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28살이 된 여자입니다.아빠를 등지려고 하는데, 그 결심을 하고 나니 온 몸이 아프네요.
아빠가 젊으셨을 때는 공부도 잘 하셨고, 삼성에 취직해서 일도 잘 하셨습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30평대 아파트를 자가로 소유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 풍족했습니다.하지만 주식을 시작하시면서 모든게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IMF가 올 때쯤 주식으로 모든 돈을 날리고, 나가 죽겠다는 걸 엄마가 붙잡고 학습지 교사로 일하면서 경제적, 정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엄마 덕분에 빚을 꾸준히 갚아나갔고, 빚은 있지만 집을 날려먹는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다단계에 빠지셨고, 삼성을 그만두게 됩니다.덕분에 엄마는 학습지 교사로 일 하면서 아빠의 다단계 일까지 도와드렸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사실 학습지 교사 일이 정말 힘듭니다. 오후 2시쯤 수업을 나가서 밤 10시가 넘어서 돌아오고, 오전 시간에는 교재 체점, 사무실 교육 등 다양한 업무로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엄마는 아빠를 어쩌겠냐며 도우신거죠.
그리고 그 이후로 몇 가지 일을 거쳐서 2003년 중국에 사업을 하러 넘어가시게 됩니다.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의 사업을 하시면서 굉장히 위태로우셨고, 이때 엄마 몰래 집을 팔아넘기게 됩니다.집을 팔아 넘긴 후 1년정도 더 버텼습니다. 그 후 동업자였던 조선족이 회사 명의로 여기저기 돈을 빌려서 쓰고 다니다 잠적하는 바람에 말 그대로 난리가 났고, 그 다음날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이런 저런 일이 많았지만 일단 생략을 하겠습니다.아빠는 자기가 죽어야한다며 우울해 했습니다. 이번에도 엄마는 옆에서 어르고 달래며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다시 학습지 교사로 일을 하기 시작하셨고, 정말 열심히 사셨습니다.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어디로 엇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에 어기적 일어나 보면 엄마가 차려놓고 나가신 밥상이 보이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리고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빠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제가 정확한 가계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우선 한국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뽑은 차는 BMW였습니다. 중고여서 가격이 얼마 안 했다고 하지만 이렇게 적으면서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됩니다. 물론, 차를 들고 온날 엄마랑 아주 짧은 실랑이가 있긴 했지만 엄마가 너무 순해서 그렇게 그렇게 넘어갔습니다.그리고 매주 10만원이 훌쩍 넘는 한우 세트를 사오고, 외식도 잦았습니다. 외식도 뭐 시시한 건 눈에 안 들어오는지 복어, 참치와 같은 다소 부담이 되는 메뉴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월세로 지내는 집의 보증금도 겨우겨우 주변 지인한테 빌려서 쓸 정도의 경제 상황인 걸 알 고 있었고, 경제 공동체인 엄마는 아빠의 이런 소비로 인해 쓸 수 있는 돈에 제약이 더 생기고, 정말 한 푼 한 푼 아껴 쓰는 모습을 보니까 이 상황이 정말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빠한테 음식에 과소비를 할 때마다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음식도 많고, 뭐든 같이 마음 편하게 나눠먹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라며, 쓸 때 쓰는 거라며 제 의견을 전혀 반영해주지 않더라구요. 그 이후로 굉장히 강력하게도 말해봤지만 엄마가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리시니 저도 더 하지는 못 했습니다.
다행히도 몇 년 후 아빠는 중국에 좋은 기회로 취직을 하게 되셨고, 그때 일을 하면서 돈을 꽤 버셨습니다. 근데 거기서 4년 정도 일 하시다가 갑자기 일을 접고 한국에 돌아오셨고, 그 이후로 또 다단계 등 여러 사고를 치시면서 돈 날리고, 고소도 당한 상황입니다. 여기 관련한 이야기는 앞선 이야기가 길었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10개월 복역하고 나오셨고, 또 다른 소송과 관련된 재판은 곧 진행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아빠에게 인간적으로 실망한 부분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중국에서 일 하시는 동안은 돈이 모였고, 그 돈으로 또 사고를 치신겁니다. 근데, 그 여유가 있던 중간에 기본적인 채무 관계를 해결하지 않으셨다는게 참... 저의 말문을 막았습니다. 친척에게 생활비로 빌린돈, 앞서 말씀드린 월세 보증금 등 하나도 해결하지 않고 모은 돈을 엄한데 쓰셨다는 걸 알고 나니 아빠를 사람대 사람으로써 존중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곧 있을 재판을 앞두고 엄마는 우울증이 왔습니다. 지난번 재판도 아빠가 다 해놨다, 괜찮다고 해놓고 갑자기 잡혀 들어가셨는데, 이번 건은 상황이 더 좋지 않으니 걱정도 되고, 지난번 재판으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힘들어 하십니다. 그리고 늘 땜빵으로 고생하는 삶을 살아오셨는데, 엄마가 생각하시기에도 아빠나 상황이 바뀔 거 같지가 않으니 희망이 없고 삶에 회의가 드신다도 하네요.근데, 엄마가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책임감을 내려놓지 못해 아빠를 떠나지도 못 해요.본인이 더 힘들면서 아빠가 조금만 아쉬운 소리하고, 힘들다 투정부리면 그걸 또 옆에서 챙기네요.
이런 상황에서도 아빠는 쓸 때는 쓴다는 이유로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를 계속해 오고, 독단적인 선택을 멈추지 않습니다. 집에서 강하게 쓴소리 하는 사람은 제가 유일하고, 아빠라는 이유로 보듬기만 하는 가족사이에서 느끼는 이질감이 너무 커요.아빠를 떠나지 못 하는 엄마를 어떻게든 가까이에서 챙기고 싶어서 이때까지 꾸역꾸역 아빠를 봐왔지만, 이젠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 삶 자체가 흔들릴 거 같아요.그래서 아빠랑은 인연을 끊고, 엄마와만 계속 연락을 하면서 엄마가 엄마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려구요. 근데, 엄마가 남편,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제 삶을 잘 살아가는 거고, 그걸 위해서는 아빠와의 단절이 필요하다.제가 가진 그릇으로는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근데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하나 하나 실천하려는 데 온 몸이 너무 아프고 속상하네요.가족톡방을 나갔더니 엄마한테 전화가 와서 아빠가 우울해 한다, 이건 아닌거 같다고 얘기 하시는데, 그것도 참...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속상합니다. 너무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