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현의시 재회중에서
“”우리는 나란히 걸었습니다
그러다 나는
일부러 걸음을 늦췄습니다
당신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들의 겨울방학을 맞아, 캐나다로 떠난지 1년 아내와 아들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우리는 한가족으로 다시 만났다. 공항으로 나가 아내와 아들을 기다렸다. 입국장 게이트 앞에서 안내판을 보며… 한명 한명 입국장 게이트가 열릴때 마다 사람들을 보며, 기다렸다. 아내와 아들이 보였다. 아들은 못본사이에 훌쩍 커버렸다. 아기같았던 아들이 어린이가 되어 버렸다. 아빠 하며 달려드는 아들을 달려가 안아주었다. 아내는 그 뒤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다가왔다. 아무리 서로가 안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오래만에 보는 아내가 반가웠다. 아내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 보았다.
캐나다 학교의 겨울방학은 3주 내외이다. 아내와 아들은 2주동안 한국에 머물 예정이였다. 방학동안 지낼 레지던스를 예약했다. 부모님에게는 처와 아들이 귀국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본가에 불러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실께 뻔했고, 오랜만에 재회한 우리 시간을 시댁이라는 심문실에서 질문을 받는게 싫었다.
짐을 풀고, 장을 보고 아내는 저녁을 했다. 오랜만에 세식구가 있는 풍경이였다. 솔직히 아내가 귀국한다는 말을 했을떄, 아내 보다는 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화상통화로 1주에 몇번 아들의 얼굴을 보는 시간이 너무 아쉬웠고 짦았었다. 한창 성장기의 아빠의 빈자리가 아들에게는 컸을거 같고, 아빠인 나는 아들에게 미안했었다.
아들이 잠이 든후, 오래만에 우리는 둘의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 였다. 학교에 잘 적응은 하는지, 친구는 사귀고 있는지, 엄마 아빠 사이에 대한 불안감은 없는지……요즘 아이들은 우리때보다 조숙하다. 눈치도 빠르고.. 아들이 아내에게 엄마 아빠는 이혼할거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아빠도 캐나다에 와서 같이 살면 안되냐고 말했다고 한다. 마음이 아팠다.
아내는 처외삼촌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외삼촌은 무역회사를 운영했었고 아내는 예전 직장경험을 살려 캐나다에서 일을 했다. 아내는 혼자 아들을 키우느라 힘들었다고 했고, 내 빈자리가 컸다라는 말을 했다. 그 당시에는 예전 아내의 외도문제에 대한 굳이 서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내가 온 그주 주말 처가집을 갔고, 주말동안 처가집에 있었다. 아들을 처가집에 두고 아내와 난 둘이 외출을 했다. 무슨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내와 둘이 외출을 하고 싶었다. 빌즈라는 호주식 브런치 레스토랑을 갔다. 아내는 오지브런치세트를 주문했고 난 아내가 좋아하던 팬케이크를 주문했다.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팬케이크 먹어볼래 당신 좋아하던 거잔아”라고 말을 꺼냈다. 아내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그리고 조용하게 “응” 하고 대답했다.
식사후, 우리는 별 대화 없이 걸었다.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까지 삼청동 거리를 지나서 북촌까지 가는길에 커피숍에 들러 커피도 테이크 아웃에서 마시기도 하면서, 날씨는 쌀쌀했으나 그냥 걸었다. 오랜만에 만나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될지도 몰랐었다, 아내도 나에게 어떻게 무슨말을 해야될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때 우리는 일상적인 부부의 대화를 하는 것이 서로 어색했던거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걸었던거 같다. 아내가 앞서 걸어갈떄 아내의 뒷모습이 눈에 보였다. 아내는 키가 171CM로 여자치고는 키가 크다. 그런 아내의 뒷모습이 자그마하게 보였다. 아내가 나를 뒤돌아보며, 조그만한 목소리로 “다리 아파”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아무말 없이 주변 호텔로 들어갔다.
오랜만이였다. 아내를 품어본적이, 대화는 없었고 서로의 눈빛으로만 말했다. 사랑이라기 보다는 그리움의 갈증이였던거 같았다. 사랑후 오래만에 같이 침대위에 누워있는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서로 안아주고만 있었다. 나에게 안겨있던 아내는 조용한 목소리로 “미안해”라고만 말했다. 그말을 듣고 난 영화 맨인블랙의 뉴랄라이져 처럼 예전 우리의 일을 지워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늦게 아내와 내가 집에 들어갔을 때 아들은 그때 까지 꺠어있었고 아들은 우리보고 데이트는 어땠어 하고 장난스럽게 말을 했다.
2주후 아내와 아들은 캐나다로 돌아갔다. 아내와 난 그 동안 우리에 미래에 대하여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재회후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평화를 주었고, 그 당시에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때는 힘들었던 우리의 과거를 굳이 입에 올리기 싫었고, 향후 우리가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싫었다. 돌아가는 날 아내는 출국장에서 날 포근하게 안아 주었다. 그리고 아들은 나에게 캐나다로 언제 올수 있냐며 물었다. 그날은 그리고 그날 내 심정은 나고 같이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한국에는 너무 아픔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캐나다로 같이 간다면,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없어질거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이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