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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장례식에 가고싶지 않습니다.

ㅇㅇ |2020.09.09 15:13
조회 22,110 |추천 142

*방탈 죄송합니당

안녕하세요 저는 26살 흔녀 7년차 직장인입니다.

19살에 회사에 취업해서 직장인임과 동시에 선취업후진학제도로 서울 수도권 대학교에 재학중인 대학생이에요.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저녁엔 학교에 가서(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공부하며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중인데요.

이제 20대 후반이 되면서 우울하기도 하고(나이 때문X) 나름 고민이기도 하고 해서 끄적여 봅니당..

 

먼저 저는 어렸을 적 아버지의 폭력과 폭행 등으로 인해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8세 정도까지 대부분 친모의 밑에서 자랐습니다.

몇번은 친모가 다시 아버지한테 보내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일하셨던 시골 공장 구석지에 있던 쇼파에서 잠을 잤으며, 그런 제 모습이 심란했는지 자기가 여유가 되지 않으니 친모가 계속 키우라는 말과 함께 아버지는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친모는 무슨 직업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낮에는 하루종일 잤고 밤에는 나가서 일했습니다.

가끔 남자를 집에 데려오기도 했는데 6~7평 남짓한 원룸에 있던 침대에서 제가 자고 있어도 아랑곳 않고 (한침대에서 저는 등돌리고 누워있고) 바로 옆에서 남자와 성관계를 하기도 했어요.

이건 아직까지 저한테 트라우마로 남긴 했지만 친모도 젊은 나이였고, 미모도 굉장히 뛰어난 편이라 그럴수도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물론 친모의 행동이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다 이해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친모가 데려왔던 남자중 한명은 제가 불편한 요소로 느껴졌는지 가끔 친모가 없는 자리에서는 저를 제가 가지고 놀던 보드판이 휘어질 때까지 때리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대부분 집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생활했던 것 같네요.

 

그러던 중, 친모를 통해 아버지가 재혼을 해서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저를 다시 데려가고싶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침 친모가 자궁암에 걸려서 건강이 많이 좋지 않은 터라 저는 아버지와 새엄마와 살게되었습니다.

새엄마는 아버지가 보여준 사진 속의 제 모습이 너무 작고 마른 모습이 마음이 아파 저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고 하셨습니다.

다행히도 새어머니는 인품이 매우 좋으신 분이였고, 지금 저에게도 가장 많은 도움이 되는 정신적인 지주같은 존재입니다.

새어머니는 여장부같은 스타일로 아버지를 이끌면서 숙박업도 잘 키워나갔고, 음식솜씨가 좋아서 음식점도 같이 겸업하며 아버지가 살면서 가장 많은 돈을 만지게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초등학교 3~4학년이 되던 쯤 아버지는 동창들과 인터넷 까페에 글을 쓰고 댓글을 쓰며 온라인 사람들과 노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고 컴퓨터 중독까지 이르렀습니다.

펜션과 음식점 두가지를 운영하려면 정말 많은 일을 해야 했는데 아버지가 인터넷 중독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자 그 일은 다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월~금은 학교에 다니니 초등학생인 저도 나름 토~일은 늦잠도 자고 친구들과 나가서 재밌게 놀고싶었지만 저는 주말이 오는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습니다.

지금부터 그냥 제가 어렸을적 겪었던 내용들이라 지루할 수도 있지만 제가 이만큼 힘들었다..라는걸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니 너그럽게 이해 부탁드립니당..^^

 

근처 공장 인부(30명정도)들이 아침,점심,저녁을 먹고 있었던 터라 토요일아침 6~7시면 어머니는 음식을 준비하러 올라가십니다.

그럼 저는 어머니를 따라 가서 음식재료 손질을 합니다. 양파까고 계란 까고 감자 깎고 보조의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다 공장인부들이 오면 서빙하고 나르고 중간중간 서브적인 음식들도 제가 직접 하기도 하구요..식사 후에도 테이블 정리, 설거지, 음식점 바닥 청소(공장 인부들이라 바닥에 흙이 많아서 자주 더러워졌습니다ㅠㅠ) 등등 마무리를 하면 시간은 얼추 10~11시가 됩니다.

그럼 어머니는 바로 다시 점심 준비를 시작하시고 저는 금요일에 묵었던 펜션 손님들이 나간 펜션방을 치우러 펜션으로 갑니다.(펜션하고 음식점은 걸어서 2~3분 거리고 그 사이에 집이 있었어요)

숙박업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냥 방청소와는 정말 다릅니다.. 이불, 베게 등은 새거로 다 교체 해줘야 하고 부엌에 있던 식기구들은 다시 다 씻고 정리해두어야 하고, 화장실도 욕조와 세면대, 변기까지 단 한곳도 빠짐없이 청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토요일 손님이 입실하면 펜션 청소하면서 나왔던 쓰레기들 정리해서 리어카로 싣어다 10분거리에 있는 쓰레기장에 가져다 두고 수건, 휴지, 일회용품까지 정리하여 새로온 손님들에게 가져다주고나면 오후 3~4시쯤 됩니다..

그럼 다시 또 저녁준비를 하고 있을 어머니에게 갑니다.

그리고 다시 보조역할을 하고 인부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하고, 주방정리하고, 테이블 정리하고, 바닥 닦고하면 7~8시쯤 펜션 손님들이 바베큐할 시간이 됩니다.

