손쉽게 장악한 것은 이번 전쟁의 양상을 바꿀만한 큰 사건이었다. 수국(隨國)은 유성을 고구려 원정의 전진기지로 삼고 군량과 장비 등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유성이 떨어졌으니 수국은 조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양량은 급히 행군을 멈추고 장수들을 모아 작전회의를 했다.
“불과 며칠 만에 유성이 함락되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소. 아무리 고구려군의 전력이 막강하다고 하지만 위충이 많은 군사로 성을 지켰는데 어찌 그리도 쉽게 패배할 수 있단 말이오?”
전쟁에서의 경험이 부족한 양량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분명 저들의 계책에 빠져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성을 넘겼을 겁니다. 제가 듣기로는 고구려의 병마원수가 지략이 뛰어나다 하더이다. 아마도 그가 내놓은 계책이 아닐까 합니다.”
부원수 왕세적(王世績)의 조카인 중군장 왕식충(王息忠)이 아는 체를 하며 끼어들었다. 그는 양량에게 수족과 같은 인물이었다.
왕세적이 고개를 저으며 양량에게 말한다.
“이번에 영주부를 함락시킨 고구려 장수는 연자유라 합니다. 그는 지난번 고구려의 국왕이 몸소 영주성을 쳤을 때, 선봉에 섰던 인물입니다. 소장의 생각에는 아무래도 이 자가 지난날 영주성이 혼란한 틈을 타서 미리 손을 써 둔 듯합니다.”
“그 자가 강이식 못지 않게 뛰어난 지략을 가지고 있단 말이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연자유는 용맹스러운 장수이기는 하지만 성미가 급하여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섭니다. 이번 영주의 패배는 그 자가 의외의 실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전장(戰場)에서의 오랜 경험이 그를 노련(老鍊)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하지만 사람의 성품이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의 약점을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습니다.”
왕세적의 머릿속에는 이미 연자유를 잡을 방책이 들어 있었다. 곰이 백 년을 묵는다고 해서 여우가 될 수는 없었다. 이제 함정을 파고 적당한 미끼를 던진 후에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 일을 부원수에게 맡기기로 하겠소. 꼭 유성을 탈환하기를 바라겠소.”
양량은 연자유와 같은 하찮은 장수는 왕세적에게 맡기고 자신은 고구려의 영토 안으로 진격할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다.
요택은 요하 하구의 낮은 땅으로 강물이 범람하며 만들어진 습지였다. 요택의 땅은 대부분 진흙이나 늪지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이 지역을 오가던 사람들은 수월한 왕래를 위해서 흙과 돌을 이용해 길을 닦았다.
“각 길마다 판석(板石)을 깔아 정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유실될 경우를 대비해서 아군만 알 수 있는 표식을 해두었습니다. 여기 지도에 상세히 표시해 두었으니 길이 진흙에 묻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강이식은 부하 장수인 말객(末客) 고이중(高利重)의 보고를 들으며 지장도(地場圖)를 살펴보았다.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되면 이 땅은 제단으로 변하여 무수히 많은 수병(隨兵)의 피를 들이마시게 될 것이다. 저들은 분명 이 요택을 통과할 것이지만 내가 미리 쳐 놓은 그물에 걸려들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낙수계곡(落水溪谷)이 그의 무덤이 되리라.”
강이식이 말하는 낙수계곡은 개모성 부근에 있는 계곡으로 특히 폭포의 절경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대는 이 길로 태제(太弟) 전하(殿下)에게 달려가 내 말을 전해라. 내가 어제 천문(天文)을 보니, 남두육성(南頭六星)의 빛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는 필시 용왕(龍王)의 진노가 일어날 조짐이다. 그러니 전선(戰船)들을 단속하여 바다로 나가는 일을 금해야 할 것이다. 말을 전한 후에는 그 곳에 머물며 전하를 돕도록 하라.”
용왕의 진노라 하면 엄청난 태풍을 뜻하는 것이었다. 강이식의 지시를 받은 고이중은 재빨리 준마(駿馬)에 올라 패수구 쪽으로 달려갔다. 강이식은 자신이 치밀하게 짜놓은 전략을 다시 상기하면서 건안성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언덕에 올라 유성(柳城)을 바라보던 수장(隨將) 왕세적(王世績)은 성벽을 지키고 있는 고구려 군사들의 절도 있는 모습에서 군기가 정연함을 알 수 있었고, 공성전(攻城戰)을 펼쳐 성을 탈환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렇다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고구려군을 성 밖으로 끌어내는 것뿐이었다.
왕세적이 거느린 5만의 수군(隨軍)은 유성을 향해 쇄도(殺到)하여 고구려군에게 싸움을 걸었다.
“천자(天子)의 군대가 왔으니 적장 연자유(淵子遊)는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 그리하면 지난날의 죄과를 묻지 않겠다.”
