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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살려달라고 글 썼던 사람입니다. 마지막 이야기 입니다.

sha1004 |2020.10.18 20:39
조회 1,701 |추천 9

그 전 글이 궁금 하신분들은 아래에 링크로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m.pann.nate.com/talk/354882418





 





전 얼마 전 정말 죽을 것 만 같아서 살려달라는 글을 썼었습니다. 제 얘기를 적고 몇 분의 힘내라는 글을 읽고 제안에 무언가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시간들을 되새김 하면서 다시 한번 도전할 용기가 생겼네요

이야기를 적어가면서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제겐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럼 남은 이야기를 적어 볼게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렇게 저는 하루하루를 잃어갔습니다.

 

처음에는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세상이 미친 듯이 돌고 똑바로 바라 볼 수 없어도 술 탓으로 돌리면 되었으니까요. 큰 소리로 울어도 보고 소리쳐도 그냥 술 취한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몸을 아무리 혹사 시켜도 할머니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잃어 갈뿐 할머니는 아직도 제 곁에 있었습니다.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얼굴에 머금은 채 그저 묵묵히...

 

눈물로 할머니를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제 좀 흐릿해져도 좋으련만 점점 더 선명해지는 할머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때 할머니가 살아생전에 제게 해주신 말이 떠 올랐습니다. 밝은 노래를 부르라고.. 우리 손녀는 목소리가 맑아 듣고 있으면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전 노래를 불렀습니다. 슬플수록 더 밝은 노래만 찾아 불렀습니다. 저 혼자만이 아니라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면서 사람들과 소통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할머니와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구순열이라 발음이 이상한데도 일본에 오래 살아서 한국말이 서툰데도 제 목소리가 예쁘다고 노래가 너무 좋다고 말 했습니다.

 

할머니의 유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사람들도 제 노래 듣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걸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요.. 할머니는 제게 또 하나의 선물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사람들과 만나는 걸 두려워했던 제게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는 천국과도 같았습니다. 실제로 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과 대화 할 수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눈치 안보고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나는 노래를 육성으로 녹음하고 그걸 인터넷에 올리고 다른 사람들이 제 노랠 듣고 칭찬해주고.. 일본 노래도 한국 노래도 그리고 제가 막 만든 자작곡들도 너무너무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더 많은 노래를 듣게 되었고 24시간 내내 노래만 듣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어느어느 기획사라고 소개 하면서 가수가 될 생각이 없냐는 쪽지가 왔습니다.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전 그저 노래 듣는 걸 좋아할 뿐이었고 제 식대로 아무렇게나 부르는 노래가 좋았을 뿐입니다. 구순열에다가 일본 사람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사람들 앞에 저를 들어낸다는 게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런 제가 꿈에서도 꿀 수 없었던 가수라니..

 

당치도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쪽지는 정중하게 거절 헸고 그 때부터 노래 올리는 일도 중단하였습니다. 인터넷이란 가상세계가 좋았을 뿐 그 가상이 현실을 넘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한동안 미뤄놨던 청소를 했습니다. 방도 깨끗이 치우고 설거지도 하고 화장실 물 청소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생각났습니다. 이런 나도 꿈 꿀 수 있을까..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컴퓨터 전원을 켰고 그곳엔 또 다른 쪽지가 와 있었습니다.

발음이 안 좋은 건 트레이닝을 통해 보완하면 되고 운동을 할 수 있게 도와드리며 필요하다면 구순열 수술도 시켜주겠다고 되어있었습니다..

 

떨렸습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주고 거기다가 꿈까지 이루어 준다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런 저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태 고생한 모든 것들이 다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차가운 눈물이 아닌 따뜻한 눈물을 흘린 하루였습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처음 미팅을 잡고 만났을 때 한국 분 아내와 일본 분 남편으로 만났습니다. 거기서도 운명이라고 느꼈습니다. 아무리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생활했다고 해도 미묘한 단어들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우선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쪽지로 말씀해주신 것들이 다 사실이냐고..

 

사실이랍니다. 보컬 트레이닝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었고 운동도 다닐 수 있게 헬스장도 끊어주었습니다. 다만 저희가 신생 기획사다 보니 금전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길을 안내할 테니 그 길을 따라 걸어오시면 된다고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혼자서 멀리 멀리 돌아가느니 소개시켜준 곳들로 한발자국씩 걸으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어차피 가수가 되기만 하면 지금 투자한 돈의 몇 배는 벌 수 있다고 말하며 제게 돈을 요구 했습니다.

