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는.. 이 코로나 시국에 정시로 대학을 준비하는 현 고3 입시생이야. 당장 정시 준비도 힘든 마당에 나도 내가 짝사랑을 시작할 줄은 몰랐어. 평소에 이런 커뮤니티를 잘 쓰진 않는데, 익명으로라도 누군가가 내 짝사랑에대해 말해주는 게 절박해서 여기에 글을 써.
나는 여고에 다니고 있어.
눈치 챘겠지만 난 동성인 같은 여자를 좋아해. 이 부분에 관해서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은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도 좋아. 난 내가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건 이미 유치원 때부터 점점 자각하고 있었고, 남들이 중2병에 고생할 때 나는 혼자 나에 대한 확신을 지었어. 그렇게 여고에 진학하게 됐고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이렇다 할 연애는 한 번도 못 해봤어.
짝사랑은 몇 번 있었지만 내가 워낙 내성적인 성격에 내 고백이 상대에겐 혼돈으로 다가갈 걸 알았어서 쉽게 용기를 내지도 못 했지. 그래도 지금처럼 그 상대가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은 느낌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
그러니까,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된 건 너무 순간이었어.
나는 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평범한 학생1일 뿐인데, 그 친구는 1학년 때부터 좀 유명했거든. 춤을 전공하는 친구라서 축제나 수련회나 체육대회 공연 같은 걸 하면 선생님들도 인정하실 정도로 춤을 잘 췄어. 다같이 춤을 춰도 이 친구는 확실히 눈에 튀고 무대를 즐기는 게 보이고.. 난 비전공자라 잘 모르지만 이건 다른 사람들도 다 입을 모아 말하는거야. 그렇다고 내가 이 친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춤 때문인 건 아니야.
3학년 반을 배정받고 새롭게 반에 올라오는데 멀리서부터 되게 시끄럽거라구. 애들끼리 깨발랄하게 웃는 소리같은 거 있잖아. 그 때 그 가운데에 있던 게 그 친구였어. 예상은 했었지만 하는 말도 재미있고 잘 웃고 활발한 성격이라 친구들 사이에서도 핵인싸인 그런 친구였어.
이 친구에대한 첫인상은 이 정도였고, 그 뒤로는 코로나 때문에 계속 개학이 연기되면서 자연스레 우리는 5월 달에 학기를 시작하게 됐어.
그 때부터 같이 반을 하면서 되게 의외의 모습들이 보였어. 이 친구는 매일 화장도 하고(여고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부지런함..) 머리도 하고, 이런 말하면 안 되지만 반 애들도 쟤는 좀 놀 것 같다는 말을 했었거든.
근데 얘가 수업을 되게 열심히 듣는거야. 솔직히 아무리 웃긴 애라도 수업시간에 과하게 웃기려고 하면 분위기 흐려지는데 얘는 가끔가다 한 두번? 그것도 되게 귀여운 목소리로 그러니까 쌤들도 예뻐하시고 분위기도 살았어. 공부를 잘하진 않지만 청소도 혼자 엄청 열심히 하고..ㅋㅋ 되게 열정 넘치는 친구야.
편의상 이 친구를 A라고 할게.
A는 무서운 친화력으로.. 우리 반 친구들이랑 정말 빠르게 친해졌어. 나는 친해지고 싶었어도 내성적이라 먼저 말도 못 걸었는데 어느 날 A가 수학시간에 갑자기 내 앞자리에 앉아서 나한테 말을 거는거야.
너 이름 000 맞냐고, 나 사실 너랑 진짜 친해지고 싶었다고, 진로는 뭐야, 정말 대단하다, 멋지다, 너랑 친구해도 되는거냐, 쉴 틈 없이 물어보면서 웃는데(A는 눈웃음이 정말 예뻐) 심장이 미친듯이 뛰더라. 정말 무슨 애가 이렇게 밝을까, 싶었어. 안 그래도 웃음 많은 애가 바로 앞에서 활짝 웃는데 표정관리가 안 됐어. 마스크 쓰고있기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스운 표현이지만 난 그 때가 내 한 해 중에 가장 더웠던 것 같아.
6월 모의고사 전에, 내 짝사랑이 시작돼 버린 거였지.
그냥 평범한 짝사랑이었다면 나혼자 마음고생하다 그만둘 수 있는데, 문제는 내가 A한테 푹 빠진 뒤에 보이기 시작했어.
우리 반에 체대를 준비하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를 B라고 할게. 그 친구는 숏컷에 매일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있거든. 성격은 둘 다 내성적이라 안 친해서 어떻다고 결론은 못 짓겠는데.. 되게 주변이한테 관심없는 스타일인 것 같아. 항상 따분해보이거든.