연자유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한 외침이었다. 그의 됨됨이로 볼 때 항복을 권유하는 말은 모욕과 다르지 않았다.
“웃기고들 있구나. 하늘의 아드님이 세우신 나라는 오직 우리 고구려뿐이다. 천제(天帝)께서 하늘의 아들[天子]을 사칭하는 너희들에게 천군(天軍)을 보내 징벌하실 것이다.”
연자유는 부하들을 시켜 대거리를 할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왕세적은 욕 잘 하는 병사들을 뽑아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게 하여 충동질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심한 욕을 해도 연자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왕세적은 단순히 연자유의 성질을 자극해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을 공격하면서 고구려군의 허실을 탐색하기로 했다. 수나라 군사들은 일만 명씩 대를 나누어 번갈아 가며 유성을 공격했다. 공격하는 쪽이 전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수군의 공격은 고구려군의 기운을 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수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왕세적은 이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다 보면 고구려군의 피곤이 쌓여 갈 것이고 연자유의 참을성도 한계를 드러낼 것이었다.
한편, 왕세적이 연자유가 점령한 유성을 공략하는 사이 한왕 양량은 무얼 하고 있었는가? 한왕 양량은 왕세적에게 유성 탈환의 임무를 맡기고 일언반구(一言半句) 상의도 없이 나머지 군사들을 거느리고 요하로 향했다. 왕세적은 양량과 헤어지면서 요택을 조심하라고 누누이 알렸지만 양량은 자신이 전쟁을 주도하여 공훈을 세우고 싶다는 욕심에 왕세적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자신만만하게 요택으로 향했던 양량은 금방이라도 요하를 건너 요동성으로 내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욕심은 종종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양량은 욕심이 앞선 나머지 장마철에 요택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요택에 들어온 지 사흘 만에 습기가 찬 바람이 불더니 마침내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지 않고 하루종일 내리니 눈앞에 보이던 길이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늪이 점점 입을 크게 벌려 주위를 삼켰고, 사방은 점차 거대한 진흙의 바다로 변해갔다. 수나라 군사들은 나아갈 방향을 잃었다. 마치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풍랑을 만나 돛과 닻을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 같은 신세였다. 많은 비로 인해 불어난 요하가 범람하면서 요택의 수위가 점차 높아졌다. 군량미를 실은 수레는 진흙탕에 빠져 꼼짝하지 못했고, 지대가 낮은 곳에서는 이미 수나라 군사들의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양량은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양량은 오랜 시간 차가운 비를 맞으며 걷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져 들어가는 진창길을 헤쳐 오느라 지친 군사들을 독려하여 진군(進軍)을 거듭했다. 기진맥진한 군사들이 하나둘씩 쓰려져 갔다. 길이 없어져서 군량미를 실은 수레는 더 이상 군사들의 뒤를 따를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보급은 끊겼고 군사들이 소지한 군량미조차 바닥을 드러냈다.
배고픔과 무리한 행군, 그리고 청결을 유지할 수 없는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군사들 사이에 전염병이 돌았다. 병마(病魔)는 마치 매복하고 있던 적군처럼 삽시간에 수군을 덮쳤다. 보급이 끊긴 상황이었기에 많은 병사들이 제대로 치료 한 번 받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요택에 갇힌지도 열흥이 지나자 군사들은 물론이고 양량조차 버틸 힘이 없었다. 이러다간 고구려 군사들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전멸할 지도 몰랐다.
양량은 왕식충을 불러 의논했다.
“아무래도 군대를 철수하고 훗날을 기약해야겠네. 이런 식으로는 고구려군과 싸워 보기도 전에 군사들을 모두 잃겠어.”
그러나 왕식충은 목표를 정하면 절대 포기를 모르는 우직한 사람이었다.
“어차피 물러나려 해도 물러날 수 없습니다. 제가 아직 여력이 남아 있는 군사들을 모아 길을 열고, 요하를 건너 교두보를 만들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이곳에 머무르시다가 저의 연락을 받으면 요하를 건너 오십시오.”
절망에 빠진 양량은 충복의 무모함에라도 기대고 싶었기에 왕식충의 청을 받아들였다. 이미 군사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남은 군사들도 많이 지쳐있었지만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군사 삼만을 뽑아 왕식충에게 맡겼다.
“내 오직 그대만을 믿겠다.”
왕식충이 이끄는 선봉부대는 추위와 배고픔을 무릅쓰고 비가 쏟아지는 지옥 같은 진흙길을 지나 요하에 다다랐다. 많은 비로 인해 불어난 강물은 거칠게 강변을 집어삼키고 있었으며, 결코 도강(渡江)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세차게 꿈틀거렸다. 이를 바라보는 군사들의 얼굴 위로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졌다. 하지만 의지로 굳게 뭉쳐진 왕식충은 그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쓰디쓴 고통조차도 달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왕식충은 군사들을 다독여 주변에서 나무를 구해오게 해서 뗏목을 만들고 빗방울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강물 위에 뗏목을 띄웠다. 급한 물살을 이기지 못한 뗏목들이 하나둘씩 뒤집히고 그 위에 타고 있던 군사들이 강물에 쓸려 내려갔다. 그러나 왕식충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물에 빠진 군사들이 허우적거리며 살려 달라 외쳤지만 누구도 구할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물살이었다.