선뜻 결정할 수 없었지만 저를 위해 쓰는 돈이었고 돈을 많이 벌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이치니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 계시는 가족들에게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가수가 되어 돌아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꿈을 위해 걸어나갔습니다. 이 때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항상 자신감이 없고 무언가 쫓기는 듯 움츠려 있던 저에게 먼저 인사하고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괜히 피하기만 했던 사람들은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웃으며 인사하면 웃으며 답례해 주셨고 무거운 짐을 들어 드리면 녹차 한잔이라도 대접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변화를 준 기획사 부부가 제게는 천사와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루는 중요한 분을 만난다고 좋은 옷을 입고 오라고 했습니다. 화장도 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전 좋은 옷은 없었고 화장품 또한 거의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쇼핑하러 나가자며 백화점에 들어갔고 저는 또 다른 세상을 보았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당당한 걸음걸이, 눈에 확 띄는 인테리어까지.. 제 발로 걸어오긴 했지만 못 올 때라도 된 듯 쭈뼛거렸습니다. 그런 저를 보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저를 끌어당겼고 한 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곳에 들어가 옷을 제게 대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자기와 싸이즈가 비슷하다며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계산을 했고 바로 샾으로 향했습니다. 헤어와 메이크업 그리고 손톱 관리까지 받은 저는 거울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라고 생각 못 할 정도였습니다. 아니, 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곤 방송국으로 향했습니다. 방송국 근처 커피숍에 앉아 커피 한잔 하면서 기다리고 했습니다. 30분 후쯤 지났을까? 기획사 부부가 오셨고 오늘은 일정이 되지 않아 못 만나 뵐 거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대신 이렇게 이쁘게 꾸민 것도 아까우니 마음껏 놀다 오라고 했습니다. 꿈을 꾸는 기분이었습니다. 계속 거울 앞을 서성거렸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자꾸자꾸 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나도 바뀔 수 있구나. 이런 나도 이뻐질 수 있구나. 이런 나도 사랑받을 수 있구나..'

정말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집으로 와 걸려 있는 옷을 보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래. 힘내자. 나도 할 수 있어.'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부푼 마음은 어느새 확신으로 가득 찾고 이제 저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저도 성공했다고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기획사 사장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집 구해놨다고 집 옮기자고. 신이 났습니다. 1,2층으로 되어 있어 같이 지내기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저것 챙겨 주려면 같이 지내는 게 편하다고, 그리고 방송국 근처에 집이 있어야 교통도 용이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답니다. 돈이 조금 부족하다 합니다. 얼마나 부족하시냐 여쭈어 봤더니 500만엔 정도가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전 고민할 필요도 없이 제가 내겠다고 했습니다. 일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이 분들은 제 천사들이었고 돈은 가수가 돼서 벌면 되는 거였습니다.

 

집이 넓어지니 가구가 필요했습니다. 기획사 사모님이 같이 골라주겠다 해서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사모님의 안목을 믿으니까요. 아무래도 저보단 사모님이 더 잘 알 테니까요. 사모님은 요새 유행하는 건 이런 거고 연예인들은 요런 걸 쓴다면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모님네 것들은 고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같이 생활하는데 2가구씩 뭐 필요 있냐며 제가 필요한 것들만 사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필요하면 나눠쓰면 된다고 하더군요. 감동이었습니다. 역시 생각이 깊으시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가구나 가전제품, 생활 식기 등을 구입하는데 150만엔 정도가 들어갔습니다. 처음 보는 큰 냉장고에 처음 보는 드럼 세탁기. 정말 제 마음에 쏙 드는 가구들과 식기들까지.. 이미 꿈을 이룬 것만 같았습니다.

 

또다시 미팅이 잡혔습니다. 이번엔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사람이었습니다. 연예인이었고 여자분이셨습니다. 이 분은 단아한 걸 좋아하신다면서 전에 산 옷들은 안 맞는다고 하였습니다. 기획사 사장님은 먼저 만나고 있으니 사모님과 준비해서 같이 오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갔던 백화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 옷을 사고 메이크업과 헤어를 했습니다. 저희는 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하필 그 시간대가 사람이 많고 막히는 시간대였습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늦게 도착했고, 안타깝지만 그분은 다른 스케줄 때문에 먼저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차가 필요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좋은 건 나중에 가수돼서 끌고, 지금은 그래도 연예인이니까 너무 안좋은 거 말고 중간 정도 되는 걸로 사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말 나온 김에 사러 가자며 매장에 가셨고 차를 골랐습니다. 제게 물어보더군요. 마음에 드는 거 있냐고..

 

저는 괜찮다고 사장님이 알아서 골라주시라고 했습니다. 사장님은 사모님과 상의 끝에 SUV를 고르셨고 3백 50만엔을 지불했습니다. 지금은 돈이 없지만 곧 들어온다는 말에 일단 제 돈으로 지불했습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내 인생에는 불행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태어나자마자 구순열 때문에 죽을뻔했고 축사 냄새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가난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일본으로 쫓겨나다시피 왔는데.. 할머니를 만나고 이렇게 내 꿈을 위해 노력해 주는 사람들까지 만나다니.. 한국에선 힘들어서 죽을 거 같았는데 일본에선 행복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네..'

