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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생활 이야기 vol.6 (since,1995)

쥰세이 |2004.02.29 01:47
조회 1,185 |추천 0

※ 역주: 9년 전 이야기이니, 지금과 다른 부분이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동급반 소개가 끝나자,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 얼추 5명 정도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저 가벼운 눈인사만 나누고 첫 강의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에 신경 쓰며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 뭐라고 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중간에 모르는 단어가 들리면 이상하게 그대로 귀가 닫혀 버린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과연 해 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첫날 강의는 앞으로 진행될 수업방식과 교제, 시험요강 등에 대한 설명으로
대충 끝냈다. 가방을 메고 다음 강의실을 나서려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한국사람이었다. 악수를 청하며 말을 건네 온다.
= 한국에서 오셨다죠? 통성명이나 하고 지내죠.
- 아~ 네. 저는 한○○라고 해요. 앞으로 잘 지냅시다.
= 난 임△△예요. 그런데 휴학하고 오셨나 봐요?
- 네?(어려 보였나 보다) 아뇨. 직장생활 잠깐 하다가 나왔어요.
= 실례지만, 나이가? 난 21살인데. 경험 삼아 휴학하고 나왔거든요. 독문 전공이라 ...,
- 아 그래요. 난 26살입니다. 독어가 전공이라니 앞으로 잘 좀 도와주세요.
= 도움이라뇨. 별 말씀을 ..., 앞으로 형이라고 부를게요. 잘 지내봐요. 형!
말 놓고 지내기로 하고, 우리는 다음 강의실로 이동했다.
- 나만 안 들리는 걸까?
다른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면서 웃음을 짖기고 하고 필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나만 혼자 도태되어진 듯했다. 긴장과 걱정과 두려움의 연속!!

 

하루 강의를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두려움이 섞인 공허함이었다. 모든 게 생소하게 천천히 시작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첫날 강의시작부터 삐꺽거리는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진다.
-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연필이라도 깎아야지. 그래, 난 해낼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뭔가 방법을 떠 올려야 했다.
- 귀가 열려야 할 텐데 어쩐다? 그래! 라디오를 사자.
바로 시내로 나가 CD플레이어와 라디오가 딸린 카세트를 싸게 구입했다.(200DM정도)
녹음기를 작동시켜 라디오에 온통 신경을 집중했다. 들리는 단어가 나오면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2시간 내내 들었지만 들린 단어는 고작 30개도 체 안 됐다.
- 그래, 이런 식으로 매일 연습하는 거야. 집요해져야 한다.

 

어느덧 강의가 시작 된지 보름이 흘러도 여전히 강의시간에 귀가 안 뚫린다.
점점 심신이 피곤해져 온다.
여전히 밤마다 라디오를 켜 들리는 단어를 적는 연습을 했다.
독일어와의 전쟁 그 자체였다. 쓰고, 듣고, 따라 읽기, 투쟁의 연속!
하지만 반대로 하면 할수록 점점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었다.
이렇다할 느낄 만큼의 진전이 전혀 없다.
누군가 말하더라, 영어는 울면서 들어갔다가 웃으면서 나오고,
독일어는 웃으면서 들어갔다가 울면서 나온다더라.
과연 내게 있어서 독일어 정복은 어떤 모양일까?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 이겨내야 한다. 이대로 여기서 주저앉으면 그야말로 패배자가 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한국어로 쓰며 아는 데로
문장을 만들어 써 내려갔다. 그리고 모르는 단어는 따로 summary를 해 단어장을 만들었다.
다른 방법은 없다. 읽고, 쓰고, 듣고, 외워나갔다. 기본적인 방법이다. 생각은 필요 없다.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 한달 ...,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어느 날 강의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데, 방문에 메모가 붙어 있었다.
[필요한 거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오세요. 월세는 모레까지 주세요.]
집 주인의 메모였다. 돈 얘기가 나오니 씁쓸해진다. 은행명세서를 확인해야했다.
- 어쩐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야 할 텐데, 벌써 가져 온 돈의 1/3을 써 버렸으니 ...,
마음이 처량해지니 집 생각이 간절했다. 순간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호돌이(진돗개)가 생각났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었다.
- 도대체 내가 여길 왜 와서 이 고생인가! 버젓이 잘 다니던 직장을 왜 때려치우고 왔단 말
  인가! 뭘 이루기 위해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자처하고 있는 걸까?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내 독일생활의 첫 번째 슬럼프에 빠진다.

 

연일 이틀째 학원을 결석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었고 만사가 귀찮았다.
귀와 입과 눈을 꼭 닫아버렸다. 출입을 전폐하고 술독에 빠져 헤어나올 생각조차 않고
시간만 때웠다. 점점 몸은 쇠약해지고 어두컴컴한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다.
급기야 P를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 너한테 난 뭐였니? 들러리였니?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나쁜 여자야!
마인강으로 나갔다. 한없이 흘러가는 강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한강이 떠올랐다.
- 이 강이 한강보다 더 넓을까?
쓸 때 없는 생각에 빠져 술만 들이켰다.
영감이 떠오른다. 파란앨범!!(The Bluealbum in my heart, 게시글_1809 참조)

 

얼마나 마셨을까?
눈을 떠보니 병원이다.
= Wie geht's ... @^%%R$#^&? (독일 간호사)
- ....,
응급실이었다.

- 얼마나 마셨을까?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그 생각뿐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 쓰겠습니다.(6)

 

[추신] 승단시험에 합격해 국제공인 검도 초단 라이센스 땄습니다.

 

※오늘의 말씀:잠언 16장:1~9 (지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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