왕식충의 군대는 많은 대가를 치른 뒤에야 간신히 요하를 건널 수 있었다. 군사들은 전우를 잃은 슬픔보다 살아남은 기쁨이 더 크다는 사실에 한동안 온몸을 떨어야 했다. 왕식충은 군사들을 추슬러 진군을 했다. 그는 이 지긋지긋한 고생도 언젠가는 그 끝을 보이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하늘은 수군(隨軍)을 돕지 않는지 그쳤던 비가 다시 세상을 메울 듯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왕세적의 군사들은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요하를 건넜지만 수군의 움직임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던 고구려군이 그들을 그대로 놓아 둘 리 없었다.
대모달(大模達) 이중손(李重孫)이 이끄는 요동성의 고구려군이 왕식충 휘하의 수군을 기습공격한 것이다. 폭우 속에서 피로감과 더불어 시야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던 수군은 자신들이 고구려군에게 포위당한 건지도 모른 채 행군을 계속하다가 느닷없이 화살 세례를 받았다. 바람처럼 달려든 고구려 군사들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고구려 군사들은 수군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일제히 궁시(弓矢)를 당겨 집중사격을 전개했다. 수나라 군사들은 화살에 맞아 진흙탕에 얼굴을 묻고 쓰러졌다. 왕식충은 참혹하게 무너져 내리는 부하들을 보며 이번 원정에 참가한 자신의 선택을 저주했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선명하게 들리더니 왕식충의 몸이 휘청거렸다. 이어서 고구려 군사들의 요란한 함성소리가 들렸다.
● 사련교(思戀橋)에서 전사한 연자유(淵子遊)
왕세적의 군대는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공성전(攻城戰)을 펼쳤으나 연자유 휘하의 고구려군은 더욱 유성(柳城)에 대한 방비를 견고히 하며 끈질기게 저항했다. 게다가 쉽게 그치지 않고 날마다 계속 내리는 빗줄기는 수나라 군사들에게 심상치 않은 병증을 안겨주었다. 오랜 시간을 차가운 빗속에서 보낸 수군(隨軍) 병졸들 가운데 오한과 발열, 설사 등을 일으켜 탈진해 쓰러지는 사람이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환자들은 따로 격리해서 치료를 했지만 습기가 많고 후덥지근한 막사에 변변한 약조차 없다보니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히려 공격하는 수군 쪽이 먼저 지칠지도 몰랐다.
왕세적은 심사숙고(深思熟考) 끝에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계책을 짜냈다. 만일 이 계책이 실패한다면 수군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왕세적은 별장(別將) 장덕평(張德平)을 은밀히 불러 지시를 내렸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오십 여리 떨어진 곳에 사련교(思戀橋)라는 다리 하나가 있다. 너는 군사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가서 주변의 갈대밭과 숲 속에 군사들을 매복시켜라. 적장 연자유도 요택에서 아군이 곤경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접한다면 우리가 후퇴하더라도 의심 않고 추격해올 것이다. 고구려군이 사련교에 이르면 일제히 갈대밭에서 뛰쳐 나와서 그들을 치면 된다. 내가 연자유를 유인하겠다.”
사련교는 대릉하 지류 위에 놓인 다리로 남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했다. 다리 주변의 강가에는 갈대가 우거져 군사들이 매복하기에 용이했다.
다음날 수나라 군사들은 왕세적의 퇴각명령에 따라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후퇴할 준비를 시작했다. 성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연자유는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수나라 군사들이 지금 도망치려고 하지 않는가? 드디어 그동안 당한 모욕을 시원히 되갚아 줄 수 있겠다. 어서 군마를 준비해라. 내 당장 뛰어나가 왕세적의 목을 베리라.”
이에 기총(旗總) 소우겸(昭禹兼)이 반대하고 나섰다.
“아군은 가까스로 적군의 맹렬한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세적이 갑자기 군사를 물리다니, 이는 필시 모종의 계략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소우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했다. 연자유는 나가서 적군을 쫓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이때 마침 숙군성주(宿軍城主) 가라달(可邏達) 두요상(杜曜祥)이 보낸 전령이 당도했다.