 

사장님과 사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사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더 고맙다고.. 우리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번 돈 다 쓰게 하고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래도 나중에 정말 잘 되면 지금보다 몇배는 더 잘해드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구순열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일본에서 수술하려고 했지만 수술은 한국에서 하는게 좋을 거 같다고 했습니다. 수술비가 240만엔 이지만 반은 우리가 냈으니 반만 좀 부담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고.. 수술하고 돌아오면 이제 바빠질 거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2주 정도의 일정을 잡고 소개시켜준 한국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으로 도착 후 상담을 해주시는 실장님을 만났고 실장님은 돈만 입금해주시면 바로 수술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기획사 사장님에게 들은 대로 준비한 수술비를 지불하였지만, 돈이 모자르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일본에서 그 어떠한 돈도 입금 받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겠지..’ 그렇게 믿고 일단 2주 생활하는데 필요할 것 같아 조금은 넉넉히 가지고 온 생활비를 포함해서 수술비 전체를 지불했습니다. 만약 그 기간 동안 일본에서 돈이 입금되면 돌려주시겠다는 말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수술은 일정대로 잘 진행되었지만 코에 염증이 생겨 염증 치료로 3일 정도가 늦춰졌습니다. 한국으로 가지고 온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좀 더 여유 있게 가지고 올 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아니 사실 돈이 다 떨어졌었습니다. 집 보증금에 가구들과 가전들.. 차 대금까지.. 그리고 같이 생활하면서 나간 생활비까지.. 거진 한국 돈으로 1억이 넘는 금액을 모았었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본으로 돌아는 가야 했고 사장님에게 빌려보자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없는 번호라고 나왔습니다.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일정이 밀리면서 돈이 떨어졌다고 그러니 비행깃값만 좀 빌려달라고.. 당연히 빌릴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입금된 돈도 없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막막해졌습니다. 일본에 집도 있고 차도 있으면 뭐 하나요.. 돌아갈 수가 없는걸..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20년이나 지난 지금 연락처를 알고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한국에선 핸드폰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었고, 인터넷으로 활동하는 것도 일본에서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단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어찌저찌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집은 축사들의 냄새는 여전했지만 모든 게 제가 떠났던 그때 그대로였습니다. 그렇게 잊고자 했던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기억되고 또 떠올랐습니다.

 

집 앞에 도착했지만 차마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성공해서 돌아 오겠다는 말 한마디만 남긴 채 그렇게 떠나왔는데 아무것도 가진 거 없이 돌아올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에 계신 기획사 부부들을 믿었습니다. 돌아가기만 하면 다 설명해 주실 겁니다.

 

한국 집을 뒤로 하고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일본에 계신 지인에게 부탁해 비행기 값을 빌리고 다시 일본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들어서는데 무언가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무언가 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집에 들어서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식기들이나 가구들 그리고 가전제품들까지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 때 같이 골랐던 명품 옷들도 없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차고에 차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전히 없는 번호라는 음성 뿐입니다.

통신사를 찾아갔습니다. 선불 폰이라서 조회가 안 된다고 합니다.

동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건물 등기에는 아예 그 날짜에 찍혀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차를 샀던 곳으로 갔습니다. 우리에게 차를 팔았던 딜러는 없었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명함을 내밀면서 이 사람들 좀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참담했습니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아무 곳에서도 그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른 입주자가 들어와 이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전에 살던 사람들 아시냐고 물어봤더니 이 집은 1년 전부터 비어있었고 원래 본인 집이었으며 그동안 세를 준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졸지에 집도 절도 없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길거리에 큰 가방을 들고 일본 할머니네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집 대신 큰 공터가 자리해 있었습니다. 원래도 낡은 집이었지만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없어져 버렸습니다. 일본에서의 추억이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거리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괜한 욕심이었습니다. 역시 저에게 기회가 올 리 없었습니다.

마음의 안식처 따윈 사치 입니다. 지독한 개인주의.. 이렇게 울고 있으면 누구라도 와서 물어라도 볼 텐데.. 아무도 누구도 저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하루를 꼬박 울었습니다. 울면서 생각 나는 건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떻게 죽을까? 굶어서? 목을 매달까? 아니면 손목을? 다리 위에서 뛰어 내릴까?

 

오만 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가 걸리더군요. 차마 들어가지 못했던 집 앞 대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들어가보기라도 할걸.. 엄마 아빠 동생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전 무작정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미 전화비도 못 내서 번호가 없어 졌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쯤 몇 번의 수신호가 있은 후

"여보세요?

............

목이 메어 한마디도 못 하는 저에게


"딸! 엄마월.. 월세 안내고 저..전하비냈어 ~~ 현아 아빠가 집세 내라고 돈 줬어 .

