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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의 꿈 <6>

ㅇㄹㅂㄹ도리 |2004.02.27 13:47
조회 613 |추천 0

공무원이 되고 얼마 있다가 약간의 불미 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잘 해결

됐다. 공무원(기술직)의 월급이 학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격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 되는데 문명공학 엔지니어의

자격증을 받자니 우선 인턴 시험(EIT)에 합격하고 2년 내지 8년의 경험이

있어야 시험자격이 생기는데, 시험 과목을 알아 보니 고층 건물의 구조

설계, 수력 발전소 설계, 고속도로 설계, 상수도 배관 설계, 하수배관 및

폐수처리장설계, 건물의 지진방지설계, 토질 및 수질처리설계, 항만설계,

수리학, 경제원리 및 분석, 측량 및 토지 분배, 토양학, 전자화학, 도시설계

등의 시험을 치뤄야 하는데 합격률이 25%라는 것이다.

 

 나의 실력으로는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다행히 합격만 하면 세계 어딜 가나 인정 받는 U.S. 문명 공학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다. 대학 입학시험을 치룬다는 각오로 밤잠을 하루

다섯 시간 정도만 자고 약 삼년간 공부에 전념한 결과 모든 것에 합격할

수가 있었다. 2003년 현재 자격증 있는 문명공학 엔지니어의 연봉은 최하가

7만불, 최고가 26만불 정도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연봉이 겨우 7만2천불

임에 비하면 엔지니어가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이 미국인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파면을 당하고 왔지만, 한국 사람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하여 몇 배의 일을 했다. 예를 들면 그 당시 토렌스시의 크렌셔 길과

190가를 지나 가려면 송장 썩는 악취 때문에 주변의 부동산 값이 폭락했고,

사람들은 기절, 구토, 설사, 두통 등을 호소 했으나 그 원인을 몰랐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자 심지어는 제 2차 대전 때 원자탄 발명자 중의

한 사람인 존 밀 박사, 그리고 노벨 화학상 까지 받은 리차드 파머로이

박사까지 동원 했으나 전부 손을 들었다. 아무도 이 프로젝트를 맡으려

하질 않았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제트를 자원해서 맡았다. 정부의 모든

수사력과 감독관, 심지어는 경찰대까지 동원시켜 그 송장 썩는 악취가

모빌(Mobil) 회사의 공업 폐수 속에 섞인 머캡턴 (Mercaptans) 때문이란

것을 알아 냈다. 이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훌륭한 사람(Great Guy)”

하며 칭찬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애틀랜타시에 있는 윌드 콘그래스 센터(World Congress Center)

에 수천명의 대학 교수, 엔지니어 및 과학자들을 모아 놓고 나의 프로젝트

성공담을 발표 하게 했다. 1981년과 1982년의 미스 아메리카들까지 불러

기념 사진도 찍게 했다. 대기 오염 엔지리어링(Pollution Engineering)으로부터

상장도 받았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정부에서는 19개나 되는 모든

정유회사의 환경에 관한 문제를 나에게 관리 감독토록 했다.

 

 1986년에는 하루에 4억 8천만 갤런의 폐수를 처리 하는 칼슨이라는

도시의 하수과(JWPCP)에 난데없이 150만 갤런의 원유가 흘러 들어와

온 세상이 발칵 뒤집힌 큰 사건이 발생 했다. 모든 정유 회사는 자기는

아니라며 발뺌을 했다. 나는 새벽 1시에 12명의 감독관들을 비상 소집하여

맨홀 뚜꼉을 차례차례 열어가며 역추적한 결과 아르코(ARCO) 정유회사가

범인 임을 알아냈다. 고의로 방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 됐기 때문에

연방 판사는 USC, UCLA, 그리고 Caltch 대학에 환경 교육 자금으로

백만불씩 지불 하라고 명령 했다. 나의 능력을 잘 평가 했는지 나의

직장에서는 정부에서 등록금 100%를 지불 하겠다며 공학 박사과정을

마치게 해 주었다. 그 후에는 또 MIT 대학에 가서 정부 돈으로 환경 공학

과정을 마치게 도와 줬다.