“지금 한왕 양량이 이끄는 수군은 요택에 고립되어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연자유는 전령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왕세적은 양량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사를 후퇴시키는 것이므로 다급한 상황에 빠져 있으니 적군은 간계(奸計)를 부릴 정신이 없을 것이었다. 이는 수군을 섬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때를 놓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연자유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군사들을 소집하고 성 밖으로 나가 수군(隨軍)의 뒤를 쫓으며 군마(軍馬)를 몰았다. 고구려의 추격병을 본 수군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급히 달아났다. 연자유는 수나라의 부원수기(副元帥旗)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추격전(追擊戰)을 펼쳐 거리를 좁혔다.
고구려군에게 쫓긴 수나라 군사들은 강을 건너기 위해 사련교 주위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다리는 겨우 대여섯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날 수 있는 너비였으므로 한꺼번에 몰려드는 많은 군사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미처 다리로 건너지 못한 수군 병사들은 갈대숲을 헤치고 물로 뛰어들었다. 이를 본 연자유는 의심을 거두고 수나라 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달아나던 수나라 군사들이 뒤돌아서서 고구려군과 접전을 벌이는 순간, 갈대숲에 숨어 있던 장덕평 휘하의 수군이 함성을 지르며 튀어나오더니 고구려군을 에워싸고 공격을 개시했다. 예상치 못했던 기습을 받은 연자유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건지 수나라 군사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만 갔다. 결국 연자유는 수군에게 여러 겹으로 포위되는 절박한 신세가 되었다.
연자유는 군사들을 독려하며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함정에 빠지면 호랑이라도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많은 고구려 군사들이 수군의 창과 칼 아래 쓰러져 갔다. 왕세적이 연자유에게 항복을 권유한다.
“나는 수나라의 행군부원수 왕세적이다. 그대의 용맹은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로 오래 버텨 낼지는 몰랐다. 더는 아까운 부하들의 목숨을 희생시키지 말고 항복하기 바란다. 항복한다면 우리 나라의 황제께 주청하여 그대를 높은 관직에 등용하도록 천거할 것이다.”
그러나 연자유는 대노하여 왕세적을 꾸짖었다.
“네놈의 꾀에 넘어가 이 지경에 처했다만 고구려의 무사로서 부끄러운 짓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 죽을지언정 네놈을 반드시 저승길의 동무로 삼을 것이다.”
연자유는 몸을 날려 왕세적에게 달려들었다. 왕세적은 크게 놀라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왕세적의 호위병들은 연자유를 향해 일제히 화살을 날리고 창을 던졌다. 연자유가 아무리 용맹스러운 장수라 한들 한꺼번에 날아오는 수십 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몸에 수십개의 화살이 꽂힌 연자유는 수나라 군사들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며 숨을 거두었다. 왕세적은 이 전투에서 고구려군 3천여명을 참살하고 5백여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다.
유성을 탈환한 왕세적은 급히 군사를 몰아 요택으로 달려갔다. 이제 기나긴 장마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는지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수나라 군사들은 흙과 돌을 운반하여 길을 만들면서 앞으로 전진해 갔다. 척후병을 보내 요택의 지형을 세심히 살핀 왕세적의 군대는 길가에 드러난 표식 아래서 고구려군이 깔아 놓은 연석(緣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왕세적의 군대는 연석을 따라 양량이 고립되어 있는 곳까지 내달렸다.
왕세적이 양량의 진영에 도착해보니 그야말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굶주림과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으로 인해 이미 군사의 반수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군사들 역시 움직이기조차 힘들 정도로 지쳐 있었다. 군진(軍陳)이라기보다는 병자(病者)들의 수용소처럼 보였다. 왕세적은 요하 쪽에서 도망쳐 오는 패잔병들을 통해 조카인 왕식충이 무모하게 도강을 시도하여 고구려의 국경을 넘다가 적군의 기습공격으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일지군(一枝軍)의 지휘관으로서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서는 안되었지만 형의 유일한 피붙이인 왕식충의 시신을 두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왕세적은 위험을 무릅쓰고 요하를 건너기로 결정했다.
급히 뗏목을 만들어 한결 물이 줄어든 요하를 건넌 왕세적의 군대는 개모성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편 주라후(周羅候)가 총지휘하는 수국(隨國)의 수군(水軍)은 내주(萊州)를 출발하여 발해만을 항해하고 있었다. 남동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여서 노를 쓰지 않고 돛만으로도 항해가 가능했다. 장마철에 접어들자 바다의 일기 역시 평탄하지 않았다. 파도가 높고 바람이 거센데다가 비까지 오락가락하여 항해에는 적당치 않은 날씨였다. 그러나 주라후는 오히려 해상의 기후가 좋지 않은 이 때에 항진한다면 고구려 쪽에서도 바다에 대한 경계가 소흘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예정된 일정대로 출항을 명령했던 것이었다. 주라후의 선단은 새롭게 건조한 군선을 비롯해서 인근 해안 지역에서 차출한 어선까지 합쳐 1천여 척에 이르렀다. 겉으로 드러난 주라후 선단의 임무는 비사성을 공격하고, 해안선을 따라가며 육군에게 식량과 건초, 병장기 등의 군수품을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수나라의 수군은 묘도군도(廟島群島)를 거쳐 비사성으로 방향을 잡았다. 연안을 따라 움직이는 항해였으므로 고르지 않은 일기에도 불구하고 큰 탈 없이 항해할 수 있었다.