어떤 여자가 전화 자른다고 해서 엄마 월세 안내고 전하 샀어~

딸 저.. 전하 온다 엄마 울었어!

아빠 소리질렀어..  엄마 저..전하오면 받으려고 현아 갖고 싶어하던 화..화장실도 만들었어. 나무 보..보일러도 놨어.

따순물도 나와! 그러니까 집에 와~! 아빠 많이 보고 싶어해. 우리 딸 미안해 그러니까 집에 와~~"

아무런 대답 없이 울고만 있는 저에게… 


“엄마 비행기 줄게 빨리 와…."

 

그렇게 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20년이란 세월 동안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저만큼 늙어버린 부모님과 동생들 품으로요..

여전히 똥 냄새는 나는 곳에 가난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서도 순탄치만은 안았습니다. 우리집이 괜찮아진 게 아니라 세상이 좀 더 살만해진 겁니다. 이제는 더 이상 컬러 TV가 신기하지 않듯,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하는 게 혁신이 아니듯 집 안에 화장실이 있고 보일러를 틀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일본에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평생 일본에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역시나 돈 때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챙길 여유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일본에서 들어놓은 적금이 생각났습니다. 적금을 깨고 가지고 들어온 3천만원으로 작게나마 엄마와 아빠 명의로 집을 샀습니다.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옛날 생각하면 정말 좋아진 게 맞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저희 집입니다. 더 이상 월세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저희 집입니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는 그대로였습니다. 우편물들이 날라왔고,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듯 아무것도 아니라며 태워버렸습니다. 그때 조금 더 유심히 봐 둘걸.. 이게 뭐냐고 물어볼걸..

제가 일본에 가 있는 동안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채무가 없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제 이름으로 집을 살걸이라고 후회하지만 그래도 어쩌나요..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아빠와 엄마에게 재산이 생기자 채무관련 서류들이 날아온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돈을 갚아라. 그러다 계속 안 갚으면 경매가 들어간다는 경고장.. 그리고 제가 알았을 때는 이미 강제경매가 되어 명의을 잃고 난 후였습니다. 법원에서 날라온 우편들이었습니다. 글을 제대로 모르시는 엄마가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태운 것이었습니다. 동생들도 사회생활을 하긴 하지만 단순 반복 업무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다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변호사사무실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법원을 찾아가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수차례 우편을 통해 내용을 전달하였고, 이의신청 기간이 지났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엄마에게 어디서 돈을 빌린 적 있냐며 물었지만 글도 제대로 이해하시지 못하시는데 돈을 빌렸을리 만무합니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돈을 주면 주었지, 어디 출처도 모르는 돈을 가지고 왔을 리 만무합니다. 다만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러더군요. 채권자가 대부 업체로 되어있는 거 보니, 노리고 그런 거 같다고…

왜 이럴까요? 제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 못된 걸까요? 정말 제가 태어난 게 잘 못인가요? 엄마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차라리 같이 죽자고.. 아빠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까지 대체 무엇을 하신 거냐고.. 동생들을 붙잡고 소리쳤습니다. 이런 바보 천치 같은 놈들이라고..

 

이쯤 되니 생각이 정리되더군요. 어렸을 때야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환경을 탓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제 탓입니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제가 태어났기 때문에 죽었어야 할 제가 살아있기 때문에 이렇게 불행한 겁니다..

 

죽을 거라며 집에 있는 농약을 마셨습니다. 엄마는 미친 듯이 저를 때렸습니다. 다 토 해내게 하신겁니다. 병원으로 갔지만 다행히 안에 든 건 농약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입원을 했습니다. 엄마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딸.. 니가 살아야 엄마가 아프지 않아. 엄만 괜찮아.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아? 우리 딸..”

 

 

 

… 오늘도 하염없이 울어버렸네요…




저의 긴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직 나아지지 않았고 어떻게 괜찮아 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 보렵니다. 제가 괜찮아야 엄마가 슬프지 않을 테니까요..

제가 살아왔던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다 보니

제가 있는 곳이 어디 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나니 해야 할 일들이 마구 떠 올랐습니다.

첫 번째 글을 통해 방송사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노래가 좋으시다면 혹시 소속사 오디션이나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볼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질문 이였습니다.

저는 곧바로 인터넷에 회사들을 검색해봤고 유난히 이름이 와 닿는 어떤 한 회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의 이메일로 제가 녹음했던 음악을 보냈습니다.

물론 연락이 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냈다는 것 만으로 전 만족합니다.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 들을 해보기 위함 이였습니다.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도록 되든 안되든 다 해보려고 합니다.

제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도 힘들었던, 또는 힘든 이야기들을 적어보고 여러 사람과 나눠 보세요. 어쩌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추천수9
반대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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