어머니가 음식점을 마무리 할 동안 저는 숯, 번개탄등을 챙겨서 펜션 손님들 바베큐 불을 붙여주었고, 이 때 토치를 사용해야 했는데 미숙한 제가 하다보니 큰 화상을 입어 아직까지도 흉터가 남아있기도 하네요..

 

새어머니는 아직도 저만 보면 이때가 생각이 나서 울기도 하십니다.. 키가 작아서 닿지도 않는 설거지통 때문에 작은 의자 위에 올라가 옷이 다 젖도록 설거지 하는 니 뒷모습이 아직도 꿈에 나온다고 하시면서요.. 이렇게 하루종일 일만하면서 주말을 보냈지만, 아빠를 대신한다는 생각에 투정부리지 않고 묵묵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부부싸움이 격해지자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데리고 산에가서 같이 죽자며 칼을 챙겨 차를 가지고 나갔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려 온 집안에 피 범벅이 된 것을 제가 치우면서 오열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꼴보기 싫어지자 차라리 집을 나가서 예전처럼 공장이라도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학생이 되던 해 부터는 아버지가 주말에만 집에 오셨고, 저는 여전히 똑같은 일상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주말부부로만 생활하던 중, 아버지는 바람이 나셨습니다.

평생 차도 없이 살던 아버지가 불쌍하기도 하고 공장과 집을 오고갈 때 쓰라고 새어머니의 카드 할부로 차를 사줬는데 그 차를 다른 여성이 운전하며 속도위반한 사진이 집으로 날라왔어요.

새어머니는 불시에 공장을 급습하여 공장 한켠에 있던 방에서 깨가 쏟아지게 밥을 먹던 아버지와 내연녀의 밥상을 다 뒤집어 엎으며 난리가 났고, 저도 그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 집에 오지 않으셨고 새어머니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각종 쌍욕과 더러운 말들,

심지어 여성으로서 성적인 수치심이 드는 말들까지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아버지에게 니가 사람새끼냐며 미친듯이 욕했고 다신 내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 새어머니와 함께 적막같은 하루하루들을 보내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해에 다시 부천에 있던 친모에게 보내졌습니다..

 

친모는 지금이라도 엄마의 노릇을 해주겠다며 저에게 경제적인 부분은 다 지원해주셨고,

제가 전과는 다르게 평범한 학생처럼 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친모와 떨어져있던 세월이 많아서 그런지 새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많아서인지 친모와는 데면데면 지낼 수 밖에 없었고, 19살에 회사 취업을 핑계로 서울에 있는 원룸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

20살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어렸을적에 비하면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집안은 풍비박산이었지만 중학교 때는 전교 4등 이후로 내려간적이 없었고,

고등학교 때도 과 전체 석차에서 1등을 하며 학업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터라 대학도 다니고 있고, 회사에서는 벌써 과장으로 지내고 있어요!

 

이렇게 행복한 와중에 아버지가 간암으로 위독하신단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이상하게 단 1도 슬프지 않네요.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같이 살적에 늘 저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었어요.

"니가 어렸을 때 잠시 내 밑에 있을동안 사실 죽으려고 했어, 농약을 입에 넣으려고 하는 순간 니가 '아빠 뭐먹어? 나도 줘 나도 배고파..'하더라. 그 때 니 모습이 너무나도 마르고 작아서 죽을 수 없었어. 내 목숨은 ㅇㅇ이가 살린거야. 앞으로 무슨일이 있어도 내가 ㅇㅇ이는 지켜줄게"

아버지는 살 날이 몇일 남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저를 힘들고 외롭게 자라게 할 거였으면서 왜 저를 낳았고 왜 저런말들은 했을까요?

하지만 할머니나 아버지의 형제들에게 제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까지 안간다고 선언했더니 몹쓸 자식이라고 하시네요..

제 주변인들은 모두 저희 아버지가 어렸을적 죽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제 마음속에 아버지는 바람나서 집나간 이후 죽었습니다.

티비에서 딸을 아끼는 아버지의 모습만 나와도 마음이 미어집니다.

제가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 않아도 될까요?

 

 

 

추천수142
반대수1
베플ᆞᆞ|2020.09.10 04:02
장례식에 돈 많이 드니까 책임지게 하려고 부르는거임. 계모도 나빠요. 외롭고 의지할데 없는 쓴이의 연약한 심리를 이용해서 착취 했잖아요. 연륜이란게 살아봐야 생기는데, 50줄 넘은 입장에서 생각하니, 정말 가엽고 애처로우면 쉬게하고 사랑을 줬겠죠. 그래도 잘 커서 이쁘요
베플ㅇㅇ|2020.09.09 19:23
안가도 되요.그리고 빚이 있을수도 있으니 잘 알아보고 유산포기같은거 하세요. 빚도 상속이되니.., 그것도 기한이 있으니 돌아가시기전이든후든 재산부분에관해 꼭 알아보세요.
베플ㅇㅇ|2020.09.10 07:37
가지마세요 빚 덤터기 씁니다 도박빚 있겠구만 상속포기하세요
찬반남자톡하는유부남|2020.09.09 15:42 전체보기
안가는 방법도 하나지만.....가서 마지막 작별을 고하시는것도 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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