비사성이 있는 요동반도가 가까워질 무렵, 주라후는 수하들을 불러 명령했다.
“뱃머리를 동쪽으로 돌려라.”
뜻밖의 명령에 장수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의 목표는 비사성이 아닙니까?”
부총관 단천향(段天響)이 당황하여 물었다.
“바다를 건너 패수구(浿水口)로 향한다.”
패수구라면 평양으로 통하는 수로(水路)의 입구가 되는 셈이다. 패수구로 향한다는 것은 직접 고구려의 도성을 치겠다는 의도였다.
이에 단천향이 난색을 표했다.
“이런 날씨에 황해(黃海)를 가로지르는 것은 무모합니다.”
일개 수부로 시작해서 많은 전장을 누비며 공을 세워 지휘관의 자리까지 오른 단천향이었으므로 위험에 대한 직감만큼은 누구보다 날이 서 있었다.
주라후가 손사래를 치면서 단천향의 말을 끊었다.
“이것은 폐하께서 내린 황명(皇命)이니라. 그리고 기후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할 일만은 아니다. 이제 장마도 거의 끝나서 바다가 평온을 되찾고 있다. 남동풍이 잦아들 때를 노려 서둘러서 노를 젓는다면 무사히 패수구에 당도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남동풍의 계절입니다. 당장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 태풍이 불어 올지 모릅니다. 게다가 저들이 우리가 선로를 변경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비사성에 있는 고구려의 수군이 아군의 후미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당하게 됩니다.”
동래의 수군도독인 중랑장(中郞將) 상관요(上觀曜)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저들을 속일 계책이 있다.”
주라후는 그 자리에서 상관요에게 군선 2백척을 거느리고 비사성으로 가라 명했다.
“공격하는 시늉을 하면서 저들의 시선을 끌면 충분하다. 고구려 수군의 전력은 가벼이 여길 수 없으니 절대로 정면으로 맞붙어서는 안 된다. 고구려군이 지치면 치고, 반격하면 그만큼 거리를 두고 물러나라. 우리는 그 틈을 노려 패수구로 접근할 것이다.”
장수들은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주라후의 명령을 받아들여야 했다.
먼저 상관요가 동래부(東萊府) 소속의 선단을 이끌고 비사성으로 출발했다. 그 속에는 주라후의 대장기가 나부끼는 지휘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주라후의 선단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함이었다. 때를 같이하여 주라후는 상관요의 배인 적함(赤艦)에 올라간 후 패수구로 향했다.
수국의 선단이 내주를 출항했다는 척후선의 보고를 받은 고건무(高建武)는 긴급히 장수들을 소집했다. 장수들이 수군원수부(水軍元帥府)에 모이자 고건무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라후의 선단이 내주를 출발했다니 어디로 향할 것 같소?”
“그들은 비사성으로 항로를 잡았다고 합니다. 비사성으로 올라가서 양량의 육군과 요동성에서 조우하려고 할 것입니다.”
고건무의 측근인 대모달(大模達) 고승(高勝)이 답변했다. 고건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석에 앉아 있는 말객(末客) 고이중(高利重)에게 물었다.
“자네의 의견은 어떠한가?”
“소장이 듣기로 동래를 떠난 수의 선단은 1천척이 넘을 정도로 대규모라 합니다. 비사성 정도를 취하려고 그 많은 군사를 동원했을 리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비사성을 공격하는 척해서 우리의 시선을 끈 뒤 정작 주력 부대는 패수구로 향해 평양성을 치려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고이중은 고건무가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읽어내고 있음을 깨닫고 속으로 크게 찬탄했다. 역시 고건무는 단순히 왕제(王弟)란 이유만으로 수군원수의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의 주력이 요동에 집결해 있는 상황에서 수나라의 수군이 패수구로 쳐들어온다면 이것이야말로 낭패가 아닌가?”
고건무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자 고이중이 자신있게 말했다.
“그건 크게 염려하시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도원수께서 말씀하시길, 우리가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수군이 자멸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건 무슨 소린가?”
“도원수께서 천문을 보셨는데 닷새 후에는 엄청난 태풍이 불어닥쳐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란 배는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해상에서 전투를 치르지 않고도 저들을 수장(水葬)시킬 수 있습니다.”
“도원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내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고건무는 강이식의 지략과 예지력이 신통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금새 편안한 얼굴로 되돌아왔다.
