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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꿀꿀이 바구미 6장 (11)

마쉬맬로우 |2004.02.14 14:11
조회 525 |추천 0

6-11



“그 집 며느리를 좋아했다는 거야?”


“응. 누나처럼 자상하게 챙겨주니까 여자로 보이더라고. 이미 남편도 없이 혼자 있는 사람이니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없었어.”


“고백은 했어?”


“어느 날은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한다고 연락이 왔어. 안간 지도 오래되고 해서 찾아갔지. 그런데 집엔 윤정씨 뿐이더군. 그 날따라 일하는 아줌마도 없더라. 윤정씨는 할머니가 잠시 외출했으니 기다리라고 말했어. 순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 마음을 알았는지 윤정씨가 날 피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임진씨는 담배를 하나 더 물었다.



“혹시나 말하는 도중 누가 오지 않을까해서 윤정씨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어. 내 마음을 고백했지. 그랬더니 마음을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 사실 윤정씨도 날 좋아하고 있었어. 내가 마음에 안 들지는 않지만 자기는 재혼은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그럼 시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을 거라고 걱정을 하더라. 당시에 할머니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의외였지.”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그 집 재산이 얼마냐? 그 돈이 자기가 죽으면 다 며느리에게 가게 된다고 얼마나 아까워하던지. 그런 이유로 나가라고 구박을 많이 했나봐.”


“나쁜 할머니네.”


“나는 바로 그만두지 않고 윤정씨를 계속 설득했어. 그 때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어. 밖에서 얘기를 다 들은 것 같더라. 윤정씨와 나에게 욕을 퍼 붓더니 이층방으로 올라가셨어.”



임진씨의 얘기는 진실인 것 같았다.



“나는 놀라 2층으로 가신 할머니 방으로 급히 갔어. 며느리에게 청혼을 하는 모습을 보니 화도 나셨겠지. 무릎까지 꿇고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렸어. 그래도 소용이 없더라고. 화가 안풀리는지 날 막 때리더라. 몇 대는 조용히 맞았는데 돈 때문에 윤정씨를 꼬셔낸다는 말에는 화가 나더라구. 그래서 할머니를 침대에 밀쳐내고 밖으로 나왔지.”



임진씨는 생각하기 싫은 광경을 떠올리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거짓말이야.”



갑자기 수암이 소리를 쳤다.


시선이 허공에 있는 것이 할머니 혼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걱정은 됐지만 수암이니 괜찮겠지 싶었다.


어차피 마무리 되어야 할 일이었다.



“할머니?”



임진씨는 이제야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너는 우리 며느리를 꼬셔내고 나까지 겁탈했어.”


“도대체 제가 언제 할머니한테 그랬다고 이러시는 거에요?”



할머니는 나에게 또 그날을 모습을 보여줬다.


임진씨가 할머니를 겁탈하려는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반항을 하자 목을 조르는 임진씨.



‘겁탈하려는 건 처음 보는데.’



그런데 수암은 물론 임진씨에게도 그 모습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임진씨는 입술을 물고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꽉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조금씩 흘렸다.



“거짓말이라고. 너 저걸 믿는 건 아니지?”



임진씨는 갑자기 나를 흔들어 댔다.



‘왜 나한테 이러냐고? 내가 뭐라 했냐고?’



“그건 모르죠.”



너무 혼란스러웠다.



“너도 정신차려. 이건 귀신 장난이야. 너 귀신을 물리치는 사람 아니야? 저 할머니 귀신 좀 어떻게 해보라구.”



날 퇴마사로 착각하는 듯 했다.


난 그냥 넋을 위로해 주는 사람일 뿐인데.


임진씨는 이번에는 수암에게로 가 소리를 질렀다.



“네가 진실을 밝혀 내자면서. 귀신한테 홀려 정신 못 차리지 말고 제발 진실을 밝혀 내.”



저렇게 광분하는 것을 보면 사실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앓고 있었을 때 보여준 것, 아까 할머니가 내게 왔을 때 보여준 것, 그리고 지금 보여준 세 개의 영상은 각기 달랐다.


할머니 말이 사실이라면 세 개가 일치해야 했다.


할머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할머니를 밀친 건 사실이야. 나도 화가 많이 나 내 정신이 아니었다구. 하지만 살려달라는 저 할망구 말을 듣고 곧 정신이 들었어. 내가 방을 나올 때까지 저 할망구는 멀쩡히 살아있었어. 뒤돌아 나오는 내게 욕설까지 퍼부었다구. 죽은 사람이 말을 할 수는 없잖아.”


“널 예뻐했건만 넌 내 아들을 자리를 넘봤어. 우리 손자의 아버지가 되려고 했어.”