중요한 건 어느 순간부터, A가 B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
일단은 A는 원래 이런 쪽이 아니었을거야. 학기 초부터 계속 썸남들 얘기하고 남자 연예인들 얘기 많이 하고 누가봐도 이성애인 친구였거든. 애들한테 들리는 바로는 남자들한테 인기 많다고 들었어서.. 난 역시 그럴 줄 알고 혼자 마음 정리하려고 했는데, 난데없이 그 얘기를 들어버린거야.
A랑 맨날 붙어다니는 친구가 있어. 수업시간에 따분하면 둘이 뒷쪽에서 맨날 조용히 얘기해. 어느 날은 A 표정이 안 좋아보이길래 걱정됐었는데 그 날 수업시간에 둘이서 얘기를 하더라.(애들이 다 자는 분위기라 공책에 안 쓰고 말로 한 것 같아) 조용히 말한다고는 하는데, 내가 뒷쪽이라 다.. 들려..ㅠㅠ
대충 내용은 어제 B가 또 연락을 안 받았다. 나만 좋아하는 것 같다, 나도 이제 정신 차려야지, 내 마음 언제 정리될까, 차라리 걔(아마 다른 남자?)랑 사귀어 버릴까,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나 힘들어, 하는.. 중간에 B 이름도 계속 언급되고 누가봐도 짝사랑 마음고생 내용이었어. 옆의 친구는 계속 토닥이고..
나도 곧 종칠 것 같아서 엎드려서 자는 척 했는데, 엎드리는 동안 계속 얼굴이 뜨거웠어. 왠지는 모르겠어. 그냥 A가 너무 안쓰럽고 안타까워서 그랬나, 내 처지가 고달파서 그랬나.
근데 나 그 말도 들었거든. B는 사귀는 사람 있다는 말.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사귀는 사람 있거든 그 아이. 다른 반에 머리 짧게 자른 애랑 사귄단 말이야. 중요한 건 이 사실을 A도 아나 봐.. 그래서 요즘 계속 힘든가봐.
아무튼 너무 충격적인 내 짝사랑의 짝사랑을 알게 되고부터, 안 그래도 A한테 가 있던 시선이 이젠 B한테까지도 쏠려서 미칠 지경이야. 물론 원래도 둘이 계속 붙어있었지만 요즘엔.. 안 보고 싶은 것까지 보게 돼.
나는 B도 이상한 게, 친구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들을 A한테 하거든. 저번에는 A가 입에 아예 넣었다 뺀 과자를 확 뺏어 먹어버리고, 그거 때문에 A가 떨려하는 게 보여서 나는 마음 아프고. 매일 A가 B자리로 와서 B 끌어안을 때마다 걔는 공부할 거라고 가라고 하는데, 대놓고 상처 받은 A 표정 볼 때마다 내가 더 아파. 그리고 A가 좀 삐지면 B는 안 그런 척 하면서 애 끌어안고 (근데 안는 게 친구끼리 안는 게 아니라 되게 연인처럼 끌어안고 A허리를 쓰다듬거나 만져) 귀에 뭐 속삭이면 A는 또 풀리고. 장난 식으로 A한테 뽀뽀히려고 하고. 수업 시간에 둘이서 윙크하고 웃고.
난 A가 정말 좋아.
반 친구로서도 너무 좋은 친구고 사람 자체가 햇살처럼 밝고 환해. 사랑만 듬뿍 받고 자랐을 것 같은 A 얼굴에 요즘 그늘이 가득해서 속상하다. 그 증에서 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가장 속상해.
나 지금 한눈 팔 시기 아니고 감정에 놀아날 때가 아니란 걸 아는데 왜 이럴까. 누군가를 이렇게 깊이 좋아한 게 처음이라서 그럴까. 단지 좋아하는 상대가 처한 상황의 동정이 짝사랑에 더해져서 그런걸까.
아무래도 A 좋아하는 마음은 접는 게 좋을 것 같아. A는 너무 반짝거리고 환한 아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시선이 가고 마음이 간다는게.. 나 진짜 미련하다. 이런 나한테 따끔한 말 한 마디씩 해 주면 좋겠어.
너무 긴 독백이자 고백을 읽어줘서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마음의 무게는 조금 덜어졌어. 그리고, 성소수자를 너무 혐오하지는 마.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는 같다고 생각해. 단지 그 대상이 다를 뿐이고 사랑해야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거든.
어떻게 끝내야 할 지 모르겠다.
댓글과 조언 부탁할게.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