한편 2백척의 군선을 이끌고 비사성 앞바다까지 접근한 중랑장 상관요는 해안가에 정박한 고구려 함선을 항햐 화살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고구려 함선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불화살을 날렸다. 미끼의 역할인 동래부의 수군은 굳이 싸울 필요가 없었기에 뱃머리를 돌려 바다로 물러났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 패수구가 보이는 바다에 당도한 주라후는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고구려 국왕을 발아래 무릎 꿇릴 생각에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배어 나왔다. 평양성의 성민들은 앞으로 닥쳐올 재난을 모른 채 마음을 놓고 있을 것이었다. 이제 내일 아침 패수를 따라 오르면 점심쯤에는 유명한 평양성의 화려한 성곽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물에 서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육지를 바라보던 주라후가 고개를 돌려 부총관 단천향에게 말했다.
“어떤가? 하늘조차 우리의 편이지 않는가? 콧대 높은 고구려가 고개를 숙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도다.”
부총관 단천향은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험한 바다를 무사히 건너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속의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패수구 앞바다는 이상하리만키 고요했다.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함 같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단천향의 조바심은 더욱 심해졌다.
단천향은 주라후에게 후퇴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질책을 받을 것이 뻔했기에 애써 입을 다물었다.
주라후는 눈길을 거두어 뒤를 따르는 선박들을 응시했다. 1천여척에 달하는 선박들이 산이라도 집어삼킬 기세로 물살을 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주라후는 마음이 든든해져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에서 비린내가 느껴졌다. 전함의 돛이 찢어질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먹장구름이 순식간에 푸른 하늘을 집어 삼켰다. 사방이 컴컴해졌다. 천둥이 진군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번개가 금방이라도 배를 쪼개버릴 듯이 번쩍였다. 잔잔했던 바다는 어느 틈에 안면을 바꾸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배는 키의 움직임과는 상관없이 강풍에 떠밀려 갔다. 파도가 점차 몸집을 불리더니 어느새 나뭇잎처럼 떠나디는 수나라의 전함들을 뒤덮었다. 간신히 태산 같은 파도에서 벗어난 배들도 앞뒤 가리지 않고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돛대가 꺽이고 고물이 파손되어 침몰해 갔다. 폭풍우는 죽음을 부르는 망나니처럼 춤을 추며 밤이 새도록 몰아쳤다. 바람소리가 군사들의 절규를 앗아갔다. 배 위에서는 혀를 날름거리는 파도에 의해 무언(無言)의 살육극(殺肉劇)이 벌어졌다. 부서진 배의 파편과 물에 빠진 군사들이 서로 뒤엉켜 검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요행히 파도에 떠밀려 상륙한 수나라의 군사들은 해안가를 지키고 있던 고구려군의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개펄은 순식간에 갈대밭으로 변했다. 수병(隨兵)들의 시체가 패수구의 해안을 까맣게 뒤덮었다.
● 왕세적(王世績)을 패배하게 한 강이식(姜以式)의 뛰어난 지략
왕세적이 이끄는 수군(隨軍)이 개모성(蓋牟城)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성주인 모달(模達) 손자연(孫子然)은 행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성문을 걸어 잠그도록 하였다. 병마원수(兵馬元帥) 강이식(姜以式)은 장수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전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모달(模達) 재증협무(再曾協武)를 돌아보며 말했다.
“치욕을 씻을 기회를 주겠다. 자네에게 일만의 군사를 내줄 테니, 낙수계곡(落水溪谷)으로 가서 매복하고 있거라. 내가 왕세적을 그쪽으로 유인하겠다.”
재증협무는 강이식의 마음 씀씀이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부장(副將)으로서 주장(主將)을 지키지 못하고 혼자만 살아 돌아왔다는 자책감이 그의 마음속에서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패잔병을 거느리고 개모성으로 도망쳐 왔을 때, 사람들이 자신을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듯해서 그만 그 자리에서 칼을 빼어 자진(自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죽음조차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연자유의 복수는 그가 완수해야할 의무였기 때문이었다. 고구려의 무사에게 있어 패배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만일 누군가 대신 그 고통을 적군에게 되돌려 주지 않는다면 그의 영혼은 안식(安息)을 얻을 수 없었다. 재증협무는 연자유가 영계(靈界)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니 강이식은 재증협무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준 것이었다.
강이식은 이어서 개모성주 손자연에게 명령했다.
“성주께서는 개모성을 지키며 저항하다가 적당한 때에 패전한 척 북문으로 달아나시오. 왕세적은 의심이 많아 쫓으려 하지 않을 테니, 북림(北林)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수군(隨軍)이 도망쳐 오면 그들의 퇴로를 막으시오.”
모든 장수들에게 할 일을 일러준 강이식은 출전 준비를 위해서 처소로 돌아왔다.