할머니도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할머니 때문에 윤정씨도 포기했다구요. 이젠 이러지 마세요.”


“나는 널 용서할 수가 없다. 넌 벌을 받아야해. 우리 가문이 이룬 것을 한 입에 삼키려 했던 네 욕심, 그것 때문에 벌을 받게 될 거야.”



할머니의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복수를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다닌 것을 보니 일말의 동정도 가지 않았다.



“죽어, 어서.”



할머니는 수암에게서 빠져나와 임진씨에게 들어갔다.


수암은 맥이 풀렸는지 옆으로 눕듯이 쓰러져 버렸다. 할머니가 들어간 임진씨는 홀린 듯 황홀한 표정을 짓더니 쓰러진 수암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더니 수암을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대체?’



임진씨를 살인자로 만들 생각인 듯 했다.


죽음보다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게 살인자가 되는 것은 더욱 가혹한 형벌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재빨리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았다.


보이는 것은 유리로 된 재떨이뿐이었다.


막상 내려치려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안돼. 시간이 없어.’



눈을 질끗 감고 임진씨의 머리를 향해 재떨이를 내려 쳤다.


임진씨의 머리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잠시 흔들렸을 뿐 수암의 목을 계속 조르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둘 다 죽겠어.’



[내 자리를 뺏으려 했던 할망구 아닌가. 별 해괴망측한 짓거리까지 하는군.]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임진씨 쪽으로 가더니 할머니의 목을 확 낚아채서는 임진씨 몸에서 끌어냈다.


영의 기운이 빠져나가자 임진씨는 풀썩 쓰러져 버렸다.


두 사람의 생사를 확인 할 시간이 없었다.


할아버지를 도와야 했다.


할머니도 있는 힘껏 반항을 하는지 할아버지에게 우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등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목을 잡혔던 할머니는 오히려 할아버지의 허리를 잡고 흔들었다.


충격이 있는지 할아버지는 괴로워 보였다.


두 영의 서늘한 기운이 방안 가득 퍼져 나가고 있었다.



‘불리한 것 같은데.’



그 때였다.


할아버지에게서 뜨거운 기운이 퍼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영에게서 더운 기운이 나오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라 너무 신기했다.


할머니도 그 기운에 놀랐는지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멀찍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번개 같은 속도로 쫓아가 할머니를 잡았다.



[뜨거..워...]



할머니는 불에 덴 것처럼 괴로워하며 할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기운은 점점 뜨거워져 방안 전체가 더워졌다.


할머니는 힘을 잃는지 발악을 하던 몸이 축 처졌다.


나는 눈을 감고 합장을 한 후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염불을 외웠다.


엷게 종이가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할머니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간만에 또 힘들었네. 주머니에 있는 오징어 다오. 가서 좀 쉴란다.]



할아버지는 오징어를 가지고는 사라져 버렸다.



‘나도 쉬고 싶다. 너무 힘들어.’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정신을 잃고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날.


사건의 진상을 전하기 위해 이상무님댁을 찾았다.


할머니의 남편인 이상무님은 돌아가셨지만 그 집은 계속 이상무님댁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윤정씨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임진씨는 괜찮은가요?”



그녀의 눈빛에서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지금은 괜찮아요. 병원에 가니 열바늘 정도 꿰매주던데요.”



그게 괜찮은 거니 하는 눈빛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정말 재혼 안하실건가요? 아직 젊으신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재혼은 무슨. 전 이집 귀신인걸요.”


“집이 커서 적적하겠어요.”


여자의 얼굴에 쓸쓸함이 번지자 큰 집이 더 커 보였다.



“다음 달에 아이들을 다섯명 입양하기로 했어요. 그럼 사람 사는 집처럼 바뀌겠죠.”



윤정씨는 여생을 입양아들을 키우며 살겠다고 했다.


그 아이들이 크면 또 다른 아이들을 키우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집은 아이들로 가득할 거라며 웃으며 말했다.


나쁜 여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윤정씨는 정말 마음이 따뜻한 사람 같았다. 




며칠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사건이 마무리가 되자 마음이 편했다.


고민이 있다면 남은 나흘간의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것이었다.


이틀은 수암의 집에서, 나머지 이틀은 집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빠! 우리 영화 보러 갈까?”


“글쎄.”


“영화는 싫어? 그럼 쇼핑가자. 지방 가야하니까 옷도 좀 사야겠어. 명동 나갔다 올까?”


“그것도 좀.”


“왜 그래? 나랑 나가기가 싫은 거야?”



‘그새 마음이 또 변했나?’



“그게 아니라 네 얼굴이.”



그랬다.


시퍼렇게 멍든 눈.


뜰 수조차 없이 부어버린 나의 예쁜 눈.



‘아! 우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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