 

 나는 위에서 말한 모빌 회사의 송장 썩는 냄새와 아르코 정유회사의

문제를 해결한 후에도 디디티(DDT)의 파이프 내에서의 누적에 관한 연구,

파이프내에 생기는 스케일 (Scale)에 관한 연구, 하수파이프내의 화학적

생화학적 연구 등으로 많은 논문을 썼다. 모든 논문은 책으로 발간 됐다.

 

 1985년에는 법정에 나갈 일이 자주 있기 때문에 데일 카네기 스쿨

(Daie  Carnegie School) 에 가서 18주간의 연설법(Puvlic Speaking) 을 정부

돈으로 마치게 해 주었다. 이 과정은 참으로 재미 있고 인상 깊은 과정

이었다.

 

 1988년에는 한국에서 열린 올림픽에 성화 봉송 주자로 나가는데도

정부에서 나를 도와주었다. 올림픽 때문에 한국에 가 있는 기간도

근무 시간으로 간주해 주었다. 출발 전 공보실에서는 LA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일간신문사에 공문을 보내 나의 올림픽 성화 봉송 출전

(Olympic Torch Run)을 알렸다. 그 많은 신문사에서 나 에게 인터뷰가

왔었다. 모든 신문에 나에 관한 사진과 기사가 실렸었다. 결론적으로

어딜 가나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일하면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과학원(KAIST) 과 여러 개의 대학 그리고 현대 중공업등에서

초청직 (Job Offer) 이 왔으나 전부 거절했다. 하지만 미국의 퍼듀,

노스이스턴, UC버클리, USC, Calstate LA 대학 등에서 강의 초청이 왔을

때는 기꺼이 가서 강의를 했다.

 

 1991년에는 메사추세스주에 있는 MIT공대에서 교수 자격으로 강의

초청이 왔을 때는 “내가 거지의 꿈을 이룬 것 인가?” 하고 나에게 물어

보았다. MIT에서 가르친 과목은 ‘하수부식의 화학적, 생화학적 현상

(Chemical and Biochemical Phenomena of Sewer Corrosion)’ 이었다. MIT 공대에

도착 해보니, 교내 모든 게시판에 나에 관한 강의 과목이 붙어 있었다.

 

 1993년 나는 20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끝냈다. 상부에서는 나가지

말라고 말렸으나 고집을 피우고 나오기로 결심 했다. 직장에서는

내가 퇴직 한다는 공문을 연방 정부, 주 정부, 카운티 정부에 보냈다.

위티어(Whittier)에 있는 캘리포니아 카운티 클럽(California County Club)

에서 퇴직식과 파티가 있었다. 연방 정부, 주 정부, 카운티 정부와 나의

직장의 동료들 그리고 몇몇 한국 친구들이 참석해 주어 파티장을 꽉

메웠다. 나는 퇴직 연설을 하는 도중 나의 살아 온 일을 생각 하며

자꾸만 눈시울이 젖어 왔다. 나의 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고 뒤이어 많은 관리들이 나와 나의 관한 업적과 여러 가지

얘기들을 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은 국장인 밥 밀(Bob Milne) 의 말이었다. 그는

나를 가리켜 ‘미국의 위대한 과학자’ 라고 했고 두 아들을 판사로 둔

어비 콜펠드 (Irv Kornfeld)가 나와 나를 ‘위대한 개척자이며 훌륭한

시민’ 이라며 격려를 하기도 했다.

 

많은 감독관들이 나와 함께 경험을 살려 ‘RCH 환경 연구소

(Research and Environmental Laboratories, Inc)’를 저축 했던 모든

돈을 들여 열었다.

 

미주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거지의 꿈 - 이중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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