왕세적의 군대가 성 앞에 도착하자 개모성에서도 고구려 군사들이 성문을 열고 달려 나와 대형을 갖추었다. 개모성은 험한 산 위에 위치한데다가 요동성이나 신성에 비해 주둔한 군사가 그리 많지 않은 규모가 작은 성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수성전(守城戰)으로 이점을 취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왕세적은 개모성 안에 있는 고구려군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대항해 오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강이식이 마상(馬上)에서 등편(藤鞭)으로 적진을 향해 내뻗으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고구려군은 요란하게 말발굽 소리를 내며 수군을 향해 돌격해 들어왔다. 왕세적도 응전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좌우에서 깃발이 흔들렸다. 수군의 진영이 두 대로 갈라지고 선두에 선 수군의 경기병(輕騎兵)들이 고구려군의 측면으로 달려들었다. 고구려군의 중장기병(重裝騎兵)들이 이에 맞섰다. 하지만 수군의 경기병들은 이들을 지나쳐 고구려군의 보병(步兵) 부대가 위치한 후미를 쳤다. 이곳이 바로 고구려군의 허점이었다. 고구려 중장기병은 무거운 철갑을 두른데다가 전속력으로 내닫고 있었기에 방향을 전환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날렵한 수군의 경기병은 수적 우세를 이용해서 고구려군의 후미를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전세는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중장기병의 뒤를 따르던 고구려군의 보병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해 보고 수군의 경기병들에게 쫓겨 달아났다. 강이식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본 왕세적은 별장 장덕평에게 개모성을 공격해서 탈취하라 명하고, 자신은 주력군을 이끌고 달아나는 고구려군을 추격하였다.
장덕평의 부대가 개모성을 공격해오자 개모성주 손자연은 강이식의 지시대로 한동안 교전하다가 못 이기는 척 성을 버리고 북문을 통해 달아났다.
왕세적은 강이식이 뛰어난 양장(良將)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그를 한시라도 빨리 자신 앞에 굴복시키고 싶었다. 전장(戰將)에서 호적수(好敵手)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런 상태와 맞붙어 완벽하게 무릎을 꿇리는 것은 장수(將帥)로서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왕세적은 흥분에 들떠 있었다. 그런 허영심은 왕세적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평소대로 냉정을 유지했다면 자신이 너무 깊숙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달아나는 강이식의 뒤통수만 보일 뿐이었다.
한참을 쫓다 보니 울창한 숲이 나타났다. 고구려 군사들은 숲 속으로 뛰어들어가 모습을 갑추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왕세적은 자신이 어느새 산 속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어느덧 계곡으로 변했다. 어찌나 좁은지 두 사람의 기마병이 나란히 걷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왕세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숨이 막히고 등줄기에는 식은 땀이 홍건하게 배었다. 왕세적은 말을 세우고 주변을 살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무래도 더 이상 고구려군을 쫓는 것은 위험했다. 고구려 군사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봄날의 안개처럼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왕세적은 군사들에게 그만 추격을 단념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 지시를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함성과 더불어 수백대의 화살이 수병(隨兵)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왕세적은 당황하는 부하들을 진정시키고 고구려군의 위치를 파악하여 다시 추격을 명령했다. 고구려 군사들은 몇 차례 화살을 날리다가 이내 등을 보이며 계곡의 바위들을 뛰어 건넜다. 인근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수나라 군사들은 고구려군을 따라잡기 어려웠다. 고구려 군사들은 수군과의 간격을 점차 벌리더니 결국 종적을 감추었다.
초저녁 때에 이르자 어둠이 깔려오기 시작하더니 앞사람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낭장(郎將) 악소부(岳素浮)가 상관인 왕세적에게 간했다.
“이곳에 계속 머물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 숲을 벗어나야 합니다.”
왕세적이 주변을 둘러보니 계곡에 가득 찬 부하 군졸들이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왕세적은 자신이 부하들을 사지(死地)로 끌여들였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현실을 직시하고 군사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사방을 경계하라!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수나라 군사들은 명령에 따라 횃불을 들고 계곡의 하류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내려갔는데 군사들의 발걸음이 더뎌졌다. 선두에서 전령이 달려와 계곡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군사들이 술렁였다. 하류로 갈수록 계곡이 넓어지는 것이 보통인지라, 왕세적은 적이 당황스러웠다. 만일 자신이 적장이라면 이곳에 복병을 숨겨 두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는 최대한 이 험지를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왕세적의 예상은 불행히도 적중하고 말았다. 수군(隨軍)이 좁은 계곡을 힘겹게 빠져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계곡 양쪽의 높은 절벽 위에서 통나무와 염초뭉치들이 굴러 내리더니 곧이어 불화살이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재증협무가 강이식의 지시를 받고 미리 절벽 위에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나라 군사들은 좁은 계곡에 호박 속처럼 꽉 들어차 있었기에 몸을 돌리기조차 어려웠다. 군사들은 비명소리와 더불어 통나무와 바위에 깔리고 불화살에 몸이 관통되어 처참하게 죽어나갔다.
왕세적은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낙수계곡을 빠져나왔다. 그는 패잔병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앞에서 한떼의 군사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고, 이제는 죽었구나.”
왕세적은 그 순간 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렸다. 그가 넋을 잃고 마상에 앉아있는데 낭장 악소무가 기쁨에 들떠 외쳤다.
“저것은 고구려군이 아니라 장덕평이 이끈 아군입니다.”
왕세적은 그제야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개모성을 공격하라고 보냈던 장덕평의 부대가 분명했다. 장덕평의 믿음직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장덕평이 달려와 왕세적을 위로했다.
“부원수께서 낙수계곡에 갇히셨다 해서 이렇게 군사를 끌고 오는 길입니다. 조금만 가면 개모성입니다. 우리 군사가 개모성을 점령했습니다.”
간신히 기운을 차린 왕세적은 장덕평이 거느리고 온 군사들과 합세해 개모성으로 나아갔다.
개모성으로 가는 길에 울창한 수풀이 있는데 인근 백성들은 이를 북림(北林)이라 불렀다. 왕세적 일행이 북림의 길을 지나는데, 갑자기 함성이 울리더니 좌우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화살은 사정없이 수나라의 군마를 덮쳤다. 여기저기에서 수병(隨兵)들이 고통스럽게 죽어나갔다. 낙수계곡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수나라의 패잔병들은 기진맥진해서 더는 저항할 힘이 없었다. 간신히 장덕평이 거느린 군사들이 고구려군에 대항해 싸우려 했지만 불가항력(不可抗力)이었다.
화살 세례가 그치더니, 북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면서 매복하고 있던 개모성주 손자연의 군사들이 달려들어 간신히 살아남은 수병들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낙수계곡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목숨을 건진 왕세적은 눈앞에 선 고구려 군사들이 저승에서 온 사자처럼 여겨졌다. 그는 타고 있던 군마(軍馬)조차 잃고 호위 무사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다가 다리의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수나라의 명장 왕세적이 바로 그대인가? 이곳까지 오느라 노고가 많았다.”
위압적인 기세로 버티고 서 있는 고구려의 군마 사이로 봄바람처럼 살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세적이 힘겹게 고개를 드니 칠십대 후반의 기품이 흐르는 노인 하나가 미소를 띠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세적은 강이식을 굴복시키겠다고 다짐했건만, 오히려 그의 계책에 놀아나다가 비참한 꼴이 됐다고 생각되니 참담한 패배감이 밀려 왔다. 일이 이쯤 되니 왕세적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패장에게는 오로지 죽음만 있을 따름이었다.
왕세적은 바닥에 주저않은 채 칼을 뽑아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이를 본 강이식은 황급히 맥궁(貊弓)을 들어 왕세적의 오른팔을 향해 쏘았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이 왕세적의 오른팔에 적중했고, 왕세적은 비명을 지르며 칼을 놓쳤다.
“이곳은 네놈이 죽을 자리가 아니다. 내 너를 살려 줄 터이니 장안으로 돌아가서 너의 주군에게 고구려 공격을 단념하라고 일러라. 만일 헛된 야욕을 버리지 않고 다시 쳐들어온다면, 그때가 바로 수(隨)가 멸망하는 날이 될 것이다.”
강이식의 호통 소리에 왕세적은 넋을 잃고 그 자리에 널브러졌다.
이렇게 하여 고구려를 침범하여 개모성을 공략하던 왕세적의 군대는 강이식의 뛰어난 전술과 주도면밀한 계략에 말려들어 2만에 이르는 병력을 잃고 쓸쓸히 요하를 건너, 기다리고 있던 한왕 양량의 군사들과 함께 장안으로 철수했다.
그리하여 고구려 침략을 시도하던 삼십만 수군(隨軍) 가운데 삼만명 남짓 되는 패잔병만 살아 돌아갔던 것이었다. 이로써 제1차 여수전쟁(麗隨戰爭)은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났다.
제1차 여수전쟁 때에 고구려군을 총지휘하여 수군의 침략을 물리친 강이식(姜以式)은 진주(晉州) 강씨(姜氏) 가문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의 최고 저작『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 의하면「서곽잡록(西郭雜錄)」이라는 문헌을 이용해 강이식의 전공(戰功)을 전하고 있는데,『수서(隨書)』의 기록에는 고구려를 침략한 수군이 고구려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태풍과 전염병 때문에 많은 인명피해를 입고 철수한 것임을 강조한 왜곡된 서술로 중국사의 치욕을 은폐하고 있다며 비판하였다. 강이식의 묘는 만주의 심양현(瀋陽縣) 원수림(元帥林)에 있었다고 전하는데, 봉길선(奉吉線) 원수림(元帥林)역 앞에 병마원수강공지총(兵馬元帥姜公之塚)이라고 새겨진 큰 비석이 있었으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때에 소멸되었고, 묘역에는 돌조각과 거북좌대만 남아 있다고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